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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련사 일주문

백련사의 정문인 일주문은 2000년 10월에 세워진 것으로 규모가 꽤 크다. 문 현판에는 '삼각산정토백
련사'
8자가 쓰여 있어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는데, 엄연히 백련산 자락에 있지만 조금 거리가 있
는 북한산(
삼각산)을 칭하고 있다. 허나 북한산 탕춘대 능선에서 갈라진 서남쪽 산줄기가 바로 백련산

이라 삼각산을 칭해도 이상할 것은 별로 없으며(넓게 따지면 이곳도 북한산의 일원임) 정토는 백련사
의 옛 이름이자 이곳
에서 내세우고 있는 정토도량을 뜻한다.

 

2. 포대화상

똥배 포대화상이 천진난만한 애기들을 가득 품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신도의 지원으로 근래 마

련된 것으로 그를 지나면 백련사 경내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3. 백련사 무량수전

백련사의 법당인 무량수전은 서방정토의 주인장인 아미타불의 거처이다. 'ㄱ'모습의 팔작지붕 2층 집

으로 1층은 종무소, 공양간 등으로 쓰이며 2층이 바로 무량수전으로 실내가 아주 넓다.

 

이번에 찾은 백련사는 백련산 남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산사로 747년에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부처의 정토사상을 천하에 널리 알리고자 이 절을 세웠다고 하며, 절 이름도 그에 걸맞

정토사라 했다고 한다. 바로 그 연유로 이 땅 최초의 정토도량임을 아주 강하게 내세운다.

허나 아쉽게도 진표의 창건설을 밝혀줄 기록과 유물은 전혀 없으며, 창건 이후 14세기 말까지 적당한

기록도 없는 실정이다. 다만 1399년 무학대사의 지시로 함허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니 어쩌면 이때 창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려 중/후기에 창건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1413년 태종의 형인 정종이 요양차 이곳에 머물렀으며, 세조의 장녀인 의숙공주(1442~1477)가 20세

에 남편을 잃고 비통함에 잠겨있던 중, 백련사에서 해동묵(음나무)을 보고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공주의 무덤이 근처에 마련되자 그의 원당이 되면서 백련사로 이름을 갈았다. <의숙공주

의 묘는 현재 경기도 의왕시에 있음>

또한 경복궁에서 봤을 때 절이 서쪽에 있어 서방정토를 뜻하는 '서방정(西方淨)' , '정토사'라 불렸는데

어느 여름, 연못에서 하얀 연꽃이 피어올라 백련사로 이름을 갈았다는 설도 덧붙여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중건했으며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터지자 승려들이 모두 도망치고

건물은 거의 퇴락했다. 1659년 3년에 걸쳐 중창을 벌여 1662년 법당을 다시 지었으며, 1701년 절이

소실되자 1702년에 중건했다.

이곳에서 수행했던 낙창군 이탱(선조의 증손자)이 돈을 내어 1774년 크게 중창했으며, 1891년 경운

이 법당과 여러 전각을 다시 짓고 1911년 명부전을 중수했다. 그리고 서옹이 1914년 삼성전을 중건

하고 1917년 사무실을 신축했다.

예로부터 서백련(서쪽의 백련사)이라 하여 동쪽의 청련사<왕십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양주시 장흥으

로 자리를 옮김>, 남쪽의 삼성산 삼막사, 북쪽의 북한산 승가사와 함께 한양도성의 4대 비보사찰로

꼽혔다.

 

경내에는 법당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약사전, 명부전, 관음전, 범종각,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

으며, 그 주위로 승려 가족들이 사는 집이 무더기로 몰려있다. (백련사는 승려의 혼인을 대놓고 인정

하는 태고종 절임)

소장 문화유산으로 1569년에 조성된 '융경(隆慶) 3년명 동종'이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지니고 있으며,

19세기에 조성된 괘불과 여러 탱화들이 전한다. 그리고 500년 묵은 음나무가 있었으나 세월의 고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직하고 말았다.

또한 백련사는 예로부터 약수 맛이 좋았다. (10대 시절에 마셔봤음) 허나 그 착했던 물도 앞서 음나무

처럼 옛말이 되버린 상태이다. 하긴 서울에 이름난 약수들이 천박한 개발의 칼질과 환경오염의 마수

앞에 상당수 명이 끊겼으니 백련사 약수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4. 백련사 범종각

6각형 모습을 지닌 종각으로 부처의 중생 구제를 향한 메세지를 머금은 범종이 소중히 들어있다.

 

5. 무량수전 관세음보살상

금동 피부를 지닌 고운 자태의 관세음보살이 각각 하얀 코끼리와 푸른 피부의 사자 위에 앉아 각자의

연장(정병, 꽃)을 쥐어들며 중생들의 하례를 받는다.

 

6. 무량수전 아미타3존상

얼굴이 유난히 두터운 아미타여래상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로 자리해 아미타3존상을 이

룬다. 협시보살로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도 아미타여래상을 닮아 얼굴이 유난히 크다.

 

7.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본 백련사 경내

코 앞에 다가온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허공에 연등을 내걸 시설을 만드느라 마치 공

사장처럼 어수선한 모습이다.

 

8. 속세를 바라보고 있는 범종각(오른쪽)과 법고, 목어, 운편의 보금자리(왼쪽 팔작지붕 건물)

 

9. 백련사 원통전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의 거처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백련사는 이곳 외에도 칠성

각 옆에도 관세음보살의 공간인 관음전을 두었고 명부전 옆에도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을 두어 관세음

보살상만 무려 3기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백련사가 관음도량을 칭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곳은

정토도량을 칭하고 있음)

허나 관음도량도 속세에 영업하기 좋은 메뉴라 나중을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닐까 싶다. (정토도량을

칭한다고 해서 다른 도량까지 칭하지 말라는 법은 없음. 실제로 2개의 도량을 칭하는 절이 은근히 많

음)

 

10. 백련사 융경삼년명 동종

약사전에는 백련사에서 가장 늙은 보물인 '융경삼년명동종'이란 작은 동종이 들어있다. 그는 높이 65

㎝, 입지름 57.1㎝에 작은 종으로 종 하단에 '隆慶三年己巳四月日鑄鐘...'으로 시작되는 명문이 새겨

져 있어 융경3년(1569년)에 조성되었음을 고맙게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융경은 명나라 목종(재위
1566~1572)의 연호
이다.

종 상단 범자문 밑에는 '~大鍾二百斤’이 포함된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청동 2백근으로 만들었음을

추가로 알려준다. 그리고 그 명문 주변으로 ‘高陽郡恩平面白蓮寺 大鍾 當寺住持金西翁 主長金翠雲
朝鮮隆熙元年丁未' 명문이 있는데, 은평(은평구)이란 지명은 왜정 때 지어진 것이라 왜정 시절에 추

로 새겼음을 알려준다.

 

이 동종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며, 그의 제자리와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쉽게도 기록이 없

다. 다만 왜정 때 새겨진 명문을 통해 1907년 이후 백련사에 흘러들어왔음을 알려준다. 또한 명문에
등장하는 ‘주
지 김서옹(住持 金西翁)’은 '봉은본말사지'에 따르면 당시 백련사 주지로 부임해 절을 중
수한 것으로 전하
고 있어 그가 동종을 이곳으로 업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동종은 우수한 기술로 주조되었고 전체적인 외형과 세부 특징을 대체로 잘 유지하고 있다. 동종의 양

식은 고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조선 중기에 유행한 제작 유형을 따르고 있어 2022년 12월, 서울 지

방유형문화재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지정 명칭은 동종에 새겨진 '융경삼년명'을 따서 '백련사 융경삼

년명동종'이라 했으나 그냥 간단하게 백련사 동종으로 이름을 줄이는 것이 좋을듯 싶다.

 

 

11. 융경삼년명 동종에 새겨진 글씨들

범자문 좌우와 밑에 왜정 떄 새겨진 '고양군은평면~~~' 명문들이 있다. 그 명문을 통해 동종이 1907년

이후 이곳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12. 약사전에서 한가로운 삶을 보내고 있는 융경삼년명 동종

종이 작아서 그를 위한 별도의 집을 만들지 않고 약사전에 두어 속세에 공개했다. (종의 위치는 절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13. 약사전 석조약사여래좌상

하얀 피부를 지닌 밝은 표정의 약사여래좌상이 좌우로 금동 피부를 지닌 조그만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을 거느리며 약사3존상을 이룬다. 그들 뒤로 약사후불탱이 든든하게 자리해 있는데, 약사여래좌상과

약사후불탱은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른 곳에서 넘어온 융경삼년명동종을 제외하고 경내에서 가

장 오래된 측에 속하는 존재들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 좌우에 있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상은 근래에

달아놓은 것들임)

 

14. 백련사 약사전

원통전 옆구리에 자리한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약사여래의 공간이다. 이곳

에 백련사의 대표 보물인 융경삼년명동종이 들어있으니 꼭 살펴보자. (동종의 위치는 변경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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