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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원 묘표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연꽃 무늬가 새겨진 비좌 위에 곧게 솟은 비신(빗돌)을 세우고 그 위에 네모난 지붕돌을 얹혔다. 빗
돌 피부에는 고된 세월의 때로 얼룩이 져 있으나 글씨를 확인하는데는 그리 어려움은 없다.

 

2. 이후원 묘의 특별한 존재, 해치석

상석 앞에는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해치석 2기가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귀엽게도 앉아있는 해치
는 상상 속의 동물로 광화문 앞에도 커다란 해치석(해태석)이 있는데, 얼굴과 이빨, 귀, 뒷다리, 꼬랑
지까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서쪽 해치상의 두 눈은 장대한 세월에게 제대로 얻어맞은 듯 멍이 부었고, 코는 깎여나가 흔적만 남
았다. 그래도 코를 제외한 나머지는 잘 남아있으며, 동쪽 해치상은 눈과 코가 모두 멀쩡하다.

 

3. 서쪽에서 바라본 이후원 묘

이후원 묘는 이후원(1598~1660)과 전처인 광주김씨, 그리고 후처인 영월신씨가 함께 묻힌 합장묘이
다. 원래는 각각 별도의 봉분을 지니고 있었으나 1714년 이곳으로 무덤을 옮기면서 하나로 합쳤다.

 

4. 이후원묘 해치석의 위엄

옛 무덤에서 이렇게 해치석을 지닌 경우는 아주아주 드물다.

 

5. 이후원 신도비

이후원 신도비는 묘역 동남쪽 밑에 있다. 두툼하게 생긴 비좌 위에 글씨를 깨알 같이 적어놓은 비신
을 세우고, 지붕돌로 마무리를 지은 모습으로 비석에 딱히 '신도비'를 칭하는 내용은 없으나 신도로
통한다는 무덤 동남쪽에 자리해 있고, 묘표도 따로 있어서 그를 신도비로 보고 있다.

비문은 이후원의 벗인 동춘당 송준길이 짓고, 송시열이 추기를 지었으며, 명필로 유명한 이정영이
글씨를 쓰고, 영의정 김수항이 두전을 썼다. 1685년 광주로 이장되었을 때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며,
그 시절 유명한 사람들의 글과 글씨를 머금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

 

6.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후원 묘의 뒷모습

 

7. 서쪽에서 바라본 이후원 묘역

 

8. 동쪽에서 바라본 이후원묘 (이후원묘 봉분과 묘표, 상석, 향로석, 해치석, 망주석)

 

9. 남쪽 밑에서 바라본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10.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남쪽 산자락에 자리한 못골위공원

대모산의 첩첩한 산주름 속에 푹 묻힌 이곳을 못골이라 불렀다. 헌릉로와 밤고개로에서 거의 1km를
들어가
야 되는 벽지급 산골마을이었으나 개발의 칼질이 이곳까지 요란하게 거쳐가면서 아파트와 도
시가 조금씩 생
겨나고 신작로까지 닦여 주변 환경이 적지 않게 개조를 당했다. 허나 다행히도 개발의
칼질이 지나치게 선을
넘지 않으면서 자연에 묻힌 작은 도시, 또는 산간지방의 읍내 같은 모습이 되
었다.

 

완남부원군 이후원묘 남쪽에는 숲을 활용하여 못골근린공원을 닦았는데, 윗쪽 공원을 못골위공원(못
골위근
린공원), 남쪽 공원을 못골아래공원(못골아래근린공원)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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