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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왕산 늦가을 나들이 '
(절골, 가메봉, 용연폭포, 용추폭포, 주왕계곡)

▲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

▲  용추폭포

▲  절골계곡


 

늦가을이 하늘 아래 세상을 곱게 수놓기 시작하던 10월의 한복판에 늦가을 단풍 성지로 격
하게 추앙받고 있는 청송(靑松) 주왕산을 찾았다.
주왕산은 대자연이 경북 한복판에 빚은 크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호남 내장산(內藏山)에 버
금가는 단풍의 대표 성지(聖地)이다. 서울에서 약 600리(옛 10리는 약 5km) 거리로 당일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좀 넉넉하게 무박 2일 코스로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 10시, 신도림역(1,2호선)에서 일행들을 만나 준비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주
왕산이 있는 동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늦가을 단풍의 화려한 향연과 아직까지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는 주왕산에 대한 강한 설
레임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고 검은 도화지가 되버린 차창 밖만 열심히 바라보며 나름대
로 주왕산을 그려본다. 말로만 듣던 주왕산의 실물은 어떠할까?? 단풍은 제법 물이 올랐겠
지? 대전사까지 모두 볼 수 있을까? 등등...

서울을 출발하여 약 5시간 30분 만에 주왕산 남쪽 끝에 자리한 주산지 주차장(상이전마을)
에 이르렀다. 아직 새벽 어둠에 잠긴 주차장에는 천하 곳곳에서 산꾼과 나들이꾼을 바리바
리 싣고 온 관광버스로 가득한데,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주차장 모퉁이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먹었다.
밥과 반찬을 가져온 이들이 많았고, 취사 도구까지 가져와 라면과 찌개, 오뎅탕 등을 해먹
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게 갖은 먹거리들이 모두 모이니 그야말로 출장 뷔페가 따로 없
으며, 주차장 옆에는 식당을 겸한 가게가 환하게 불을 켜며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때우고 4시 30분에 다시 버스를 타고 서쪽에 자리한 절골교로 이동했다. 그
림 같은 비경을 자랑하는 주산지(注山池)도 봤으면 좋으련만 그곳은 일정에 없었기 때문에
공간의 여유가 있는 주산지 주차장에서 아침만 먹고 바로 철수한 것이다.
절골교에서 모두 버스에서 내려 절골탐방지원센터까지 12분 정도 걸었다. 여기서 주왕산의
빗장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빗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주왕
산의 품으로 들어섰다.


 

♠  주왕산 절골, 가메봉, 사창골

▲  주왕산 뒷쪽에 숨겨진 절골

절골(절골계곡)은 주왕산 동남쪽에 깃든 계곡으로 주왕산 뒷통수에 해당된다. 주산천(注山川)
의 상류로 골짜기가 꽤 깊고 숲이 울창하며,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해서 절골이라 불린다. 계
곡 길이는 8km로 주왕산 동쪽 대관령(731m)에서 발원한 갈전골(갈절골)과 신술골이 한데 모여
절골을 이룬다.
삼삼한 숲에 포근히 감싸여 태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여름 제국도 눈치를 보며 피해갈 정
도로 시원하다. 계곡은 물이 풍부하고 기암괴석과 반석, 간간히 나오는 조그만 폭포가 운치를
더해주며. 상류로 올라갈수록 풍경의 질이 높아지니 꼭 상류(대문다리)까지는 오르기 바란다.
  
절골코스는 절골탐방지원센터에서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데 여러 차례 계곡을 건너야 된다. 반
듯한 다리 대신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으나 부실한 곳이 적지 않아 자칫 물에 빠지기 쉽다. 하
지만 수심이 얕아 그리 위험은 없으며, 계곡 트래킹 및 피서지로 아주 그만이다.

절골은 인근 주산지와 함께 '내주왕계곡'이라 불리며, 풍경이 고와 주왕계곡(周王溪谷) 못지
않다. 계곡을 옆에 끼고 상류로 올라가다가 대문다리를 지나서부터 계곡과 서서히 멀어지며,
산길 경사도 점차 각박해져 깔딱 직전까지 이른다. 그렇게 각박한 산길을 오르면 가메봉 동쪽
갈림길에 이르고, 여기서 서쪽 능선길로 가면 가메봉이다.

* 절골탐방지원센터 → 대문다리 → 가메봉 (3시간 20~30분 소요)


▲  고요함에 잠긴 절골 (절골 중류)
늦가을 향연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계곡을 거울 삼아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  벼랑 사이를 흐르는 절골

▲  늦가을 채색이 짙은 절골 상류
너른 반석과 조촐한 폭포가 풍경의 아름다움을 돕는다.

▲  가메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바라본 주왕산 남쪽 줄기
산 아랫도리와 중간 도리는 단풍의 향연이 한참이나 해발 700m 이후로는 벌써부터
앙상한 분위기를 자아내 올해도 거의 저물었음을 실감케 한다.

▲  주왕산 가메봉(882m) 바위와 그 너머로 보이는 왕거암

가메봉은 주왕산 구역에서 두수람(923m), 왕거암(907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이다. 주왕산 동
쪽에 자리한 가메봉은 넓직한 바위로 이루어져 동쪽과 남쪽, 서쪽이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으
며, 하늘에서 가까운 봉우리이나 칼처럼 솟은 뫼에 꽁꽁 둘러싸여 있어 조망의 질은 그리 시
원치 못하다.

우리는 여기서 간단히 행동식을 섭취하고 주왕계곡으로 내려갔다. (일부는 칼등고개를 경유하
여 주왕산 정상으로 이동)


▲  가메봉에서 바라본 천하 (주왕산 남쪽)
가메봉이 아무리 높다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  가메봉에서 주왕계곡, 사창골로 내려가는 산길


 

♠  주왕산 사창골, 용연폭포

▲  사창골 상류

가메봉에서 울퉁불퉁한 산길을 20~30분 정도 내려가면 사창골이 슬쩍 모습을 비춘다. 가메봉
북쪽에서 발원하여 주왕계곡으로 흘러가는 사창골은 숲이 매우 삼삼하고 바위와 소(沼)가 많
아 절골 못지 않은 고운 매력을 드러내고 있으며, 후리메기3거리를 지나 40~50분 정도 내려가
면 주왕계곡이 모습을 비춘다.


▲  동그랗게 자리를 닦은 조그만 소(못)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하늘에서 선녀 누님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목욕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못의 사이즈도 선녀 누님에 걸맞게
아담하다.

▲  너른 반석과 조그만 폭포
계곡 주위로는 낙엽이란 쓸쓸한 꼬리표를 단 단풍들이 귀를 접고
인생의 마지막을 노래하고 있다.

▲  풍덩 스킨쉽을 하고 싶은 동그란 소
사창골 냇물은 여기서 숨 좀 고르다가 다시 종점 없는 길을 재촉한다.

▲  사창골 하류 산길
사창골 산길은 하류에 이르러 잠시 계곡과 멀어지고 벼랑길로 돌변한다.
벼랑 밑에는 사창골이 빚은 절구폭포가 있으며, 벼랑길을 지나면
주왕계곡에 이르게 된다.

▲  주왕계곡 용연폭포(龍淵瀑布, 제3폭포)

주왕계곡(주왕천계곡, 주방천계곡)은 주왕산(720m)의 중심 계곡으로 '내주왕계곡'이라 불리기
도 한다. 주왕산 동쪽에서 발원한 큰골에서 시작하여 주왕산 심장부를 구비구비 돌다가 대전
사를 지나서 주방천(周房川)이란 이름으로 속세로 흘러간다.
용연폭포와 용추폭포, 시루봉, 학소대, 급수대 등 대자연이 빚은 온갖 작품이 가득해 눈을 부
시게 하며, 특히 용추폭포 주변은 주왕산의 모든 것을 긁어모은 것처럼 대장관을 이룬다.
깊은 산골에 숲이 울창하고, 계곡 좌우는 높은 벼랑으로 이루어져 협곡이 적지 않은데, 그런
계곡을 둘러싸고 600m가 넘는 많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그래서 주왕산을 석병
산(石屛山)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험한 지형을 지닌 탓에 예로부터 산적들이 많았고, 난리가
날 때마다 이곳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특히 바위 봉우리가 많아 설악산,
월출산(月出山)과 더불어 이 땅의 3대 암산(岩山)으로 격하게 꼽히기도 하며, 경북의 금강(金
剛)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 재위 780~785)의 족자(簇子)이자 원성왕(元聖王)에게 밀린 김주원(金周
元)이 머물렀다고 해서 주방산(周房山)이라 불렸는데, 이후 그는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해
졌다. 하여 그 연유로 주왕산으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이며, 고려 후기에 나옹화상이 그리
바꾸자고 해서 이름이 갈렸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다른 유래로는 당나라 사람인 주도(周鍍)가 8세기 후반,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칭하며
진나라 재건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당나라군에게 보기 좋게 털렸다. 그래서 요동을 거쳐
신라로 도망, 주왕산이 험하다는 풍문을 듣고 그곳에 들어가 주변을 약탈하며 후일을 도모하
다가 당나라의 토벌 요청을 받은 신라에게 털리고 자신은 잡혀 처단되었다. 그래서 주왕산이
라 했다고 한다.
허나 이 전설은 마땅한 기록도 없고 역사적인 근거가 없으며, 조선 때 명나라에 대한 꼴통 사
대주의(事大主義)에 젖은 지역 유생들이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명나라가 있던 중원대륙과
청송의 명산인 주왕산을 연결시켜 지역의 자부심을 어떻게든 높이려고 머리를 싸맸던 유생들
의 그릇된 생각이 지어낸 산물인 것이다.

주왕계곡은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이란 이름으로 국가 명승 11호로 지정되었다.


▲  용연폭포의 위엄 (윗폭포)

주왕계곡 상류에 자리한 용연폭포는 제3폭포, 쌍폭, 용폭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간단
하게 제3폭포라 불렸으며, 2단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폭포가 위엄을 자랑하며 하얀 실타래 같
은 물줄기를 밑으로 뽑아낸다. 폭포 밑에는 푸른 못이 펼쳐져 있는데, 영덕 강구항 앞바다와
이어져 용이 머물렀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있다. 그래서 용연폭포란 간판을 지니게 되었
다.
윗폭포 옆에는 얕게 파인 3개의 동굴이 있어 폭포의 경관을 더욱 신비롭게 꾸며주며, 물소리
가 우렁차 귀신도 도망을 칠 정도이다. 못 남쪽에는 탐방로와 조망대가 있는데, 사람들이 폭
포를 구경하느라 금방금방 빠지지를 않아 정체가 심하다. 그만큼 폭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제
대로 앗아간 것이다. 우리도 폭포를 구경하느라 한동안 발을 움직이지 못했지. 대자연의 기묘
한 작품 앞에 우리가 할 일이란 그저 감탄사 연발과 사진 촬영 뿐이다.

▲  용연폭포 옆에 패인 3개의 동굴

▲  푸르게 익은 용연폭포 못 (윗폭포)


▲  용연폭포 아랫폭포
아랫폭포도 윗폭포 못지 않은 장쾌함을 보여준다. 이곳은 못 바로 앞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  주왕계곡의 백미, 절구폭포~용추폭포

▲  절구폭포로 인도하는 좁은 사창골 협곡

용연폭포를 둘러보고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면 절구폭포로 인도하는 좁은 협곡이 마중을 한다
. 앞서 사창골 산길의 아랫쪽으로 사창골의 하류이기도 한데, 그 협곡을 5분 정도 들어가면
그 길의 끝에 절구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  절구폭포 (제2폭포)

바위 너머 윗쪽에서 2단으로 쏟아지는 절구폭포는 제2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응회암(凝灰巖)
에 주로 생성되는 절리(암석이 갈라진 틈)에 의해 생긴 폭포로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윗폭
포 밑에는 선녀탕(仙女湯)이 수줍은 듯 숨겨져 있으며, 아랫 폭포 밑에는 수심이 얕은 못이
형성되어 있어 물놀이 장소로 아주 그만이다.
이곳은 사창골 하류로 폭포 주변이 모두 벼랑으로 막혀 길이 없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나가야
된다. 전쟁 때 만약 이곳으로 몰린다면 정말 몰살을 각오해야 될 정도로 궁벽한 곳이나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물이 시리도록 맑아서 내 즐겨찾기 명소로 살짝 숨기고 싶다. 현재 선녀탕과
윗폭포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니 얌전히 아랫폭포 앞에서만 머물기 바란다.


▲  옆에서 바라본 절구폭포

▲  병풍바위

절구폭포를 둘러보고 주왕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주변 풍경이 서서히 흥분을 하면서 나도 모르
게 장대한 벼랑에 감싸이게 된다. 그 벼랑은 병풍바위로 계곡 양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솟은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둘러져 그야말로 하늘만 보이는데, 벼랑 밑에는 옥처럼 맑은 주왕계곡이
청정함을 자랑하며 힘차게 흐르고 있다.
발을 전혀 들일 수도 없을 이런 험지에 인간들은 산천유람 욕구를 위해 마구 탐방로를 내었는
데, 벼랑 밑부분에는 혹시나 모를 대자연의 테러(낙석)에 대비해 지붕까지 둘렀다. 주왕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웅장한 멋을 지닌 병풍바위 밑에는 제1폭포라
불리는 용추폭포가 달려있는데, 이곳 풍경은 가히 압권이라 앞서 제2폭포, 제3폭포를 능가한
다.
대자연의 위대한 작품에 혼이 탈탈 털린 속인들은 사진을 찍고 풍경을 구경하느라 좁은 탐방
로는 늘 정체를 빚어 행렬이 다소 버벅거리는데, 풍경이 풍경인지라 정말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게 동물과 신(神)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나 축내는 인간들의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아무리 여름 제국이 무더위 갑질로 천하를 뜨겁게 달구어도 이곳만큼은 어림도 없을 정도로
무더위를 잊게 한다. 벼랑에 감싸여 햇살도 마음 놓고 착륙을 못하고, 계곡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니 땀이 붙어있을 재간이 없다.

용추폭포 윗쪽에는 선녀탕이 있고, 그 위에 구룡소(九龍沼)가 있으며, 탐방로 밑은 계곡과 벼
랑으로 되어있어 계곡과 폭포로의 접근은 통제되어 있다.


▲  대륙의 협곡 같은 병풍바위의 위엄
협곡 사이로 탐방로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다. 이렇게 보니 주왕산의 옛 이름인
석병산(石屛山)이란 이름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  용추폭포 구룡소
수심도 깊고 지형도 각박한 이곳에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  구룡소와 용추폭포 사이에 자리한 선녀탕
선녀 누님들이 들어가기에는 수심이 좀 깊다. 하늘나라 선녀들은
키가 나무만 했던 것일까?

▲  용추폭포(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와 달리 폭포의 정면 모습을 담을 수가 없다. 그만큼
이곳은 칼처럼 솟은 벼랑 밑에 무섭게 펼쳐진 첩첩한 협곡이다.
그나마 탐방로가 닦여져 있으니 이 정도로라도 보는 것이다.

▲  가까이에 있으나 그림의 떡처럼 보이는 용추폭포 밑 동그란 못

▲  벼랑 사이로 각박하게 이어진 병풍바위 협곡 (서쪽 부분)


 

♠  주왕산 마무리

▲  주름선이 인상적인 시루봉 ▲

병풍바위 협곡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는 학소교가 나온다. 다리 옆에는 홀로 솟은 날씬한 돌기
둥이 손짓을 하는데, 그 돌기둥이 시루봉이다.
시루봉은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다듬은 작품으로 그 모습이 떡을 찌는 시루처럼 생겼다
하여 시루봉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바위 피부에는 주름선이 많은데 옆에서 보면
어두운 표정을 지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여 신비감을 더한다. 완전 깎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무장된 천험의 돌기둥이라 접근은 정말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 저 봉우리 위에는 주왕산 산신
이나 신선만의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들의 숨겨진 보물이라도? 그러니까 대자연
이 사람들이 오르지 못하게끔 저렇게 깎아 놓았을 것이다.

이런 절경에는 꼭 옛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붙여놓은 전설이 하나씩은 꼭 있기 마련, 그 내용
은 대략 이렇다.
옛날 어느 추운 겨울, 한 도사가 바위 위에 올라가 열심히 도를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신선 2명이 하늘에서 내려와 도사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바위 밑에 불을 지폈는데,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며 봉우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게 끝임.


▲  시루봉 밑 주왕계곡


▲  학소대(鶴巢臺)

시루봉 맞은편에는 학소대라 불리는 커다란 낭
떠러지가 장대한 모습을 자랑하며 시루봉과 자
웅을 겨룬다.

계곡 바로 옆에 직각으로 높이 솟아있어 그 장
엄함에 주눅을 들게 만드는데, 시루봉 마냥 낭
떠러지로 이루어져 있어 철옹성 마냥 범접하기
가 어려워 보인다.
절벽 꼭대기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 세상
을 굽어보고 있으며, 학소대의 덩치가 대단하
여 주변 계곡에 늘 그늘을 드리운다.
옛날에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이 무리를 지
어 살았다고 해서 학소대라 불리며, 그 학소대
밑에 도승(道僧)이 절을 짓고 살았는데, 꿈에
신선이 나타나 빨리 피하라고 재촉하므로 밖으
로 나오니 위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져 절을 덮
쳤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한 토막 전해온
다.


▲  인간이 만든 비루한 작품, 학소교 (학소대 밑)
대자연의 걸쭉한 작품을 쭉 보다가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 다리를 보니 정말로
못봐주겠다. 아무리 아치형으로 만들어도 거기서 거기임..

▲  급수대(汲水臺)

학소대를 지나면 육중한 바위 봉우리인 급수대가 모습을 비춘다. 그 역시 낭떠러지로 이루어
진 30여m의 주상절리(柱狀節理) 바위로 옛날 주왕의 군사들이 바위 위에 무자위를 설치해 계
곡 물을 위로 소환했다는 전설이 있어 급수대란 간판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주왕의 전설도
거짓이며 급수대의 전설 또한 거짓이다.


▲  주왕계곡 북쪽에 솟아난 벼랑 (이름은 모르겠음)

▲  자하성(紫霞城)터

급수대를 지나 계곡 하류(대전사)로 계속 길을 재촉하면 길 오른쪽에 자하성터가 초췌한 몰골
로 마중을 한다.
자하성은 주왕굴을 중심으로 하여 지형을 이용해 쌓은 산성(山城)으로 주방산성, 주왕산성이
라 불리기도 한다. 주왕이 신라군을 막고자 쌓았다고 하나 현실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 때 축
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곳을 거쳐 갔다는 신라 왕족 김주원이 자신에게 돌아올 왕위를
가로챈 김경신(원성왕)을 크게 원망하며, 여기서 잠시 딴 마음을 품지 않았을까 싶다. 허나
그 마음도 부질 없음을 깨달았는지 강릉(명주)으로 내려가 거기에 둥지를 틀었다.

성 둘레는 12km에 이르렀다고 하며, 대자연의 끊임없는 태클과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죄
다 무너지고 지금은 일부만 겨우 남아 있다. 그 모습도 돌무더기처럼 남아있어 자하성터 안내
문이 없었다면 그냥 자연산 돌무더기로 지나쳐도 이상할 것이 없다.


▲  주왕계곡의 흥미로운 존재, 아들바위

자하성터를 지나면 계곡 냇가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아들바위를 만나게 된다. 덩치가 큰 네
모난 바위가 다소 기운 모습으로 자리해 있는데, 겉모습은 딱히 유별난 것은 없으며, 그냥 계
곡에 놓인 커다란 바위 정도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신비한 존재로 각인되어 옛날부터 아들바위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땅의 오랜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아들 선호 사상이 빚은 산물이라고나 할까? 냇가 한복판
에 저런 커다란 바위가 있으니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돌을 던졌을 것이고, 바위 위에 얹혀지면
마치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것이 점차 확장되어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이
야기까지 생겨난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바위와 달리 여기서는 그냥 던지면 안된다. 바위를 등지고 다리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골인을 해야 아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왼팔로 던져 골인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새 수법이 바뀐 모양이다. 어쨌든 오랜 세월 사람들이 던질 돌이 바위
위에 수북히 쌓여 그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한다.


▲  잠시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다 (주왕계곡 하류와 주왕산 산줄기)

▲  주왕계곡 하류 (대전사 동쪽)

▲  주왕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대전사

주왕산에 들어서면서 시간이 되면 주왕굴과 대전사(大典寺)까지 말끔히 둘러보려고 했다. 주
왕산 상의주차장까지 13시까지 모이기로 해서 시간이 좀 넉넉할 줄 알았는데 벌써 12시 반이
넘어버렸다. 상의주차장까지는 앞으로도 30분을 더 가야 된다. 그러니 이들을 제대로 볼 시간
이 없는 것이다.
하여 산을 좀 타야 되는 주왕굴은 다음으로 미루고 상의주차장 직전 길목에 있는 대전사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 이 절은 신라 후기에 창건된 오래된 절로 주왕산의 터줏대감격 존재인
데, 문화유산이 여럿 있어서 사진에 모두 담고 싶었다. 허나 시간 부족이란 현실 앞에 경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쳐야 했다.
그렇다고 무리를 해서 보는 것도 단체 활동에 대한 예의는 아니며, 너무 시간에 쫓기듯이 보
느니 쿨하게 다음으로 넘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얼마나 아쉽던지 아무리 다음에
오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 다음이란 것이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서울에서 제
법 먼 거리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전사를 지나니 바로 주왕산의 대표 관문인 상의 매표소이다. 이곳은 대전사 때문에
문화재 관람료란 명목으로 입장료를 뜯고 있는데, 매표소 사람들의 눈빛에는 어느 누구도 그
냥 들여보내서는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가 엿보였다. 그 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주왕산 상의(대전사)매표소만 입장료를 징수함, 나머지(절골, 월외리 등)는 입장료 없음>

상의매표소를 지나니 다른 유명 산과 마찬가지로 먹거리촌이 징하게 펼쳐진다. 도토리묵과 파
전, 송이, 동동주, 산채비빔밥, 백숙 등을 취급하고 있는데, 서둘러 길을 재촉하려는 찰라 낯
익은 얼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적지 않은 일행들이 거기서 동동주 1잔에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늦을까봐 대전사 등 많은 것을 두고 왔는데, 이렇게 여유롭게 산행
뒤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럴줄 알았다면 대전사라도 제대로 보고 오는 건데
갑자기 기분이 허탈해진다.
상황이 뭐 그리 되었으니 다시 대전사로 가기는 틀렸고, 일행들과 어울려 주왕산의 명물인 송
이와 도토리묵, 동동주 1잔을 걸치며 같이 상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상의주차장에서 바라본 주왕산과 주왕계곡

상의주차장에 도착하니 13시 20분, 늦게 오는 사람들이 속출하여 13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
을 했다. 주차장에는 산꾼과 나들이꾼을 태운 관광버스와 차량들로 홍수를 이루었고 그에 아
랑곳하지 않고 차량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어온다. 그러나보니 들어오는 길은 정체가 대단하여
많은 차량들이 마을 밑에 차를 대고 걸어오기도 했다.

주왕산을 벗어난 우리는 안동(安東)으로 넘어갔다. 안동댐 주변에 자리한 식당에 들어가 안동
의 토속 음식인 헛제사밥 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헛제사밥 정식은 일반적인 제삿상
음식과 비슷하다.
헛제사밥의 유래는 조선 때 유생들이 배가 고프거나 비싼 음식을 먹고 싶어서 성현(聖賢)들에
게 제사를 지낸다고 거짓말을 치고 노비와 주변 백성들을 닥달하여 만들게 한 음식상으로 '헛
'이란 접두어를 붙여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그 음식상이 이제는 안동의 대표 밥상이 되
어 전국에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이곳 헛제사밥 정식은 나물이 버무려진 놋쇠 그릇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인데, 제사 때 쓰는 국
과 간고등어, 전, 떡, 잡채 등이 정식을 이룬다. 맛도 그런데로 괜찮은 편, 순식간에 밥과 반
찬을 비우고, 술도 여러 잔 마시니 졸음이 밀려와 나를 희롱한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식당 남쪽에 자리한 낙동강(落東江)과 월영교에서 잠시 소화 좀 시키다가
16시 30분에 출발했다. 아무리 목적지가 주왕산이라고 해도 마지막 종점은 결국 집이다. 서울
까지는 4시간 정도 걸렸으며, 피곤한 탓에 자다깨다를 무한으로 반복했다.

정말 번개처럼 날라가 재미나게 보냈던 무박 2일, 그곳이 그리워지고 같이한 이들이 보고 싶
은 마음에 비록 보잘 것은 없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다소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이란 인연을 잡아 해결하면 될 것이다.

* 절골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 주왕계곡(용연폭포, 용추폭포 등)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 주왕산국립공원(☎ 054-870-5300) 홈페이지는 ☞ 이곳을 흔쾌히 클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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