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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북동 선잠단 (선잠단터 표석)

성북동 성북초교 동쪽에는 조선시대 국가 제단 유적인 선잠단이 있다. 선잠단은 누에를 처음 쳤다는

서릉씨를 양잠의 신으로 삼아 제(선잠제)를 지내던 곳으로 여기서 누에는 의식주의 '의'를 해결해주던

소중한 존재들이다. 하여 나라에서 누에의 풍년 및 양잠 장려를 기원하는 제단을 만들어 선잠제를 지

냈으며, 사직단과 선농단, 영성단 만큼이나 크게 애지중지되었다.

 

선잠단은 고려 때 시작되었는데, 조선으로 천하가 변경된 이후, 1414년~1430년 사이에 이곳으로 이

전 조성되었다. 1475년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선잠단의 크기는 사방 2장 3척, 높이 2척 7촌이며, 사방

으로 나가는 계단을 내었다. 그리고 제단을 둘러싼 상단과 하단의 담장 둘레는 각각 25보였다.

선잠제와 함께 양잠의 모범을 보이는 왕비의 뽕잎 따기 이벤트도 중요시되었는데, 이를 친잠례라고

다. 친잠례는 보통 궁궐에 마련된 뽕나무 밭에서 열렸다.

 

선잠제는 1908년까지 절찬리에 진행되었으나 향사이정의 관한 칙령으로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다. 즉 선잠단을 사직단에 통폐합한 것이다.

이후 선잠단 자리는 국유로 있다가 왜정 시절에 왜정이 민간에 팔아먹었으며, 해방 이후 남쪽에 도로가

생기면서 크게 축소된 상태에서 터만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선잠단 복원사업을 벌이면서 유적

을 다시 조사했고, 그때 나온 결과를 토대로 제단 위치와 유구를 확인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 재현했

다.

 

아랫 사진의 선잠단터 표석은 예전에는 선잠단 제단터에 있었다. 제단은 왜정 때 사라졌고, 그 자리에

세웠던 표석인데, 선잠단 복원 이후 선잠단 영역 앞, 홍살문 밑으로 옮겨졌다. 비록 선잠단이 복원, 재

현되긴 했으나 도로와 사유지로 공간이 크게 줄어든 상태라 선잠단 왕년의 모습으로 복원, 재현은 현

재로써는 불가능하다. 하여 지금의 모습은 축소판이라 보면 된다.

 

2. 선잠단터 종합 안내도

선잠단은 선잠제를 지내던 제단과 상유(제단 주위의 터를 닦고 낮은 담장을 두룬 공간으로 의례를 행

하는 신하들이 다니는 곳), 하유(제단 아래 주위로 터를 다지고 낮은 담장을 두룬 공간으로 제관이 의

례를 행하고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며 일무가 춤을 추던 곳), 홍살문, 예감(폐백과 축판 등 제사에 쓰

인 물품을 묻거나 태우던 곳), 담장을 지니고 있다.

 

3. 선잠단 앞

저 계단을 오르면 붉은 피부의 홍살문이 마중을 하고 그를 들어서면 바로 선잠단 영역이다.

 

4. 선잠단 홍살문과 낮은 돌담이 둘러진 하유(선잠단 중심부의 남쪽) 부분

 

5. 북쪽 철책 너머로 바라본 선잠단 중심부

내가 갔을 때는 선잠단으로 인도하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하여 내부로 감히 발도 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철책 밖에서 금지된 땅을 대하듯 바라봐야했다. 허나 철책 밖에서 선잠단 내부가 거의 보이므

로 무리해서 철책을 넘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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