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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규정에서 관람정, 존덕정으로 이어지는 숲길

옥류천 구역에서 관람정 구역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2개가 있다. 하나는 동쪽 길로 조금 돌
아가는 길이며, 중간에 창덕궁~창경궁 돌담과 만나 남쪽으로 같이 이어진다. 그리고 서쪽
길은 질러가는 길로 관람정 구역 북쪽 끝에 자리한 존덕정으로 바로 연결된다.

또한 서쪽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있는데, 그 길은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다래나무와 신
선원전으로 이어지는 길로 내가 갔을 때는 금지된 길로 꽁꽁 묶여 있었다. 그 길은 속세에
열리는 경우는 별로 없어 아직까지 미답 공간으로 남아있는데, 신선원전을 넘어 창덕궁 중
심 구역, 돈화문까지 이어지는 긴 길이다.

 

2. 존덕정 옆 돌다리와 여러 돌기둥들

계곡 위에 작게 걸린 귀여운 돌다리 주변으로 돌기둥 3개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존덕정
주변 장식용으로 지어진 것으로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다.

 

 

3. 존덕정

관람지 북쪽 연못에 자리한 존덕정은 다른 정자들과 달리 2중 지붕을 지닌 육각지붕 정자
이다. 특이한 지붕 구조로 인해 육우정, 육연정 등의 별칭도 지니고 있는데, 정자의 마루도
안쪽과 바깥쪽으로 구분되어 2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4개의 기둥이 2중 지붕을 받치고
있다. 천정은 우물정자로 구성되었고, 보개 천정처럼 화려한 장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운
데에는 황룡과 청룡이 장식되어 있다.

이곳은 1644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정조 임금이 즐겨찾기 하였는데, 정조가 남긴 글귀가
내부가 걸려있다.

 

 

4. 존덕정을 반짝반짝 윤기나게 해주는 관람지 북쪽 연못

관람지는 창덕궁 후원에 닦여진 연못의 하나로 2개의 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정 때 지금
모습으로 성형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반도 비슷하게 생겨서 한때 반도지란 이름으로
살기도 했다.

 

 

5. 북쪽에서 바라본 관람지와 관람정

관람지 남쪽 연못 북쪽에 평화롭게 자리한 관람정은 부채꼴 선형 기와지붕을 지닌 굴도리
집 스타일의 정자이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전하는 바는 없으나 1820년에 작성된 동궐
도에 나오지 않고, 1908년 제작된 동궐도형에 등장하여 19세기 중/후기~20세기 초에 지어
진 것으로 보인다. 생김새도 달달하지만 이곳에 걸린 현판의 모양도 상당히 독특하며, 관람

정을 낀 관람지 풍경은 창덕궁 후원 풍경 중 일급으로 추앙을 받는다.

 

 

6. 봄의 향연이 한참인 관람지, 관람정의 달달한 풍경

창덕궁 후원은 여러 번 인연을 지었으나 관람정 구역, 옥류천 구역까지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람정과 옥류천 구역이 속시원히 해방된 것은 2000년대 이후로 그 이전에는 금
지 구역으로 묶여 관람이 힘들었다. 기껏해야 부용지 구역, 애련정 구역, 연경당 구역만 개
방되었고, 연경당에서 서쪽 숲길을 통해 창덕궁 중심 구역으로 넘어갔다.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숨겨진 속살이 많았던 창덕궁 후원에 많은 곳이 해방되었으나
아직도 금지 구역이 적지 않아 호기심과 아쉬움을 강하게 키운다.

 

7. 2중 지붕을 지닌 존덕정의 위엄

8. 존덕정 옆 돌다리

 

9. 존덕정에 걸린 정조의 현판(1798년 작)

존덕정에는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라는 제목으로 글씨가 빼곡히 깃든 현판이 있는데, 그것
은 정조가 1798년에 직접 지
은 글이다.

그 뜻은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과인이고 시내는 곧 너
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
치'라는 내용이다. 즉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정조의 준엄한
뜻이 담긴 것으로 나는 곧 국
가이자 달이며 해이니 신하들은 무조건 나에게 충성하라는 강력한 메세지이다.

천장 중앙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한다. 정조는 조선의 마
지막 계몽 군주로 그가 1800년 붕어함으로써 안그래도 시작부
터 비리비리했던 조선은 더욱 말라만 갔다.

 

10. 존덕정 옆 관람지 북쪽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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