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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정법사, 북악산길


' 성북동 정법사, 북악산길 5월 나들이 '
 

봄과 여름의 마지막 경계선인 5월의 끝 무렵, 후배 여인네와 내 즐겨찾기 명소의 하나인
성북동(城北洞)을 찾았다.

햇님이 하늘 높이 걸린 14시에 한성대입구역(4호선)에서 그를 만나 최순우(崔淳雨) 옛집
과 길상사(吉祥寺) 등 성북동의 여러 단골 명소를 둘러보니 어느덧 17시가 넘었다. 저녁
을 먹기에는 시간도 이르고 입과 위가 섭취 준비가 덜 되어있어서 잠깐 눈요깃감을 생각
하니 번쩍 '정법사'가 뇌리 속에 스친다. 그곳은 길상사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절로
성북동을 100회 이상 들락거렸음에도 아직까지 내 손과 발이 미치지 못한 미답처였다.

정법사가 미답처(未踏處)로 버젓이 남아있던 것은 나를 흥분시킬 요소가 전혀 없는 현대
사찰로 보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창건된 것으로 알고 있었음) 하지만 그곳도 성
북동에 안긴 명소의 일원이라 서울 장안의 미답지를 1개라도 더 지울 겸 그곳을 찾았다.


▲  정법사 입구에 세워진 정법사 표석
표석 옆으로 놓인 계단길을 오르면 바로 정법사 경내이다. 계단길 옆에는
경사진 포장길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가면 된다.



 

♠  성북동 꼭대기에 들어앉은 고즈넉한 산사, 조선 후기에
지어진 복천암의 옛터를 지키고 있는 정법사(正法寺)

▲  정법사 대웅전과 그 주변

길상사에서 북쪽 오르막길을 7분 정도 오르면 골목(대사관로13길)이 서쪽으로 크게 구부러진
곳에 정법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성북동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자 제일 북쪽 구석으로 북악산(백악산) 북쪽 능선
자락에 있으나 넓게 보면 북한산(삼각산)의 남쪽 끝에도 해당되어 '삼각산 정법사'를 칭하고
있다. 18세기에 호암 체정(虎巖 體淨, 1687~1748)이 창건한 복천암(福泉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비는 원찰(願刹)의 역할도 했다고 전한다.
허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터만 남은 것을 1959년 건봉사(乾鳳寺) 만일염
불회(萬日念佛會)의 회주(會主)인 보광(葆光)과 석산(石山)이 가회동(嘉會洞)에 있던 건봉사
의 포교당인 정법원(正法院)을 이곳으로 옮겨와 절 이름을 정법사라 짓고 오래전에 끊긴 복천
암의 뒤를 잇게 했다.
만일염불회의 고명한 염불승(念佛僧)이었던 석산이 주석하면서 염불수행의 새로운 일가를 이
루었으며, 조금씩 절을 키워나가 지금에 이른다.

아담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강당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비록 옛 복천암을 계승했
다고 하나 엄연히 20세기 중반 이후에 중창된 절이라 고색의 내음은 여물지 못했다. 소장 문
화유산으로는 비록 지정문화재는 없으나 조선 후기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과 복천암터 주춧돌
, 왜정 때 조성된 산신탱 등을 지니고 있다.

절 바로 서쪽에는 '우리옛돌박물관'이란 이색 박물관이 있는데 서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매년 5월과 9~10월에는 성북동 명소를 중심으로 성북동 야행(夜行) 축제가 성황리에
열린다. 성북동에 있는 문화유산과 여러 명소들, 미술관, 식당, 찻집, 까페들이 거기에 동참
하여 달이 기울도록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정법사도 거기에 동참하여 소소하게 음악회
를 열거나 전통차 1잔의 여유를 선사한다.

▲  우수에 잠긴 채, 왕년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옛 복천암 주춧돌들 ▲

대웅전 뜨락 구석에는 옛 복천암의 주춧돌 여럿이 우두커니 서 있다. 저들은 어느 건물을 받
쳐들던 주춧돌이었을까? 크기를 봐서는 법당으로 여겨지나 저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니 그저 허
공에 내뱉는 나의 부질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지금은 받쳐들 대상을 상실한 채, 크지만 무게
가 없는 하늘을 막연히 이고 있다.

▲  조촐하게 꾸며진 연못과 옛 복천암의
길쭉한 주춧돌들

▲  대웅전 뜨락에 세워진 서쪽 5층석탑
(20세기 중반에 세워짐)


▲  정법사 대웅전(大雄殿)

정법사의 법당(法堂)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팔작지붕 건물이다. 그 앞에는
뜨락이 닦여져 있고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5층석탑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 탑은
벌써부터 피부가 까무잡잡하여 젊은 나이임에도 다소 늙어 보인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보이
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문화유산과 탑, 석불은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어야 더 보기가 좋다.
대웅전 맞은편에는 2층짜리 강당이 있어 1금당(법당) 2탑, 강당 형태의 가람배치를 취하고 있
으며, 법당 안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과 석가3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  동쪽 5층석탑
세월을 너무 예민하게 탔는지 벌써부터
검은 때가 가득 끼었다.

▲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 2층 강당(선방)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2층으로 1층에는
종무소와 찻집 등이 들어있다.


▲  경내에서 바라본 천하
성북동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가까이로 성북동과
와룡공원을 비롯해 멀리 잠실, 강남 지역과 남한산성을 품은 남한산(청량산),
대모산(大母山) 산줄기까지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온다.

▲  대웅전 금동석가3존상 (오른쪽이 관세음보살상, 왼쪽은 지장보살상)

서로 미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웅전의 주인장 석가3존상, 그들 가운데 보관(寶冠)을 눌러쓴
관세음보살상이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옛 복천암의 유물은 아니며 정법원 시
절에 다른 곳에서 업어왔다고 한다. (고향은 알지 못함) 그들 뒤에는 조그만 금동 원불(願佛)
이 빼곡히 자리해 일제히 금빛을 쏘아대고 있는데 그 눈부심에 나의 침침한 두 망막이 멀어질
지경이다.

▲  속세를 걱정하듯 바라보는 하얀 피부의
미륵불입상 (대웅전 옆)

▲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산신각(山神閣)


▲  산신각 산신탱(山神幀)
산신각에는 산신과 독성이 봉안되어 있다. 산신탱은 1940년에 조성된 것으로
하얀 부채를 든 붉은 옷의 산신 할배와 그의 심부름꾼인 동자, 호랑이 등
산신의 주요 식구들이 담겨져 있다. (산과 폭포도 그려짐)

▲  산신각 독성탱(獨聖幀)
독성 할배(나반존자)와 동자, 그의 집인 천태산(天台山)이 그려져 있다. 그림이
다소 늙어 보여 산신탱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듯싶다.

▲  주렁주렁 이어진 석조(石槽)
산사에 왔다면 목구멍도 달랠 겸, 물 1모금 마셔줘야 된다. 늦봄 가뭄에도
물이 졸졸 나와 바가지를 금세 채웠고 목구멍에 투하하니 몸속의 때가
싹 가신 듯 마음이 시원해진다. 역시 무더위 갈증에 들이키는
물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  정법사에서 만난 정겨운 풍물시, 부뚜막과 검은 가마솥

정법사는 부뚜막에 검은 피부의 가마솥을 두어 밥과 국을 처리하고 있었다. 저기서 숙성된 하
얀 쌀밥과 국의 맛은 어떠할까? 몰래 그 뚜껑을 열어 살짝 훔쳐 먹고 싶다. 지금은 전설이 되
버린 나의 단양(丹陽) 외가집에도 저런 풍경이 분명 있었는데 이제는 흔적도 없다. 오로지 지
우는 것을 좋아하는 세월의 본능 앞에 그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지고 사라진 것이다.


▲  산사길에서 바라본 정법사 경내와 대웅전의 두툼한 뒷통수

* 정법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30 (대사관로13길 44, ☎ 02-762-0774)
* 정법사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  산사길, 북악산길(북악산로) 거닐기

▲  정법사 뒷쪽 산사길 ①

정법사 서쪽에는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다. 절 옆구리를 지나는 산길이라 그에 어울
리게 '산사길'이란 정겨운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나는 정법사만 알고 있었지 그 길의 존재는
전혀 몰랐다. 정법사가 준 뜻밖의 선물에 무척 놀라며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두근거리
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그 미지의 산사길로 발을 들였다.

정법사 옆은 나무데크길이 닦여져 있으며, 정법사 경내가 바라보이는 쉼터를 지나면 철조망과
철책문이 나온다. 문은 탐방객을 위해 늘 열려있으나 어두울 정도로 숲이 무성하고 군사시설
이 여럿 있으며 밤에는 유해동물이 가끔씩 출현하는 경우가 있어 가급적 햇님 근무시간에 들
어가기 바란다.

철책문 이후부터 경사가 잠시 각박해진다. 게다가 나무가 삼삼해 햇살을 느끼기가 어렵다. 허
나 북악산길 밑부분이라 차량 소리가 심심치 않게 두 귀를 때려대 '속세가 지척이구나~' 안도
감을 준다.


▲  정법사 뒷쪽 산사길 ②

▲  산사길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성북동과 도심 동부, 멀리 관악산까지)

▲  숲속다리 갈림길

정법사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북악산길 직전인 숲속다리 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길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데, 북악산길 위에 걸쳐진 숲속다리를 건너면 다모정, 북악산길 산책로와 이
어지며, 서쪽 숲길은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640m)로 그 길의 끝인 북까페에서 북악하늘길 제2
산책로(김신조루트)와 만난다. 그리고 서남쪽 숲길은 경사가 다소 있는데 그 역시 북악하늘길
제2산책로와 이어지며 그 산책로의 정상 부분인 호경암으로 연결된다.

▲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 위에
유연하게 걸쳐진 숲속다리

▲  숲속다리 남쪽 (산사길 방향)


▲  서울의 대표 하늘길이자 드라이브 코스인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

서울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이 달리는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 지금은 그저 평화로운 산책,
드라이브 코스로 크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의 탄생 배경은 그리 곱지 못했다. 바로 1968년
1월에 터진 1.21사태(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 패거리의 불법 침투 사건)로 뚜껑이 폭
발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 수비 강화를 위해 닦여졌기 때문이다.
1968년 2월, 수도 방어를 겸한 관광도로 '스카이웨이(Sky way)'계획을 발표하여 콩 볶듯이 공
사에 들어가 그해 9월 28일 완성을 보았다.

북악산길은 돈암동 아리랑고개에서 북악산(백악산) 북쪽 산허리를 지나 자하문고개, 인왕산(
仁王山) 동쪽 허리를 거쳐 사직단(사직공원)까지 이어지는 10km의 길로 서울에 흔치 않은 산
악도로이자 천하 제일로 꼽히는 드라이브 코스이다. 자하문(창의문)을 경계로 북악산 쪽은 북
악산길, 인왕산쪽은 인왕산길로 구분하기도 하며 오랫동안 차량을 위한 길로 뚜벅이들은 접근
조차 불가능했으나 둘레길, 도보길 유행에 따라 길 옆으로 산책로를 닦으면서 마음 편히 두
다리로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길은 달랑 1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걸어야 나중에 명부(冥府, 저승)에 가서도 꾸
중을 듣지 않는다. 다행히 나와 같은 서울 하늘 밑에 있어서 내 즐겨찾기 명소로 삼아 꾸준히
재탕하고 있으며 북악산길과 인왕산길 모두 완주했다. 이번에도 계획에는 없었지만 정법사 옆
산사길에 홀려 그만 여기까지 오고 말았는데, 우리네 인생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  북악산길에서 바라본 북한산(삼각산)의 위엄
(북악산길과 정릉로10길, 대사관로가 만나는 곳 서쪽 쉼터에서 바라본 모습)

▲  북악산길에서 바라본 정릉동과 성북구, 강북구 지역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산줄기까지 시야에 들어옴)

▲  찻길과 뚜벅이길이 공존하는 북악산길
지형이 여의치 않은 경우 이렇게 나무데크길을 깔아 통행 편의를 배려했다.
뚜벅이길은 폭이 딱 2인용이며 찻길 또한 2차선이다.

▲  숲속을 가르는 북악산길

▲  동쪽으로 흘러가는 북악산길 (정릉 뒤쪽)

숲속다리에서 시작된 북악산길(북악산로) 산책은 성북구민회관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시간도
늦었고(19시가 넘었음) 뱃속도 배고프다고 난리를 친다. 이럴 때는 그저 본능에 따라 조용히
길을 접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여 성북동, 북악산길 산책은 다음 인연을 고대하며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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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2년 10월 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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