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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몸채 바깥쪽 (사랑채와 안채 바깥 부분)

2.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왼쪽)과 관훈동 민씨가옥(오른쪽)

윤택영과 민씨가옥의 주인이었던 민영휘는 모두 악질 친일매국노 잡것들이다. (윤택영 재실과 관
훈동 민씨가옥 안내문에서 윤택영과 민영휘가 악질 개친일파라는 내용이 빠져 있음)

3. 옥인동 윤씨가옥

윤택영의 친형이자 악질 친일파로 더러운 이름을 떨쳤던 윤덕영(1873~1940)이 1910년대에 지은
한옥이다. 윤덕영은 옥인동47번지 일대(옥인동의 거의 절반 크기)를 차지하여 20여 채의 집을 짓
고 가족, 첩들과 모여 살았는데, 그 작자가 지은 집중에서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벽수산장이 꽤 유
명했다.

허나 막대한 부채로 벽수산장과 주변 집들을 모두 팔아먹으면서, 하나 둘 사라졌고, 지금은 딸 부
부에게 지어준 2층 양옥인 박노수가옥(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과 첩이 살았던 옥인동 47-133번
지 한옥 일부만 겨우 남아있다.
박노수가옥은 화가 박노수가 매입해 살았으며, 옥인동 47-133번지 한옥은 서민들이 한옥 1칸, 1
칸씩 차지하여 살면서 많이 손상되었다. 하여 지금은 집으로 오르는 계단과 대문간채, 안채 일부
만 남아있는데,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잘 지어진 20세기 초기 한옥이라 남산골한옥마을을 조성
하면서 그 집도 이곳으로 가져오려고 했다. 허나 부재가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 그것이 거의 불가
능했고, 그래서 그 건물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었다.

 

세밀하게 고증하여 지으면서 집의 높낮이 차이까지 최대한 살렸는데, 매우 규모가 큰 '∩'자형 안
채와 사랑채 역할을 하는 마루방, 대문간이 더해져 거의 'ㅁ'구조를 이루나 안채가 워낙 커서 안채
위주로 짰음을 알려준다. 간소하게 민도리집을 채택했으나 안채 앞쪽은 일반 민가에서 보기 힘든
기둥머리에 익공을 치장하는 등, 20세기 초반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옥인
동 윤씨가옥 안내문에도 윤덕영이 악질 친일파라는 내용이 빠져 있음)

4. 옥인동 윤씨가옥 안채

5. 옥인동 윤씨가옥의 대문간채

안채와 대문간채, 마루방이 이어져 'ㅁ' 구조를 이룬다.

6. 옥인동 윤씨가옥 부엌

윤덕영과 그 떨거지들의 더러운 배때기를 채워주던 음식들이 만들어진 곳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친일 패거리로 활동한 대가로 막대한 부를 누리고 살았고 매일 호화롭게 처먹으며, 아까운 공기를
축냈다.

7. 옥인동 윤씨가옥 대문간채 바깥쪽

대문간채 대문 밖에서 동네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있다. 현재 옥인동 47-133번지에도 대문간채와
대문, 계단이 남아있다.

8. 누런 피부의 달덩어리와 그 위에 눌러앉은 토끼 (남산골한옥마을)

9. 바깥에서 바라본 옥인동 윤씨가옥(왼쪽)과 윤택영 재실

윤덕영과 윤택영은 친형제로 악랄한 친일파 잡것들이다. 윤택영의 딸이 순종의 계비로 들어갔는
데, 그가 조선의 마지막 황후였던 순정효황후로 순종보다 무려 20살이 어렸다. (장인인 윤택영은
순종보다 2살 아래였음)

1910년 8월, 친일파 잡것들이 왜열도 원숭이들과 짜고 순종에게 나라를 왜에게 넘기는 문서에 도
장을 찍을 것을 강요했는데, 그때 순정효황후가 이를 막고자 순종의 옥새를 치마폭에 숨겼다. 이
를 윤덕영이 눈치채고 조카딸에게서 강제로 옥새를 빼앗은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10. 바깥에서 바라본 옥인동 윤씨가옥

집을 지은 친일파 개잡것들과 그 후손들은 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그 3대를 처단해야 마땅하나 집
은 잘못이 없다. 집도 엄연한 그 시절의 유물이고 20세기 초기 상류층 한옥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땅은 친일파 단죄를 하지 못한 불운으로 그 잡것들의 후손과 그들에게 호
응하는 버러지들의 뿌리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으니 실로 씁쓸하기 그지 없다. 그러니 아무리 문화
유산이라고 해도 그 잡것들이 남긴 흔적에게는 결코 고운 눈길을 보낼 수가 없다.

11. 바깥에서 바라본 옥인동 윤씨가옥과 윤택영 재실, 관훈동 민씨가옥

이들 집들은 모두 친일매국노 잡것들이 지었다. 남산골한옥마을 한옥 5형제 중 무려 3채가 친일
파 잡것들의 것이니 마치 친일파 잡것들이 대놓고 활개를 치는 이 땅의 더러운 현실을 보는 것 같
아서 마음이 참 불편하다.

12. 옥인동 윤씨가옥 대문간채의 바깥 모습

대문과 대문간채, 그리고 대문 앞 계단은 옥인동 원래 집에도 그런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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