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보문동 미타사 일주문

서울 도심의 오랜 좌청룡인 낙산(낙타산) 동쪽 자락에 미타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보

문사 바로 북쪽으로 보문사와 완전 붙어있는데, 두 절 모두 비구니 절이다.

 

이곳 미타사는 950년에 혜거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과연 그때 법등을 켰는지는 의문이나 1047년에

세웠다고 전하는 늙은 석탑이 있어(그 탑의 탄생 시기도 확실치 않음) 고려 초/중기에 지어진 것은 확

실해 보인다. (이웃 보문사는 1115년에 창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음)

 

1314년 혜감국사 만항이 중수했다고 하며, 1457년에 단종의 왕후인 정순왕후 송씨가 동대문 밖 동망

봉(낙산의 동남쪽 봉우리) 주변에 머물면서 중수했다고 전한다.

조선 초부터 미타사는 보문사와 한 덩어리로 '탑골승방'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탑골은 미

타사에 있는 5층석탑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문사와 미타사 일대를 탑골이라 불렀는데, 이들 모두 비구

니 절집으로 조선 왕실과의 인연이 두터워 후궁과 상궁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의지하거나 기도를 올렸

던 곳이다.

탑골승방 외에도 옥수동 두뭇개승방(미타사), 석관동 돌곶이승방(연화사), 숭인동 새절승방(청룡사)도

있어 이들을 묶어 한양도성 밖 4대 승방이라 불렀으며, 이들 모두 비구니 절로 탑골승방과 성격이 비

슷하다.

1801년 중수를 했으며(이때가 4차 중수라고 함) 1836년에 비구니 상심이 인일의 도움으로 중수했다.

1969년 계주가 고봉의 도움으로 중수했으며, 이후 계속 불사를 벌여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관음전, 단하각, 요사 등 6~7동의 건물이 있으며, 관음전은 지하에

공양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쪽은 보문사와 연결되어 있어 서로 왕래한다. 절이 들어앉은 위치상

대웅전과 삼성각, 단하각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보문사의 주요 건물들도 비슷하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칠성도와 백의관음도, 아미타후불도 등 지방문화재 8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

모두 2014년에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이들은 대웅전과 삼성각에 나눠 봉안되어 있으나 백의

관음도는 관음전과 이어진 '불이문'이란 건물에 따로 있다. (탱화의 위치는 절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그리고 앞서 언급한 1047년에 조성되었다는 5층석탑이 있는데,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로 탑골이란

이름까지 낳은 장본인이다. 허나 조선 후기에 그려진 탱화들도 거뜬히 받은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얻

지 못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현재는 조계종 소속으로 조계사의 말사이며, 낙산 자락에 있지만 '삼각산 미타사'를 칭하고 있다. 비

록 북한산(삼각산)이 여기서 거리가 좀 되나 그 줄기가 낙산까지 이르며, 낙산이 다소 부실하게 생겨

멀리 있는 북한산을 가져와 칭한 것이다. 이곳 뿐만 아니라 낙산에 안긴 보문사와 청룡사 또한 낙산

대신 삼각산을 칭하면서 북한산에 의지하고 있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낙산 일대 절들은 비구니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지금 또한 여전하

니 그 점이 참 흥미롭다. 미타사와 보문사, 청룡사, 거기에 최근에 지어진 정각사까지 그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왕실과 사대부 여인과의 적지 않은 인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숲이 짙어 산사의 내음도 대단했을 것이나 자비 없기로 유명한 개발의 칼질로 보문사와 함

께 속세에 갇힌 별천지처럼 되어버렸다. 게다가 보문사의 그늘에 가려져 인지도도 낮은 실정이다.

 

참고로 서울에는 이곳 외에도 개화산과 옥수동에도 '미타사' 간판을 내건 늙은 절이 있다. 즉 3개의 늙

은 미타사가 서울 하늘 밑에 있는 것이다.

 

2. 관불의식의 현장

즐거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대웅전 뜨락에 관불의식의 현장이 차려졌다. 거의 1년

만에 바깥 외출을 나온 아기부처는 꽃으로 화사하게 치장된 공간 한복판에 자리해 중생들의 관불의식

을 받는데, 나도 그 의식에 동참하여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그를 냉수마찰을 시켜주었다.

 

3. 미타사 대웅전

대웅전은 이곳의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오

색 연등이 허공을 가리고 있는 동쪽 뜨락을 바라보고 있는데, 석가여래3존상을 비롯해 고색이 묻어

난 아미타후불도와 감로도, 신중도, 지장시왕도 등이 내부를 수식하고 있다.

 

4. 삼성각에 들어있는 산신도

붉은 옷을 입은 수염이 지긋한 산신 할배가 하얀 부채를 들며 앉아있고, 그 옆에 호랑이가 있다. 그리

고 소나무와 산, 구름 등이 뒷배경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그림 밑에 고맙게도 화기가 남아있어 1915

년에 초암세복과 금명운제가 그렸음을 알려준다.

19~20세기 산신도의 전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표현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

되고 있으나 조성시기가 확실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5. 삼성각 칠성도

대웅전 옆에 자리한 삼성각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칠성도와 산신도, 독성도가 깃들여져 있다. 이

들은 삼성으로 추앙을 받는 칠성과 산신, 독성(나반존자)을 머금은 그림으로 그들 중에서 굳이 서열

을 둔다면 거의 부처의 대접을 받는 칠성(치성광여래)이 으뜸이라 보통 건물 중앙에 봉안한다.

 

칠성도는 그려진 식구들이 많아 대개 복잡해 보인다. 그림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

과 월광보살이 협시해 있으며, 그 좌우로 칠원성군 등을 크기를 달리하여 배치했다. 그리고 화기 일

부가 훼손된 것을 빼면 상태도 그런데로 괜찮은 편이다.

치성광여래는 머리에 뿔이 달린 소가 이끄는 수레 위에 결가부좌로 자리해 있으며, 무릎 밑 좌우로

과일을 받쳐 든 동자가 본존을 향해 있으면서 얼굴은 정면을 향했다. 본존 광배 주위를 에워싼 28수

는 좌우로 대칭하여 14수씩 그려져 있으며, 그 옆으로는 정수리가 봉긋 솟은 태상노군과 좌우필성이

있고, 상단에는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삼태와 6성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화면 밑 바깥쪽에는 동자상

4위가 있다.

 

이 그림은 강화도 정수사 법당 칠성도(1878년), 강남 봉은사 북극보전 칠성도(1886년), 의성 고운사

쌍수암 칠성도(1892년) 등과 동일한 형식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수도권과 경상도 지

역에서 활동했던 경선당 응석과 용계 서익, 봉간, 현조 등이 참여하여 조성했다.

 

6. 삼성각 독성도

칠성도 왼쪽에는 독성도가 자리해 있다. 천태산에서 몸을 일으킨 독성(나반존자)과 그를 시중하는 동

자, 독성의 활동무대인 천태산이 그려져 있는데, 화기를 통해 1915년에 산신도를 제작했던 초암세복

과 금명운제가 조성했음을 알려준다. 19~20세기 독성도의 양식을 보여주는 존재로 조성시기가 분명

하고 보존 상태 또한 좋다.

독성도 앞에는 하얀 피부의 조그만 독성상이 유리막에 감싸여 있는데, 칠성과 산신은 그림만 있는데

반해 독성은 그림과 형상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절에서 다소 각별하게 대우를 받는 것 같다.

 

7. 미타사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칠성과 산신, 독성의 공간이다. 이곳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칠성도와 산신도, 독성도가 들어있으니 꼭 살펴보자.

 

8. 미타사 단하각

경내 뒤쪽(서쪽) 언덕에는 나무가 조금 우거져 있다. 이곳도 엄연한 낙산(낙타산)의 일부로 지금은 경

동고등학교가 바로 그 위에 터를 닦아 숲의 농도는 다소 엷어졌다. 언덕은 조금 가파른 편이라 돌로

여러 단의 석축을 다지고 계단을 놓았는데, 그 계단의 거의 끝에 단하각이란 1칸짜리 맞배지붕 건물

이 경내를 굽어보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단하각은 산신각의 별칭으로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다. 이미 삼성각에 늙은 산신도가

있지만 하늘과 가까운 곳에 산신을 위한 별도의 건물을 닦고 새 산신도를 파서 봉안한 것이다. 여기

서 바로 북쪽 계단을 오르면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인 5층석탑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