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정선을 거닐다 ~ 아라리촌 둘러보기
▲ 아라리촌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길이 나온다. 여기서 직진을 하던 오른쪽으로 가던 상관은 없으나 나는 오른쪽길로 들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았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3506C2B4ADC6A53A6) ▲ 가장 먼저 만난 양반전 조형물 (양반전 조형물 1) |
정선의 어느 가난한 양반이 살았다. 그는 독서를 좋아하고 정직한 성격으로 정선에 부임하는 군 수(郡守)들이 무조건 찾아가 인사를 할 정도로 유명했다. 허나 살림이 어려워 매년 관아의 쌀을 빌려 목구멍에 풀칠을 했는데, 계속 빌리기만 했지 갚지를 못해 그 양이 어느덧 1,000섬을 넘었 다. 그렇게 정선 사또와 관원들이 오랫동안 쉬쉬하고 넘어갔으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결국 강원 도 관찰사(觀察使, 도지사)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관찰사는 이에 노발대발하며 정선군수를 닥달 해 양반에게 빌려준 쌀을 받아낼 것을 명령했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5506C2B4ADC6A54AA) ▲ 전통와가 ~ 양반 가옥으로 사랑채와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1506C2B4ADC6A56AE) ▲ 이름도 생소한 굴피집
|
굴피집은 강원도 정선, 양양, 평창에서 많이 나타나는 원시형 산간지방 가옥으로 참나무(상수리 나무) 껍질인 굴피를 지붕에 씌우면 집의 보온이 잘되고 습기를 제대로 차단해 준다. 그래서 겨 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비가 많은 곳에 적당하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1506C2B4ADC6A56B0) ▲ 굴피집에 있는 양반전 조형물 (양반전 조형물 2)
|
정선현감은 양반에게 당장 쌀을 갚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며 최후 통첩을 하였다. 아무리 조선 의 중심 계층이고 지체높은 양반이라 할지라도 관청에서 빌린 쌀을 한 톨도 갚지 않고 무대책으 로 일관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가 없었다.
통첩을 받은 양반은 땅에 힘없이 주저앉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축 쳐진 그를 바라보는 마누라 는 팔짱을 끼며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징하게 바가지를 긁는다. '영감~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이 요~!! 무슨 말 좀 해보시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9506C2B4ADC6A55AD) ▲ 양반과 부자 상인의 거래 (양반전 조형물 3)
|
현감의 최후통첩에 제대로 울상이 된 양반에게 희소식이 하나 날라왔다. 바로 옆집에 사는 부자 가 그 환곡을 대신 갚아주겠다는 것이다. 그 부자는 평민으로 평소 양반을 꿈꾸며 살았다. 마침 옆집 양반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때다 싶어 자신이 환곡을 처리해줄 터이니 대신 양반의 신분을 자신에게 넘길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의 제안에 양반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감옥에 끌려가게 될 판에 그까짓 양반 자리가 무슨 소용이랴, 당장 발등에 붙은 불조차 끄기도 벅찬데 말이다. 그래서 부자의 거래를 흔쾌히 받아 들이고 양반의 신분을 그에게 넘겼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7506C2B4ADC6A55AB) ▲ 현감에서 절을 하는 양반 (양반전 조형물 4)
|
부자와 거래를 성사시킨 후, 양반은 길을 가다가 현감을 만났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넙죽 절 을 하는 것이었다. 양반이나 현감이나 거의 같은 양반계급이기 때문에 아무리 벼슬이 높다고 해 도 절은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된다. 현감은 화들짝 놀라며 '아니 왜 이러시오. 일어나시오' 그를 일으켜 세우며 절을 한 연유를 물 었다. 이에 양반은 옆집 부자에게 양반의 신분을 팔았다면서 그 사연을 털어놓았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4506C2B4ADC6A57B2) ▲ 아라리촌 북쪽에 자리한 소박한 모습의 초정(草亭)과 읍내 곳곳에서 수습해온 오래되지 않은 비석들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E6jCb2Rls.jpg) ▲ 가까이서 바라본 8각형 모양의 초정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초가 정자, 소박하고 단촐한 멋이 돋보인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및 길손님의 휴식처 역할을 하였다.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VPfb82dZd.jpg) ▲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단잠에 빠진 그네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VBbA6ArPE.jpg) ▲ 아라리촌 둑방길에서 바라본 정선읍내와 조양강 읍내 뒤로 보이는 높고 웅장한 산이 정선읍의 진산(鎭山)인 비봉산(飛鳳山)이다.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SW0jYngoN.jpg) ▲ 강바람이 살랑살랑 귀를 간지럽히는 조양강 산책로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ZwGEUXCGL.jpg) ▲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언제나 싱글벙글인 장승 3형제
|
뻐드렁니와 풀어진 눈을 드러내 보이며 밝은 표정으로 나그네를 맞는 장승, 장승은 마을의 안녕 을 지키고,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보통 마을 입구에 세우며, 그들 몸통에는 그들의 정체 가 쓰여져 있다. |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Wv89O1txl.jpg) ▲ 아라리촌에 살포시 찾아온 가을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dPyOFDtvf.jpg) ▲ 주막 옆에 자리한 농기구 공방 ▼ 공방 내부 (왼쪽은 농기구를 불에 달구어 만들던 곳, 오른쪽은 농기구와 농사와 관련된 도구들이 진열된 공간)
|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SnRl31OUL.jpg) |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TLDbBgZVS.jpg) |
![](http://fs.textcube.com/blog/1/13080/attach/XU5jziyj0K.jpg) ▲ 양반이란 실체에 대경실색하는 부자 (양반전 조형물 5)
|
양반의 신분을 산 부자는 현감에게 이를 인정하는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현감은 그 문서를 만들어 주면서 양반이 지켜야 될 행동과 권리를 설명했다. 행동은 그야말로 겉치례가 상당수였으며, 권리는 그야말로 백성들을 쥐어짜고 착취하는 도둑 수준이었다. 그것을 모두 들 은 부자는 기쁨의 표정은 싹 사라지고 표정이 하얗게 질리면서 '아이고~ 그런 것이 양반이라면 차라리 안하고 말겠소~~!!' 양반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 이후 다시는 양반 타령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233A045500E293317) ▲ 파전에 동동주 1잔 들이키고 싶은 아라리촌
|
아라리촌에는 주막이 장사를 하고 있다. (겨울에는 안함) 초가 주막에는 산채정식, 곤드레밥 등 을 팔며, 굴피집 주막에는 순두부와 메밀콩국수, 칼국수 등을 파는데, 가격은 조금은 미운 수준 이다. 이런 곳에 왔으면 바깥에 차려진 마루에 걸터앉아 동동주 1잔에 파전 하나 걸쳐야 기분이 나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535CF45500E293305) ▲ 이제는 굳어버린 화석처럼 아련히 남은 외겨리 외겨리는 소 1마리로 전답에 쟁기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2마리로 하는 것을 '쌍겨리'라고 하며 척박한 산간지대 전답에서 많이 쓰였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40BE83B500E293304) ▲ 양반의 특혜에는 상민을 괴롭히는 몹쓸 것도 있다. (양반전 조형물 6)
|
현감이 말한 양반의 특혜 중에 양반이 상민의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채를 잡아 댕기며 수염 을 희롱하더라도 상민은 감히 원망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332F736500E293308) ▲ 이름도 외우기 쉬운 돌집 돌집은 정선 지역에서 많이 지어진 가옥 형태로 안방과 윗방, 사랑방, 도장방 그리고 정지와 외양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집은 얇은 판석을 두께 2cm 정도의 돌기와로 지붕을 덮어 올린 집으로, 주로 정선 지역 산지에서 나오는 청석맥을 파내 사용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27BE33B500E293607) ▲ 벌거숭이 모습이 부끄러웠던지 덩굴을 걸친 돌담장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8503B3C500E293605) ▲ 산간지역에서 많이 지어진 귀틀집
|
귀틀집은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井' 모양으로 쌓아 벽을 만들고,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채웠다. 눈이 많이 와도 견딜 수 있고, 온도 유지가 용이하며, 간편하게 지을 수 있어 나무가 풍부한 산 간지대에서 많이 선호된 가옥이다. |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44A2841500E293630) ▲ 밥 생각을 간절하게 하는 귀틀집 부엌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85FFD41500E29371A) ▲ 투박한 모습의 너와집
|
너와집은 귀틀집과 더불어 산간지대를 주름잡았던 집이다. 200년 이상 된 소나무 토막을 쪼깬 널판으로 지붕을 이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랑방과 대청, 부엌, 봉담, 외양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정선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화티'가 있는데, 이는 부뚜막 귀퉁이에 진흙을 쌓아 2개 의 구멍 중 위쪽은 불을 피워 음식을 하거나 내부를 밝히고, 아래쪽은 불씨 보관용으로 쓰였다. |
![](http://3.bp.blogspot.com/-g-W42k-fw4Q/VmBw7w0NK0I/AAAAAAAAJfQ/ar-vXnYFymk/s640/UKqK1g7C4G.RHeVR3RYHyA.jpg) ▲ 일반 초가와 비슷한 저릅집
|
저릅집은 정선과 삼척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초가로 대마의 껍질을 벗기고 줄기를 이엉으로 이은 집이다. 다른 말로 겨를집이라고도 한다. |
![](http://1.bp.blogspot.com/-9XCxjk0Hj1w/VmBw7igFm-I/AAAAAAAAJfM/pPU8h5bmw4w/s640/Ts8XEN50M94OjA7bu0mY5w.jpg) |
◀ 통방아가 담겨진 삼각형 건물 통방아는 '물방아','벼락방아'라고도 한다. 확( 곡식을 넣는 돌통), 공이(찧는 틀), 수대 등으 로 이루어져 있는데. 3~5㎝ 정도의 커다란 통나 무를 이용하여 앞쪽에는 공이를 박고, 뒤쪽에는 물이 담길 수 있도록 구이통을 팠다. 그리고 귀 대를 통해 구이통 속으로 흘러 들어온 물에 의 해 공이가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확에 있는 곡식 을 찧게 된다. |
![](http://1.bp.blogspot.com/-vUsXX8Me4hw/VmBw7H4VzII/AAAAAAAAJfA/gQMz3TXapLE/s640/H1T9jXda0eepWDw8J3zzzw.jpg) ▲ 물레방아
|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물레방아는 흔히들 우리 고유의 것으로 알고 있다. 허나 그것은 조 선 후기에 청나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앞서 양반전의 저자인 연암 박지원이 청에 사신으로 갔다 가 물레방아의 위력에 반해 그것을 연구하였다. 이후 안의(安義, 경남 함양)현감이 되자 안의 북쪽 용추계곡에서 물레방아를 시범 운영을 하였 으니 그것이 바로 이 땅 최초의 물레방아이며, 용추계곡은 우리나라 물레방아의 탄생지가 되었 다. 그 이후 전국으로 빠르게 보급되어 농업 생산력의 흔쾌한 증진을 가져왔다. |
![](http://4.bp.blogspot.com/-7_BQH9bnbDc/VmBw8Bgd92I/AAAAAAAAJfw/o5pdUugtOpU/s640/egdi1NFj4vbRTlx0kpoiSA.jpg) ▲ 돌탑과 장승 마을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승과 돌탑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의 기능과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였다.
![](http://2.bp.blogspot.com/-h-B5IwzsNaQ/VmBw82y3d4I/AAAAAAAAJf4/GTJkHgrHzTI/s640/olmZtDwjh7c_.3t1mLPQZg.jpg) ▲ 서낭당(성황당)
|
서낭당은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성황신(城隍神)의 보금자리로 시골 마을에는 꼭 1개씩은 있다. 보통은 마을 입구나 이웃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세웠으며 지금도 성황제(城隍祭)를 지내 는 마을이 많다. 당 주위에는 금줄과 돌담을 둘러 잡인의 출입을 금하며, 장승이나 돌탑을 주변 에 세웠다. 마을에서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곳이다 보니 이곳에 대한 정성은 정말 대단했다. |
![](http://1.bp.blogspot.com/-GR5bL5ViXaI/VmBw7MId0LI/AAAAAAAAJe8/znNQonxI88Y/s640/6DeGBNAM6BRxRC.u4JzceA.jpg) ▲ 서낭당에 모셔진 성황신도(城隍神圖)
|
성황신도는 하나지만 각각 다른 모습의 성황신 2인이 담겨져 있다. 그들 머리 뒤로 공통적으로 금색의 동그란 것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광배(光背)의 일종인 두광(頭光)이다. 푸근한 인상이 매력적인 왼쪽 성황신은 하얀 옷을 걸치고 있는데, 오른손에 지팡이, 왼손에 산삼을 거머쥐며 서 있다. 빨간 옷은 입은 오른쪽 성황신도 왼쪽만큼이나 인자함이 깃든 표정으로 있는데, 오른 손에 지팡이를, 왼손으로 귀여움이 묻어난 호랑이를 살짝 어루만지고 있다. 산신과 호랑이 외에 동자와 나무, 산 등이 담겨져 있어 산신도(山神圖)와 비슷하다.
이렇게 하여 양반전과 정선의 옛 모습을 담은 아라리촌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
![](http://1.bp.blogspot.com/-yKdP2iI5ED4/VmBw7EUT0mI/AAAAAAAAJfE/f9zE8ey_QzU/s640/C.W7xDpb8bwU16tkQGNIbA.jpg) ▲ 느긋하게 팔자걸음을 걷는 양반 (양반전 조형물 7) 현감이 부자에게 말한 양반의 겉치례 중에는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야 되는 내용도 있었다.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정선 5일장이었다. 그래서 읍내로 넘어가 장터의 중심지인 중앙시 장에서 간단하게 메밀전병과 메밀전을 사먹고 여량, 아우라지로 가고자 정선터미널로 이동했다. 정선 땅은 구절양장(九折羊腸)의 험준한 산악지대라 교통이 매우 좋지가 못하다. 강원도 안에서 도 매우 첩첩한 산골이라 평창, 영월과 더불어 산다삼읍(山多三邑)이라 일컬어진다.
정선터미널에서 그나마 많이 있는 강릉행 직행버스(1~2시간 간격)를 타고 정선의 험준한 산하를 넘어 25분 만에 여량면(餘糧面)의 중심지인 여량에 이르렀다. 여량은 말그대로 식량의 여분이 있다는 뜻으로 험한 산골임에도 너른 들과 논이 있어 논농사가 가능했다. 그래서 식량이 남을 정도로 풍족했다고 전한다.
여량정류장에서 북쪽으로 가면 정선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아우라지역이 나온다. 정선선의 종점 은 여기서 7.2km를 더 들어가야 되는 구절리(九切里)역이지만, 관광열차는 아우라지에서 바퀴를 접고 더 이상 들어가지 않으며, (무궁화호 열차는 폐선되고 비싼 관광열차가 대신 들어옴) 대신 레일바이크(Railbike)가 그 구간을 쑤시고 다닌다.
아우라지역은 원래 여량역이었으나 2000년에 아우라지로 간판을 갈았다. 이 역은 현재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으로 역건물과 플랫폼, 철로가 전부이다. 역과 철로시설을 보호하는 담장도 없이 사방이 개방된 형태로 자유롭게 역 내부를 거닐 수 있으며, 하루에 2번 외부세계를 이어주 는 정선아리랑열차가 운행된다.
아우라지역을 지나면 두 물줄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 아우라지가 바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
![](http://www.yeyewon.co.kr/py/2009/1002-12.jpg) ▲ 정선선 아우라지역 ~ 조촐한 간이역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