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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맞이 수리산 나들이 ~~~~~

▲  수리산 철쭉동산 (5월 군포철쭉축제)

▲  수리산 둘레길

▲  수리산 수리사

 


이 땅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추석) 연휴 끝 무렵에 친한 후배와 군포 수리산(修理山)을
찾았다. 수리산에 대한 사람들의 찬양이 대단하여 얼마나 괜찮은 산인지 직접 확인하고
자 간 것이다.

햇님이 하늘 높이 걸려있던 14시 무렵, 금정역에서 그를 만나 서울 5623번 버스(군포공
영차고지↔여의도)를 타고 둔전초교에서 군포마을버스 3-1번으로 환승하여 수리산 입구
인 중앙도서관에서 두 발을 내렸다. 수리산 나들이는 여기서부터 막을 연다.


 

♠  수리산(수리산 도립공원) 입문

▲  수리산 산림욕장

수리산은 인구 30만을 지닌 군포시(軍浦市)의 듬직한 진산(鎭山)으로 군포 북서쪽과 안양시(
安養市)의 서남쪽, 안산시(安山市) 동쪽에 넓게 누워있다. 삼성산(三聖山, 480m), 관악산(冠
岳山, 629m)과 더불어 안양권의 이름난 명산(名山)으로 등산/나들이 수요가 상당하며 2009년
에 경기도의 3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수리산이란 이름 3자를 들으면 대입 수능시험의 수리영역이나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이 생각
이 난다. 허나 산 이름은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전해오
는데, 산 바위가 마치 독수리처럼 생겨서 수리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수암봉 정상에 독수리
의 일종인 검둥수리가 앉아있는 듯한 바위가 있음), 산 남쪽 자락에 안긴 수리사에서 유래되
었다는 설, 그리고 조선시대 때 왕손(이씨)이 수도했다고 하여 수리산(修李山)이라 했다는 설
이 그것이다. 그래서 '修理山'이란 한자 대신 '修李山'이라 하기도 하며, '修理山'으로 바뀐
것은 20세기 중반 때라고 한다.

수리산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는 태을봉(489.2m)이며, 슬기봉(469m)과 관모봉(426m),
수암봉(395m) 등이 수리산을 이루고 있다. 흙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산세가 완만하고 숲이 짙
으며 수리사계곡과 창박골(병목안) 등의 계곡이 흘러 조촐한 피서지를 선사한다.
수리산 동남쪽 자락인 군포 수리동 일대에는 산림욕장이 닦여져 있고, 산 주위로 수리산둘레
길과 수리산임도길 등의 둘레길이 닦여져 수리산의 멋을 더욱 돋구고 있으며, 수리사와 철쭉
동산, 2016년에 문을 연 초막골 생태공원 등의 명소가 있다. 특히 철쭉동산은 군포시의 야심
작으로 산자락에 넓게 철쭉밭을 닦아놓았는데 매년 5월 군포철쭉축제가 거하게 열려 사방을
온통 연분홍 천지로 만든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너른 철쭉의 공간이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  윗쪽에서 바라본 수리산 철쭉동산 (5월 군포철쭉축제)

▲  층층히 이어진 수리산 철쭉동산의 위엄 (5월 군포철쭉축제)

▲  수리산 철쭉동산 (5월 군포철쭉축제) ▲

수리산 등산은 수리산역(4호선)이나 철쭉동산, 군포시 중앙도서관, 태을초교, 수리약수터, 명
학역 등에서 시작하면 되며 군포시가 수리산 일대에 걸쳐놓은 둘레길은 총 4코스로 다음과 같
다.
① 수리산둘레길(군포수릿길 1코스) : 산본역~태을초교~노랑바위~임도5거리~감투봉~밤바위~시
민체육공원~산본역 (16km, 5시간 30분 소요)
② 수리산임도길 구름산책길(군포수릿길 2코스) : 중앙도서관~임도5거리~덕고개~행복쉼터~속
달동 마을길  (4.8km, 1시간 40분 소요)
③ 수리산임도길 풍경소리길(군포수릿길 3코스) : 수리산역~철쭉동산~중앙도서관~임도5거리~
수리사 (5km, 1시간 20분 소요)
④ 수리산임도길 바람고개길(군포수릿길 4코스) : 납덕골주차장~수리사방향~임도입구~바람고
개~에덴기도원~납덕골주차장 (5.6km, 1시간 50분 소요)

끝으로 수리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6.25전쟁이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이 부분은
거의 모르고 지나치는 실정인데, 6.25 시절인 1951년 1월, 북한에게 서울을 빼앗기자(1.4후퇴
) 서울을 수복하고자 국군 1사단과 미군 25사단, 터키 여단 1개 대대가 수리산 일대에서 북한
군과 머릿수만 무식하게 많은 중공군 수만 명을 상대로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는 그
해 2월 10일 서울 재탈환에 큰 역할을 했으며, 지형적인 불리함과 막대한 인명피해를 극복하
고 강력한 화력과 항공기 지원, 군사들의 투지에 힘입어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2007년부터 산 일대를 조사하여 국군 유해 4구와 유품 600여 점을 수습, 뒤늦게 국립현
충원에 봉안했다.


▲  수리산의 자랑, 숲길 (수리산 임도길)

수리산을 수식하는 명소의 하나인 수리산 산림욕장은 군포시가 1993년부터 조금씩 조금씩 닦
아놓은 것으로 면적은 159.4ha이다.
상수리나무와 때죽나무 등 활엽수림이 주류를 이루며, 리기다소나무 등 침엽수(針葉樹)가 산
중턱을 장식한다. 군포시내(산본, 수리동)와 바짝 붙어있어 접근성 하나는 매우 착하며, 숲이
매우 삼삼해 산림욕에는 아주 좋다. 또한 피크닉장과 자연학습장도 갖추고 있어 가족 나들이
와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는 산림욕장 내부까지 들어가진 않고 항아리 겉돌 듯 입구 주변만 살펴보고 바로 수리산
둘레길에 임했다.
산림욕장 남쪽에서 성불사를 거쳐 임도5거리로 인도하는 수리산둘레길은 차량들이 다녀도 충
분할 정도로 폭이 넓다. 순 흙길로 이루어져 있고 햇살이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숲이 무성하
여 이곳만큼은 무더위와 자외선을 잊어도 좋다. 나무가 베푼 숲내음이 속세에서 오염된 심신
을 어루만져 주며, 산바람이 이따끔 불어와 번뇌와 땀을 단죄한다.

집으로 살짝 훔쳐와 두고두고 누리고 싶은 아름다운 숲길로 성불사 직전 구간을 제외하면 경
사는 거의 느긋하며, 뱀처럼 구불구불한 고개를 넘으면 임도5거리에 이른다.


▲  수리산 임도5거리

임도5거리는 수리산 남쪽 요충지로 숲길이 5갈래로 갈리는 곳이라 하여 속편하게 임도(林道)5
거리를 칭하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인 수리사는 여기서 북서쪽 길을 이용하면 되며, 남쪽 큰
길로 내려가면 덕고개와 갈치저수지 방면으로 이어진다. 5거리에는 쉼터와 조그만 정자가 있
고, 소나무와 온갖 나무들이 앞다투어 그늘을 베풀고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  임도5거리에서 수리사로 가는 숲길 (수리산임도길 풍경소리길)

임도5거리에서 수리사입구까지는 앞서 길보다는 좁지만 흙길이 진하게 닦여져 있다. 깊은 산
주름 속에 묻힌 산중이라 완전 산과 푸른 숲, 하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정녕 수도
권의 주요 도시인 군포시가 맞는지 절로 고개라 갸우뚱할 정도로 마치 강원도 산골로 순간이
동을 당한 기분이다.

자연의 소리가 전부인 숲길로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으며 경사도 꽤 느긋하다. 우리네 인생이
이런 산길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길을 25분 내려가면 수리사입구에 이른다.


▲  수리산이 베푼 조그만 샘터
빨간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늦더위로 타들어가는 몸 속을 진화한다.

▲  수리사로 올라가는 길 (1)

수리사입구에서 수리사까지는 각박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올라야 된다. 임도5거리에서 여기
까지 내려온 높이 만큼 말이다. 절까지는 차들이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리게끔 포장길이 닦여져
있으며, 길 옆에는 수리사계곡이 수줍은 모습으로 졸졸졸~~♪ 화음을 선보이며 반월저수지(반
월호수)로 흘러간다. 울창한 숲이 길과 계곡의 지붕이 되어 하늘을 가리고 있으며 바로 그 길
의 끝에 수리사가 자리해 있다.

▲  가늘게 흘러가는 수리사계곡

▲  수리사로 올라가는 길 (2)


▲  수리사계곡에서 만난 조그만 자연산 폭포
계곡은 작지만 수리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갖은 바위와 조그만 폭포들이
아기자기한 풍경을 자아낸다.

▲  드디어 도착한 수리사의 정문, 일주문(一柱門)


 

♠  수리산 서남쪽 자락에 둥지를 튼 오래된 절집
~ 수리사(修理寺)

수리사는 수리산 서남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산사(山寺)로 군포에서 가장 산골 벽지이다.
첩첩한 산주름 속에 제대로 묻힌 비구니 절로 화성시 용주사(龍珠寺)의 말사(末寺)인데 6세기
중반인 신라 진흥왕(眞興王) 시절에 신라 왕족인 운산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부처를
친견해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기별(記別)을 받고서 여기서 부처를 만났다고 하며, 그 연유로
산 이름을 견불산<見佛山, 또는 불견산(佛見山)>, 절 이름은 수리사라 했다고 한다.
허나 진흥왕 시절 안양/군포 지역은 백제와 신라의 경계 지역으로 고구려와 밀약을 맺은 신라
가 동맹국인 백제의 뒷통수를 치며 한참 한강 유역과 경기도 지역을 점령하던 시절이다. 게다
가 신라의 불교가 법흥왕(法興王) 때 공인되었다고 하지만 문무왕(文武王) 시절까지 절은 대
부분 왕경(王京, 경주)에만 지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변경이나 다름없는 이곳까지 와서 위험
을 무릅쓰고 절을 지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만 경내에 오래된 석불 등이 있어 절이 우후죽
순 들어서던 신라 후기나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대웅전 등 건물 36동과 12개의 암자(庵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고 한
다. 허나 이 역시 자료와 유물이 부족해 신빙성은 떨어지며, 절 주변 산세를 보면 그만한 건
물을 짓기에도 벅차 보인다. 비록 그 정도는 아니지만 왕년에는 시흥(始興) 지역(그때는 시흥
고을이었음)에서 그런데로 잘나갔던 모양이며,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이끌고 경남 지역에서 크게 활약을 했던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가 쓰러진 절을 재건하고 이곳에서 수도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허나 그는 근거지인 현풍
(玄風)과 의령(宜寧)에서 벼슬을 멀리하고 후학을 길렀던 사람이다. 수리사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그를 왜 이곳 중창주로 등장을 시켰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를 흠모하던 이곳
승려가 장대한 세월에 산산히 흩어진 수리사 내력을 손질하면서 그를 살짝 넣은 것은 아닐까?
20세기에 들어서 경허(鏡虛)가 이곳에 주석하여 머물렀으며, 대선사(大禪師)인 금오(金烏)가
이곳에서 출가했다. 6.25 전쟁으로 절이 파괴된 것을 1955년 청운(靑雲)이 중건했으며, 계속
불사를 벌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과 산신각, 나한전, 요사 등 7~8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죄다 20세
기 중/후반에 지어진 것이라 고색의 내음은 말라버렸다. 소장문화유산은 하나도 없으며, 오래
된 석불이 하나 전하고 있어 절의 오랜 내력을 간신히 귀뜀해준다.

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일주문이 마중을 한다. 여기서부터 수리사 경내로 문을 들어서던 우
회길을 이용하던 그건 각자 마음이다. 여기서 주차장까지는 경사가 좀 가파르며 그 경사를 오
르면 수리사 표석과 차량들이 평화롭게 쉬는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1단 더 올라가면 요사
(寮舍)이며, 1단 더 오르면 경내의 중심 구역으로 대웅전과 나한전(羅漢殿), 범종각, 약수터
등이 있다.

▲  범종(梵鍾)의 보금자리인 범종각

▲  석가불과 500나한이 봉안된 나한전

▲  나한전 석가3존불
(석가불과 문수,보현보살)

▲  가지각색의 나한전 오백나한들


▲  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편강약수 ~ 약수는 어디가고 물통만 있나?

산사에는 늘 샘터가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리사 역시 그 예외는
아니라서 대웅전 옆구리에 샘터를 두고 이름도 좋은 편강약수라 하였다. 하지만 샘터가 어디
아픈지 물은 막혔고, 대신 철덩어리 물통을 두어 샘터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샘터에 놓인
바가지들이 어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속히 샘터와 물줄기를 복구하여 약수터를 되찾기 바란
다.


▲  수리사 대웅전(大雄殿)

이곳의 법당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으로 경내에서 가장 큰 건
물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위엄 있게 들어앉아 남쪽을 굽어보고 있으며, 내부에는 석가
3존불과 여러 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3존불 위로 황금색 닫집이 장엄하게 자리한다.

▲  대웅전 석가3존불과 닫집

▲  단촐한 모습의 삼성각(三聖閣)

대웅전 뒷쪽 언덕이자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삼성각이 경내를 굽어보고 있다. 정
면과 측면이 달랑 1칸인 맞배지붕 건물로 3명의 성스러운 존재, 산신과 독성(나반존자), 칠성
(치성광여래)이 봉안되어 있다.


▲  산신(山神) 가족이 담긴 산신탱

▲  삼성각에서 바라본 천하
바로 앞에 대웅전과 요사 뒷통수가 보이고, 수해(樹海)를 이루는 수리산
남쪽 줄기 너머로 인구 120만을 지닌 경기도의 중심 도시,
수원(水原)이 시야에 들어온다.

▲  수리사의 숙성된 흔적, 파괴된 석불과 석탑 잔재들

삼성각 옆에는 완전하지 못한 석재들이 고색의 때를 가득 머금으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넓적
한 돌판에는 주름이 여러 겹 그어진 큰 돌이 있는데, 딱 보니 석불의 흔적으로 보인다. 석불
의 얼굴과 아랫도리는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속에 죄다 휩쓸려 사라졌고 옷을 걸친 몸통
부분만 남은 것이다. 그 앞에는 석탑의 잔재로 보이는 돌이 놓여져 있으며, 예전 수리사에 5
층석탑이 있었다고 하므로 그 탑의 잔재나 옛 건물의 주춧돌로 보인다.
다들 왕년에는 한 가닥 하던 존재들이나 지금은 초췌한 몰골로 지나간 세월을 원망하니 역시
나 인생은 부질 없는 모양이다. 수리사의 오래된 숙성의 흔적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절을 중
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수습한 것이다.

※ 수리산 수리사 찾아가기 (2018년 9월 기준)
* 지하철 4호선 산본역(2, 3번 출구)에서 군포마을버스 2, 3-1번을 타고 중앙도서관 하차 →
  중앙도서관 정류장에서 수리산임도길(수리산로)을 따라 도보 50~60분
* 지하철 1,4호선 금정역(6번 출구)에서 안양시내버스 15번을 타고 중앙도서관 하차
* 지하철 4호선 대야미역(1번 출구)에서 군포 100-1번<60~80분 간격>, 군포마을버스 1-2번<60
  분 간격>을 타고 납덕골 하차 → 수리사까지 도보 25분
* 지하철 1호선 의왕역 2번 출구 건너편 정류장에서 군포 100-1번 이용
* 승용차 (경내 밑에 주차장 있음)
  ① 군포 → 대야미역 → 갈치저수지 → 덕고개 → 납덕골 → 수리사 
  ② 수원/안산 → 반월동 → 반월호수 → 납덕골 → 수리사
* 소재지 -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329 (속달로 347-181, ☎ 031-438-1823)


 

♠  수리산 마무리 (대야동 시골길, 반월호수)

▲  수리산을 뒤로하며 (수리사입구 남쪽)

수리사를 둘러보고 임도5거리로 다시 나가려고 했으나 사람의 마음은 갈대라고 반월호수로 길
을 잡았다. 수리사입구에서 임도5거리 방면 동쪽 산길 대신 남쪽 길을 쭉 내려가면 되는데 수
리사에서 호수까지 무려 4km를 걸어야 된다.

반월호수 방면 도로(속달로, 둔대로)는 잘 포장되어 있어 걷기는 좋다. 군포시가 서울과 안양
의 배후 도시로 20여 년 동안 크게 성장하여 시가지가 나날이 확장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겉
으로 보이는 군포는 완전 시가지와 아파트만 있는 도시로 보인다. 허나 시내 서남부에는 산과
논, 밭, 숲이 전부인 시골도 여실히 남아있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군포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대야동과 속달동 지역으로 이들이 군포의 시골로 남게 된 것은 수리산과 반월호수 덕분
이다. 그들이 이곳을 지킨 든든한 방패인 것이다.


▲  속달동 마을에서 바라본 수리산과 바다처럼 너른 하늘

▲  속달동 시골길(둔대로)

납덕골에서 이르면 길은 2갈래로 갈린다. '속달로'를 계속 고집하여 동남쪽으로 가면 갈치저
수지, 덕고개, 대야미 쪽으로 이어지며, 서남쪽 '둔대로'로 가면 반월호수로 이어진다. 둔대
로는 2차선 길에서 이내 조그만 시골길로 변신하여 우리를 인도한다.

가로수인 듯, 아닌 듯, 길가에 자리한 나무들은 슬슬 가을옷을 꺼내들고 있고, 길 주변에 펼
쳐진 논은 푸르게 익어 올해도 변함없이 풍년을 예감하고 있었다. 자고로 이런 시골길과 숲길
은 도시인들에게 청량제이자 꿀 같은 존재로 속세에서 상처받고 오염된 안구와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아주 좋다.


▲  벼들이 푸르게 익어가는 속달동 평야

▲  반월호수 북쪽 개울(반월천)

그림 같은 시골길(둔대로)을 걷느라 시간도, 지루함도 잠시 잊고 있으려니 다리 하나가 나온
다. 다리 밑 반월천에는 나들이객들이 개울 주변에 자리를 피고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
이들은 아직까지도 덤벼들고 있는 여름 제국(帝國)의 기운에 맞서고자 개울에 들어가 애궂은
물고기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물놀이를 즐긴다. 그런 평화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가다보면
영동고속도로가 나오고 그 밑도리를 지나면 반월호수가 펼쳐진다.


▲  서쪽에서 바라본 반월호수(半月湖水, 반월저수지)

▲  북쪽에서 바라본 반월호수

반월저수지는 반월호수라고도 불린다. 안양/안산권의 이름난 호수 관광지로 1957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조성된 오래된 호수이다. 총 저수량은 118.7만㎥로 만수 면적은 37ha에 이르며, 수리산(집예골, 샘골, 지방바위골)이 베푼 물을 먹고 자라 아주 단단히 물이 올랐다. 수리사
계곡도 바로 이곳으로 내려와 잠시 머문 다음 큰 세상으로 흘러간다.

호수는 농어촌공사 화성,수원지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호수가 산에 빙 둘러싸여 있어 주변
풍경이 제법 아름답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관광지로 손질되어 산책로와 공원이 닦였으며, 식
당과 분위기를 내세운 까페가 많이 들어서 이제는 수리산 못지 않은 군포시의 꿀단지가 되었
다.
호수 주변은 추석 연휴의 끝을 잡은 나들이 수요와 그들이 끌고 온 차량들로 완전히 시장통을
이루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수리산에서 내려온 산꾼,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꾼들, 이곳으
로 밥이나 차, 커피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몰려들어 호수의 몸값을 더욱
높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호수는 특히 저녁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반월낙조(半月落照)라 하여 2004년에 군포
3경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호수도 마찬가지겠지만 새벽 물빛에 슬금 피어오르는 물
안개가 아주 장관이다.

▲  오늘도 평화로운 반월호수

▲  호수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매뭇새를 다듬는 산

◀  푸른 하늘과 구름도 잠시 길을 멈춘
반월호수


▲  호수 곁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고속전철

호수 바로 서쪽에는 경부고속전철 고속선이 닦여있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고속열차(KTX)가 빛
을 가르며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징하던지 호수가 쩌렁쩌렁 울리고, 귀신까
자빠트릴 정도이다. 호수를 거울로 삼은 존재들이 하늘과 구름, 산, 나무, 꽃에다가 고속전철
까지 참 다양하다.
이곳을 지나는 고속전철은 위로는 서울, 용산, 행신역, 아래로는 대전, 동대구, 포항, 부산,
마산, 진주, 익산, 광주송정, 목포, 여수까지 운행하며, 하루에 수백 차례 지나간다.


▲  호수에서 만난 서양 모화사상의 잔재, 풍차

호수 북쪽에는 산책로와 공원이 닦여져 있다. 그 산책로를 거닐다보면 천천히 바람개비를 돌리
고 있는 이색 정취의 풍차를 만나게 된다. 나무로 축소해서 만든 것으로 나름 어울리는 풍물시
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양 모화사상의 잔재이기도 하여 좀 씁쓸하기도 하다. 이 땅의 민중
과 18세기부터 함께한 물레방아를 두었으면 더 정감이 컸을텐데 말이다.

반월호수는 다 돌지는 못하고 1/4 정도만 돌았다. 시간도 이미 17시가 넘은 상태이고 배도 고
프기 때문이다. 호수는 이 정도면 충분히 본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미련을 버리고 군포마을
버스 1-2번을 타고 대야미로 이동, 대야미역에서 4호선 전철을 타고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다.
이렇게 하여 가을맞이 수리산, 반월호수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 반월호수 찾아가기 (2018년 9월 기준)
* 지하철 4호선 대야미역 1번 출구 밖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군포마을버스 1-2, 6-1번을 타고
  반월호수(둔터) 하차 <6-1번은 산본역 2,3번 출구 밖 정류장에서도 이용 가능>
* 승용차 (호수 주변에 주차장 있음)
① 안양,군포 → 대야미역 → 둔대초교 → 반월호수
② 안산,화성 → 반월 → 팔곡2교차로 → 반월호수
* 소재지 - 경기도 군포시 둔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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