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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팔영산 능가사


~~~ 한겨울 산사 나들이, 고흥 팔영산 능가사 ~~~
능가사 대웅전
▲  능가사 대웅전
 


겨울 제국의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들던 1월의 끝 무렵, 겨울의 핍박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일행들과 따스한 남쪽 지방으로 훌쩍 길을 떠났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에 번잡한 서울을 떠나 청주와 금산, 남원, 광양을 두루 거
쳐 여수(麗水)에서 첫 날을 마무리 지었다. 원래 여수는 계획에 없었으나 융통성에 융통
성을 거듭하면서 그곳까지 흔쾌히 발이 닿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순천과 벌교를 거쳐 고흥(高興) 땅으로 들어서 외나로도(外羅老島)까지 한참을
비집고 들어가 우리나라 우주 개척의 1번지인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관련글 보기)
을 둘러봤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능가사에 크게 목마름이 피어나 그 갈증을 해소하고자
후식용으로 그곳을 찾았다.


♠  능가사(楞伽寺) 입문

▲  능가사 천왕문(天王門)

절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맞배지붕을 지닌 천왕문이 마중을 한다. 경내를 가리고 선 그는 부
처의 경호원인 사천왕(四天王)의 보금자리로 능가사는 일주문(一柱門)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천왕문이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1666년에 사천왕상과 함께 지어졌으며, 1824년과 1931년에 중건했다. 이후 1995년 해체 복원
을 했는데,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상량문(上樑文)이 나와 천왕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 국가 보물
(왼쪽은 증장천왕과 지국천왕, 오른쪽은 다문천왕과 광목천왕)


천왕문에 깃든 사천왕상은 1666년에 조성된 것으로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동쪽을 담당하는 지국천
왕의 몸통에서 아주 고맙게도 조성 시기를 드러낸 발원문(發願文)이 나왔다. (능가사 사적비
에도 그들의 조성시기가 나와있음)
 
이곳 사천왕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관절이 좋지 않은지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이다. 그들 높이
는 4.5m로 머리에는 연화문이 그려진 원통형 보관(寶冠)이 있으며, 보관에 달린 끈이 양쪽으
로 휘날린다. 얼굴은 무서우면서도 좀 해학적인 모습으로 각자 자신만의 연장과 특색을 지니
며 절 수비에 여념이 없다. 광목천왕 같은 경우는 뱀을 쥐고 있는데, 이는 몽골(원나라) 라마
교(羅馬敎)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며, 지국천왕 발 밑에는 동녀(童女)가 자리해 그의
왼쪽 다리를 받쳐들고 있는 특별함을 보이고 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능가사의 내력을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자.


▲  천왕문 안쪽에 넓게 펼쳐진 능가사 경내
절 너머로 보이는 산은 능가사를 품고 있는 팔영산(八影山, 608m)이다.

▲  경내 연못
경내 구석에 연꽃의 보금자리인 연못을 닦고 그 복판에 동그란 섬을 띄워놓아
나름 운치를 자아낸다.

▲  연못 섬에 세워진 즉심시불(卽心是佛) 비석
즉심시불이란 마음이 곧 부처란 뜻으로 인간의 마음이 부처라는 아름다운 의미이다.
즉 열심히 수행하여 부처와 같은 존재가 되라는 주문이다. 연못 뒤로 보이는
건물은 범종각으로 그 안에 보물로 지정된 동종이 깃들여져 있다.


팔영산 북서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능가사는 금탑사(金塔寺)와 더불어 고흥 지역 제일의
고찰(古刹)로 한때 호남 4대 사찰의 일원으로 위엄을 날리기도 했다.
417년에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했다고 하나 아쉽게도 이
를 밝혀줄 유물과 기록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절의 본격적인 사적(事蹟)도 조선 중기가 되서
야 등장한다. 하여 고려나 조선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44년 벽천 정현(碧川 正玄)이 중건했는데, 그때 벽천은 무려 90세
로 지리산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석가여래가 나타나 능가사 자리에 절을 지어 중생을 계도할 것을 지시했
는데, 그곳으로 달려가 절을 세우고 이곳이 인도의 명산(名山)을 능가한다 하여 능가사로 이
름을 갈았다고 한다. 이후 1768년과 1863년에 중수했으며, 1993년에 응진전, 1995년에 천왕문
을 각각 수리했다.

절에 깃들여진 설화 중 유구국(流求國, 현 오키나와) 왕자 설화가 있다. 그가 조선을 방문하
고 돌아가다가 심한 파도를 만나 이곳 근처로 표류했는데, 능가사에 머물며 관세음보살 누님
에게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7일이 지나자 어느 승려가 그를 데리고 파
도를 거뜬히 뛰어넘어 유구국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하여 능가사 승려들은 그 사연을 법당 벽에 그렸고, 영조(英祖) 시절에 택리지(擇里志)로 유
명한 이중환(李重煥)이 이를 구경하고 기록에 남겼다. 허나 그 벽화는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
지 남아있지 않다.
참고로 유구국은 13세기 말, 제주도에서 패퇴한 고려 삼별초(三別抄)의 잔여 세력이 장악하여
세운 나라로 강력히 해석되고 있다.

넓은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범종각, 요사 등 10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
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대웅전과 동종,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 목조사천왕
상 등의 국가 보물과 사적비, 추계당 및 사영당 부도(秋溪堂 泗影堂 浮屠) 등의 지방문화재를
지니고 있다. 허나 동종과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 추계당/사영당 부도는 그
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해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 외에 조선 후기 승탑 10기가 있으며, 응진당도 19세기 건축물로 전해지고 있다. 부속암자
로는 만경암(萬景庵)과 서불암(西佛庵)이 있는데, 대한제국 말엽에 왜군에 공격으로 파괴되어
사라졌다. (만경암은 '고흥 만경암 항일의병 전적(戰蹟)'이란 이름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
어 있음)

* 능가사 소재지 :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369 (팔봉길21, ☎ 061-832-8090)
* 능가사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  능가사 대웅전(大雄殿) - 국가 보물

북쪽을 바라보고 선 대웅전은 능가사의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장대한 팔작지붕 건물
이다. 18세기 중기에 중건된 것으로 근래에 해체 복원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다포계의 일반적 수법을 따랐으나 정면 기둥머리인 안초공(按草工) 수법과 건물 내
외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영광 불갑사(佛甲寺) 대웅전, 부안 개암사(開巖
寺) 대웅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포벽 수장재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첨차는 사찰 건물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조선 중/후기 호남
지역 사찰 건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  대웅전 석가여래삼존불과 후불탱
석가삼존불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석가여래와 협시불 사이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다.

▲  얼굴이 거의 네모난 후덕한 표정의
대웅전 석가여래상

▲  석가여래 옆 아미타불
석가여래보다는 덩치가 많이 작다.

▲  대웅전 칠성탱
1904년에 조성된 것으로 순천 송광사
삼일암에서 제작되었다.

▲  근래 마련된 감로탱(감로도)


♠  능가사 마무리

▲  대웅전 옆에서 바라본 팔영산
경내 너머로 팔영산이 고개를 내밀며 내 마음을 흔든다. 팔영산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저곳까지 갈 시간이 없다는
변명만을 내세우며 멀리서 입맛만 다셨다.

▲  능가사 응진당(應眞堂)
19세기에 중건된 건물로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16나한의 거처이다.
이곳에 국가 보물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이
들어있으나 깜빡 놓치고 말았다.

▲  능가사 사적비가 깃든 맞배지붕 비각(碑閣)

▲  능가사 사적비(事蹟碑) - 전남 유형문화유산

경내 뒷쪽에 자리한 맞배지붕 비각에는 능가사의 일기장인 사적비가 들어있다. 거북머리인 귀
부(龜趺)와 절의 내력이 소상히 담긴 비신(碑身), 2마리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
습이 담긴 이수(螭首)를 지닌 당당한 모습의 비석으로 높이 3m, 폭 1.3m이다.
비신에 '숭정기원후재경오(崇禎紀元后再庚午)'란 내용이 있어 1690년 경오년에 세워진 것으로
여겼으나 비문(碑文)의 내용과 글을 쓴 사람, 관련 인물의 활동연대를 통해 그 다음 경오년인
1750년으로 파악되고 있다.

절의 사적비치고는 큰 편으로 원래는 탑 앞에 있었으나 덕목이 도술을 부려 현 자리로 옮겼다
고 전한다.


▲  절에 뜬금없이 미로가?? 연등이 둘러진 미로

응진당 앞에는 특이하게도 연등이 둘러진 미로가 있다. 절에 이렇게 미로가 있는 것은 여기서
처음 보는데, 아마도 수행의 일종으로 만든 듯 싶다. 그들에게 흥미 유발을 주어 수행과 깨달
음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고자 함일 것이다. 하긴 우리네 인생이 미로 그 자체가 아니던가?
이번에 내가 능가사에 온 것도 수많은 미로를 헤매다가 온 것이니 말이다.


▲  연등 미로길 ①
길만 잘 더듬으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2~3번의 착오 끝에
저곳을 탈출했다.

▲  연등 미로길 ②
햇님이 퇴근하고 달님이 세상을 접수하면 그 어둠을 몰아내고자 연등은
일제히 빛을 발산할 것이다. 그것이 연등 놀이의 백미(白眉)이다.

▲  연등 미로길 ③

▲  연등 미로길 ④

▲  연등 미로길 ⑤

▲  팔영산으로 인도하는 능가사 동쪽 돌담길 ①

▲  팔영산으로 인도하는 능가사 동쪽 돌담길 ②

이렇게 하여 능가사 나들이는 마무리가 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동종과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 지방문화재인 부도(승탑) 2기를 놓친 것이 무지하게 아쉬운데, 그들이 비공
개면 모르지만 모두 흔쾌히 개방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인연 부족과 정보 부족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다시 찾아와 부족한 인연을 보충하라는 능가사의 지극한
뜻인가 보다.
다음에 또 인연이 된다면 그때 능가사와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겠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고흥은 이번이 2번째 인연이나 첫 인연은 완전 스쳐 지나간 수준이라 이번이 거의 첫 인연이
나 다름이 없다. 이번 나들이로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과 능가사 등 고흥의 굵직
한 명소를 두 곳이나 인연을 지었으나 이후 이상하게도 고흥과는 인연이 좀처럼 닿지가 않아
고흥에 무수히 널린 미답처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본글은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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