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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파사성,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 여주 파사성 초겨울 나들이 '
여주 파사성
 


겨울이 가을을 몰아내고 천하 평정에 열을 올리던 11월 끝 무렵, 여주(驪州) 파사성을 찾
았다.
파사산에 깃든 파사성은 오랜 세월 목말라했던 곳으로 이번에 비로소 인연을 짓게 되었는
데, 햇님이 하늘 높이 떠있던 13시에 방학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회기역에서 경의중앙
선(문산~용산~덕소~용문,지평) 용문행 열차로 환승해 양평역에서 내렸다. 소요시간은 1시
간 40분 정도로 열차 시간이 딱 맞으면 1시간 30분대에 이동이 가능하다. 허나 용문행 열
차가 배차간격이 영 좋지가 못하여 1대를 놓치면 꼼짝없이 30분을 날려야 된다.

양평군청사거리(양평역입구)에서 여주로 가는 양평군내버스 1-1번을 타고 20여 분을 달려
이포대교가 있는 천서4거리에서 내렸다. 여주에 속해있는 천서리는 막국수로 유명한 마을
로 천서4거리 주변에 막국수집이 여럿 장사를 벌이고 있는데, 그 4거리 동북쪽 뫼에 나를
이곳으로 부른 파사성이 있다.


♠  여주 파사성(婆娑城) 입문

▲  파사성으로 인도하는 파사산 숲길

천서4거리에서 양평(楊平) 방면 여양로(37번 국도)를 따라 7분 정도 걸으면 파사성입구인 파
성골이다. 이곳에 파사성 안내문과 주차장이 있는데, 여기를 기점으로 하여 파사성으로 올라
가면 된다.
개인 차량으로 왔을 경우 이곳에 차를 두고 올라가면 되나 정작 버스정류장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하여 양평읍이나 여주시내에서 양평군내버스로 접근했을 경우, 파사성 입구를 뻔히 지
남에도 천서4거리 정류장에서 7~8분을 걸어가야 된다.

파사성 입구에서 이정표의 지시에 따라 동쪽 길을 오르면 파성골 마을로 여기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 몇 굽이를 오르면 파사성 남문터가 마중을 한다. 남문터까지는 거의 완만한 오르막길
로 쉬엄쉬엄 가면 15~20분 정도 걸리며, 차량 접근은 통제되어 있다.


▲  누렇게 뜬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파사산 숲길

늦가을의 향연을 신나게 펼친 나무들은 겨울 제국(帝國)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고 있고, 나
무에게 버림받은 잎사귀들은 낙엽이란 우울한 이름이 되어 귀를 접고 누워있다. 그 길을 걷는
인간들도 올해가 다 저물었다는 충격과 나이가 곧 1살 누적된다는 공포스런 현실에 덩달아 우
울해진다.


▲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파사성

▲  파사성 남문(南門)터

남문은 파사성의 정문으로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그 앞에는 조선 때 세워진 8각형 돌기둥 2
개가 멀뚱히 자리해 있어 그 흔한 홍예식 성문이 아닌 누각 형태의 문을 두었던 모양이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남문터
남문터 서쪽(사진에서 오른쪽) 성곽은 복원되어 산뜻한 모습이고, 동쪽 성곽
(사진에서 왼쪽)은 헝클어진 모습 그대로를 보이고 있다.

▲  남문터 안쪽

파사성은 파사산(婆娑山, 230.4m) 산정에 닦여진 산성으로 파사산의 정상부를 품고 있다. 산
성 내부는 여주 땅, 북쪽 성곽 바깥은 양평 땅으로 산 서쪽에는 남한강이 유유히 곡선을 보이
며 흐르고 있고, 동쪽은 키 작은 뫼와 평지가 섞여있으며, 북쪽과 남쪽은 평지 중심으로 호랑
이가 담배 맛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바쁘게 살았다.

신라 5대 군주인 파사왕(婆娑王)이 축성하여 파사성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근거가 없으
며, 여러 번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와 신라 것으로 여겨지는 유물과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백제 성으로 다루었으나 솔직히 백제가 쌓았는지, 신라가 쌓았는지, 아니면
고구려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록이 전하지 않는 세력이 쌓았는지 여전히 아리송하여 그 책임
을 피하고자 요즘에는 삼국시대 산성으로 비껴 설명하고 있다. 백제나 신라나 삼국시대의 일
원이라 그것도 맞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시절에 도총섭(都摠攝)인 의엄(義嚴)이 유성룡(柳成龍)의 명을 받고 승군을 동원해
3년 동안 성곽을 보수하고 옹성과 장대(將臺), 군기소(軍器所) 등을 지었다. 허나 남한산성(
南漢山城)이 중요시되면서 파사성의 가치는 떨어졌고 이후 방치되어 대자연과 장대한 세월의
희롱을 받으며 헝클어졌다.
남한강 상류와 하류를 잇는 요충지로 여기서 바라보는 남한강과 주변 풍경이 뛰어나 고려 후
기에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시를 남겼으며, 유성룡도 이곳 경치에 퐁당 빠져 시 1수를 남겼
다.

성곽 길이는 약 1,800m, 높이는 4~6m에서 최대 6.5m이며, 고된 세월에 지쳐 붕괴된 부분이 많
고 헝클어진 부분도 적지 않으나 늙은 산성치고는 잘 남아있다. 크기와 두께가 서로 다른 돌
을 이용하여 성곽을 닦았고, 석재의 자른 면을 바깥으로 향하도록 하여 표면이 정연하다.
남문와 동문 등 성문 2곳, 우물터, 수구(水口)터, 여러 건물터가 있으며, 남문터에는 조선 때
세워진 8각 주춧돌 2기가 있다.

동문터와 남문터를 잇는 북쪽 성곽은 복원이 되어 거의 새 성처럼 되었으나 남쪽 성곽은 일부
를 제외하고 헝클어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곽만 손질되었지 여장 등은 재현하지 않
았으며, 난간 등의 안전 시설이 없다.

파사성은 국가 사적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산성 정상부에 상자포리 마애불로 인도하는 길
이 있어 여로(旅路)도 살찌울 겸, 같이 둘러보면 좋다. 어차피 서로 거리도 무지하게 가깝다.

* 파사성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산9


▲  남문터 주변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여주의 산하
저 멀리 보이는 긴 다리는 광주~원주고속도로의 남한강대교이다.

▲  계단처럼 펼쳐진 북쪽 성곽
복원이 되긴 했으나 안전시설이 없고 성곽길도 거칠어 통행에 정말 주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성곽 높이가 4~6m에 이르고 그 아래도 거의 벼랑
수준이라 잘못 거닐다 실수라도 하면 정말 답이 없다.

▲  북쪽 성곽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여주의 산하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는 이포대교)

▲  파사산 정상을 향해 힘차게 뻗어가는 파사성 북쪽 성곽

▲  율동을 부리며 흘러가는 파사성 북쪽 성곽


♠  파사성 정상부와 동문터,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  파사성 정상 직전에서 바라본 북쪽 성곽과 남한강

파사성은 남한강은 물론 양평 남부 지역과 여주 북부 지역이 훤히 두 눈에 들어와 조망도 일
품이다. 게다가 남한강까지 싹 감시할 수 있으니 자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다.

◀  북쪽 성곽에서 바라본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주변
벼랑이 유별나게 모여있는 곳(사진 중앙)에
상자포리 마애불이 깃들여져 있다.

◀  파사성 동북쪽 끝부분 (정상 옆)
안내문 뒤로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면
마애불로 인도하는 산길이 있다.


▲  파사성의 지붕인 파사산 정상 (해발 230.4m)
파사산 정상은 대머리처럼 허전한 모습이다. 여기서 북쪽 성곽길과 상자포리
마애불 방면 산길, 그리고 남쪽 성곽길로 나눠진다.

▲  파사성 정상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양평 개군면, 양평읍 지역

▲  파사성 정상에서 바라본 양평 개군면, 지평면, 여주 대신면 지역

▲  파사성 동북쪽 끝에서 상자포리 마애불로 인도하는 계단길
성곽의 70~80도 경사면에 나무데크 계단을 만들어 성 내부(여주)와 성밖
(양평 상자포리)과의 연결 고리를 끈끈히 이어준다.

▲  파사성에서 상자포리 마애불로 이어지는 숲길

파사성 동북쪽 끝에서 상자포리 마애불을 보고자 잠시 파사성을 버리고 북쪽 계단으로 내려갔
다. 성곽을 나오면 바로 양평 땅으로 숲길을 4~5분 정도 가면 돌탑이 나오고, 그 탑을 지나면
약간의 바위길이 나오는데, 그 구간을 지나면 대자연의 칠판 같은 큰 벼랑이 펼쳐지면서 상자
포리 마애불이 마중을 한다. 파사성에서도 매우 가깝고 길도 그리 각박하지 않아 파사성과 한
덩어리로 같이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  상자포리 마애불 직진 벼랑과 바위길
바위길이 부담이 된다면 밑에 닦여진 우회길로 이동하면 된다. 우회길은
마애불 관리 건물을 거쳐 마애불 앞으로 이어진다.


▲  범상치 않게 생긴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주변 벼랑

▲  바위에 살짝 깃든 상자포리(上紫浦里) 마애여래입상
-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파사산 정상 북쪽 산자락에는 고려 때 조성된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이 깃들여져 있다. 높이
는 5.5m로 고려 어느 때 조성되었는지는 파사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그 시절에는 큰 마애
불과 석불이 유행이었다.
마애불 주변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이리저리 금이 간 큰 돌이 몰려있어 범상치 않은 기운을
주고 있는데, 마애불이 있기 이전에는 산악신앙의 현장으로 쓰였던 듯 싶으며, 벼랑이 서쪽으
로 5도 정도 각진 곳에 마애불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남한강이 있는 서쪽을 굽어보고 선 그는 선으로 처리된 선각(線刻)마애불로 장대한 세월의 거
친 흐름으로 선이 좀 가늘어지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하는데 별로 어려움은 없다.
2개의 원으로 표현된 두광(頭光)을 머리 뒤에 달고 있으며, 땅바닥을 향해 잎을 펼친 연꽃무
늬가 새겨진 대좌(臺座)에 서 있다. 덩치가 큰 석불임에도 신체 균형은 잘 잡혀있으며, 네모
난 얼굴에는 눈과 코, 입이 표현되었고, 귀는 어깨까지 축 늘어져 있다.
다른 석불과 달리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왼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이며, 가슴 부분에는 큰 곡
선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작은 곡선을 이룬다. 오른손은 팔꿈치가
각이 진 상태로 가슴 부분에 놓여있으며, 왼손은 마멸이 심해 확인이 힘들다.

대구 염불암(念佛庵) 마애여래입상과 이천 영월암(映月庵) 마애여래좌상(☞ 관련글 보기) 등
과 비슷한 표현으로 보이며, 파사성에서 여기까지 산길이 이어져 있고 이정표도 잘 되어있어
찾기는 쉽다.

이 마애불은 파사산 남쪽에 있는 수호사(守護寺)란 절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마애불 밑에 건
물을 지어 초와 공양미 등을 팔고 있다. 수호사는 20세기 현대 사찰로 고려 마애불인 이곳을
접수해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고 있다.

*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산36-1


▲  바위 틈새에 숨겨진 샘터
주변에 물을 괴롭힐 유해요소가 전혀 없어 아직은 깨끗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 물을 한가득 담아 들이키니 갈증이 싹 내려앉는다.

    ◀  암벽이 깨지고 뒤엉킨 마애불 남쪽
대자연과 세월의 적지 않은 압력에 저런 모습이
되었다. 저 틈새에 샘터가 숨겨져 있으며, 벼랑
의 틈새는 조금씩 이어지고 있어 산사태가 조금
우려된다.

◀  마애불을 관리하는 건물
수호사에서 세운 건물로 양초와 공양미
등을 셀프 형태로 팔고 있다.


▲  파사산 정상에서 일몰 직전에 바라본 남한강과 양평 지역

▲  파사산 정상에서 일몰 직전에 바라본 남한강과 여주 지역

▲  파사성 동문터

상자포리 마애불을 둘러보고 다시 파사성으로 들어와 남쪽 성곽길로 들어섰다. 거의 새 성처
럼 손질된 북쪽 성곽과 달리 남쪽 성곽은 고된 세월에 지친 모습 그대로로 일부만 복원이 되
어있으며, 복원된 구간 외에는 성곽 위에 잡초가 무성하여 성곽 옆길로 이동해야 된다.

남쪽 성곽길 한복판에는 성곽이 잠시 끊긴 구간이 있는데 이곳이 동문터이다. 동문의 구조는
홍예문으로 여겨지며, 이곳에서 내려가면 천서리 파성마을과 수호사로 이어진다.


▲  복원된 성곽과 헝클어진 성곽의 어색한 조화 (동문터 동쪽 성곽)
성곽을 복원하면서 새 돌을 많이 보충하였다. 그러다 보니 새 돌과 헌 돌이
수백 년의 격차를 보이며 어색한 조화를 보인다. 하지만 새 돌은 헌 돌을
닮아가며 그렇게 익어가고 늙어갈 것이다.

▲  잡초와 수풀을 눌러쓴 남쪽 성곽 (동문 서쪽 성곽)

▲  파사성을 나오다 (동문터~남문터 숲길)

파사성을 1바퀴 돌고 남문터로 돌아오니 어느덧 17시가 넘었다. 햇님의 퇴근시간이 임박하면
서 달님이 슬슬 모습을 비추고 땅꺼미와 이른 겨울 바람도 그만큼 짙어진다. 산에 왔다면 겨
울에는 일몰 직전에 내려가는 것이 이롭다.

파사성과의 짧은 인연을 정리하고 천서리로 내려와 여주 시내로 가는 양평군내버스 1번에 나
를 담았다. 양평으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나 여주 시내도 가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일부러
남쪽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이후는 집까지 계속 이동하는 것이 전부라 생략하며, 초겨울 파
사성 나들이는 미답처를 여럿 지우는 성과를 보이며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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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5년 2월 28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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