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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광사 목조여래좌상

정부과천청사 남쪽 언덕에 자리한 보광사는 1946년에 창건된 현대 사찰이다. 이곳은 관악산의 남

쪽 자락으로 정부과천청사와 관악산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처음에는 법당 6칸과 요사 1

동 정도를 지니고 있다가 1990년대~200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덩치를 불렸다.

법등이 켜진 역사는 고작 80년으로 고색의 기운은 아직 싹트지 못했으나 인근에서 늙은 3층석탑과

석조보살입상을 업어와 이곳의 든든한 후광으로 삼았으며, 1993년에는 조선 후기 불상까지 새로

영입하면서 매우 짧은 법등에 비해 오래된 문화유산을 3개나 간직하게 되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크기로 북쪽을 바라보고 선 극락보전을 비롯해 명부

전과 설법전, 삼성각, 요사, 범종각 등 6~7동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설법전과 요사 같은 경우 겉으

로 보면 1층이지만 밑에도 공간을 만들어 2층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법당인 극락보전 불단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중 아미타불로 삼고 있는 불상

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여래좌상이다. 그 좌우에 자리한 존재들은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

로 2001년에 새로 달았다.

포근한 표정을 지으며 중생의 하례를 받고 있는 목조여래좌상은 나무로 만들어서 금칠을 입힌 것으

로 원래는 양평 용문사에 있었다고 한다. 6.25가 터지자 어느 신도가 여주로 피신시켰고, 그렇게 개

인이 가지고 있다가 1993년 이곳에 기증하면서 보광사의 보물을 하나 더 늘려주었다.

 

불상의 얼굴은 크고 둥근 편인데, 눈썹이 살짝 구부러져 있고, 눈은 지그시 뜨며 북쪽을 바라본다. 코

는 작고 오똑하며, 붉은 입술 위에 검은 수염이 살짝 그려져 있다. 얼굴이 크다 보니 볼살도 많아 보

이며, 두 귀는 거의 어깨에 닿는다. 저리 귀가 크니 중생의 민원은 하나도 누락됨이 없이 잘만 들어줄

것이다.

머리는 나발로 두툼하게 무견정상이 솟아 있으며,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다. 가슴과 배 사이에는

연꽃이 새겨진 허리띠가 있고,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왼손은 따로 만들었는데,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구부렸다.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 또는 조선 초기 양식을 간직한 조선 중기 불상

으로 여겨진다.

 

2. 보광사 문원리사지 석조보살입상

명부전 앞에는 석조보살입상이 자리해 있다. 이 석불은 과천시 문원동 15-166번지에서 가져온 것으

로 높이 1.7m 정도 되는 돌에 얇게 선각으로 새기고 그 위에 둥근 갓을 씌우는 선에서 아주 간단히

처리했다. 허나 세월의 태클로 그 선각도 희미해져 자세히 안보면 석불인지 다른 석상인지 햇갈릴

정도이다.

 

갓으로 머리가 가려진 얼굴은 둥근 편으로 눈썹과 눈, 입, 코를 새겼으나 거의 표정이 지워진 상태

이고 목은 짧지만 두껍다. 돌을 제대로 깎지 않고 그냥 선각만 했기 때문이다. 왼손은 가슴에 대어

연꽃 봉오리를 잡고 있고, 오른손은 밑으로 내리고 있는데, 옷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見)

의 법의(法衣)이다.

많이 부실해 보이는 이 석불은 납작한 얼굴과 짧은 어깨, 간략화된 옷주름 등 도식화된 모습을 통해

고려 후기나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과천 보광사는 이번이 3번째 인연이다. 거의 10여 년 만에 방문인데, 이 석조보살입상은 그때와 비

슷한 모습이나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문원리사지 석조보살입상'이란 문화재청 지정 명칭을 지니고

있다. 문원리는 이제 문원동이 되었고, 그 절터도 사라졌으며, 보광사의 식구가 된지도 수십 년이 넘

었건만 명칭은 여전히 고리타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라도 바른 명칭 변경(보광사 석조보살입

상)이 절실해 보인다.

 

3. 보광사 시흥 문원리사지3층석탑

이 석탑은 관문동 절터(어딘지는 모르겠음)에서 가져온 것으로 하얀 피부를 지닌 커다란 바닥돌 위에

얹혀져 있다. 2중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인 보주(寶珠)로 마무리를

한 맵시 좋은 탑으로 이중 바닥돌은 시멘트로 새로 지은 것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1층 탑신에는 2중으로 새겨진 자물쇠가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 밑에는 얇게 만든 3단의 받침이 있고,

지붕돌의 처마 끝은 살짝 올려져 약간 경쾌감을 준다.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을 통해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탑의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시흥 문원리 3층석탑'이다. 허나 과천은 어엿한 시로 시흥군에서 분리

된지도 40년이 넘었고, 그 문원리도 문원동이 되었건만 명칭은 아직도 40여 년 전에 머물러 있다. 그

쾌쾌 묵은 이름을 현실에 맞게 다듬어 '보광사 3층석탑'으로 갈아야 될 것이다.

 

4. 윗쪽에서 바라본 3층석탑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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