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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대포주상절리대, 제주올레길8코스, 약천사



' 서귀포 겨울 나들이 '
(대포 주상절리대, 제주올레길8코스, 약천사)

중문, 대포 해안 주상절리대

▲  대포 주상절리대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약천사 대적광전 대포연대

▲  약천사 대적광전의 뒷모습

▲  대포연대



 


묵은 해가 저물고 새해가 열리던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인 제주도(濟
州島)를 찾았다.

하늘을 타고 오랜만에 발을 들인 제주도에서 3일을 머물며 여로(旅路)를 듬뿍 살찌웠는
데, 첫날에는 제주시 서부 지역(외도, 애월, 한림, 한경)을 돌았고, 둘째 날은 서귀포(
西歸浦) 중문 지역으로 들어서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를 시작으로 제주올레길8코스(월
평~대평포구, 19.6km)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본글은 제주올레길8코스의 일원인 대
포주상절리대 서쪽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포 주상절리대 이전과 약천사 이후 내용은 별
도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음)



 

♠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해안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 주변

▲  대포 주상절리대 서쪽 산책로 (제주올레길8코스)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 주상절리대 서쪽 구간은 도시 속의 큰 공원(ex. 여의도공원)처럼 길이
잘 닦여져 있다. 숲길과 쉼터, 온갖 소소한 볼거리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남쪽에는 늘 바
다가 함께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Hotel and Resort)와 제주국제컨벤션
센터가 넓게 자리잡고 있다.


▲  남국(南國)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산책로 (올레길8코스)
뾰족한 잎을 지닌 야자수가 길게 가로수를 형성하며 따스한 남쪽 풍경을 진하게
그려낸다. 바다 건너 북쪽은 겨울 제국(帝國)의 핍박으로 아주 죽을 맛인데
여기는 몸에 걸친 잠바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덜 쌀쌀하다.

▲  옹기종기 모인 선인장들

제주도는 이 땅에서 유일하게 선인장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제주도 선인장의 고향은 한림읍
월령리로 그곳 선인장이 사람과 자연의 의해 제주도 전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이들의 원산지
는 이역만리 떨어진 멕시코로 그 씨앗이 바다를 타고 무려 여기까지 들어와 싹을 틔운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해류를 잘타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머나먼 거리인데 그들의 강인한 근성과 이곳
으로 그들을 인도한 대자연 형님의 조화에 적지않은 경외심이 솟구친다.

▲  올레길8코스에서 만난 돌기둥 장식물과
붉은 피부의 항아리들

▲  슬슬 모습을 비추는 지삿개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올레길8코스가 지나는 지삿개 해변에는 '대포 주상절리대(대포 주상절리)'라 불리는 명품급의
해안 벼랑이 깃들여져 있다.
요즘은 '대포 주상절리대'로 속세에 너무 알려져 이곳의 원래 이름은 '지삿개'가 거의 잊혀질
정도인데, 칼로 싹둑 다듬은 듯 4~6각형 형태의 돌기둥과 돌무늬가 계단처럼 늘어서 신비로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은 한라산(漢拏山) 등이 흥분하여 뿜어낸 용암이 이곳으로 내려와
바다와 만나면서 급히 냉각되어 형성된 것인데, 반대 성향을 지닌 뜨거운 용암과 차가운 성질
의 바닷물이 격하게 부딪쳐서 이루어진 현장이다.
현무암질(玄武巖質) 용암류에서 나타나는 수직 절리(節理)로 높이는 10~40m, 해변 길이는 1km
정도이다. 허나 소소하게 펼쳐진 주상절리까지 포함하면 약 3.5km로 이 땅의 주상절리 중 최
대 규모를 자랑한다. 현무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현상과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지
형의 발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고마운 지질자원으로 그 가치가 뛰어나 '중문,대포해안 주
상절리대
'란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되었다.

그 길쭉한 주상절리대 해안 중의 가장 핵심부가 이곳 지삿개 해변이다. 예전에는 해안과 벼랑
밑도리까지 접근이 가능했으나 천연기념물의 감투를 받은 이후에는 접근이 통제되었으며, 지
정된 길로만 고분고분 움직여야 된다. 허나 그 길만 따라가도 주상절리대의 멋진 경관을 충분
히 누릴 수 있다.
서귀포시는 지싯개 해변 주변에 담장을 둘렀는데, 가파른 벼랑으로 이루어진 서쪽 해안과 동
쪽 해안은 담장을 두지 않고 그 벼랑 자체로 경계선을 삼았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 출입문
을 내어 바로 북쪽에 지나가는 올레길8코스와 연결을 시켰다.
허나 주상절리대 내부를 유료의 공간으로 삼아 수입을 챙기고 있다는 함정이 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으로 무려 2,000원, 대자연이 오랫동안 부린 재주로 서귀포시가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쿨하게 무료 공간으로 바꾸거나 입장료 1,000원이 적당해 보이는
데, 싹수가 있는 곳에 담장을 두르고 대놓고 입장료를 받아먹는 행태가 영 좋아보이지는 않는
다.

서귀포시의 지나친 상업주의 본능에 크게 혀를 차며 그냥 지나칠까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
를 그냥 못지나친다고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 대포주상절리대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2768-1, 2769 (이어도로 36-30,
  ☎ 064-738-1521) 


▲  인공이 가해진 듯, 신비로운 모습의 대포 주상절리대
사람이 빚은 것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우수하고 섬세하다.

▲  거친 물놀이를 즐기는 주상절리대 밑 부분

마치 불규칙한 계단처럼 켜켜히 들어선 돌기둥들, 그 기둥이나 벼랑에 부딪친 파도는 아주 심
할 때는 높이 20m까지 솟구친다고 한다. 허나 내가 갔을 때는 절리대의 밑도리만 살짝 어루만
지는 정도로 순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 해안은 대자연의 완성된 작품이 아닌 여전히 미완(未完)의 현재진행형이다. 제주도의 거
센 바람과 파도에 의해 굼벵이 속도로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00년 뒤에는
지금보다 10~20% 정도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  대포 주상절리대에서 바라본 남해바다와 중문 서쪽 지역
<저 멀리 우뚝 솟은 산은 산방산(山房山)>

▲  층층이 주름진 주상절리대 밑도리
거친 피부나 두꺼운 껍질을 지닌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같다. 밤에 와서 보면 염통이 제대로 쫄깃해질 것 같은 기분.

▲  주상절리대 밑도리에 계속 채찍질을 가하는 바다
파도가 뽀얀 거품을 내며 주상절리대를 거칠게 어루만진다. 그렇게
절리대는 아주 조금씩 세월을 타며 늙어간다.

▲  방파제처럼 튀어나온 주상절리대 밑도리
예전에는 낚시터로 쓰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체 높은 천연기념물
구역이라 사람들의 발길을 금하고 있다.

▲  주상절리대 동쪽 자갈해안
이곳은 언제든 발을 들일 수 있는 자유 구역이다. 저 주름진 벼랑을 넘으면
바로 주상절리대 핵심부이나 저 벼랑 역시 엄연한 금지된 구역이니 애써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자갈해안만 자유 구역임)

▲  자갈해안과 바다의 끊임없는 속삭임, 그리고 그 속삭임을
훔쳐 듣는 나.

▲  율동을 부리며 경쾌하게 흘러가는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연대 방향)

▲  야자수가 펼쳐진 올레길8코스
(대포연대 방향)

▲  올레길 속으로 자꾸 나를 집어넣다.
(대포연대 방향)



 

♠  제주올레길 8코스 대포연대, 대포포구

▲  대포연대(大浦煙臺) - 제주도 지방기념물 23-12호

올레길을 거닐다가 남쪽 소나무 숲에 시커먼 피부를 지닌 무엇인가가 눈에 아른거린다. 예사
로운 피사체가 아닌 듯 싶어 올레길을 잠시 버리고 그에게 다가서니 봉수대처럼 생긴 커다란
대포연대가 나를 반긴다.

연대(煙臺)는 제주도 스타일의 옛 통신수단으로 봉수대와 비슷하다. 제주도는 봉수대 외에도
연대까지 갖추어 섬 수비에 만전을 기했는데, 이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봉수대는 산꼭대기에
있었고, 연대는 조망이 좋은 해변과 구릉에 설치되었다. 횃불과 연기로 주변과 연락을 취했으
며, 평상시에는 1개, 수상한 배가 나타나면 2개, 그 배가 땅으로 접근하면 3개, 육지에 발을
들이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를 올렸다. 이는 봉수대와 같다.

대포연대는 조선 후기에 현무암으로 지어진 것으로 근래에 정비되었으며, 동쪽으로 마희천 연
대, 서쪽으로 별노천 연대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연대의 높이는 4m 정도로 북쪽으로 계단을
늘어뜨렸는데, 계단이 협소하고 안전시설이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계단을 통해 정상으로 오
르면 바로 남쪽으로 바다가 보이며, 서쪽으로 중문해변과 산방산, 동쪽으로 월평포구가 시야
에 들어와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게다가 주변에 높은 존재가 없다보니 마치 허허벌판에 홀
로 솟은 봉우리에 오른 기분이다.

▲  대포연대 돌계단
계단 폭이 좁으니 통행에 주의하기 바란다.

▲  대포연대 정상부
정상부 테두리에는 낮게 돌담을 둘렀다.


▲  대포연대에서 바라본 서쪽 (중문, 산방산 방향)

▲  정면에서 바라본 대포연대

올레길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조금 구석진 곳이라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소나무숲에 홀로 자
리해 고독을 즐기는 연대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나를 감싼다. 이곳이 문화재보호
구역이라 출입금지를 알리는 붉은 테두리의 금표가 붙어있으나 돌계단 앞에 뻥 뚫린 문이 있
어 사실상 해방된 상태이다. 딱히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면 올라가도 상관은 없다.

* 대포연대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2506


▲  대포연대 동쪽 해변

▲  올레길8코스(대포 포구 서쪽)에서 만난 제주도 스타일의 무덤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무덤 테두리에 낮게 경계선 돌담을 다진다.

▲  평화로운 모습의 대포포구
북쪽과 서쪽은 해안, 동쪽은 방파제로 감싸인 조그만 포구로 여기서는
요트 투어와 제트보트, 제트스키 등의 해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  대포포구에서 만난 절터 주춧돌

대포포구를 지나려니 검은 주근깨가 다소 피어난 하얀색 큰 돌이 발길을 붙잡는다. 얼핏 보면
그냥 버려진 자연석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인공(人工)이 가해진 돌임을 알 수 있는데, 옆에
자리한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에는 고려 때 조그만 절이 있었다고 하며, 저 돌은 그 절의 주춧
돌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둥지를 틀며 바다를 바라봤을 절은 어느 세월이 급하게 잡아갔는지 이름을 남길 틈 조
차 주지 않았으며, 절터의 흔적도 마을이 닦이면서 겨우 저것만 남았다. 절의 비밀을 저 돌은
다 알고 있겠지만 워낙 충격이 커서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에 절이 있었던 것만 살짝
알려줄 따름이다.

제주도는 제주올레길 외에 '불교성지순례 절로가는 길'이란 도보길도 내놓았는데, 그중 4구간
이 이곳을 지나간다. 4구간은 '선정(禪定)의 길'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으며, 천제연폭포 동남
쪽에 있는 천제사에서 주상절리, 대포연대, 대포포구 주춧돌, 약천사를 거쳐 법화사(法華寺)
까지 이어지는 10km의 길이다. 그중 천제사~약천사 구간은 제주올레길8코스의 신세를 지며,
약천사에서 법화사까지 4.1km 구간은 독자적인 길을 이용한다.


▲  대포포구 동쪽 해안

대포포구에 이른 올레길8코스는 편한 신작로를 잠시 버리고 울퉁불퉁한 해안길을 따라 대포동
2356-1(이어도로)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의 해안 풍경도 제법 일품으로 검은 피부의 바위들이
파도와 온갖 풍상을 견디며 소소하게 눈요깃감이 되어준다.


▲  올레길8코스가 지나는 대포포구 동쪽 해안 ①

▲  올레길8코스가 지나는 대포포구 동쪽 해안 ②

대포포구 동쪽 해안을 지난 올레길8코스는 '이어도로'와 다시 짧은 만남을 갖는다. 배튼개 입
구 정류장에서 올레길은 북쪽으로 빠지나 나는 올레길을 버리고 편안한 이어도로를 택해 동쪽
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으니 왼쪽(북쪽)으로 커다란 기와집이 내 침침한 두 눈에 들어온다. 그
곳이 제주도 현대 사찰의 하나인 약천사로 그곳은 원래 일정에도 없었고, 20세기 현대 사찰에
는 별로 관심이 없어 쿨하게 지나치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나칠 수가 없다고 잠
깐 살펴보기로 했다. 허나 그 잠깐이 무려 1시간이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고색도 익지 않은
겉모습과 달리 은근 시간 도둑이었던 것이다.



 

♠  동양 최대 규모의 법당을 지닌 제주도의 대표적인 현대 사찰
약천사(藥泉寺)


▲  남쪽 '이어도로'에서 바라본 약천사

서귀포 대포동에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현대 사찰인 약천사가 크게 둥지를 틀고 있다. 절 뒷쪽
에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이 있으나 그 덩치는 매우 작으며 주변이 거의 경작지와 들판이
라 거의 평지 사찰이나 다름이 없다.
절은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남쪽 전방 1리 거리에 바다가 넝실거리고 있어 여기
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아주 진국이다. 게다가 경내 주변으로 제주도의 특산품인 감귤(柑橘
)나무가 귤을 가득 머금고 있어 따스한 남쪽 사찰의 이색 풍경을 진하게 보여준다.

약천사란 이름은 이름 그대로 약수(藥水)란 뜻이다. 머나먼 옛날부터 절 자리에는 '돽새미'란
우수한 수질의 약수터가 있었는데, 샘터 주위로 그 물을 먹고 자라는 논과 감귤나무 밭이 펼
쳐져 있었다. 돽새미는 이후 '도약샘(道藥泉)', '돽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절터왓'이란 부르기도 했는데, 고려 후기부터 '약천사'라 불리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절은 돽새미란 약수를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꾸려진 것으로 보이며, 제주도
2대(또는 3대) 사찰의 하나였던 법화사와 가까워 그에 속한 조그만 절이 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허나 이를 입증할 역사 기록과 유물이 전혀 없어 아직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다.

1960년대에 '김형곤'이란 학자가 병을 치료하고자 이곳의 조그만 굴에서 100일 관음기도를 올
리다가 꿈에서 약수를 받아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하여 그 인연으로 작게 약수암(藥水庵
)이란 조그만 암자를 짓고 포교에 전념하다가 입적했다.
이후 18평짜리 초가 법당만 남아있던 것을 혜인이 이곳 일대를 사들여 절을 크게 일으켜 세웠
으며, 이곳에 있던 약수터의 존재감을 살려 절 이름을 약천사라 했다.

혜인은 제주도에 국제적으로 큰 사찰을 짓고자 적당한 터를 물색하다가 현재 자리에 퐁당퐁당
빠졌다. 하여 1981년부터 열심히 벌어들인 돈으로 약수암 주변을 조금씩 매입했으며, 지역 주
민들과 신도들, 그리고 우리의 옛 해양 영토인 왜열도에 거주하는 재일교포와 왜인(倭人)들까
지 그의 뜻에 호응해 많은 돈을 보내왔다.
1988년 어느 정도의 토지를 확보하자 3층 규모의 큰 법당을 짓기 시작하여 1991년 9월 완성을
보았다. (법당 설계와 조감도는 혜인이 직접 했음) 법당이 완성된 그해 상별당이 지어졌으며,
이듬해(1992년) 자모당을 짓고, 큰법당에 단청(丹靑)을 그렸다. 이는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의 단청불사로 꼽힌다.

1993년 3월에는 인근 마을 노인들을 초청해 제1회 경로잔치를 열었으며, (경로잔치는 매년 가
지고 있음) 1993년 큰법당에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봉불식(奉佛式)을 가졌다. 이 불상을 만
들고자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조성을 했으며, 단일 목불좌상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리고 1996년에는 대웅전 낙성대법회와 나한전 상량식을 가져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1997년 혜인은 약천사 회주(會主)로 물러나고 덕조가 새 주지가 되었으며, 1998년 영천 은해
사(銀海寺)의 말사로 등록하여 조계종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절 건물과 토지는 모두 조계종
소유가 넘어갔다.

2001년 10월, 새 범종을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 소리가 매우 맑고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했
다. 2001년 10월 30일에는 오백나한 봉안식과 국제가사불사 회향대법회를 열었으며, 이때 국
제사찰음식 교류전을 가졌는데, 이 행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다.
2002년 5월 템플스테이(Temple Stay)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의 참여가 많다.
2007년 1월에는 문화관광부 지정 전통사찰이 되었으며, 2009년 11월 26일에는 제주도의 지원
을 받아 태평양전쟁희생자 위령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중증장애인요양시설인 자
광원을 설치해 복지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새집 냄새가 진동하는 경내의 대지 면적은 12만㎡로 법당인 3층짜리 대적광전을 비롯해 요사
채, 후원, 칠보각, 삼성각, 나한전, 굴법당, 상별당, 자모다원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
이 있으며, 요사채와 후원 앞에는 연못이 닦여져 있다.
고색이 아직 여물지 못해 문화유산은 없으나 대적광전에 깃든 목조비로자나불과 목각탱이 아
주 어린 나이임에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5호의 작은 지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제주
올레길8코스가 경내를 가로질러 동,서로 흐르며 '불교성지순례 절로가는 길' 4구간이 여기서
법화사로 흘러간다.

대적광전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유명한데, 절 자체가 서귀포 지역의 주요 관광지
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무척 잦다. 또한 대적광전과 경내에 있는 많은 불/보살상과 탱
화는 전통 양식을 지닌 1990년대~2000년대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100년 이후에는 불
교미술사에서 크게 다뤄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존재를 미리 잘 봐두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약천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1165 (이어도로 293-28 ☎ 064-738-5000)
* 약천사 홈페이지와 템플스테이 정보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야자수가 마중을 하는 약천사 극락교 주변

▲  주황색 감귤이 주렁주렁 열린 경내 앞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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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쭉하게 자리한 요사(寮舍)채 (동쪽은 후원)

경내 중심부로 들어서러면 요사채 가운데에 뚫린 문이나 요사채 옆구리를 지나야 된다. 이곳
요사는 2층 규모로 그 꼭대기에 대적광전 앞뜨락이 있는데, 가운데 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후원과 공양간이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요사에 걸맞게 모두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예
불 편의를 위해 대적광전을 잇는 지하 통로를 닦아 날씨에 상관없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요사 양쪽 모서리에는 팔작지붕의 1층 누각을 달아놓아 범종과 법고를 봉안하여 범종루(梵鍾
樓)와 법고루(法鼓樓)로 삼았다. 범종루에 담긴 범종은 2001년에 장만한 것으로 1997년에 조
성된 범종이 있었으나 종소리가 영 좋지가 못해 새로 만들었다.
법고는 지름 2.4m의 큰 북으로 하루에 3번(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 종과 함께 몸을 풀
며,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변 풍경은 약천사 제일로 일컬어진다. 또한 요사채 앞에는 연
못이 누워있고 그 복판에 다리가 놓여져 있으며, 연못 남쪽에는 키가 큰 야자수가 1렬로 늘어
서 이색 풍경을 자아낸다.

▲  요사채 앞 연못과 야자수들

▲  약천사 나한전(羅漢殿)

경내 서쪽에 자리한 나한전은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오백나한(五百羅漢)의 거처이다. 2
층 규모로 2층이 나한전으로 쓰이고 있는데, 오백나한전, 영산전(靈山殿)이라 불리기도 하며,
오백나한은 2001년에 봉안된 것으로 이 땅의 5,000만 인구처럼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녔다.


▲  나한전의 주인인 금동석가여래상
석가여래의 체격이 꽤 늠름하고 단단해 보인다. 그의 좌우로 조그만 500나한이
길게 늘어서 그를 호위한다.

▲  오백나한의 일원들
표정과 자세가 참 여유로워 보인다. 저들은
나처럼 생계 걱정은 없으니 그런듯..

▲  나한전 오백나한상
표정과 손에 들고 있는 물건 등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이 없다.

       ◀  약천사 샘터 <수각(水閣)>
약천사의 이름 유래가 된 샘터로 이곳을 찾은
나그네들의 갈증 해소를 책임진다. 약천(藥泉)
이라고 해서 내가 요즘 환장하는 탄산약수는
아니며, 이 땅의 흔한 약수의 맛이다.
대자연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듯, 물은 늘 끊
이지 않고 나와 연꽃 석조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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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천사의 상징,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위엄

대적광전은 이곳의 법당(法堂)이자 상징물로 지하 1층, 지상 3층(실제는 5층) 규모의 팔작지
붕 집이다. 조선 초기 불교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그는 높이 29m에 키다리로 단일 법당 중에
동양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면적은 지하 강당을 포함해 1,043평(3,380.84㎡)에 이른다.
화엄사(華嚴寺) 각황전(覺皇殿)의 웅장한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
殿)의 3층 구조를 응용해 설계한 것으로 이 땅에서 가장 큰 목불(木佛)인 비로자나불이 봉안
되어 있다. 그의 좌우에는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자리해 있는데, 약사여래불은 이곳에 있
던 약수를 마시고 많은 이들이 병치료를 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약사여래불이 그 역할을 계
속 해주길 바라는 뜻에서 봉안했고, 아미타불은 서귀포라는 이름이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귀
의하려는 사람들의 소망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여 그를 봉안했다. (서방정토의 주인이 아미타
불임)
건물을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에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황룡과 청룡의 모습이 깃들여져
있으며, 2층에는 절을 세울 때 돈을 낸 사람들의 원불인 8만 개의 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람을 개미로 만들 정도로 아주 크고 콧대가 높은 건물로 이를 두고 절의 지나친 외형 키우
기와 무조건적인 큰 건물, 큰 불상 일변도(一邊倒)에 혈안이 된 오늘날 불교계를 꼬집기도 한
다. 하지만 크게 만드는 것도 다 시대적 유행이라고 보면 되며,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고려시
대까지 궁궐과 관아, 왕족과 귀족들의 저택, 절, 불상 등은 정말 크게 만들었다. 그게 조선시
대로 오면서 규모가 싹 작아진 것이다.
사찰 건축물 같은 경우 그 성격에 충실하게 활용하고 공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경계한다면 굳
이 쓴소리를 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약천사가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도 저 커다란 대적광전
때문이다.


▲  대적광전 1층에서 만난 관세음보살상

비로자나불 불단(佛壇) 좌우에는 뒷쪽 방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는데, 그 문을 들어서면 관세
음보살(觀世音菩薩) 누님의 공간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 관세음보살상, 18,000불
등 봉안된 존재들도 참 많고 공간도 연병장처럼 넓다보니 각 공간마다 보살 아줌마들이 지키
고 있는데, 그들은 각자의 공간을 관리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절과 예불을 친절하게 안
내하며 커피와 티백차를 제공한다. (의자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음)

나는 관세음보살 공간을 지키는 보살 아줌마와 불교와 제주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홀
로 나들이나 답사를 다닐 때면 객수(客愁)도 달랠 겸, 절이나 답사지 등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나그네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는 나홀로 답사의 재미 중 하나로
그 이야기를 통해 그 지역과 해당 명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챙길 수 있다. 여기서도 보살 아
줌마와 20여 분 이야기꽃을 피우며, 절과 제주도의 여러 정보를 들었다. 물론 커피와 녹차 티
백도 얻어마시고 말이다.


▲  3층에 있는 잘생긴 윤장대(輪藏臺)
대적광전 3층에는 4개의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란 서적을 보관하는 책장으로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이해한 것과 같고, 소원도 이루어진다며 속세에
오랫동안 영업을 벌이면서 기존의 성격과는 많이 달라졌다.

▲  3층에서 바라본 비로자나3존불의 위엄

대적광전의 주인장인 비로자나불은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1993년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4.5m, 대좌의 높이는 4m에 이른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목불로 3층에서 봐도 저 정도로 후덜덜
한 크기인데, 1층에서 보면 제대로 주눅이 들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들 뒤에는 거대한 후불목각탱이 든든히 자리해 있는데, 목조비로자나불과 목각탱 4점은 이
제 30년 남짓 묵은 어린 나이임에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5호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들 목각탱은 문경 대승사(大乘寺)에 있는 늙은 후불탱을 참조하여 만들었다.


▲  1층에서 바라본 비로자나3존불과 후불목각탱의 위엄

▲  대적광전 3층에서 바라본 요사채와 남해바다
대적광전은 3층까지 싹 둘러볼 수 있다. 내부 계단을 통해 오르면 되며, 3층에서
비로자나불과 창 밖에 펼쳐진 경내와 바다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꼭 3층까지 둘러보기 바란다.

▲  굴법당 주변 감귤나무 숲길

▲  굴법당 바깥에 자리한 하얀 피부의 마애불
마애불 좌우로 굴법당으로 인도하는 굴이 있고, 마애불 앞에는 연꽃
석조(石槽)를 지닌 샘터가 있어 시원한 약수를 제공한다.

▲  굴법당(窟法堂) 내부

경내 뒷쪽 숲속에는 컴컴한 동굴 스타일의 굴법당이 있다. 이곳은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
운 곳으로 대적광전이 지어지기 이전에 조성되었는데, 정교한 최신 공법으로 지어져 제주도에
널린 용암동굴과 비슷한 모습이다. 허나 현실은 인공 땅굴이다.
불단에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백의관세음보살(白衣觀世音菩薩)과 지장
보살이 자리하여 약사3존상을 이룬다. 그들 옆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두광(頭光)을 지
닌 존재가 있는데, 그는 부동명왕(不動明王)으로 약천사의 모든 재앙을 물리쳐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봉안했다.

굴법당을 끝으로 1시간에 걸친 약천사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에 10여 분 정도 생각하
고 발을 들였는데, 그게 6배 가까이 늘어나 그만큼의 시간을 앗아간 것이다. 그래도 생각 밖
으로 볼거리도 많고 여수(旅愁, 객수)도 조금 풀었으니 들리길 잘했다.

약천사 주차장으로 나오니 서귀포시내버스 645번(약천사↔중앙로터리)이 바퀴를 접고 쉬고 있
었다. 이곳이 그들의 종점이라 그런 것인데, 마침 버스 1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어 타려고 하
니 운전사가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다. 하여 시내(중앙로터리 주변)로 간다고 답을 했으나 이
버스는 신시가지로 크게 돌아간다며 다른 것을 타라고 그런다. 나는 괜찮다고 그랬으나 끝까
지 이것을 타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을 하며 저기 입구로 나가면 520번과 521번이 많이 다니
니 그것을 탈 것을 강하게 권했다.
하여 645번을 포기하고 약천사 입구로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니 서귀포시내버스 520번(제주국
제컨벤션센터↔효돈중학교)이 나타나 활짝 입을 벌린다.

그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로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외돌개를 오랜만에 볼까 했으나 버스는
그 부근으로는 가지를 않아서 마냥 타고 가다가 서귀포 원도심으로 진입, 천지연폭포 부근인
솔동산입구에서 내렸다.
일몰까지는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천지연폭포 남쪽에 있는 새섬을 이날의 마지막 메뉴로
보려고 햇으나 시커먼 구름이 나를 겨낭했는지 서귀포의 하늘을 가득 메우며 빗방울을 투하한
다. 빗방울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고 만약을 대비해 우산도 챙겨왔으나 시커먼 날씨에 새섬을
보려는 의지가 뚝 떨어졌다. 게다가 너무 여로를 살찌웠는지 몸도 무척 무거워 새섬은 내일로
쿨하게 미루고 오늘은 일찍 쉬기로 했다.
그래서 천지연폭포 입구에 적당한 모텔을 잡아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까지 푹 쉬었다. 이렇
게 하여 제주도 둘째 날은 흔쾌히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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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2년 1월 22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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