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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차산4보루 북쪽 치

아차산4보루는 용마산과 망우산을 제외한 아차산 식구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잃어버

린 땅을 제외한 우리나라(남한)의 고구려 성곽 유적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

초의 현장으로 의미가 아주 남다른 곳인데,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

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런데

로 남아있었으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던 높이가 0.8m를 넘지 못했으며, 부정형의 석

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구리시가 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을 갖춘 건물터를 확인했으며, '

後部○兄'이라 쓰인 토기가 나와 고구려(고구리)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닦은 보루임이

명백해졌다. 여기서 후부(後部)는 고구려 5부의 하나이며, '○兄'은 고구려 관등의 하나로 여겨진

다. 고구려에는 '형(兄)'자가 들어가는 관직이 많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에 다시 조사를 벌여 숨겨진 치성을 발견했고, 보루 형태와 성벽 축성 방식을 확인하

면서 복원 가능성이 높아졌다. 4보루 사이로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선이 무심히 지나가 절반은

서울시, 나머지 절반은 구리시 영역인데, 구리시가 2008년부터 복원을 적극 추진하여 2년의 공사

끝에 2010년 12월 24일 복원준공식을 가졌다. 아차산일대 보루 중 처음으로 복원된 행운의 보루

인 것이다. (나중에 구리시 영역인 시루봉 보루도 복원되었음)

보루 복원을 위해 보루터에서 나온 늙은 성돌을 주로 사용했으나 수량이 적어서 부득이 새 성돌로

모자란 부분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고색이 짙은 늙은 돌과 하얀 피부의 어린 돌이 어색하게 조화

를 이룬다. 허나 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발굴조사를 토대로 고구려 축성 양식에 맞춰 왕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고, 건물터와 온돌 유구

등은 보존을 위해 모두 흙속에 묻었다. 그리고 보루 중앙 쪽에 탐방로를 내고 건물터 쪽에는 금줄

을 쳤으며, 보루 북쪽과 남쪽에 보루로 오르는 계단을 냈다.

보루의 둘레는 약 249m, 성벽 높이는 최소 4m 이상이다. 허나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2.5~3.1m

높이로 크게 축소 재현하여 마치 역사 왜곡의 현장 같은 아쉬움을 준다.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해 바

깥 쪽에 성벽을 쌓고, 안쪽 경사면에는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졌는데, 방어력을 높이고자 동/서/남/

북에 5개의 치성(雉城, 치)을 두었다.

치성(치)은 성곽 방어를 위해 앞쪽으로 다소 튀어나온 성벽으로 고구려표 축성 양식의 하나이다. 그

양식은 백제와 신라, 발해, 고려, 금, 조선은 물론 왜열도와 서토(중원대륙)까지 전해져 절찬리에 쓰

였다.

 

2. 아차산4보루로 인도하는 북쪽 계단길

 

3.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아차산4보루 동북쪽 치

4보루는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이 확 트여있어 조망이 아주 일품이다. 여기서는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 종로구, 중구, 성북구, 송파구, 강동구, 한강은 물론 하남시와 구리시, 남양주시 지역이 훤

히 시야에 들어오며, 해돋이와 일몰을 모두 맞이할 수 있어 해돋이 수요와 일몰 수요, 야간 등산 수요

가 많다. (1월 1일에는 새해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정말 미어터짐)

게다가 아차산과 용마~망우산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 아차산 주능선의 목구멍 같은 곳이다.

그러니 고구려가 이곳에 큰 보루를 쌓아 무척 애지중지했던 것이다.

 

4. 아차산4보루 저수시설

아차산4보루 탐방로 좌우로 잔디와 흙이 두툼히 덮여진 건물터와 저수시설 유적이 있고, 키가 작은

금줄을 둘러서 고구려의 거룩한 흔적을 지키고 있다. 금줄의 의미처럼 줄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나

지키는 사람이 딱히 없다 보니 안에 버젓이 들어가 자리를 펴고 쉬거나 음식을 처묵처묵하는 작자들

이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4보루에서는 물을 저장하는 2개의 저수조 흔적이 나왔다. 이들은 깊이 3.5m 정도 수직으로 암반 흙

을 파내고 바닥과 벽에 입자가 고운 회색 뻘흙을 발라 물이 새지 못하도록 방수처리를 한 것으로 규

모는 '430x300x깊이230cm', '350x310x깊이240cm'이다.

 

5. 한강을 향해 약간 튀어나온 아차산4보루 동쪽 치

 

6. 아차산4보루 내부 (북쪽 방향)

이 날이 평일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 토요일, 휴일 낮에는 사람들로 봐글봐글하다. 이곳은 전망대

및 쉼터 역할도 하고 있어서 아차산 주능선을 타는 사람들과 등산까페 모임 사람들이 보통 여기서 쉬

었다 간다. 특히 야간등산에는 이곳에 자리를 펴고 음식이나 행동식, 간식을 섭취하는 등산 까페 사

람들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다.

 

7. 아차산4보루 1호 건물터

4보루의 7개 건물터 중 남쪽에 있는 1호 건물터가 가장 높다. 여기서는 온돌 유구 2기와 주춧돌이 나

왔는데, 온돌 아궁이 주변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 철제투구 등이 나와 4보루를 관리하던 높은 장

수나 지휘관의 숙소로 여겨진다.

1호 건물터 주변에는 6호 건물터와 7호 건물터, 2호 건물터 등이 있으며, 3호 건물터 밑에서는 'ㅡ'자

형 온돌유구 2기가 나왔다. 층위(層位)로 보아 건물터보다 먼저 조성되었음이 밝혀져 4보루 내부 구

조물이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준다. 보루를 먼저 쌓고 나중에 온돌과 내부 시설을

차례대로 얹혔던 것이다.

 

8. 아차산4보루 내부 (북쪽 방향)

 

9. 아차산4보루의 독특한 구조물, 남쪽 2중치

4보루 남쪽에는 2중 구조를 지닌 독특한 치가 남쪽으로 길게 나와있다. 그는 전체 길이 13.2m로 중간

에 목책(木柵)이 둘러진 2.5m 정도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치로 구

분된다.

뚫린 공간에는 치의 성벽에 잇대어 4개의 후대 석축단이 축조되었고, 그 좌우로 목책을 세웠는데, 보

루의 출입구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용마산2보루와 개발의 칼질로 허무하게 사라진 구의동보루에

서도 일부 확인되고 있으나 사실상 아차산4보루가 유일하며, 고구려 보루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줌과

동시에 보루의 끝이 들여쌓기로 차곡차곡 닦여져 안정감을 준다.

 

10. 아차산4보루 서남쪽 치

 

11. 아차산4보루 남쪽 2중치와 동남쪽 성곽

아차산4보루 서쪽과 동쪽 밖에는 우회길이 있다. 하여 4보루의 속살이 당기지 않는다면 우회길을 이

용해도 된다. 서울둘레길5코스(깔딱고개~광나루역, 4.6km)가 4보루를 지나가며, 4보루의 절반은 서

울 광진구, 절반은 경기도 구리시 땅이라 서로 앞다투어 애지중지한다.

또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일원이자 아차산 6개 보루의 하나이며, 시루봉보루

와 더불어 복원 재현된 행운의 보루이다. 게다가 아차산의 상징이자 백미 같은 존재로 보루의 안부가

걱정될 정도로 아주 바쁘게 산다. 내가 이곳을 찾은 횟수만 어림잡아도 300번은 넘으리라 본다. 아침

부터 낮, 오후, 그리고 야간등산까지 고루고루 찾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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