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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강선생 묘역 (서쪽 밑에서 바라본 모습)
안산 선부2동의 북쪽 끝 골짜기에는 윤강을 중심으로 한 파평윤씨묘역이 넓게 자리해 있다. 이곳 바
로 북쪽은 시흥시 땅으로 묘역 북쪽 산자락에는 앞서 둘러본 진덕사란 현대 사찰이 있는데, 그를 둘
러보고 나오다가 윤강 묘역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서 그곳에 대한 호기심을 풀고자 찾은 것이다.
윤강(1597~1667)은 파평윤씨 출신으로 자는 자준, 호는 무곡이다. 공조참의를 지낸 윤민헌의 아들로
1624년에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으며, 1626년 검열을 거쳐 봉교, 정언, 교리 등
을 지냈다.
1642년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차출되어 청나라 출장을 다녀왔으며, 1643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승지, 집의, 경기도 암행어사, 이조참의를 역임했다. 효종 시절에는 대사간, 이조참판, 병조
참판, 한성판윤, 대사헌, 도승지, 형조판서 등을 역심했으며, 1657년 동지사로 만주족(여진족) 청나라
에 다녀왔다.
1659년 효종이 붕어하자 예조판서로서 빈전도감 제조가 되어 장례를 주관했으며, 이후 판의금부사, 도
총부도총관, 이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1664년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안산으로 내려왔
는데, 조정에서 계속 관직을 주며 서울로 올 것을 권했으나 쿨하게 무시하고 고향 사람들과 허물 없이
지내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1667년 70세로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의정부영의정에 추증했다.
그는 행서와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아들인 윤지선이 좌의정, 윤지완이 우의정을 지내는 등, 자손들도
잘 나갔다.
묘역에는 상석, 향로석, 혼유석, 망주석이 있으며, 1709년에 마련된 지붕돌 신도비가 있는데, 비석 비
문은 송시열이 짓고, 전액은 윤덕준, 글씨는 윤강의 5째 아들인 윤지인이 썼다.

2. 윤강의 헌 신도비(가운데 비석)와 새 신도비
윤강 신도비는 1709년에 마련한 것으로 높이는 2.7m, 폭 1.11m, 두께 48cm 규모이다. 지붕돌을 지
닌 비석으로 세월을 예민하게 타면서 글씨가 상당수 훼손되자 2001년에 비슷한 모양에 새 신도비를
마련해 옆에 두었다. 새 신도비는 헌 신도비보다 키가 작은데, 그러다 보니 어른 비석과 아이 비석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다.


3. 윤강묘
윤강묘를 비롯한 묘역을 이루는 무덤(윤강의 후손들)들은 다들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윤강묘에는 북
쪽을 바라보고 선 묘비와 망주석, 향로석, 상석이 있으며, 근래 문인석과 장명등을 새로 달았다.



4. 윤강묘의 뒷모습

5. 윤강묘의 옆모습과 그 너머로 보이는 선부동 아파트들
윤강 묘역은 속세에 개방되어 있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묘역 밑에는 농장이 있으며, 뒤쪽(북쪽)
에는 낮은 구릉을 따라 숲이 진하게 펼쳐져 있다. 그 숲 너머에 시흥시 진덕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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