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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주 간월사지(간월사터)

간월산과 신불산 그늘인 등억온천단지(상북면 등억알프스리) 내부에 간월사터라 불리는 늙은 절터

유적이 있다.

간월사는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54) 시절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절터에서 수습된

유물은 신라 후기와 고려 것들이라 창건 시기는 조금 맞지 않다. '동국여지승람'의 언양현 불우조, 서

석린(1710~1765)이 쓴 '간월사지'에 절의 이름과 내력이 나와있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34

년에 중건했으나 19세기에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석조여래좌상과 3층석탑을 속세에 내밀며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가 1984년에 1달 동안 발굴조

사를 받았는데, 이때 금당터와 석탑 자리를 발견하였으며, 금당터에서는 금동불 2구와 기와, 토기, 자

기류 등을 건졌다. 금당터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불상 대좌의 바닥돌이 남아있다.

금당터 앞에는 3층석탑이 남북으로 2기 자리해 있는데, 두 석탑 간의 거리가 멀고 높이가 달라서 시대

를 달리해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절터 한쪽에는 새로운 간월사가 세워져 건물 여러 동을 지어올렸으며, 절터 정문에서 가까운 3칸짜리

맞배지붕 집(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에는 간월사의 1급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이 들어있다. 절터 전체

는 울산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석조여래좌상은 국가 보물, 그리고 3층석탑 2기는 울산 지방문화

재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2. 간월사터 석조여래좌상의 공간인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건물 이름이 무려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 11글자나 된다.

천하에 널린 절 건물 중 가장 긴 이름을 지닌 집으로 이름 그대로 석조여래좌상의 공간인데, 집 이름

을 크게 줄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3.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 내부)

이곳 석조여래좌상은 8~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잘생긴 신라 후기 석불이다. 1,000년이 넘

는 늙은 석불이나 일부가 깨지거나 손상된 것을 제외하면 상태도 그런데로 양호하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표현되었으며, 그 위로 육계(무견정상)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단정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을 지녔는데, 어깨는 좁아지고, 몸은 양감이

줄어든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진 옷은 'U'자형으로 옷주름이 흘러내렸으며, 왼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필수품인 약합으로 보여 그의 정체를 약사여래로 보기도 한다. 오른손은 무

릎에 대고 있으며, 결가부좌로 앉아서 명상에 임한다.

 

석불이 앉아있는 연화대좌도 조각 솜씨가 우수하고 상태가 좋아서 석불과 대좌 모두 제대로 남아있

는 천하에 몇 없는 늙은 석불로 가치가 높다.

 

4. 우측에서 바라본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의 위엄

 

5. 좌측에서 바라본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의 위엄

 

6.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의 옆모습

 

7.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 앞에 있는 조그만 석불 (좌측 석불)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키의 석불로 장대한 세월이 무심히 달아준 검은 때와 푸른 이끼가 자

욱하다. 얼굴을 빼면 나머지는 고색이 조금 있어 보이는데, 간월사터 석조여래좌상과 절터를 보듬을

간월사를 새로 지으면서 장만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8.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 앞에 있는 조그만 석불 (우측 석불)

좌측 석불과 많이 비슷한 모습이다.

 

9. 늙은 기운이 느껴지는 석종형 부도탑

옛 간월사터의 부도탑으로 조선 후기 것으로 여겨진다. 석종형의 탑신과 그를 받치는 기단석 같은 것

만 겨우 남아있다.

 

10. 푸른 잡초가 입혀진 간월사터 (왼쪽에 보이는 탑이 남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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