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가탄신일 기념 절 나들이 ~ 정릉 경국사(慶國寺) ' ▲ 경국사 숲길 올해도 변치않고 찾아온 석가탄신일(4월 초파일, 이하 초파일)을 맞이하여 설레는 마음을 다독 이며 순례(巡禮)를 가장한 초파일 절 나들이에 나섰다. 우선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미답(未踏)의 절을 하나라도 지우고자 수유리에 있는 본원정사(本 願精舍, ☞ 관련글 보러가기)를 둘러보고 맛있는 점심 공양으로 배를 두둑히 충전한 다음 정릉 동(貞陵洞)에 있는 경국사로 발길을 향했다. 본원정사에서 경국사까지는 10리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차편이 시원치가 못하다. 그래서 절 인근에서 바퀴를 돌리는 강북구 마을버스 02번(본원정사↔수유역)을 타고 일단 화계사(華溪 寺)로 나왔다. 화계사는 봉은사(奉恩寺)와 조계사(曹溪寺), 도선사(道詵寺..
' 석가탄신일 기념 절 나들이 ~ 북한산 본원정사(本願精舍) ' ▲ 본원정사 목조지장보살좌상(목 보살좌상) 매년 5월마다 변치 않고 찾아오는 석가탄신일(이하 초파일)을 맞이하여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 키며 내가 살고 있는 서울 하늘 밑에서 안길만한 절집을 물색해 보았다. 나는 오래된 절과 문 화유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정문화유산을 품은 100년 이상 묵은 절집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조건에 맞는 고찰 태반을 가본 터라 아무리 쥐어짜도 적당한 곳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지배층이 서민을 쥐어짜듯 없는 거 열심히 쥐어짜고 흔들어보니 집에서 가까운 수유리 의 본원정사가 걸려든다. 이 절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발걸음은 아직이다. 역사는 짧지 만 지방문화재인 지장보살상도 있고 집에서도 가깝고 해서 그곳을 찾기..
* 수원 봉녕사 광교산 남쪽 기슭이자 광교신도시 서쪽에 자리한 봉녕사는 비구니 절이다. 1208년에 원각국사가 세운 창성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대웅전 뜨락에 800년 묵은 향나무가 또아리를 틀고 있어 절의 오랜 내력을 가늠케 한다. 조선 초기에 봉덕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해 봉녕사로 이름을 갈았다고 했다. 경내를 이루고 있는 건물은 죄다 1971년 이후에 새롭게 지어진 것으로 1975년 비구니 전용 승가학원을 설립했고, 승가대학으로 개칭해 선원과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비구니 수련도량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경내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조3존불과 19세기에 조성된 불화가 있다. * 봉녕사 대적광전 * 대적광전 앞에 놓인 오래된 석물 * 800여년 묵은 오래된 ..
* 수원 서호 (축만제) 경부선 화서역 서남부에 자리한 도심 속의 호수 서호(축만제)는 1799년에 정조 임금의 명으로 내탕금 3만냥을 들여 만들었다. 이때 수원 화성 주변에 4개의 호수를 만들었는데, 화성 서쪽에 자리해 있어 서호라 불렸으며, 서호낙조라 하여 수원 제일의 경승지로 명성을 날렸다. 서호 제방 남쪽에는 국영 농장인 둔전을 설치해 나라에서 운영했는데, 그 인연으로 이곳은 우리나라 근/현대 농업의 성지가 되었다.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과대가 이곳에 있음)
' 서울 도심 속의 꿀단지, 북촌(北村) 산책 (재동, 가회동, 정독도서관, 안국동 일대)' ▲ 북촌문화센터 북촌(北村)은 서울 도성(都城)의 북쪽 지역으로 경복궁(景福宮)과 창덕궁(昌德宮) 사이를 일 컫는다. 이 지역은 가회동(嘉會洞)을 중심으로 삼청동(三淸洞). 계동(桂洞), 안국동(安國洞) , 재동(齋洞), 소격동(昭格洞), 팔판동(八判洞), 원서동 등에 걸쳐있으며, 경복궁 서쪽은 따 로 서촌(西村)이라 불렀다. 북촌 지역은 조선시대 때 왕족과 사대부(士大夫)를 비롯하여 돈 꽤나 주무르던 부자들이 주류 를 이루며 살던 오늘날의 강남(江南) 같은 곳이다. 조선 초기부터 형성되었지만 조선 초/중기 시절에 한옥은 남아있는 것이 없고, 조선 후기(19세기~20세기 초반) 한옥을 시작으로 왜정(倭 政) 시절..
' 봄맞이 산사 나들이 ~ 곡성 태안사(泰安寺) ' ▲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겨울 제국의 부흥을 꿈꾸며 1달 넘게 천하를 어지럽히던 꽃샘추위가 봄에게 말끔히 꼬리가 잡 히면서 비로소 진정한 봄의 세상이 도래했다. 하늘 아래 세상을 겨울의 제국주의(帝國主義)로 부터 해방시킨 봄을 찬양하며 연초부터 가고자 했던 곡성 태안사를 찾았다. 전국에 널린 미답지의 하나로 베일의 가려진 곡성에 첫 발을 내리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 침 곡성 5일장이었다. 터미널 근처에 마련된 5일 장터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서울에선 아 직 꽃망울도 피우지 못한 벚꽃이 여기서는 한참 절정을 누리며 순백의 미를 자랑한다. 태안사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넉넉해 그 사이에 점심을 먹고자 읍내로 들어섰다. 허나 장터 와 달리 읍내는 썰렁함..
* 곡성 동리산 태안사 - 신라 후기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지이다. 742년에 창건되어 문성왕 시절에 혜철대사가 절을 크게 일으켜 태안사로 이름을 고쳤다. 고려 초기에는 광자대사가 중창을 벌였는데, 이때는 화엄사와 송광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매우 잘나갔다. (지금은 화엄사의 말사임) 조선 세종 때는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바라를 남겼으며, 1684년 이후 그런데로 절을 유지하다가 1950년 7월 북한군의 공격에 절이 파괴되는 비운을 겪는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적인선사조륜청정탑, 광자대사탑, 광자대사비, 대바라, 대웅전 동종을 비롯해 지방문화재 여러 점을 간직하고 있다. * 태안사 숲길 * 태안사 계곡
* 광주 원산동에 자리한 포충사는 임진왜란 시절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종후, 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봉안한 사당이다. 1601년 호남 유생들의 건의로 제봉산 밑에 세워졌으며, 1603년 선조 임금에게 사액을 청해 포충사란 이름과 편액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았으며, 1980년에 동쪽 평지에 새롭게 포충사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옛 포충사의 고직사, 충효당 등이 철거되었다. (옛 포충사는 새 포충사 서쪽 소나무 언덕에 자리하고 있음) * 정기관(유물전시관)에 있는 고경명 관련 유물과 서적, 문서들 * 포충사 (새 포충사)
' 볼거리가 풍성한 서울 도심 속의 전원 마을 ~종로구 부암동(付岩洞) '▲ 인왕산에서 바라본 부암동과 북악산하늘 높이 솟은 북한산(삼각산)과 북악산(北岳山), 그리고 인왕산(仁王山) 사이로 움푹 들어간 분지(盆地)가 있다. 그곳에는 수려한 경치를 지닌 부암동이 포근히 감싸여 있는데 서울 도심과 고작 고개(자하문고개)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거리임에도 '이곳이 정녕 서울이 맞더냐~?' 고개가 갸우뚱할 정도로 도심과는 생판 다른 전원(田園)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부암동은 서울의 심장부인 종로구의 일부로 아늑한 전원 분위기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경승지가 즐비해 북촌(北村), 성북동(城北洞)과 더불어 두고두고 나의 마음을 앗아가는 곳이다. 부암동의 주요 경승지로는 북악산 백사골(백사실, 백석동천)을 비롯..
* 모악산 북쪽 청도리에 자리한 귀신사 (이름이 후덜덜..) 귀신사는 신라 중/후기에 창건된 절로 고운 최치원이 법장화상전을 편찬하던 곳이다. 고려 후기까지는 같은 산에 안긴 금산사보다 잘나가던 절로 300명 이상이 머물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하며, 임진왜란 이후 크게 쇠퇴하여 지금에 이른다. 절 이름이 좀 무시무시한데, 한자는 귀신이나 유령을 뜻하는 것이 아닌 '歸信寺' 이 한자를 쓴다. 절대 귀신/유령과는 관련이 없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과 소조비로자나3존좌상,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 승탑, 석수 등이 있다. * 신라 후기 석탑인 귀신사 3층석탑 * 귀신사 명부전과 지장보살상 * 귀신사 대적광전 내부 신중탱 * 대적광전 독성탱 * 대적광전 산신탱 * 대적광전 비로자나3존좌상 (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