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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천사 일주문

예산읍내 동북쪽에 솟은 금오산(223m) 동쪽 자락에 향천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예

산 지역에서 수덕사 다음 가는 고찰로 655년에 백제의 고승 의각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과연 의각이 세웠는지는 믿거나 말거나 창건 설화 외에는 마땅한 기록이 없어서 답답할 따름이지만

경내에 있는 9층석탑이 7~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대충 창건 시기는 맞아 떨어

진다.

 

향천사를 세웠다고 전하는 의각선사는 백제 승려로 652년 백제의 속방인 왜열도로 건너가 백제사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가 뜻한 것이 있어서 당나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3년 동안 오자산에서 불법

을 공부하면서 석불 3,053개를 비롯한 전단향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16나

한상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655년 당나라에 온 백제 사신을 따라서 귀국했는데, 귀국하면서 오자산에서 만든 석불을 바리바리

싣고 왔다. 고국에 돌아와 오산현 북포 해안에 이르렀으나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석불들을 계속

배에 방치했는데, 이때 배 안에서 종소리가 나 해변에 진동했다고 하여 부근 마을 이름을 종성리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각의 방황을 보다 못한 금까마귀 1쌍이 찾아와 지금의 절 자리를 알려주었다고 한

다. 그래서 의각은 그 자리에 향천사를 세워 석불을 봉안하고 까마귀에게 보은을 하는 차원에서 산

이름을 금오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후 의각이 만들었다는 불상의 존재는 나오지 않음)

 

그렇게 절이 창건된 이후, 승려 도장이 잠시 절을 관리했다. 그러나 660년 가을에 해양대국 백제가

허망하게 무너지자 백제의 속방인 왜국으로 건너갔다.

왜왕(제명여왕이나 천지왕으로 생각됨)은 그에게 귀의할 것을 부탁했고,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그는

그 청을 받으니 왜왕이 기뻐서 동량지원수란 존호를 주었다고 한다.

이후 옛 백제 땅으로 돌아와 향천사와 송림사에 머물렀는데, 698년에 신라 왕실의 지원으로 동관음

전과 서로전, 동선당, 향적전, 관음암 등 400여 칸의 건물과 암자를 지었다고 하며, 이후 호서 제일

의 명찰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840년에는 보조국사가 중창했다고 하는데, 그는 837년 당나라로 건너가 840년 석불 1,053개를 가

지고 귀국하여 향천사에 천불전과 극락전을 지었다고 한다.

1359년에는 극락전에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멸운이 1596년에 중건

하여 100여 칸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멸운(멸운당)은 임진~정유재란 시절에 승병 70여 명을 이끌

고 금산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운 승려이다.

 

1702년 범종을 새로 만들었고, 1950년 6.25때 많은 건물이 파괴된 것을 보산이 10년 동안 주석하

면서 중건했다. 이후 1971년 극락전을, 1982년에는 서선당과 당월당을 새로 지었으며, 1985년 천

불전과 나한전을 해체 복원하고, 1986년에 범종각을 짓고 부설 향천유치원을 만들었다.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해 천불전과 나한전, 산신각 등 약 10동에 건물이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9층석탑을 위시해 천불전과 부도, 괘불도와 오여래/사

보살 팔금강도 등이 있다. 그외에 1702년에 조성된 범종도 있으나 보호를 위헤 현재 수덕사 성보박

물관에 가 있다. 또한 천불전을 통해 천불선원을 강조하며 천불도량으로 절을 키우고 있다.

 

산사이긴 하지만 깊은 산중에 있는 것은 아니며, 읍내에서 무척이나 가깝고 일주문 부근까지 속인들

의 주택이 밀려와 산사의 질감이 조금은 떨어지는 면이 있다. 허나 조용하고 그윽한 분위기는 여전

하여 속세에서 오염된 마음을 가다듬기에는 손색이 없으며, 서울 화계사처럼 서양인 승려들이 많이

머물고 있어 눈길을 끈다.

 

2. 바로 앞에 나타난 향천사 일주문

향천사는 이번이 2번째 방문으로 모두 겨울에 인연을 지었다. 향천사로 다가서니 일주문이 제일 먼저

마중을 하는데, 이 문은 2003년 10월에 마련한 것으로 문을 받치는 2개의 기둥은 가운데가 좀 볼록하

며, 기둥 위에는 양쪽으로 누런 꼬랑지의 용 2마리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어 마치 견우와 직녀를 보는

듯하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평방 앞에는 '금오산 향천사(金烏山 香泉寺)'라 쓰인 현판이 있으며, 뒤쪽에도 현

판이 있는데, '호서가람천불선원(湖西伽藍千佛禪院)'이라 쓰여 있어 향천사의 성격과 자부심을 알려

준다.

 

3. 일주문 안내문

 

4. 향천사 경내로 인도하는 숲길 (일주문 이후 구간)

 

5. 향천사 창건 유래비 (향천사 창건과 내력은 앞에서 언급했음)

 

6. 향천사 경내로 인도하는 돌계단 (향천사 창건 유래비 옆)

 

7. 근래 새로 지은 음설루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예전에는 없던 건물이다. 그를 지나면 극락전을 비롯한

향천사 경내 중심부에 이르게 된다.

 

8. 향천사 극락전

향천사의 법당인 극락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1년에 새로 지었다. 원래는 그

우측 나한전 자리에 있었으며, 1983년 옛 극락전을 철거하면서 지금의 건물이 극락전이 되었다. 불

단에는 단향목으로 만든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는 1359년에 조성된 거라고 전한

다. (또는 조선 초기나 중기라고 함)

아미타불은 양쪽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있으며, 후불탱과 지장탱을 비롯한 수많

은 탱화들이 내부를 곱게 수식한다. 이들 탱화는 1993년에 제작된 것이다.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 그런지 특별히 푸른 빛깔이 나는 청기와를 입혀 법당의 품격을 높였다.

 

9. 향천사 서선당

극락전 뜨락 우측에 넓게 자리한 서선당은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로 1982년에 새로 지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경내에서 가장 큰 집이다.

 

10. 향천사 동선당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서선당과 마주보고 있다. 종무소와 선방의 역할을 하고 있으

며, 지붕선이 시원스럽다.

 

11. 향천사 느티나무 (예산군 보호수)

서선당 옆에 높이 자라난 느티나무는 추정 나이 약 230년(1982년 10월 15일 예산군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178년), 높이 24m, 나무둘레 2.5m로 극락전과 서선당 주변에 늘 일품 그늘을 드리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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