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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당중앙공원 한산이씨 비각들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성남 분당신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분당중앙공원은 분당의 대표적인 꿀명소이다. 이곳은 목은 이색

의 후손인 한산이씨가 600년 이상 살아오던 곳으로 중앙공원의 중심을 이루는 뒷매산 산주름에는

그들 집안의 묘역이 있고, 산 밑에는 그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다.

허나 1990년대 초반 분당신도시를 닦으면서 마을은 강제로 사라졌고 마을에 전하는 집 중 오래된

집 1채(수내동 가옥)만 살아남았다. 다행히 묘역이 있는 뒷매산은 공원으로 보존되면서 묘역은 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분당중앙공원에는 한산이씨묘역과 수내동 가옥, 한산이씨 사당, 그리고 비석들을 머금은 맞배지붕

비각 2동이 전하고 있어 이곳에 오랜 세월 살아오던 한산이씨의 옛 흔적들을 느끼게 하는데, 비각

에는 이증 신도비와 한산이씨삼세유사비, 이정룡 신도비, 이경류 정려비 등 늙은 비석 4기가 들어

있다. (비각 1동에 2기씩 들어있음) 이들은 그 흔한 지방문화재의 지위는 얻지 못해 여전히 비지정

문화재에 머물러 있다.

 

2. 이증 신도비와 한산이씨삼세유사비

왼쪽에 키가 큰 비석이 이증 신도비, 오른쪽의 지붕돌 비석이 한산이씨삼세유사비이다. 이증 신도비

의 주인공인 이증(1525~1600)은 목은 이색의 7대손으로 이지숙의 차남이다. 호는 북애로 1589년 정

여립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평난공신 3등에 책훈되어 아천군에 봉해졌으며, 1590년 이후 이조참판과

대사헌, 공조판서 등을 지내고 좌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이후 영의정, 아천부원군에 증직되었다.

1600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의간'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2품 이상만 받을 수 있는 신도비는 1695

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영의정 정두겸이 짓고, 이진휴가 글을 썼으며, 윤덕준이 전액을 했다.

 

한산이씨삼세유사비는 이색의 4대손인 한원군 이장윤(1455~1528)과 그의 아들인 한성군 이질(1474~

1560), 그리고 손자인 종묘서령 한령군 이지숙(?~1561) 3세의 유사비이다. 1728년에 비석을 세웠으며

, 비문은 후손인 이병연이 짓고, 이병건이 글을 썼다.

 

3. 이정룡 신도비와 이경류 정려비

이정룡 신도비의 주인공인 이정룡(1629~1689)은 이색의 10대손이다. 이경류의 손자로 김제군수를

지냈으며,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비석은 1728년에 장만했는데, 비문은 이의현이 짓고, 김진상이

글을 썼으며, 홍현보가 전액했다.

 

이경류정려비의 주인공인 이경류(1564~1592)는 이색의 8대손으로 아천군 이증의 4남이다. 1592년

병조좌랑으로 상주 고을에 파견되었는데, 그해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왜군이 상주까지 기어들어오자

문관의 신분으로 상주를 사수하다가 전사했다. 그는 문관이긴 하지만 그 시절 선비와 문관들은 기본

적으로 활쏘기 등을 익히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화살을 쏘는 사수의 역할을 하다가 왜군이 상주성

안으로 침투하자 칼이나 창으로 싸운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승지에 증직되었으며, 1727년 서훈이 추서되었다. 그리고 1792년 정조가 어필현액을 하사하

여 이렇게 정려비를 세웠다.

 

이경류가 상주에서 전사하자 그의 말이 그의 피묻은 옷과 유서를 입에 물고 그의 가족들이 살던 이곳

까지 달려와 가족들에게 건넸다고 한다. 이후 말은 마굿간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었다고 하

며, 이경류의 무덤 밑에 그의 무덤을 썼다. 하여 주인과 그의 말 무덤이 같은 곳에 있는 특이한 모습이

되었다.

 

4. 분당중앙공원 한산이씨 비각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분당중앙공원은 오래간만에 방문으로 예전에 여러 번 인연이 있었다. 그때는 이 비석들을 만나지 못

했고, 수내동가옥과 한산이씨묘역, 분당호 주변만 산책 삼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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