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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긴고랑계곡 봄나들이



' 아차산, 긴고랑계곡 봄나들이 '

아차산둘레길과 용마산

▲  아차산둘레길과 용마산

긴고랑계곡 벚꽃나무길 아차산4보루

▲  긴고랑계곡 벚꽃나무길

▲  아차산4보루



 


아차산(峨嵯山, 295.7m)은 수도권 고구려(高句麗) 유적의 대표 성지(聖地)이자 서울의 커
다란 동쪽 지붕으로 용마산(龍馬山, 348m)과 망우산(忘憂山, 282m), 시루봉, 홍련봉을 식
구로 거느리고 있다.
아차산 식구들은 내 즐겨찾기 뫼의 일원으로 매년 적지 않게 재활용을 하여 어느덧 200회
가 넘게 안겼는데, 그렇게 안겼음에도 갈 때마다 늘 마음이 설레고 새롭다.

기나긴 겨울 제국이 저물고 봄이 겨울로부터 천하를 해방시키자 아차산의 봄 풍경이 문득
그리워 간만에 그의 품을 찾았다. 야심 차게 추진된 이번 나들이는 아차산 기점의 하나인
구의동(九宜洞) 기원정사에서 시작했다.



 

♠  아차산둘레길 (기원정사~긴고랑 구간)

▲  기원정사에서 아차산으로 인도하는 계단길 (기원정사 방향)

아차산역(5호선) 1번 출구에서 바로 나오는 골목길(천호대로 129길, 영화사로11길)을 10분 정
도 쭉 들어가면 그 길의 끝에 기원정사(祇園精舍)란 조그만 현대 사찰이 있다. 천호대로129길
구간에는 온갖 식당들이 즐비해 후각과 미각, 식욕을 마구 들쑤시는데, 아차산을 타고 기원정
사나 영화사(永華寺)로 내려오면 이 골목길에서 많이 저녁 뒷풀이를 한다.

기원정사 옆구리에는 아차산으로 끌어주는 나무데크 계단길이 손을 내밀고 있다. 하얀 피부의
벚꽃과 노란 피부의 개나리가 마중하는 그 계단을 오르면 이내 4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직
진하면 아차산 주능선으로 이어지며, 좌/우 길은 아차산둘레길이다. 나는 긴고랑 방향인 왼쪽
길로 접어들어서 긴고랑계곡으로 이동했다.


▲  아차산둘레길 나무데크길

아차산 남쪽과 서남쪽, 서쪽 허리에 둘러진 아차산둘레길은 고구려정 밑 평강교에서 시작하여
용마산 너머 중곡지구까지 이어지는 3.8km의 달달한 숲길이다.
아차산에는 이미 주능선을 따라가는 서울둘레길2코스(용마, 아차산코스)와 아차산 주능선과
아차산 동쪽 자락을 도는 구리둘레길이 있으나 아차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보니 광진구(廣
津區)도 아차산 광진구 구역에 둘레길을 그어 아차산둘레길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평강교(친수계곡)에서 기원정사 윗쪽까지는 나무데크길이 깔려있어 안산자락길 못지 않은 편
한 둘레길의 정석을 보여주며, 기원정사 윗쪽에서 긴고랑 구간은 나무데크길과 흙길, 바위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고루고루 섞여있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일부 구간에 경사가 조금 있
을 뿐, 그 외에는 착한 수준이며, 긴고랑에서 중곡지구까지는 용마산의 각박한 산길을 넘어야
되는데, 이 구간에는 용마산1보루와 2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기원정사 윗쪽~긴고랑 구간에는 유난히도 진달래가 많이 피어나 봄의 완연한 기운을 전해주며
개나리와 벚꽃도 이따금씩 나와 지나가는 나그네를 격려한다.


▲  연분홍 진달래가 화사하게 마중하는 아차산둘레길 (긴고랑 방향)

▲  부드럽게 이어지는 아차산둘레길

▲  아차산둘레길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구의동과 중곡동 지역)
사진 가운데로 큰 기와집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곳이 내가 출발했던
기원정사 그 절이다.

▲  아차산둘레길에서 바라본 중곡동과 군자동, 광진구, 동대문구 지역

바로 밑에 보이는 동네가 중곡동(中谷洞) 긴고랑이다. 둘레길을 1굽이 지날 때마다 조망의 질
과 보이는 범위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렇게 보니 서울이 정말 빽빽하긴 빽빽하다. 사진 가운
데로 어렴풋이 보이는 뫼는 서울 도심의 영원한 남주작(南朱雀)인 남산(南山)이다.


▲  아차산둘레길에서 바라본 용마산 산줄기의 위엄

▲  슬슬 가까워지는 긴고랑계곡과 용마산

▲  아차산둘레길에서 만난 주름진 바위 벼랑

첩첩한 주름선을 휘날리는 바위 벼랑이 까칠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아차산의 산세가 대체로
부드러운 편이나 저런 벼랑과 바위도 곳곳에 포진해 있어 아차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차산 석실고분이 있는 너럭바위가 아주 일품임) 둘레길 조성으로 보호 난간이 둘러
져 있어 저 난간을 넘지 않는다면 별일은 없을 것이다.


▲  벼랑을 타고 긴고랑으로 급하게 내려가는 조그만 폭포
아차산이 빚은 물이 켜켜이 주름진 벼랑을 타고 속세로 흘러간다.


▲  개나리와 소나무 사이를 지나는 아차산둘레길

▲  긴고랑 직전 아차산둘레길 나무데크길
길이 각박한 곳은 나무데크를 깔아 각박함을 크게 순화시켰다.

▲  바위 벼랑 밑을 지나는 아차산둘레길 (긴고랑 직전)

▲  벚꽃들이 반갑게 마중하는 긴고랑길
길 좌우로 벚꽃들이 길게 늘어서 이곳에 온 것을 격하게 환영한다.



 

♠  아차산의 일품 계곡, 긴고랑(긴고랑계곡)

▲  긴고랑에서 만난 벚꽃의 향연
벚꽃들이 상큼하게 봄의 향연을 뿌려댄다.


기원정사 윗쪽에서 둘레길을 따라 20분 정도 가면 긴고랑계곡에 이른다. 이곳은 아차산과 용
마산 사이에 깊게 들어간 골짜기로 그 계곡이 길어서 긴골, 진골이라 불렸으며, 점차 긴고랑
으로 변화되었다. (긴 골짜기란 뜻이나 실제로는 별로 길지 않음)
아차산의 대표적인 계곡이자 몇 없는 자연산 계곡으로 계곡 하류에 제방이 다소 닦여져 옥의
티가 적지 않으나 자연산 풍경도 그런데로 남아있다. 게다가 계곡도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편이며, 지나친 가뭄이 아닌 이상은 수량도 풍부하여 여름 제국 시절에는 도심 속 피서지로
북새통을 이룬다. (계곡 물놀이도 가능함)

* 긴고랑계곡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43-146


▲  개나리와 진달래가 손짓하는 긴고랑계곡 하류
평화롭게 흐르던 긴고랑계곡은 계곡 주차장에서 강제로 생매장을 당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중랑천으로 흘러간다. 이곳과 중랑천 사이에는
주택가가 빽빽하게 들어찼기 때문이다.

▲  인공 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간 긴고랑계곡 하류 제방

▲  긴고랑의 따사로운 봄 풍경

▲  개나리들이 무성한 긴고랑계곡

인공이 다소 가해진 계곡 주변으로 개나리의 노란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계곡 하류에 인공이
크게 씌워진 것은 심히 안타까우나 상류와 중류는 자연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  아차산 주능선으로 인도하는 긴고랑계곡 산길

긴고랑에서 아차산 주능선까지는 20~30분 정도 올라가야 된다. 주능선 직전을 제외하면 세상
에서 가장 편한 오르막길 수준으로 계곡이 중간 정도까지 따라가주며, 온갖 봄꽃과 나무들로
무성하다. 초봄이라 그렇지 5월 이후에서 늦가을까지는 거의 숲터널 수준이다.


▲  긴고랑계곡 중류
물놀이나 아이들을 동반한 피서지로 적당한 곳이다. 긴고랑계곡은 딱히 통제구역이
없어 적당한 곳에 들어가 쉬거나 피서에 임하면 된다. 단 계곡을 더럽히거나
다녀간 흔적은 남기지 않도록 한다.

▲  졸졸졸~♪ 흘러가는 긴고랑계곡과 그 옆에 닦여진 나무데크길

▲  진달래와 소나무, 주름진 벼랑이 어우러진 긴고랑계곡 상류

▲  긴고랑계곡 상류
계곡 상류는 다른 계곡과 마찬가지로 물이 별로 없다. 봄의 해방군에 크게
들뜬 밑과 달리 하늘과 가까질수록 봄과 겨울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나무들이 많이 늘어난다.

▲  아차산 주능선으로 끌어주는 긴고랑 산길

▲  아차산 주능선 직전

긴고랑계곡 하류에서 20여 분을 오르면 주능선 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북쪽으로 오르면 용
마산과 망우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며, 남쪽은 아차산4보루와 아차산 정상, 그리고 동쪽 내리
막길은 구리시 아천동으로 통한다. 나는 남쪽 길로 들어서 아차산4보루로 이동했는데, 아차산
에 왔다면 4보루와 정상은 찍고 가는 것이 이곳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  고구려 보루의 정석, 아차산4보루(堡壘) - 사적 455호

▲  아차산4보루 남쪽 2중치와 동남쪽 성곽

아차산4보루는 용마산과 망우산을 제외한 아차산 보루 식구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잃
어버린 땅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고구려 성곽 유적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초의 현장으로 의미가 아주 남다른 곳인데,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다소 남아있었다.
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
런데로 남아있었으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는 높이가 0.8m를 넘지 못했으며, 부
정형의 석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  들여쌓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4보루 남쪽 2중치

구리시가 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을 갖춘 건물터를 확인했으며,
'後部○兄'이라 쓰인 토기가 나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닦여진 보루임이 명백해졌다. 여기서 후부(後部)는 고구려 5부의 하나이며, '○兄'은
고구려 관등의 하나로 여겨진다. 고구려에는 '형(兄)'자가 들어가는 관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에 다시 조사를 벌여 숨겨진 치성을 발견했고, 보루 형태와 성벽 축성 방식을 확
인하면서 복원 가능성이 높아졌다. 4보루 한복판으로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선이 지나가 절
반은 서울시, 나머지 절반은 구리시 영역인데, 구리사가 2008년부터 복원을 적극 추진하여 2
년의 공사 끝에 2010년 12월 24일에 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아차산일대 보루 중 처음으로 복
원된 행운의 보루인 것이다. (나중에 시루봉 보루도 복원되었음)

보루 복원을 위해 보루터에서 나온 늙은 성돌을 주로 사용했으나 수량이 적어서 부득이 새 성
돌로 모자란 부분을 때웠다. 그러다보니 고색이 짙은 옛 돌과 하얀 피부의 새 돌이 어색하게
조화를 이룬다. 허나 이는 어쩔 도리가 없다. 발굴조사를 토대로 고구려 축성 양식에 맞춰 왕
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고, 건물터와 온돌 유구 등은 보존을 위해 모두 땅으로 덮었다.
그리고 보루 중앙에 탐방로를 내고 건물터 쪽에는 금줄을 쳤으며, 보루 북쪽과 남쪽에 보루로
오르는 계단을 냈다.

보루의 둘레는 약 249m, 성벽 높이는 최소 4m 이상이다. 허나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하여 2.5~
3.1m 높이로 축소 재현하여 마치 역사 왜곡의 현장 같은 아쉬움을 준다. 지형의 경사면을 이
용해 바깥 쪽에 성벽을 쌓고, 안쪽 경사면에는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졌는데, 방어력을 높이고
자 동/서/남/북에 5개의 치성(雉城, 치)을 두었다.
치성(치)은 성곽 방어를 위해 앞쪽으로 다소 튀어나온 성벽으로 고구려표 축성 양식의 하나이
다. 그 양식은 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은 물론 왜열도와 서토(중원대륙)까지 전해져 절찬리
에 쓰였다.


▲  4보루로 올라가는 남쪽 계단

▲  아차산4보루의 독특한 구조물, 남쪽 2중치

4보루 남쪽에는 2중 구조를 지닌 특이한 치가 남쪽으로 길게 나와있다. 그는 전체 길이 13.2m
로 중간에 목책(木柵)이 둘러진 2.5m 정도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치로 구분된다.
뚫린 공간에는 치의 성벽에 잇대어 4개의 후대 석축단이 축조되었고, 그 좌우로 목책을 세웠
는데, 보루의 출입구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용마산2보루와 개발의 칼질로 무자비하게 사라
진 구의동보루에서도 일부 확인이 되고 있으나 사실상 아차산4보루가 유일하며, 고구려 보루
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줌과 동시에 보루의 끝이 들여쌓기로 차곡차곡 닦여져 안정감을 준다.


▲  4보루 서남쪽 치

보루 내부에서는 건물터 7곳, 온돌 유구 2기, 배수로, 저수조 흔적, 치성 5곳이 발견되었다.
여기서는 항아리와 글씨가 새겨진 토기, 시루, 투구, 찰갑(가벼운 갑옷), 창, 도끼, 화살촉,
낫, 쇠스랑, 말에 물리는 재갈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 나와 아차산3보루와 함께 아차산 일
대 병참기지로 추정된다.


▲  한강을 향해 약간 튀어나온 4보루 동쪽 치

4보루로 올라서니 그런데로 너른 보루 내부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군사들이 머물던 숙소와 창
고, 방어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과 대자연 형님의 꾸준한 괴롭
힘 앞에 모두 사라지고 터만 황량이 남아 사람들의 상상력을 살찌워준다.
이곳을 재현한 모형이 서울대박물관에 있으나 이 역시 100% 정답은 아니니 고구려 건축 양식
에 맞춰서 적당하게 4보루의 모습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것이 4보루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이다.


▲  4보루 1호 건물터

4보루의 7개 건물터 중 남쪽에 있는 1호 건물터가 가장 높다. 여기서는 온돌 유구 2기와 주춧
돌이 나왔으며, 온돌 아궁이 주변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 철제투구 등이 나와 4보루를 관
리하던 높은 장수나 지휘관의 숙소로 여겨진다.
1호 건물터 주변에는 6호 건물터와 7호 건물터, 2호 건물터 등이 있으며, 3호 건물터 밑에서
는 'ㅡ'자형 온돌유구 2기가 나왔는데, 층위(層位)로 보아 건물터보다 먼저 조성되었음이 밝
혀져 4보루 내부 구조물이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준다. 보루를 먼저 쌓고
나중에 온돌과 내부 시설을 닦았던 것이다.


▲  4보루 내부 (북쪽 방향)

▲  4보루 내부 (남쪽 방향)

탐방로 좌우로 잔디와 흙이 두툼히 덮여진 건물터와 저수시설 유적이 있고, 키가 작은 금줄을
둘러놓아 고구려의 거룩한 흔적을 지키고 있다. 금줄의 의미처럼 줄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나
지키는 사람이 딱히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펴고 쉬거나 음식을 처묵처묵하는 골 빈 작
자들이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4보루 저수시설

4보루에서는 물을 저장하는 2개의 저수조(貯水槽) 흔적이 나왔다. 이들은 깊이 3.5m 정도 수
직으로 암반 흙을 파내고 바닥과 벽에 입자가 고운 회색 뻘흙을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방수
처리를 한 것으로 규모는 '430x300x깊이230cm','350x310x깊이240cm'이다.


▲  4보루 동북쪽 치
치 너머로 한강과 구리, 남양주, 하남, 강동구 지역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  한강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4보루 동북쪽 치

4보루는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이 확 트여있어 조망이 아주 예술이다. 여기서는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 종로구, 중구, 송파구, 강동구, 한강은 물론 하남시와 구리시, 남양주시
지역까지 시야에 들어오며, 해돋이와 일몰을 모두 맞이할 수 있어 해돋이 수요와 일몰 수요,
야간 등산 수요가 많다. (1월 1일에는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완전히 미어터짐)
게다가 아차산과 용마~망우산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 아차산 주능선의 목구멍 같은
곳이다. 그러니 고구려가 이곳에 큰 보루를 쌓아 무척 애지중지했던 것이다.


▲  4보루 동북쪽 치에서 바라본 천하
한강과 강동구, 하남시, 남한산성 등

▲  아차산4보루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아차산 주능선과 용마산)

▲  4보루 북쪽 치

▲  4보루 서쪽 성곽

▲  4보루 북쪽 치

4보루 바깥에는 우회 산길이 있다. 4보루의 속살로 들어가기 싫다면 그 우회길을 이용하면 되
는데, 아차산에 왔다면 4보루는 무조건 찍고 가는 것이 이곳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그러다보
니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으며, 속세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는 이들도 적지 않
다. (특히 저녁에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단체로 먹거리를 섭취하는 등산 동호회 사람들이 많
음) 휴식과 음식 섭취는 좋으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금줄을 넘어가는 행위는 하지 말자.

아차산4보루를 비롯한 아차산 보루 6식구, 용마산 보루 7식구, 망우산1보루, 홍련봉 보루 2식
구, 시루봉보루는 한 덩어리로 묶어 '아차산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사적 455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마무리를 짓는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


* 아차산4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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