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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천사 천불전 내부

천불전에는 건물의 이름 그대로 1,000기의 불상이 있어야 되지만 정확하게는 그보다 1.5배가 많은

1,515기의 불상이 불단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이는 이 땅에 널린 천불전의 불상 수 가운데 가장 많

은 숫자로 그 흔한 이름 천불보다는 눈에 좀 띄게 천오백불(1,500불)이라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천불과 3천불은 많지만 1,500불은 희귀하기 때문이다.

이들 천불은 미혼자의 혼인 대상자를 점쳤다는 전설이 있으며, 우리나라 7천 만 인구 마냥 가지각색

의 모습과 표정으로 개성들이 넘친다. 모두 하얀 불상으로 작은 불상은 대부분 석고상이고, 큰 불상

은 돌로 만들어졌다.

 

2. 천불전 천불의 위엄

문을 열고 적막이 깃든 천불전으로 들어서니 가운데 큰 불상을 비롯해 1,500의 불상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정면으로 쏠리는 1,500의 시선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던지,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울 정도이

다. 마치 1,500의 관중 앞에 선 음악가나 연기자가 된 기분이랄까? 나는 수줍게 향로에 향을 피우고

삼배를 올린 다음, 사진을 찍고 나왔는데, 나의 깜짝 공연이 그들에게 썩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

다.

 

3. 불단이란 관중석에 앉아 나의 공연을 구경하는 천불의 위엄

불상이 하도 많아서 슬쩍 하나 가져가도 모를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 가져오고 싶었으나 내가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해 마음 속으로만 그러고 말았다.

 

4. 천불전의 부속 건물들

천불전의 부속 건물들은 승려의 생활 및 수행 공간과 절의 여러 집기를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5. 향천사 천불전

천불선원의 중심인 천불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내에서 극락전에 버금가는 건물로 현판에 쓰인 이름 그대로 천불(실제로는 1,515불)을 봉안했는데,

의각이 당나라 오자산에서 직접 만든 3,053기의 불상과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16나한

을 봉안하고자 세웠다고 전한다. 또한 840년에 보조국사가 당나라에서 1,053기의 불상을 가져와 지

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596년에 멸운이 다시 중건했으며, 1984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어

찌된 영문인지 1986년에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지금의 새 건물을 지어 옛날의 구수한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건물을 다시 지었음에도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은 것은 불단에 봉안된 불

상 때문인 듯 하며, 천불의 조성시기는 전설과는 달리 조선 초기로 보인다.

 

6. 의각과 멸운의 부도탑(가운데는 멸운당대사 탑비)

천불선원(천불전)에서 서쪽으로 작은 계곡을 건너면 금오산 등산로와 함께 'ㄱ'모양의 기와집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기와집은 서래암이란 건물로 별도의 암자가 아닌 향천사 소속의 불전이다. 그런

서래암 옆에는 부도탑 4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들 가운데 2기가 고색이 좀 짙다. 이들 중 검

은 때가 자욱한 왼쪽 부도탑이 절을 세웠다는 의각의 탑이라고 전하며, 오른쪽에 대추처럼 생긴 부

도는 16세기에 활약했던 멸운의부도탑이다.

 

까무잡잡한 피부로 상당한 고색이 느껴지는 왼쪽 부도는 두툼한 바닥돌 위에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약간 동그란 탑신을 얹혔다. 그리고 8각형의 지붕돌을 올리고, 머리장식으로 꼭대기를 마무리한 제

법 수려한 모습이다.

기단부 아래 받침돌은 8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구슬을 이은 듯한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무늬

를 새겼으며, 위에는 잎을 아래로 한 연꽃무늬를 둘렀다. 가운데 받침돌은 8개 모서리에 기둥을 새

기고 각 면마다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이들의 이름은 모르겠음)들을 조각해 부도의 건강을 기원했

다. 그리고 윗쪽 받침돌에는 잎을 위로 향한 연꽃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에 서까래를 표현했고, 윗쪽 면에는 모서리마다 조각을 돌출되게 새겨 아름다움을 보탰

으며, 지붕돌 위에는 머리장식을 두었는데, 가장 하늘과 가까운 부분에 근래에 새로 얹힌 새하얀 피

부의 장식을 얹혀놓아 아까 9층석탑처럼 약간의 어색한 조화를 선보인다.

절에서는 이 부도를 의각의 부도탑이라고 주장하는데, 만약 그게 맞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늙은 부

도탑이 된다. 허나 이 땅에서 부도탑이 등장한 것이 신라 후기로 여겨지므로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

부도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승려의 사리는 그냥 자연에 뿌리거나 부도와는 다른 별도의 시설에 봉안

했다고 한다.

의각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신라 승려 자장율사는 사리를 석혈에 봉안했다고 전하며, 그보다 이

른 신라 원광법사는 일반적인 3층석탑에 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또한 이 부도의 조각 수법을 볼 때 이르면 고려, 늦어도 조선 초기 것으로 여겨지며, 향천사를 거친

이름 모를 승려의 탑을 의각의 것으로 둔갑시킨 모양이다.

 

7. 검은 피부의 왼쪽 부도탑(의각의 부도탑)

위에만 잠깐 하얗고 나머지는 까무잡잡하여 마치 위에만 고양이 세수로 씻은 듯 하다. 위에 얹혀진 옥

의 티가 아니더라도 제법 수려한 부도임은 분명하다.

 

8. 마멸이 심한 멸운당대사탑비

오른쪽에 있는 대추 모양의 부도는 멸운당대사의 탑이다. 이 부도탑은 두툼한 바닥돌 위에 8각의 기

단을 두고 대추 모양의 탑신을 올렸는데, 그 위를 지붕돌로 마무리한 형태로 일종의 석종형 부도이다.

기단은 2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밑에는 면마다 2개씩의 액자 모양을 새기고, 윗쪽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지붕돌은 밑쪽에 서까래를 새기고, 모서리마다 돌출된 조각을 두어 왼쪽 부도에 비하여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부도에 조그만 화려함을 불어넣었다. 그 위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올

렸다.

 

그리고 검은 부도와 멸운당대사 부도탑 사이에 있는 멸운당대사 비석은 뒤쪽에 '강희 47년 무자월일

립'이라 쓰여있어 1708년에 세웠음을 알려준다. 비석의 피부에는 고된 세월의 때가 역력해 멸운의 부

도보다 더 고색의 기운을 풍긴다.

 

9. 검은 부도탑(의각의 부도탑) 지붕돌 귀퉁이에 새겨진 얼굴

예전 향천사 나들이 떄는 못보던 것으로 이번에 우연히 두 망막에 잡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얼

굴로 불교의 법과 부도탑을 지키는 신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모습이다.

하여 밤에 보면 귀신처럼 은근히 무서울듯 싶다.

 

10. 조각이 현란한 검은 부도탑의 탑신과 아랫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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