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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금오도 비렁길1코스


' 여수 금오도 늦겨울 나들이 (비렁길1코스) '

금오도 비렁길1코스 미역널방
▲  금오도 비렁길1코스 미역널방

여수 화태대교

금오도 대부산

▲  여수 화태대교

▲  금오도 대부산

 


차디찬 겨울 제국이 서서히 내리막을 보이던 2월의 끝 무렵, 비렁길로 유명한 여수 금오
도를 찾았다.
금오도 비렁길의 풍문은 익히 듣고는 있었으나 멀다는 이유로 딱히 인연을 잡지 않은 채
, 오랜 세월 그곳을 목말라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 2월에 이르러 비로소 그곳을 찾게 되
었는데, 서울에서 당일로 오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다른 곳도 추가로 둘러볼 겸, 넉넉
히 1박2일 일정으로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영등포역에서 전라선(全羅線)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남원(南原)과 곡성(谷城)
의 여러 미답처(未踏處)를 개척하여 여로(旅路)를 넉넉히 살찌우고 저녁에 여수(麗水)로
들어서 여수 시내 찜질방에 여장을 풀었다.
뜨끈한 욕탕과 찜질방에 나를 푹 끓이고, 삶고, 대피며 고루고루 객고(客苦)를 풀다가 8
시간 이상을 푹 취침, 다음날 7시 그곳을 나서 문수우체국 정류장에서 여수시내버스 116
번(미평↔임포) 첫차를 타고 돌산도로 넘어갔다. 그 차를 타야 금오도 뱃시간과 딱 맞는
다.

버스는 여수시내를 지나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도(突山島)로 들어섰는데, 이곳도 정말 오
래간만에 방문이다. 그동안 돌산도는 4번이나 인연을 지었으나 그 4번 모두 향일암(向日
庵)을 보고자 찾은 것으로 그것도 벌써 10~20여 년 전의 일이다.
어쨌든 우두리와 평사리, 죽포리, 금봉리, 돌산읍내(군내리)를 두루 거쳐 신기항에 도착
했는데, 문수우체국에서 이곳까지 약 37km 거리로 거의 70분 정도 걸렸다.


♠  금오도(金鰲島) 입문

▲  돌산도 신기항과 금오도 여천항을 잇는 여객선(한림페리9호)

신기항(돌산읍 신복리)은 돌산읍내에서 동남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포구로 전라남도에서 지
정한 지방어항(漁港)이다. (2020년 1월 지방어항으로 승격됨) 감성돔 등의 물고기가 잘 잡혀
낚시 명소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항구 남쪽에 있는 신기항여객터미널(금오도비렁길여객터미
널)에서 금오도(여천항)와 화태도를 잇는 여객선이 오가고 있다.

신기항여객터미널에서 금오도 여천항으로 가는 뱃표를 끊었는데, 여천항은 금오도의 북쪽 관
문으로 하루에 9회 오가고 있다. 이 노선은 버스와 화물차 등의 차량 수송도 가능하며, 휴일
이면 자리가 거의 다 찰 정도로 수요가 많다. 허나 평일에 온 터라 빈 공간이 많아 방 하나를
완전 독차지하며 정말 편하게 누워갔다. 다만 여천항까지는 겨우 15~20분 거리라 눕기가 무섭
게 도착을 해버린다.


▲  신기항에서 바라본 화태대교의 위엄

신기항 서쪽에는 화태대교가 그림처럼 자리해 조촐한 볼거리가 되어준다. 파리도 미끄러질 정
도로 맨들맨들한 하얀 피부를 지닌 그는 돌산도와 화태도(禾太島)를 이어주는 연도교(連島橋)
로 2004년 10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 12월 11일 완성을 보았다.
공사비는 1,575억으로 다리 길이는 1,345m, 폭 14.2m(2차선 크기),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
는 최대 500m이며, 높이가 무려 130m에 이르는 주탑을 2개나 지닌 사장교(斜張橋)로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주경간)는 500m에 이르러 주경간 부분에서는 이 땅에서 3번째로 길다.
그의 화려한 등장으로 화태도의 접근이 100배 이상 좋아졌으며, 돌산읍내에서 바퀴를 돌리던
여수시내버스 106번이 섬을 오가고 있다. 보통 섬이 다리로 연륙되면 그곳을 잇는 여객선이
폐선되기 마련이나 이곳은 아직까지 신기항에서 뱃편이 운항(1일 9회)하고 있어 배로도 여전
히 접근이 가능하다.


▲  신기항에서 바라본 화태도

▲  금오도로 가는 배에서 바라본 뒤쪽 (북쪽 방향)
두라도와 대횡간도, 화태도, 돌산도 등

▲  금오도 여천항에 몸을 기댄 여객선(한림페리9호)

신기항을 출발한지 20분도 안되어 여천항에 도착했다.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연 여천항은 작은
포구로 함구미, 송고항과 함께 금오도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돌산도 신
기항과 여수시내(여수여객선터미널)로 가는 뱃편이 오가고 있다. (여수시내로 가는 뱃편은 1
일 2회 다니고 있으나 소요시간이 길고 운임이 비쌈)
배가 여천항에 몸을 기대 입을 크게 벌리자 그 속에 있던 차량과 사람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
썰렁했던 여천항에 잠시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보통 바다섬들이 그렇듯 이곳도 뱃시간에 맞춰 마을버스가 다닌다. 배가 들어오고 5~10분 뒤
에 출발을 하거나 배 출발 20~30분 전에 도착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비렁길1코스를 가고자
그 시작점인 함구미로 가야 했는데, 마침 그곳으로 가는 여수마을버스 365-1번이 입을 벌리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마을버스로 운행하고 있으나 대도시나 중소도시의 마을버스보다 차비가 좀 비싼 편이며,
그것이 싫다면 함구미까지 1시간 걸어가야 되지만 그러기에는 오늘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다.
하여 금오도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흔쾌히 버스에 올라탔다.

허나 섬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차를 싣고 오거나 마중을 나온 섬 사람들의 차로 각자의 목
적지로 사라져 버스는 겨우 손님 2명을 태우며 함구미가 있는 서쪽으로 바퀴를 움직였다.


▲  평화로운 모습의 함구미마을

버스는 2차선 해안길(유송로)을 5km 남짓 움직여 함구미에 이르렀다. 나를 내려준 버스는 여
기서 180도 바퀴를 돌려 여천항으로 돌아갔는데, 여천항과 금오도 중심지(우학리)로 가는 마
을버스가 뱃시간에 맞춰 가끔씩 오간다.

금오도 서북쪽 구석에 자리한 함구미는 바닷가 마을로 여천항과 함께 금오도의 북쪽 관문 역
할을 하고 있다. 마을 포구가 크고 넓어서 '한구미'라 불린 것을 왜정 때 함구미로 바뀌었는
데, 여기서는 백야도(白也島)와 여수 시내로 가는 여객선이 2~5회 정도 운항하고 있으며, 금
오도 비렁길의 북쪽 시작점이라 나들이꾼과 산꾼들이 많이 찾는다.


▲  서쪽에서 바라본 함구미마을과 남해바다
마을 뒤쪽으로 넓게 펼쳐진 산자락은 대부산(매봉산, 382m)이다.


금오도는 여수 지역에서 돌산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면적은 27㎢, 해안선 길이는 64.5㎞이다.
다도해(多島海)해상국립공원의 일원으로 돌산도와 소리도, 월호도, 두리도, 개도, 안도 등과
함께 소위 금오열도(金鰲列島)를 이루고 있는데, 섬이 자라 또는 금빛 거북처럼 생겼다고 해
서 금오도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여천항과 함구미 뒷산인 대부산(매봉산)이 금오도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그 남쪽으로 옥녀봉
(261m)과 망산(344m)이 차례로 솟아 금오도의 지붕을 이룬다. 섬 남쪽으로 안도(安島)가 안도
대교로 바짝 이어져 있으며, 섬 해안은 상당수 바위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안선 굴곡
이 심해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보이고 있다.

신석기시대 조개더미(貝塚) 유적과 고인돌 유적이 전하고 있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
을 알려주고 있으며, 조선 초기까지 사람들이 살았으나 1448년 조선 조정에서 금오도를 봉산(
封山)으로 지정하여 섬 사람들을 돌산도와 여수 본토로 모두 내쫓고 사람들의 출입을 완전히
금했다. 그 이유는 궁궐과 관청 공사에 소요될 소나무를 보호하고 사슴을 기르고 사냥하는 사
슴목장으로 사용하고자 함이었다.
허나 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소나무숲과 섬이 엉망이 되버리면서 1884년(또는 1885년)에
봉산을 해제하고 백성들의 섬 입도를 허용했으며, 그때 관아 포수였던 박씨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섬에 들어와 두포에 정착했다.

1896년 돌산군(突山郡) 금오면이 되었고, 1914년 돌산군과 여천군이 통합되어 여천군(麗川郡)
관할이 되었으며, 1998년 여수, 여천 통합으로 여수시의 일원이 되었다.
섬 인구는 800여 세대에 1,500여 명 정도로 섬의 중심지는 면사무소가 있는 우학리이며, 돌산
도 신기항과 백야도,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섬을 오가는 뱃편이 운항한다. 그리고 섬 안에서
는 여수마을버스 365-1번이 여천항과 우학리를 중심으로 함구미, 두포, 직포, 유송, 심포, 장
지, 안도를 운행하고 있으나 뱃시간에 맞춰 다니기 때문에 운행횟수는 별로 없다.

섬에서 나는 농산물로는 쌀과 보리, 콩, 고구마, 고추, 마늘 등이 있고, 섬 주변에서는 감성
돔, 참돔, 돌돔, 멸치, 장어, 삼치 등의 물고기가 많이 잡히며, 특히 섬 인근 해안은 우리나
라 최대의 감성돔 산란(産卵) 장소라 감성돔이 풍년을 이룬다. 그리고 노랑때까치, 수리부엉
이 등 희귀조류 35종 정도가 서식하고 있다.


▲  비렁길1코스로 들어서다 (함구미 기점 서쪽)


♠  금오도 비렁길1코스 (함구미~수달피비렁전망대)

▲  푸른 기운이 역력한 비렁길1코스 (함구미~미역널방 구간)
많은 나무들이 푸른 옷을 걸치고 있어 겨울을 무색하게 한다. 그만큼
여수는 제주도 못지 않은 따뜻한 남쪽이다.


금오도의 명소로는 이곳의 대표 지붕인 대부산(貸付山, 매봉산)과 중간 지붕인 옥녀봉, 남쪽
지붕인 망산 등의 뫼가 있고, 오래된 존재로는 우학리 고인돌군, 여천마을 조개더미, 송광사
터가 있다. 허나 그들보다 100배 이상 명성이 높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나를 이곳으로 부른
비렁길이다.

금오도의 대표 꿀단지로 추앙받는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장지까지 금오도의 서쪽 해안을 따라
펼쳐진 18.5km의 도보길로 5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비렁'은 벼랑길을 뜻하는 금오
도의 방언으로 마을과 포구, 민가 주변을 제외하면 대부분 흙길이며, 비렁길이란 이름에 걸맞
게 상당수 구간이 각박한 해안 벼랑길로 난간 등의 안전시설도 부족하여 비렁길을 거닐 때 각
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정말 답이 없는 구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렁길은 금오도 사람들이 농사와 낚시, 사냥, 땔감 채취를 위해 오랫동안 닦아놓은 그들
만의 길을 여수시에서 둘레길로 손질하여 내놓은 것으로 비렁길 구간은 다음과 같다.

① 비렁길1코스 :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터~두포 (5km, 2시간 소요)
② 비렁길2코스 : 두포~굴등~촛대바위~직포 (3.5km, 1시간 반 소요)
③ 비렁길3코스 : 직포~매봉전망대~학동 (3.5km, 1시간 소요)
④ 비렁길4코스 : 학동~사다리통전망대~심포 (3.2km, 1시간 반 소요)
⑤ 비렁길5코스 : 심포~막개~장지 (3.3km, 1시간 반 소요)

마음 같아서는 5코스까지 모두 거닐고 싶었으나 역시나 시간 문제를 이유로 크게 욕심내지 않
고 딱 45%인 1,2코스만 거닐었다. 이동 거리는 8.5km로 최대 4시간 이내로 잡고 직포에서 마
을버스를 타고 여천항으로 나갈 계획이었다.


▲  숲터널을 이루고 있는 비렁길1코스 (함구미~미역널방 구간)

비렁길1코스는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이어지는 5km의 해안 벼랑길이다. 푸르른 남해바다와 대
부산(매봉산, 382m)을 옆구리에 낀 아름다운 길로 신선대와 미역널방 등의 해안 경승지와 송
광사터, 초분 등의 문화유적이 있으며, 해안 산중턱을 가르는 길이라 벼랑 구간이 많아 통행
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함구미~미역널방~용두, 용두~두포 구간에는 민가가 없으므로 가급
적 일몰 직전에 비렁길 산책을 마치는 것이 좋다.

1코스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로 잡고 있는데, 그 코스를 줄이고 싶다면 함구미에서 미역널방
으로 가지 말고, 함구미 바로 남쪽인 용두로 올라가서 거기서 시작하면 코스의 ⅓ 정도를 잘
라먹을 수 있다.
허나 1코스의 백미(白眉) 구간이 바로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터~용두' 구간이라 그 구간을
빼버리면 마치 갈비탕에서 갈비를 뺀 것과 같은 다소 재미가 없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그러
니 가급적이면 코스를 잘라먹지 말고 1코스를 모두 돌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함구미~미역
널방~송광사터~용두~함구미' 코스로 도는 것을 추천한다. (함구미와 두포에서 마을버스 연계
가 가능함)

* 비렁길1코스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 두모리


▲  비렁길1코스에서 만난 매화
오른쪽의 하얀 존재들이 모두 매화이다.

▲  바다 너머로 보이는 개도(여수 화정면)

▲  대나무숲길을 지나는 비렁길1코스 (함구미~미역널방 구간)

▲  남해바다와 희미하게 보이는 개도 (미역널방 직전)

▲  비렁길1코스의 비경, 미역널방

금오도 서북쪽 끝에 자리한 미역널방은 깎아지른 듯한 높은 해안 벼랑이다. 쪽빛 남해바다와
주름진 해안 벼랑이 어우러진 비렁길1코스의 비경으로 비렁길은 벼랑 윗도리의 평평한 부분을
지나가는데,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로 이곳으로 운반해 미역을 널어 말
렸다. 그 연유로 미역널방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가히 일품으로 벼랑 윗쪽의 높이가 해면으로부터 무려 90m나
된다. 벼랑 윗도리에는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조금은 어수선해 보이는 조형물이 여럿 있으며
, 무덤 1기가 자리하여 이곳에 깃든 바둑혈의 명당 기운을 두고두고 뽑아먹는다. 그리고 나그
네들의 안전을 위해 벼랑 쪽에 난간을 둘렀으니 그 난간을 넘어가면 절대로 안된다. 아무리
두 눈과 마음을 제대로 홀리는 경승지라고 해도 부주의로 사고를 당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
겠는가.


▲  해발 90m의 차이, 보기만 해도 염통이 쫄깃해지는 미역널방 벼랑

▲  미역널방에서 바라본 푸르른 남해바다
이렇게 보니 지구가 정말 둥글긴 둥근 모양이다.

▲  미역널방 북쪽 주변과 남해바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섬은 함구미부터 계속 내 시야를 따라다닌
개도(여수 화정면)이다.

▲  미역널방에 깃든 작은 무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미역널방 한복판에는 무덤 1기가 바짝 누워있
다. 대부산을 뒷배경으로 삼고 남해바다를 앞
에둔 기가 막힌 곳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바둑혈
의 명당(明堂)이라고 한다. 하여 그 명당의 기
운을 얻으려는 집념으로 이런 궁벽한 벼랑까지
무덤을 썼다.
원래는 무덤 외에 바둑돌의 역할을 했던 작은
바위돌도 있었으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모
두 사라지고 움푹 낮은 봉분(封墳)만 남은 상
태이며,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기 무덤으로
여겨진다.

▲  미역널방 무덤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  남쪽에서 바라본 미역널방의 아찔한 위엄 ▲
벼랑이 얼마나 높고 까마득한지 벼랑 위쪽에 둘러진 안전난간이 개미보다
훨씬 작게 보인다.

▲  남쪽으로 달려가는 비렁길1코스 나무데크길 (신선대 방향)

▲  수달피비렁전망대

이름도 긴 수달피비렁전망대는 해안 벼랑에 닦여진 전망대로 미역널방과 송광사터 사이에 자
리잡고 있다. 이곳도 미역널방 못지 않게 바다 조망이 좋은 곳으로 벼랑 위에 소나무 등 여러
나무들이 거센 해풍을 견디고 있고, 그 주위에 나무데크길과 조망용 쉼터를 닦았다.


▲  남쪽에서 바라본 수달피비렁전망대



▲  수달피비렁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부산(매봉산) 서쪽 봉우리

▲  수달피비렁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오도 서쪽 해안과 남해바다
금오도의 꿀단지인 비렁길이 서쪽 해안을 따라 구비구비 이어진다.

♠  금오도 비렁길1코스 (송광사터~초분 구간)

▲  송광사(松廣寺)터

수달피비렁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면 누런 수풀로 가득한 너른 공간이 나오는데, 송광사
터로 전해지는 옛 절터이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이 1195년에 금오도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그 절로 여겨
지는데,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그가 좋은 자리를 찾고자 모후산 정상에서 나무로 만든
새 3마리(또는 기러기 3마리)를 날려보내니 1마리는 순천 송광사 국사전(國師殿) 자리에, 다
른 하나는 고흥 절이도(節吏島, 거금도) 적대봉에, 나머지는 금오도 용머리 소나무에 앉았다
고 한다.
하여 그 3곳에 암자를 짓고 송광암(松廣庵)이라 했다고 하며, 이들을 묶어 삼송광이라 했다고
한다. 순천 송광암은 송광사로 발전하여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
고, 거금도 송광암은 그런데로 법등(法燈)을 유지하고 있으나 금오도 송광암은 외딴 섬에 자
리한 탓인지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에 금오도가 통제구역인 봉산으로
묶이자 그때 강제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건물터만 약간 확인되었으며, 지금은 밭으로 쓰이고 있어 누런 잡초가 가득해 절의
흔적을 쫓기가 힘들다. 그저 안내문이 이곳이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진 송광사 절터임을 애써
알려주고 있으며, 금오도에 몇 없는 늙은 유적의 하나이다.


▲  누런 잡초로 뒤덮힌 송광사터

▲  남쪽으로 향하는 비렁길1코스 (송광사터~용두 구간)

▲  깊은 산골 같은 비렁길1코스 (송광사터~용두 구간)
남해바다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마치 강원도나 내륙 산골로 순간이동을
당한 기분이다. 허나 분명 이곳은 금오도 비렁길이 맞다.

▲  비렁길1코스 용두 직전 구간

▲  용두에서 바라본 함구미마을과 남해바다

함구미에서 시작된 비렁길1코스는 서쪽 해안을 따라 함구미 뒷쪽인 용두로 이어진다. 비렁길
을 따라 정말 한참을 온 것 같고 용두에 이르러 왼쪽(북쪽)으로 마을과 남해바다가 보이길래
'벌써 1코스의 남쪽 종점인 두포인가?' 싶어 싱글벙글이 되려는 찰라, 자세히 살펴보니 이제
겨우 함구미 뒷쪽인 용두에 이른 것이다.
지금까지 함구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꼴이라 조금은 허탈하나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도 아니고 비렁길이 그렇게 짜여져 있다. 여기서 왼쪽(북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함구미이며,
길을 계속 직진하면 비렁길1코스의 나머지 부분(용두~두우고개~두포)이 펼쳐진다.


▲  비렁길1코스 두우고개 서쪽 구간 ①

비렁길1코스 용두~두포 구간은 앞서 함구미~미역널방~용두 구간보다 조금 거칠다. 벼랑과 각
박한 경사지가 많고 난간 등의 안전시설은 거의 없는 완전 자연 구간이다. 게다가 두포 직전
까지 마을과 민가도 전혀 없어 날씨가 좋지 않거나, 일몰 직전이면 길을 멈추고 용두에서 과
감히 포기하는 것이 좋다.


▲  비렁길1코스 두우고개 서쪽 구간 ②
대부산(매봉산) 서쪽에 자리한 두우고개는 용두에서 두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르락 내리락이 그리 거칠지는 않다.

▲  비렁길1코스 두우고개 서쪽 구간 ③

▲  잔잔하게 펼쳐지는 비렁길1코스 두우고개 서쪽 구간
가까이에 보이는 뫼는 비렁길1코스 함구미~용두 구간이 지나가는
대부산 서쪽 봉우리이다.

▲  늘 옆을 따라다니는 남해바다

비렁길은 금오도 서쪽 해안을 따라 펼쳐진 벼랑길이라 남해바다 구경은 실컷 한다. 하지만 그
림의 떡이라고 함구미와 두포, 직포, 학동, 심포 등 비렁길이 지나는 바닷가 마을에서나 바닷
물을 만질 수 있지. 그 외의 구간은 거의 벼랑이라 해발고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 바다 접근이
불가능하다.


▲  자연석이 깔린 비렁길1코스 두우고개

▲  두우고개에서 바라본 대부산(매봉산)

▲  초분(草墳)

두우고개를 넘으면 초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잠깐 보고 가라며 손짓을 보낸다. 그 손짓을 따라
비렁길을 잠시 버리고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석축에 둘러싸인 두터운 풀때기가 모습을 비추
니 그것이 바로 초분이다.

초분은 남해바다 섬에서 많이 쓰이던 이 지역의 장례법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바로 묻지
않고 돌이나 통나무 위에 관을 얹고 이엉와 용마름 등을 이용해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인 초
분을 만든다. 그렇게 2~3년 이상 초분에 두면 시신은 썩고 뼈만 남게 되는데, 그 뼈를 수습하
여 일반 장례법과 같게 묘에 묻는다. 이렇게 초분을 만드는 것은 이를 통해 마지막으로 죽음
을 확인하는 것이고, 뼈를 깨끗하게 씻어 땅에 묻음으로써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
는 마음 때문이다.
2000년대 초까지 초분이 많이 쓰였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으며, 옛날 초분이 있던 자리에 비
렁길을 닦으면서 초분을 재현했다.

이 초분은 돌로 주변을 두르고 그 안에 시신을 두고 이엉과 용마름 등으로 덮은 고임초분 형
태이다. 진짜 시신이 깃든 초분이 아닌 재현된 것이니 괜히 겁을 먹지 않도록 한다. 허나 초
분의 모습이 마치 산발한 귀신이나 괴물처럼 보여 밤이나 일몰 쯤에 보면 염통이 쫄깃해질 듯
싶다.


▲  바로 앞에서 바라본 초분
마치 귀신이나 괴물이 산발을 한 듯한 모습이다.

▲  대부산 옆을 지나는 비렁길1코스 초분~신선대 구간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끝. 나머지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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