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공원 입문

▲ 덥수룩한 모습의 푸른 성내천 (북1문 무지개다리 주변) |
북1문을 지나면 성내천(城內川)에 걸린 무지개다리가 마중을 한다. 상큼한 이름과 달리 평범
하게 생긴 그를 건너면 올림픽공원의 속살로 들어서게 되는데, 다리 밑에는 생태습지보다 더
왕성한 모습의 성내천이 녹음(綠陰)을 잔뜩 드러내고 있다.
성내천은 송파구의 대표 젖줄로 남한산성(南漢山城)이 있는 청량산(淸凉山)에서 발원하여 송
파구 동부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흐르는 9.85km(유역
면적 34.11㎢)의 짧은 하천이다. 올림픽
공원의 동쪽과 북쪽을 지나가 공원과 속세의 경계를 가르며, 올림픽공원에 넓게 깃든 몽촌토
성이 바쁘게 살던 시절에는 자연산 해자(垓子)의 역할도 했다. |

▲ 다가서기가 껄끄러울 정도로 자연이 살아있는
성내천의 위엄
(무지개다리 주변, 한강 방향)

▲ 무성한 수풀 속에서 숨바꼭질을 즐기는 성내천
(올림픽공원역 방향) |
지금은 생태하천의 대표 성지(聖地)로 추앙을 받고 있지만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울이
파도를 치던 하천이었다. 그때는 하천 제방과 바닥을 콘크리트로 싹 도배한 어리석음을 범해
하천을 완전 고자로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물이 크게 줄어 1년 내내
메마른
상태를 보였다.
게다가 오염물질과 쓰레기의 꾸준한 유입으로 악취까지 진동하여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후 굴레처럼 씌워진 콘크리트를 싹 제거하고 생태하천으로 손질해 2005년 6월에 새롭게 태
어나게 된다. 이때부터 하천 물의 상당수는 한강과 인근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가져와
채워
넣었고, 수생식물 47,000여 본을 심어 생태하천의 자격을 갖추니 이곳을 등졌던 물고기
와 곤충,
새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성내천 곳곳을 채워나갔다.
또한 산책로와 자전거길, 분수대, 수변데크는 물론 어린이를 위한 무료수영장까지 닦아 송파
구의 꿀단지로 찬양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꼽히는 등, 속세에서
도 좋은 성적을 받고 있다. 그리고 천하 둘레길의 대표 성지로 칭송을 받는 서울둘레길8코스
가 오금1교에서 성내4교까지 성내천의 신세를 지며, 송파구가 닦은 송파둘레길의 성내천길은
한강에서 성내4교까지 이어져 도보 산책의 성지로도 바쁘게 살아간다.
한때 세상에서 외면을 받던 밑바닥 하천이 대중들의 사랑과 찬양을 받는 큰 꿀단지로 성장한
의미 깊은 현장으로 생태하천
복원의 정석을 보여준다. |

▲ 몽촌토성 외성(外城) |
올림픽공원으로 들어서 88호수로 이어지는 성내천 남쪽 산책로를
잠깐 타다가 숲이 무성한 몽
촌역사관 동쪽 언덕으로 들어섰다.
이 언덕은 얼핏 보면 평범한 자연산 언덕처럼 보여 지나치기 쉬우나 그는 몽촌토성 중심부를
보조했던 외성이다. 자연산 언덕에 인공을 조금 넣은 외성은 성내천과 몽촌토성 동벽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토성 중심부와 달리 숲을 쳐내지 않아 올림픽공원에서 가장 숲이 무성한 숲
동산이 되었다. 언덕 능선에는 숲길이 있는데, 그 길이는 300m 정도로 서울역사편찬원 뒷쪽과
몽촌토성 동벽으로 이어진다. |

▲ 몽촌토성 외성의 낮은 정상부

▲ 울울(鬱鬱)한 숲속에 묻힌 몽촌토성 외성
하늘과 햇님, 달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숲에 푹 묻혀있다.
비록 몽촌토성의 일부를 이루는 작은 언덕이지만 숲만큼은
올림픽공원에서 가장 삼삼하다.

▲ 몽촌토성 동벽과 외성이 만나는 야트막한
고갯길
(북문터 방향)

▲ 몽촌토성 동벽 목책(木柵) |
몽촌토성 외성 언덕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넘어가면 토성 동벽과 산책로가 나오고 여기서 남쪽
으로 방향을 틀면 동벽 앞에 나무를 엮어서 닦은 목책이 모습을 비춘다.
몽촌토성이 흙 중심의 토성(土城)이라 돌로 다진 석성보다 방어력이 조금 떨어질 수 밖에 없
다. 그래서 토성 밖에 보통 목책과 해자 등을 닦아 방어력 상승을 꾀했는데, 몽촌토성은
서북
쪽과 동벽 앞에서 목책의 흔적이 나왔다. 이들은 생토 암반층에 1.8m
간격으로 직경 30~40cm,
길이 30~90cm의 구멍을 파고 큰 나무로
기둥을 세운 것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보조
기둥을
세웠으며, 목책 높이는 정확하지 않으나
2m 이상으로 여겨진다.
동벽 목책터에는 목책 기둥 자리를 따라 그 위에 재현/복원했는데, 서북쪽과 동벽
외에도 남
벽 일대에도 목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 동벽(東壁) 앞 산책로 (북문터 직전)

▲ 몽촌토성 북문터 |
이곳은 토성의 북문(北門)이 있던 곳으로 토성 동벽과 북벽이 만난다. 여기서 북벽을 타고
나
홀로나무를 지나 서벽으로 가려고 했으나 사람의 마음은 갈대라고 그새 변덕이 일어나 동벽으
로 갈아탔다. |

▲ 푸른 초원 같은 동벽 안쪽 (북문터 남쪽 가족놀이동산)

▲ 몽촌토성 동벽 토성길 (북문터에서 움집터전시관
구간) |
올림픽공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이곳의 오랜 터줏대감인 몽촌토성(夢村土城,
국
가 사적)이다. 몽촌토성은 이곳의 진정한 알맹이로 그가 없는 올림픽공원은 갈비가 없는 갈비
탕과 같다.
즉 그가 있기에 이곳이
역사가 깃든 사적공원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역사와
문
화, 자연이 어우러진 싱그러운 자연지대로 서울 부도심에 남게 된 것이다.
올림픽공원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몽촌토성은 삼국시대 초기에 조성된 꽤 늙은 토성이
다. 이곳을 인근에 있는 풍납동토성(풍납토성)과 한 덩어리로 묶어 백제 초기 국도(國都)인
위례성(慰禮城)이나 한성(漢城)으로 우기고 있는데, 위례성과 한성 시절 백제를 한성백제(漢
城百濟)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곳이 위례성이나 한성임을 밝혀주는 유물과 기록, 유적은
무지하게 부실한 실정이다. 또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나라의 도읍으로 보기에는 사이즈도
너무 작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그래도 추정한다고 하더니만 21세기 이후부터는 근거
도 빈약하면서 아주 대놓고 한성백제시대 유적이라고 내세운다.
몽촌토성은
둘레 2.3km(2,285m)에 긴 토성으로 그냥 막연히 백제 때 토성으로 전해져 왔을 뿐
, 거의 방치
수준이었으며, 토성의 이름인 몽촌은 이곳 지명에서 따온 것이라 원래 이름은 아
니다.
그러다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선정되면서 1980년대 초
에 체육시설을 갖춘 공원을 이곳에 닦기로 했다.
하여 공사 전에 토성의 비밀을 밝히고자 1983년부터 서울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벌였다. 이
후
1989년까지 6차에 걸쳐 조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현재 모습으로 복원, 재현되었
다. (1982년 7월 국가 사적 297호로 지정됨)
몽촌토성은 자연산 언덕과 지형에 진흙을 붙인 것으로 경주 반월성(半月城)과 대구
달성(達城
)과 비슷한 유형을 하고 있다. 자연 암반층을 급경사로 깎아 다듬기도 했으며, 동북쪽 구릉에
서는 외성의 흔적이 나왔다. 그리고 성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에서는 동문/남문/북문터가
확인
되었으며, 토성의 지형을 통해 남~북, 동~서를 잇는 도로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토성의 단점을 보완하고 수비력을 높이고자 서북쪽과 동벽 바깥에서 목책의 흔적이 나왔
고,
서벽과 북벽 앞에서는 도랑(해자)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북벽과 외성은 성내천을
자연
산 해자로 삼았다.
토성 안에서는 출입구가 달린 6각형 모양의 움집터(12곳)와 건물터(4곳), 연못터(2곳), 저장
용 구덩이(30여 개), 무덤 등이 확인되었는데, 삼국시대 초/중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삼
국시대 초반 유물도 무수히 쏟아져 나왔으니 그중 중원대륙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3세기
경에 동전무늬 도기조각 3점이 성 내부 퇴적층에서 나와 토성 축성시기가 늦어도 3세기
후반
이전임이 분명해졌다.
움집터는 토성을 지켰던 군사들의 막사로 여겨지며, 건물터는 자갈을 다져 기단과 적심을 만
든 정면 3칸 이상, 측면 2칸의 구조로 밝혀졌다. 저장용 구덩이는 입구가 좁고 아랫 바닥이
넓은 복주머니 모양 구덩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구덩이는 음식물을 저장하기에
아
주
좋다. 여기서 220개 이상의 큰 독이 나왔으며, 부뚜막 시설과 조리용 토기, 배식용
토기
등도 나와 그 시절 식문화를 약간 보여준다.
그리고 금동제 허리띠 장식과 금귀걸이, 세발토기, 굽다리 뚜껑항아리, 손잡이잔, 돌절구, 쇠
집게, 뼈갑옷, 화살촉 등 왕족과 귀족의 장신구부터 제사 유물, 군사 유물까지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

▲ 몽촌토성 동문터 (북쪽에서 본 모습) |
토성 내부 면적은 216,000㎡로 인근 해자와 성내천까지 합치면 542,542㎡까지 덩치가 올라간
다.
토성에는 산책로(토성길)가 그림처럼 그어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며, 잠실 지역이 개발되
기
전에는
서벽에서 무려 행주산성(幸州山城)까지 보였다고 전한다.
옛날처럼 방어용의 역할은 상실되었지만 관광/나들이의 성지로 바쁘게 살고 있으며, 올림픽공
원에 왔다면 꼭 1바퀴는 돌아야 1년이 잘 풀리는 이곳의 오랜 터줏대감이자 꿀단지로 높은 인
기를 누리고 있다.
얼떨결에 백제 초기 유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그럼 백제는 어떤 나라였
을까?
백제는 기원전 1세기에 고구려에서 내려온 온조(溫祚)가 세운 나라로 위례성(한성) 시절이 끝
나던 5세기 말까지 천하 제일의 해양대국으로 크게 번영을 누렸다. 왜정(倭政) 시절에 쓰여진
더러운 식민사관과 지금도 그것을 추종하는 식민사관 쓰레기들, 그리고 그 쓰레기 학설을 신
봉하는 정신불량자들에 의해 백제는 아주 작고 형편없는 나라로 폄하되고 있으나 그들의 좁은
생각과 달리 가늠할 수 없는 큰 나라였음이 많은 역사자료와 유물, 유적을 통해 흔쾌히 밝혀
지고 있다.
백제는 북경 서남쪽의 요서(遼西)와 산동반도(山東半島), 강남과 오월(吳越) 지역 등 중원대
륙의 많은 지역을 점령, 경영했고, <절강성을 비롯한 수천 리의 영토를 점유했다는 기록, 본
토에서 배로 3개월 이상 걸리는 탐모라(耽毛羅, 대만?)를 통치했다는 기록, 최치원(崔致遠)이
고구려와 백제는 강성할 때 군사가 수십만으로 대륙 상당수를 먹었다는 기록, 신라와 발해가
백제 땅을 나눠가졌다는 기록 등> 가야(伽倻)가 점유하여 꿀을 빨던 왜열도까지 잡아먹어 그
곳을 백제의 별채이자 일부로 만들었다. 또한 동남아까지 힘을 뻗어 많은 지역에 담로(擔魯)
를 설치해 다스렸다.
특히 동성왕(東城王) 시절 북위(北魏)의 기병 수십 만을 때려잡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현장
은 중원대륙 한복판이다. 백제와 선비족(鮮卑族) 나라인 북위와의 싸움에서 백제는 크게 승리
. 남조(南朝)의 여러 잡국들한테 국서를 보내 자랑을 하며 그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 몽촌토성 동문터 (남쪽에서 본 모습) |
이렇게 잘나갔던 위례성 시절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태왕(長壽太王)이 위례성을 점령하고
백제 군주인 개로왕(蓋鹵王)을 처단하면서 아주 비참하게 막을 내린다. 이후 위례성 3글자는
아주 희미하게 되어버린다. (이후에도 위례성 이름이 잠깐씩 등장하지만 그것 뿐임)
위례성과 많은 땅을 잃은 백제는 웅진(熊津)으로 천도했으며, 동성왕 시절에 북위를 크게 때
려잡으며 번영을 누렸다. 그러다가 성왕(聖王) 시절에 사비(泗沘)로 국도를 천도했고, 고구려
와 자웅을 겨루며 잃어버린 땅 찾기에 열을 올리다가 신라에게 뒷통수를 맞게 된다. 이에 열
받은 성왕이 신라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했으나 오히려 신라에게 크게 털리면서 백제 제왕(성
왕)이 포로로 잡혀 처단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이후 무왕(武王)와 의자왕(義慈王)이 신라를 크게 위협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660년 7월 신라
와 선비족 나라인 당나라 연합군에게 허무하게 망하고 만다. |

▲ 몽촌토성 동벽에서 바라본 올림픽공원 경기장들 |
올림픽공원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몽촌토성은 공원의 주
인공이 아닌 조연 신세였다. (지금은 거의 주인공처럼 보임) 물론 이곳이 공원이 되면서 몽촌
토성이
개발의 칼질에서 목숨을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기
때
문에 토성의 동쪽 부분은 죄다 경기장 등의 체육시설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게다가 서둘러
경
기장을 만들고 공원을 닦으면서 발굴조사도 속시원히 하지 못하고 6년 만에 뚝 멈춰섰다.
그러다가 2013년 11월, 몽촌토성 발굴 30주년이 되자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그 특별전을 기획했
고, 아직도 적지 않게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몽촌토성의 속살과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를 들추
고자 2014년부터 다시 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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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터 북쪽 동벽 |
토성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높이는 왠만한 산성이나 석성(石城) 높이에 버금가서
낮은 곳은 5~6m, 높은 곳은 무려 10~15m에 달하며, 몽촌해자와 접한 북벽과 서벽은 높이도 상
당하고 경사도 아주 각박하다.
토성 보호를 위해 성벽 부분은 금줄을 둘러놓아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나 경사가 완만한 곳은
부드러운 능선을 보여 겨울 제국(帝國)이 눈폭탄을 투하해 은빛세계를 만들면 포대자루를 가
져와 썰매를 타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 몽촌토성 소재지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88 (올림픽로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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