♠ 동양 최대 규모의 법당을 지닌 제주도의 대표적인 현대 사찰
약천사(藥泉寺)
▲ 남쪽 '이어도로'에서 바라본 약천사 |
서귀포 대포동에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현대 사찰인 약천사가 크게 둥지를 틀고 있다. 절
뒷쪽
에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이 있으나 그 덩치는 매우 작으며 주변이 거의 경작지와 들판이
라 거의 평지 사찰이나 다름이 없다.
절은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남쪽 전방 1리 거리에 바다가 넝실거리고 있어 여기
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아주 진국이다. 게다가 경내 주변으로 제주도의 특산품인 감귤(柑橘
)나무가 귤을 가득 머금고 있어 따스한 남쪽 사찰의 이색 풍경을 진하게 보여준다.
약천사란 이름은 이름 그대로 약수(藥水)란 뜻이다. 머나먼 옛날부터 절 자리에는 '돽새미'란
우수한 수질의 약수터가 있었는데, 샘터 주위로 그 물을 먹고 자라는 논과 감귤나무 밭이 펼
쳐져 있었다. 돽새미는 이후 '도약샘(道藥泉)', '돽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절터왓'이란 부르기도 했는데, 고려 후기부터 '약천사'라 불리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절은 돽새미란 약수를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꾸려진 것으로 보이며, 제주도
2대(또는 3대) 사찰의 하나였던 법화사와 가까워 그에 속한 조그만 절이 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허나 이를 입증할 역사 기록과 유물이 전혀 없어 아직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다.
1960년대에 '김형곤'이란 학자가 병을 치료하고자 이곳의 조그만 굴에서 100일 관음기도를 올
리다가 꿈에서 약수를 받아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하여 그 인연으로 작게 약수암(藥水庵
)이란 조그만 암자를 짓고 포교에 전념하다가 입적했다.
이후 18평짜리 초가 법당만 남아있던 것을 혜인이 이곳 일대를 사들여 절을 크게 일으켜 세웠
으며, 이곳에 있던 약수터의 존재감을 살려 절 이름을 약천사라 했다.
혜인은 제주도에 국제적으로 큰 사찰을 짓고자 적당한 터를 물색하다가 현재 자리에 퐁당퐁당
빠졌다. 하여 1981년부터 열심히 벌어들인 돈으로 약수암 주변을 조금씩 매입했으며, 지역 주
민들과 신도들, 그리고 우리의 옛 해양 영토인 왜열도에 거주하는 재일교포와 왜인(倭人)들까
지 그의 뜻에 호응해 많은 돈을 보내왔다.
1988년 어느 정도의 토지를 확보하자 3층 규모의 큰 법당을 짓기 시작하여 1991년 9월 완성을
보았다. (법당 설계와 조감도는 혜인이 직접 했음) 법당이 완성된 그해 상별당이 지어졌으며,
이듬해(1992년) 자모당을 짓고, 큰법당에 단청(丹靑)을 그렸다. 이는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의 단청불사로
꼽힌다.
1993년 3월에는 인근 마을 노인들을 초청해 제1회 경로잔치를 열었으며, (경로잔치는 매년 가
지고 있음)
1993년 큰법당에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봉불식(奉佛式)을 가졌다. 이 불상을 만
들고자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조성을 했으며, 단일 목불좌상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리고 1996년에는
대웅전 낙성대법회와 나한전 상량식을 가져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1997년 혜인은 약천사 회주(會主)로 물러나고 덕조가 새 주지가 되었으며, 1998년 영천 은해
사(銀海寺)의 말사로 등록하여 조계종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절 건물과 토지는 모두 조계종
소유가 넘어갔다.
2001년 10월, 새 범종을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 소리가 매우 맑고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했
다. 2001년 10월 30일에는 오백나한 봉안식과 국제가사불사 회향대법회를 열었으며, 이때 국
제사찰음식 교류전을 가졌는데, 이 행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다.
2002년 5월 템플스테이(Temple Stay)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의 참여가 많다.
2007년 1월에는 문화관광부 지정 전통사찰이 되었으며, 2009년 11월 26일에는 제주도의 지원
을 받아 태평양전쟁희생자 위령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중증장애인요양시설인 자
광원을 설치해 복지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새집 냄새가 진동하는 경내의 대지 면적은 12만㎡로
법당인 3층짜리 대적광전을 비롯해 요사
채, 후원, 칠보각, 삼성각, 나한전, 굴법당, 상별당, 자모다원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
이 있으며,
요사채와 후원 앞에는 연못이 닦여져 있다.
고색이 아직 여물지 못해 문화유산은 없으나 대적광전에 깃든 목조비로자나불과 목각탱이
아
주 어린 나이임에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5호의 작은 지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제주
올레길8코스가 경내를 가로질러 동,서로 흐르며 '불교성지순례 절로가는 길' 4구간이 여기서
법화사로 흘러간다.
대적광전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유명한데, 절 자체가 서귀포 지역의 주요 관광지
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무척 잦다. 또한 대적광전과 경내에 있는 많은 불/보살상과 탱
화는 전통
양식을 지닌 1990년대~2000년대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100년 이후에는 불
교미술사에서 크게 다뤄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존재를 미리 잘 봐두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약천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1165 (이어도로 293-28 ☎
064-738-5000)
* 약천사 홈페이지와 템플스테이 정보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 야자수가 마중을 하는 약천사 극락교 주변
▲ 주황색 감귤이 주렁주렁 열린 경내 앞 숲길
▲ 길쭉하게 자리한 요사(寮舍)채 (동쪽은 후원) |
경내 중심부로
들어서러면 요사채 가운데에 뚫린 문이나 요사채 옆구리를 지나야 된다. 이곳
요사는 2층 규모로 그 꼭대기에 대적광전 앞뜨락이 있는데, 가운데 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후원과 공양간이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요사에 걸맞게 모두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예
불
편의를 위해 대적광전을 잇는 지하 통로를 닦아 날씨에 상관없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요사 양쪽 모서리에는 팔작지붕의 1층 누각을 달아놓아 범종과 법고를 봉안하여 범종루(梵鍾
樓)와 법고루(法鼓樓)로 삼았다. 범종루에 담긴 범종은 2001년에 장만한 것으로 1997년에 조
성된 범종이 있었으나 종소리가 영 좋지가 못해 새로 만들었다.
법고는 지름 2.4m의 큰 북으로 하루에 3번(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 종과 함께 몸을 풀
며,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변 풍경은 약천사 제일로 일컬어진다. 또한 요사채 앞에는 연
못이 누워있고 그 복판에 다리가 놓여져 있으며, 연못 남쪽에는 키가 큰 야자수가 1렬로 늘어
서 이색 풍경을 자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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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채 앞 연못과 야자수들 |
▲ 약천사 나한전(羅漢殿) |
경내 서쪽에 자리한 나한전은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오백나한(五百羅漢)의 거처이다.
2
층
규모로 2층이 나한전으로 쓰이고 있는데, 오백나한전, 영산전(靈山殿)이라 불리기도 하며,
오백나한은 2001년에 봉안된 것으로 이 땅의 5,000만 인구처럼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녔다. |
▲ 나한전의 주인인 금동석가여래상
석가여래의 체격이 꽤 늠름하고 단단해 보인다. 그의 좌우로 조그만 500나한이
길게 늘어서 그를 호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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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백나한의 일원들
표정과 자세가 참 여유로워 보인다. 저들은
나처럼 생계 걱정은 없으니 그런듯.. |
▲ 나한전 오백나한상
표정과 손에 들고 있는 물건 등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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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천사 샘터 <수각(水閣)>
약천사의 이름 유래가 된 샘터로 이곳을 찾은
나그네들의 갈증 해소를 책임진다. 약천(藥泉)
이라고 해서 내가 요즘 환장하는 탄산약수는
아니며, 이 땅의 흔한 약수의 맛이다.
대자연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듯, 물은 늘 끊
이지 않고 나와 연꽃 석조를 가득 채운다. |
▲ 약천사의 상징,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위엄 |
대적광전은 이곳의
법당(法堂)이자 상징물로 지하 1층, 지상 3층(실제는 5층) 규모의 팔작지
붕 집이다. 조선 초기 불교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그는 높이 29m에 키다리로 단일 법당 중에
동양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면적은 지하 강당을 포함해 1,043평(3,380.84㎡)에 이른다.
화엄사(華嚴寺) 각황전(覺皇殿)의 웅장한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
殿)의 3층 구조를 응용해 설계한 것으로 이 땅에서 가장 큰 목불(木佛)인 비로자나불이 봉안
되어 있다. 그의 좌우에는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자리해 있는데, 약사여래불은 이곳에 있
던 약수를 마시고 많은 이들이 병치료를 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약사여래불이 그 역할을 계
속 해주길 바라는 뜻에서 봉안했고, 아미타불은 서귀포라는 이름이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귀
의하려는 사람들의 소망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여 그를 봉안했다. (서방정토의 주인이 아미타
불임)
건물을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에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황룡과 청룡의 모습이 깃들여져
있으며, 2층에는 절을 세울 때 돈을 낸 사람들의 원불인 8만 개의 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람을 개미로 만들 정도로 아주 크고 콧대가 높은 건물로 이를 두고 절의 지나친 외형 키우
기와 무조건적인
큰 건물, 큰 불상 일변도(一邊倒)에 혈안이 된 오늘날 불교계를 꼬집기도 한
다. 하지만 크게 만드는 것도 다 시대적 유행이라고 보면 되며,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고려시
대까지 궁궐과 관아, 왕족과
귀족들의 저택, 절, 불상 등은 정말 크게 만들었다. 그게 조선시
대로 오면서 규모가 싹 작아진
것이다.
사찰 건축물 같은 경우 그 성격에 충실하게 활용하고 공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경계한다면 굳
이 쓴소리를 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약천사가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도 저 커다란 대적광전
때문이다. |
▲ 대적광전 1층에서 만난 관세음보살상 |
비로자나불 불단(佛壇) 좌우에는 뒷쪽 방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는데, 그 문을 들어서면 관세
음보살(觀世音菩薩) 누님의 공간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
관세음보살상, 18,000불
등 봉안된 존재들도 참 많고 공간도 연병장처럼 넓다보니 각 공간마다 보살 아줌마들이
지키
고 있는데, 그들은 각자의 공간을 관리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절과 예불을 친절하게
안
내하며 커피와 티백차를 제공한다. (의자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음)
나는 관세음보살 공간을 지키는 보살 아줌마와 불교와 제주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홀
로 나들이나 답사를 다닐 때면 객수(客愁)도 달랠 겸, 절이나 답사지 등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나그네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는 나홀로 답사의 재미 중 하나로
그 이야기를 통해 그 지역과 해당 명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챙길 수 있다. 여기서도 보살 아
줌마와 20여 분 이야기꽃을 피우며, 절과 제주도의 여러 정보를 들었다. 물론 커피와
녹차 티
백도 얻어마시고 말이다. |
▲ 3층에 있는 잘생긴 윤장대(輪藏臺)
대적광전 3층에는 4개의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란 서적을 보관하는 책장으로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이해한 것과 같고, 소원도 이루어진다며 속세에
오랫동안 영업을 벌이면서 기존의 성격과는 많이 달라졌다.
▲ 3층에서 바라본 비로자나3존불의 위엄 |
대적광전의 주인장인 비로자나불은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1993년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4.5m, 대좌의 높이는 4m에 이른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목불로 3층에서 봐도 저 정도로 후덜덜
한 크기인데, 1층에서 보면 제대로 주눅이 들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들 뒤에는 거대한 후불목각탱이 든든히 자리해 있는데, 목조비로자나불과 목각탱 4점은 이
제 30년
남짓 묵은 어린 나이임에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5호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들 목각탱은 문경
대승사(大乘寺)에 있는 늙은 후불탱을 참조하여 만들었다. |
▲ 1층에서 바라본 비로자나3존불과
후불목각탱의 위엄
▲ 대적광전 3층에서 바라본 요사채와 남해바다
대적광전은 3층까지 싹 둘러볼 수 있다. 내부 계단을 통해 오르면 되며, 3층에서
비로자나불과 창 밖에
펼쳐진 경내와 바다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꼭 3층까지 둘러보기 바란다.
▲ 굴법당 주변 감귤나무 숲길
▲ 굴법당 바깥에 자리한 하얀 피부의 마애불
마애불 좌우로 굴법당으로 인도하는 굴이 있고, 마애불 앞에는 연꽃
석조(石槽)를 지닌 샘터가 있어 시원한 약수를 제공한다.
▲ 굴법당(窟法堂) 내부 |
경내 뒷쪽 숲속에는 컴컴한 동굴 스타일의 굴법당이 있다. 이곳은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
운 곳으로 대적광전이 지어지기 이전에 조성되었는데, 정교한 최신 공법으로 지어져 제주도에
널린 용암동굴과 비슷한 모습이다. 허나 현실은 인공 땅굴이다.
불단에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백의관세음보살(白衣觀世音菩薩)과 지장
보살이 자리하여 약사3존상을 이룬다. 그들 옆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두광(頭光)을 지
닌 존재가 있는데, 그는 부동명왕(不動明王)으로 약천사의 모든 재앙을 물리쳐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봉안했다.
굴법당을 끝으로 1시간에 걸친 약천사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에 10여 분 정도 생각하
고 발을 들였는데, 그게 6배 가까이 늘어나 그만큼의 시간을 앗아간 것이다. 그래도 생각 밖
으로 볼거리도 많고 여수(旅愁, 객수)도 조금 풀었으니 들리길 잘했다.
약천사 주차장으로 나오니 서귀포시내버스 645번(약천사↔중앙로터리)이 바퀴를 접고 쉬고 있
었다. 이곳이 그들의 종점이라 그런 것인데, 마침 버스 1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어 타려고 하
니 운전사가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다. 하여 시내(중앙로터리 주변)로 간다고 답을 했으나 이
버스는 신시가지로 크게 돌아간다며 다른 것을 타라고 그런다. 나는 괜찮다고 그랬으나 끝까
지 이것을 타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을 하며 저기 입구로 나가면 520번과 521번이 많이 다니
니 그것을 탈 것을 강하게 권했다.
하여 645번을 포기하고 약천사 입구로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니 서귀포시내버스 520번(제주국
제컨벤션센터↔효돈중학교)이 나타나 활짝 입을 벌린다.
그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로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외돌개를 오랜만에 볼까 했으나 버스는
그 부근으로는 가지를 않아서 마냥 타고 가다가 서귀포 원도심으로 진입, 천지연폭포 부근인
솔동산입구에서 내렸다.
일몰까지는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천지연폭포 남쪽에 있는 새섬을 이날의 마지막 메뉴로
보려고 햇으나 시커먼
구름이 나를 겨낭했는지 서귀포의 하늘을 가득 메우며 빗방울을 투하한
다. 빗방울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고 만약을 대비해 우산도 챙겨왔으나 시커먼 날씨에 새섬을
보려는 의지가 뚝 떨어졌다. 게다가 너무 여로를 살찌웠는지 몸도 무척 무거워 새섬은 내일로
쿨하게 미루고 오늘은 일찍 쉬기로 했다.
그래서 천지연폭포 입구에 적당한 모텔을 잡아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까지 푹 쉬었다. 이렇
게 하여 제주도 둘째 날은 흔쾌히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