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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청자도공비

고려청자도공비는 고려 때 강진 대구면 일대 청자요지에서 일했던 도공들을 기리고자 강진군에서

2003년에 세웠다. 글씨는 원당 김재운이 썼는데, 이곳은 고려청자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강진 고려

청자요지'에서 다소 북쪽 구석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2. 강진요

주변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가마터를 재현한 것이다. 지역 이름을 따서 강진요라 했는데, 이곳에는 이

런 가마들이 여럿 있어서 청자와 백자 등을 생산하고 있다.

 

3. 강진요를 품은 건물 (내부 관람 가능)

 

4. 가마터샘

이 샘터는 이곳 청자가마들이 바쁘게 생산활동을 하던 고려 때부터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살던

도공들은 이 샘물에 의지하여 살았다고 하며, 청자 생산에 필요한 물도 여기서 적지 않게 보충했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 마을 우물로 살아갔으나 상수도 보급으로 현역에서 강제로 물러나 지하 부분만 유지한

채, 거의 버려져 있다가 2010년 7월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했다. 샘의 깊이는 3.3m로 주둥이가 꾹 닫

혀있는데, 거의 무늬만 남은 상태로 이곳의 유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5. 사당리 23호 요지

사당리 23호요지는 강진 대구면 지역의 청자 생산을 관리 감독하고 청자의 시험 생산과 품질 선별 등

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1960년대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차 발굴조사를 벌였고, 2019~2020년에

2차 발굴조사를 벌여 많은 흔적들을 건졌다.

여기서는 계단식 토대 위에 담장과 축대, 아궁이와 구들을 갖춘 대형 건물터가 나왔고, 다양한 형태와

문양의 청자들이 나왔다. 그리고 작고 둥근 모양의 가마인 만두요가 남한 땅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

는데, 만두요는 고려의 중원대륙 영토와 송나라 땅에서 많이 나타나는 가마이다. 건물터는 9곳 정도

가 나왔으며, 가마터와 선별장, 온돌, 답도, 공방터, 연토장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 유적은 보존을 위해 땅속에 고이 묻은 상태이며, 그 위로 산뜻하게 잔디와 나무를 심었다. 이곳

고려청자요지 유적들은 사당리 41호 가마터를 제외하고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

 

6. 사당리 23호 요지의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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