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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계정 윗쪽에서 바라본 건계정계곡

거창 지역 제일의 경승지로 추앙을 받는 건계정과 건계정계곡을 둘러보고 건흥산 정상부에 깃든 거

열산성을 보고자 건계정 뒷쪽 산길을 올랐다. 산길을 오르면서 건계정계곡(거창 위천)을 잠시 돌아보

는 여유를 부렸는데, 이 경치 좋은 곳과 또 인연이 닿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내가 거창에 살면 모르

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여 이곳과 마지막 인연이라는 심정으로 이곳 풍경을 실컷 두 망막에

담아두었다.

 

2. 태극기가 펄럭이는 건계정 뒷쪽 전망대

건계정계곡이 잘 바라보이는 곳에 나무데크 전망대와 쉼터를 닦았다. 그리고 천하 제일의 국기인 태

극기까지 심어두어 잠시 나라와 관련된 망중한에 잠기게 한다.

 

3. 건흥산 산길 (건계정에서 거열산성으로 올라가는 길)

거창읍의 대표 지붕인 건흥산은 해발 573.2m(또는 572m)의 준수한 뫼이다. 남쪽으로 건계정계곡이

란 간판을 지닌 거창위천이 흘러가며, 산 정상부에는 거열산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꽤 늙은 산성

유적이 있다. 건흥산을 찾은 것은 바로 그 늙은 산성을 보고자 함이다.

 

4. 솔내음이 가득한 건흥산 산길

 

5. 건흥산의 소나무숲을 비집고 올라가다

 

6. 거열산성 남쪽 성곽

건흥산 정상부에 닦여진 거열산성은 산 밑에서 성곽이 보이지 않게끔 산의 지세와 능선의 기복을 이

용하여 다진 산성이다. 성벽은 자연석과 잘 다듬은 돌을 이용해 지형에 따라 3~9m 높이로 쌓았는데,

성곽 둘레는 약 1,115m, 폭은 아랫부분은 7m, 윗부분은 4m 정도이다.

워낙 늙은 산성이라 대부분 무너지거나 헝클어진 것을 근래 남쪽 성곽 일부를 복원 정비했는데, 주변

에는 성벽에 쓰였던 돌덩어리와 건물 기와조각이 많이 뒹굴고 있으며, 성내에서는 여러 건물터와 군

사 훈련터 등이 남아있다.

 

현재 이 산성은 거열산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신라 중기에 신라가 쌓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663년에 신라 장수인 김흠순과 천존이 백제부흥군이 머물던 거열성을 점령하고 700여 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거열성에 말뚝을 박았던 백제부흥군은 3년 동안이나 백제 부흥을 위해 신라에 저항했는

데, 그 거열성을 이곳으로 멋대로 비정하면서 이곳이 졸지에 거열산성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거

열성이란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식민사관 쓰레기들이 지네들 멋대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673년 신라가 당나라에 대항하고자 쌓은 만흥사산성을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는데, 그 역시 그 식

민사관 쓰레기들이 멋대로 정한 것이다. 그 시절 거창과 함양, 산청 지역은 완전 후방 중에 후방이며,

신라는 만주와 요동반도, 그리고 산동반도와 중원대륙에 많은 지역을 전방으로 두면서 당나라와 천하

를 두고 맞짱을 벌이고 있었다.

 

이곳은 건흥산에 있어서 건흥산성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는데, 거열산성보다는 건흥산성이란 이름이

10,000배 맞다고 본다. 어쨌든 거열산성과 건흥산은 거창군에서 정한 거열산성군립공원으로 지정되

어 있으며, 지역 사람들이 운동과 나들이 명소로 많이들 찾는다.

 

7. 복원 정비된 거열산성 남쪽 성곽

성곽만 재현 복원되었을 뿐, 여장과 성문 등은 재현하지 못했다.

 

8. 돌들이 강인한 협동심을 보이며 펼쳐진 거열산성 남쪽 성곽

 

9. 유연하게 곡선을 보이며 흘러가는 거열산성 남쪽 성곽

성곽은 여장이나 안전 난간 등이 전혀 없고, 돌이 울퉁불퉁하여 통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10. 솔내음을 듬뿍 누리며 흘러가는 거열산성 남쪽 성곽

 

11. 복원 정비된 구간이 끝나는 북쪽 지점

거열산성 성곽은 더 달리고 싶으나 현재 남쪽 성곽만 일부 복원 정비된 상태이다. 그 외에 성곽은 고

된 세월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자연에 푹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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