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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압사 경내 동쪽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

호압사 경내에는 500년 이상 묵은 늙은 느티나무가 2그루 전하고 있다. 이들은 약사전에
봉안된 석불좌상과 함께 호압사의 오랜 내력을 밝혀주는 존재들로 서쪽 나무는 높이 7m, 
허리둘레 4.2m, 동쪽 나무는 키 11m, 허리둘레 3.6m이다.

2. 붉게 잘익은 경내 동쪽 느티나무 (밑에서 바라본 모습)

3. 호압사 경내 서쪽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

4. 호압사 석불좌상(약사불)

호압사의 법당인 약사전에 이곳의 오랜 보물인 석불좌상이 소중히 봉안되어 있다. 그의 정
체는 동방정토의 주인인 약사여래로 문화재청의 예전 지정 명칭은 '석약사불좌상'이었으나
지금은 석불좌상(약사불)으로 갈렸다.
약사여래의 집이라서 건물 이름도 약사전을 칭하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홀로 불단을 지켰
으나 2009년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붙어서 약사3존상을 이루게 되었으며, 2011
년에 그 양쪽으로 천진불이라 불리는 아기부처 2기를 더 갖다 붙어서 지금은 약사5존상이
되었다.

 

인상이 온후한 약사여래상은 연화대좌에 앉아 조용히 명상에 임하고 있다. 그는 15세기(늦
어도 1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돌로 만들어 금색 피부를 입혔는데, 불두에는 작은 소라 모양
의 머리칼을 촘촘히 표현했으며 얼굴은 둥근 넓적한 모습으로 약간의 양감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선정인을 취한 듯, 다리 위에 모은 그의 두 손에는 약합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어 그의

정체를 알려준다.

5. 호압사 약사전

호압사의 법당인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창건 당시부터 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 건물은 1935년에 새로 지었다.
 

호암산 서쪽 자락 230m 고지에 둥지를 튼 호압사는 1394년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
으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허나 봉은사에서 작성한 '봉은사말사지'에는 1407년에 창건되었
다고 나오며, 태종이 '호압'이란 현액을 하사했다고 한다. '호압'은 호랑이를 누른다는 뜻이
니 풍수지리적으로 서울에 위협적인 호암산의 기운을 누르고자 비보풍수의 일환으로 세
워진듯 싶다.
호압사란 이름 외에 '호갑사'란 별칭도 있었으며, 창건 이후 400년 이상 적당한 사적을 남
기지 못했다가 1841년 승려 의민이 상궁 남씨와 유씨의 시주로 법당을 중창했다.
1935년 만월이 약사전 6칸을 중건했고, 1995년에 삼성각을 지었으며, 2008년에 9층석탑
을 세워 지금에 이른다.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천고을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과 같고 험하며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범바위라 부른다. 술
사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이라 했다'라는 내용이 있어 이것이 호압사
의 유래로 여겨진다. 여기서 호갑은 '호압사'로 호압사의 다른 이름으로 많이 등장한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약사전을 비롯해 삼성각, 심검당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좌상과 500년 묵은 느티나무 2그루가 있어 절
의 오랜 내력을 살짝 속삭여준다.

6. 호압사에서 바라본 호암산의 위엄
봉우리 윗쪽이 호암산 정상(393m)이다. 오늘도 호압사의 눈치를 보며 서울을 그윽하게 바
라보는 호암산, 호랑이 기운을 머금은 잘생긴 산인데, 너무 잘생기다보니 엉뚱하게 서울을
위협하는 뫼로 오해까지 받았다.

7. 호압사에서 바라본 금천구와 광명시 동부 지역

8. 경내 밑에 자리한 똥배 포대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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