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백련사 석조관세음보살상 명부전 옆에 자리한 석조관세음보살상은 2017년 5월에 장만한 것으로 늘씬한 자태와 파리도 미끄러 질 정도의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녔다. (백련사는 이곳 외에도 원통전, 관음전 등 관세음보살의 공 간을 많이 지니고 있음) 2. 백련사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 등 명부(저승) 식구들이 봉안되어 있다. 3. 백련사 약사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동방정토의 주인인 약사여래의 공간이다. 내부에 백련사에서 가장 늙은 보물인 융경삼년명 동종이 들어있으며, 불단에 있는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약사후불탱은 19 세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4. 명부전 지장보살상과 무독귀왕, 도명존자상 표정이 살아있는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상과 무독귀왕, 도명존자는 ..

1. 백련사 일주문 백련사의 정문인 일주문은 2000년 10월에 세워진 것으로 규모가 꽤 크다. 문 현판에는 '삼각산정토백 련사' 8자가 쓰여 있어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는데, 엄연히 백련산 자락에 있지만 조금 거리가 있 는 북한산(삼각산)을 칭하고 있다. 허나 북한산 탕춘대 능선에서 갈라진 서남쪽 산줄기가 바로 백련산 이라 삼각산을 칭해도 이상할 것은 별로 없으며(넓게 따지면 이곳도 북한산의 일원임) 정토는 백련사 의 옛 이름이자 이곳에서 내세우고 있는 정토도량을 뜻한다. 2. 포대화상 똥배 포대화상이 천진난만한 애기들을 가득 품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신도의 지원으로 근래 마 련된 것으로 그를 지나면 백련사 경내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3. 백련사 무량수전 백련사의 법당인 무량수전은 서방정토..
' 석가탄신일 도심 사찰 나들이, 백련산 백련사 ' ▲ 연분홍 연등이 하늘을 훔친 백련사 약사전 앞 올해도 변함없이 즐거운 석가탄신일(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왔다. 비록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석가탄신일 앓이가 좀 심한 편이라 그날에 대한 기대감이 큰 편이다. 하여 심쿵(심장이 쿵쿵)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울 장안에서 적당한 절을 물색했으 나 서울에서 미답(未踏)의 고찰(古刹)은 이제 씨가 마른 상태이다. 그래서 이미 인연을 지었던 절 중에 아직 사진에 담지 않은 곳을 골라 영화사(永華寺)와 백련사 등 여러 절 을 그날의 메뉴로 정했다. 햇님이 하늘 높이 걸린 오전 11시, 기분 좋게 집을 나서 아차산 남쪽 끝에 자리한 영화 사(☞ 관련글 보기)를 둘러보고 비빔밥 스타일의 공양밥을 배불리 섭..
1. 연분홍 연등이 환하게 비추는 극락전 내부 왼쪽 불단에 보이는 금동 피부의 존재들이 아미타3존상으로 그 가운데에 자리한 불상이 청련사의 유일한 지정문화재로 14 세기 말~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2. 극락전 지장시왕탱 (20세기 중반 이후) 3. 극락전 신중탱 호법신들의 무리를 그린 탱화로 1888년 3월에 조성되었다. 4. 극락전 현왕탱 현왕(염라대왕)과 그의 식구를 담은 탱화로 1881년에 조성되었다. 5. 현왕탱 화기 6. 백련사 큰나무 경내 밑에 자리한 느티나무로 약 350년 정도 묵었다. 높이 18m, 둘레 3.5m 규모로 나무가 크다보니 여기서는 큰나무라고 부른다. 7. 백련사에서 속세(부근리)로 내려가는 길 백련사에서 잘 닦여진 신작로를 따라 40여 분..
1. 고려산 백련사 극락전 고려산 북쪽 자락에 안긴 백련사는 416년에 인도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는 고려산 동남쪽 자락에 있는 청련 사와 비슷한데, 천축조사로 표시된 인도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고려산에 이르러 5가지 색깔의 연꽃이 있는 연못을 발 견했다. 그 연꽃잎을 따서 공중으로 날려 잎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니 청련이 떨어진 곳에 청련사를, 백련이 떨어진 곳에 바로 백련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건 이후 19세기까지 이렇다할 사적과 유물이 전하지 않아 5세기 창건설에 심히 의구심을 품게 한다. 경내에서 제 일 오래된 존재가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이며, 그 다음이 470년 정도 묵 은 느티나무 정도라 5세기까지 갈 것도 없이 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