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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극정

창덕궁 후원 옥류천 구역에 자리한 태극정은 1칸짜리 팔작지붕 정자이다.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를 달아 평난간을 둘렀는데,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지붕 꼭대기에는 절병통을 얹혔
다.

1636년에 세워진 것으로 처음에는 '운영정'이라 불렸으나 나중에 태극정으로 이름이 갈렸
다. 언제 변경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며, 인근 소요정, 청의정과 함께 '삼림삼정'
의 하나로 추앙을 받았다.

 

태극정이 있는 옥류천 구역은 옥류천 계곡을 중심으로 달달하게 꾸며진 정원이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북쪽이자 가장 깊은 골짜기로 숲에 푹 묻혀있는 산속인데, 오랫동안 금지 구
역으로 묶여있다가 2000년 이후 부분개방으로 속세에 열렸다. 그러다가 이제는 거의 자유
공간이 되어 창덕궁 중심구역+후원 입장권만 있으면 관람시간 내에서 언제든 찾을 수 있다.
다만 계절(겨울)과 문화유산 보호, 기타 변수(전염병 유행 등) 관계로 가끔씩 금지구역이 되
기도 하니 창덕궁 홈페이지(http://www.cdg.go.kr/)를 사전에 참조하기 바란다.

 

2. 농산정

농산정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대청 2칸, 온돌방 2칸, 부엌 1칸을 지니고
있다. 1636년에 세워진 것으로 옥류천 구역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큰 집인데, 제왕이 옥류천
으로 산책을 나오거나 왕족, 신하들과 옥류천에서 연회를 열 때 다과상, 연회상을 준비하여
올렸던 건물로 여겨진다.

 

 

3. 청의정

사모식 초가 지붕을 지닌 청의정은 1칸짜리 사각형 정자이다. '동궐도'에는 후원 부분에 초
가 16채가 나오는데,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모두 사라지고 겨우 이곳만 남아 조선 궁궐
건물 중 유일한 초가 지붕 건물이란 큰 가치를 독점하고 있다.

청의정은 1636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자 앞에 작게 논을 닦아 벼를 재배하고 가을에 수확
하여 볏짚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했다. 이는 농사의 소중함을 천하 백성들에게 널리
일깨워주려는 일종의 쇼였다.

지금도 문화재청과 농촌진흥청에서 6월 말에 모내기를 하고 10월에 벼베기 행사를 진행하
고 있으며, 벼가 뽀송뽀송 자라난 여름과 황금 피부를 드러낸 9~10월 풍경이 이곳의 갑이
다.

 

 

4. 옥류천 계곡에 엎드리고 있는 어느 돌지붕

옥류천 계곡 반석에 돌지붕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보아하니 석등의 지붕돌 같은 기
분인데, 저 돌덩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5. 정면에서 바라본 청의정과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논

 

6. 옆에서 바라본 태극정

2중으로 둘러진 석축 위에 태극정이 살짝 올려진 형태로 규모는 작지만 후원 정자에 걸맞
는 상큼한 모습을 보여준다.

 

7. 태극정과 농산정 사이에 우뚝 솟은 어느 키다리 나무 (나무 이름은 모르겠음)

8. 가까이서 바라본 청의정

 

9. 청의정의 뒷모습

청의정 뒷쪽에는 작은 돌다리가 놓여져 있다. 큰 통돌 하나로 이루어진 단출한 모습으로
이 다리를 통해 청의정으로 접근했다.

 

 

10. 청의정과 태극정 사이에 닦여진 수로와 돌다리들

옥류천 물줄기를 가져와 저 수로를 채웠다. 수로에 물이 흐르면 돌로 다져진 수로는 그 이
름값을 하게 되고 수로에 놓인 작은 돌다리는 진정한 다리의 역할을 한다. 창덕궁은 너른
후원을 지닌 특성으로 서울에서 늙은 돌다리들이 가장 많다.

 

 

11. 옥류천 소요암

옥류천에 병풍처럼 둘러진 크고 견고한 바위로 약 100도 경사를 보이고 있다. 옥류천 구역
은 바로 이 바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피부에는 옥류천 바위글씨와 숙종의 오언절구 시
가 깃들여져 있다.

 

 

12. 소요암 주변의 작은 물줄기

소요암 바위에 얕게 굴곡진 수로를 내었는데, 수로 끝에는 물이 고인 못이 있으며, 못에 머
물던 물은 바로 옆 벼랑으로
떨어져 조촐하게 작은 폭포를 자아낸다. 이들 수로와 폭포는
모두 인공이 살짝 가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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