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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암산 정상 남쪽 암릉에서 바라본 호암산 서남쪽 능선
서울 서남쪽 끝으머리에 우뚝 솟은 호암산(393m)은 삼성산의 일원이다. 호랑이 모습의 바위산이라(또는 호랑이를 닮은 바

위가 있어서) 호암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관악산과 함께 서울을 위협하는 뫼로 인식되었다. 하여
호암산의 기운을 누르고자 비보풍수의 일환으로 정상 밑에 절을 짓고 호랑이를 누른다는 뜻에서 호압사라 했다.
사진 한복판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호암산의 서남쪽 봉우리로 바로 저곳에 호암산성터와 한우물, 석구상 등의 오래된 문화
유산과
칼바위, 신랑각시바위 등의 자연산 명소가 깃들여져 있다. 또한 호암산 정상부에서 서남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서남
쪽 능선
길은 경사도 느긋한 부드러운 길로 중간에 암릉이 있긴 하나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게다가 서쪽(금천구, 광명시 방
향)과 서남쪽(안양, 수리산)이 확 트여있어 일품 조망을 자랑한다.

 

2. 호암산 서남쪽 능선길

 

3. 호암산 서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안양시와 수리산 (안양시내 너머로 보이는 산이 수리산임)

 

 

4. 부드럽게 펼쳐진 호암산 서남쪽 능선길

 

5. 석구상을 코앞에 둔 호암산성 북문터 앞

 

 

6. 호암산성 북문터

호암산 서남쪽 봉우리(347m) 정상 주변에 테뫼식 석축산성인 호암산성의 흔적이 깃들여져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1,547m
, 면적 133,790평방미터로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사이에 신라가 군사기지 및 행정치소로 조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산성 서
측에서는 인천앞바다 등 서해바다가 어렴풋이 보이며, 북쪽으로는 한강도 시야에 들어온다. 하여 서해바다와 한강, 내륙을

잇는 요충지로 중요시 되었으며, 양천고성과 행주산성, 오두산성(파주)을 잇는 거점 성곽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려 때도 한강 수로와 서해바다를 살피는 요충지로 쓰였으며, 임진왜란 시절에는 권율장군이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산성의 형태는 북동에서 서남으로 길쭉한 마름모꼴이며, 축성 방식은 외벽을 돌로 쌓고 뒷면을 잡석과 자갈로 채우는 내탁

법을 사용했다. 현재 동벽의 북쪽 성벽이 잘 드러나 있으며,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성곽을 포함해 1,016m 정도가 전하고 있

다. 산성 안의 시설로는 제1한우물과 제2한우물 등의 큰 우물과 건물터, 석구상이 있으며, 기와와 청동숟가락, 철제 월형도
끼, 희령원보 등의
유물이 수두룩하게 발견되었다.

예전에는 석구상에서 건물터 유적 동쪽 구간에서나 제대로 성곽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나 2018년 이후 조사를 벌이면

서 숨은그림찾기처럼 숨겨진 성곽 흔적이 많이 드러났고, 석구상 주변에서 북문터, 석수역으로 이어지는 서남쪽 능선에서

남문터, 불영암 남쪽 가파른 곳에서 서문터가 확인되었다.

 

7. 호암산성 석구상

호암산성 북문터 안쪽에는 호암산의 오랜 상징인 조그만 석구상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돌로 만든 개의 상, 석구

상으로 통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정체에 대해 말들이 조금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광화문 해태상과 마주 보게 하여 관악
산의 화기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해태상으로 여기기도 했는데, 한우물을 발굴조사하면서 '석구지(石狗池)'라 새겨진 장대
이 출토되었고, 시흥읍지 형승조에는
'호암산 남쪽에 석견(石犬) 4두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고자 하였으며 지금 현남7리에 사견우(개의 형상 4개)가 있다'란 기

록이 있어 해태상이 아닌 석구상으로 크게 무게가 쏠리고 있다.

석구상의 크기는 길이 1.7m, 폭 0.9m, 높이 1m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 부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으나 대략 조선 중기 이후로 여겨진다. 그는 정확히 북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데, 정말로 광화문 해태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를 만든 이유도 속시원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호암산의 기를
누르고 서울을 지키려는 비보
풍수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8. 가까이서 바라본 석구상의 위엄

 

9. 귀엽게 묘사된 석구상의 꼬랑지 (고양이나 호랑이의 꼬랑지 같음)

 

10. 석구상 남쪽 호암산성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많이 초라해진 호암산성 성곽터가 건물터 유적 동쪽까지 쭉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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