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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흥천사에서 먹은 공양밥

즐거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4월 초파일)을 맞이하여 올해도 변함없이 서울 장안에 여러 절을
둘러보고 왔다. 이번 초파일은 야속하게도 오전부터 종일 비가 내렸는데, 오후에 아주 잠깐 소강 상
태를 보인 것 외에는 우산이 없으면 돌아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 그러다보니
사진 출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마지막에 들린 화계사에선 빗방울이 꽤 거칠어져 연등 점화, 저녁
예불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금방 나오고 말았다.

무심한 비로 인해 절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초파일 야외 행사와 볼거리가 크게 축소되었고, 흥천사
외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 초파일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하여 2003년 이후 가장 재미가 없는
초파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흥천사는 근래 새로 지은 3층 건물(3층은 약사전, 2층은 무량수전, 1층은 공양간과 종무소로 쓰임)
1층에 공양간이 있다. 원래는 대방 옆 야외에서 절밥을 제공하려고 준비까지 다 했으나 비로 인해
공양간으로 바뀌었는데, 무생채와 콩나물, 호박무침 등 나물 4가지와 고추장이 담긴 비빔밥과 시원
한 미역냉국을 중생들에게 제공했다.

 

이곳 공양밥은 맛이 좋은 편으로 흥천사와 적조사를 둘러보고 다시 시장기가 돌아 1그릇을 더 챙겨
먹었다. 예전에는 떡도 주었으나 이번에는 없었으며, 초파일에는 절에서 절편과 백설기, 인절미 등
의 떡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그 흔한 떡 1조각 챙겨 먹지 못했다.

 

2. 흥천사 극락보전 앞에 차려진 관불의식(관정의식)의 현장

금동 피부의 아기부처가 1년 만에 외출을 나와 중생들의 열렬한 하례를 받는다.

 

3.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괘불(괘불도)은 초파일과 극히 일부 날에만 잠깐씩 얼굴을 내미는 아주 보기 힘든 존재이다. 천하에
300곳
이 넘는 절을 오갔던 나도 괘불을 본 횟수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마저도 상당수를 초파
일에 친견했
다. 만약 초파일을 제외한 날에 괘불을 만났다면 이날은 꼭 로또 등의 복권을 사기 바란다.


흥천사는 별일이 없는 이상은 초파일에 극락보전 앞에 괘불을 내걸고 있다. 허나 이번에는 야속한 비
때문
에 외출을 하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무량수전에서 약사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그가 걸려
있었다. 비
가 오는 초파일이라 이곳에 잠깐 걸어둔 것인지 아니면 초파일에 상관없이 근래부터 둔 것
인지는 모르겠지
만 보기 힘든 괘불을 이렇게 만나니 뜻밖에 장소에서 옛 지기를 만난듯 오지게 반가
웠다. 그렇다고 그를 처
음 본 것은 아니며 10여 년 전 초파일 때 친견한 적이 있다.

 

이번 초파일 절 투어의 가장 큰 수확물인 흥천사 괘불은 1832년 수화승 화담신선 등 화승 17명이 조
성했다.
화담신선은 1790년 용주사 불화를 주도했던 상겸, 민관, 연흥 등 서울/경기 지역 화원들의 화
풍을 계승한
인물로 19세기 경성화파를 대표하는 화승이다.

순조와 순원왕후 내외, 효명세자의 부인, 세손(헌종)의 만수무강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순조의 장인인
김조
순과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 내외, 순조의 딸인 명온공주와 복온공주, 덕온공주 내외 등 왕족들과
상궁이 시
주를 하였다.

 

노사나불을 여래형으로 표현해 삼신불 도상에 변화를 주었고,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기상문수/기사보
현동
자가 결합한 구성, ‘불-제자-동자(문수·보현)’도상을 상~중~하단으로 배치한 구도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서울/경기 지역 괘불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시절 서울/경기 지방의 많은 괘불에서 볼 수 있는 비로자나삼신불 도상의 경향을 알려주고 있으며,
온화
하고 기품있는 존상의 표현, 정확하고 견고한 필치와 선명하고 밝은 채색, 섬세한 문양 등이 어우
러져 전체
적으로 격조 있는 화풍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복장유물과 괘불함까지 갖추고 있고 화기도
잘 남아있어 괘
불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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