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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도림사 (도림사계곡)


' 늦겨울 산사 나들이, 곡성 도림사 (도림사계곡) '
곡성 도림사계곡(청류동)
▲  도림사계곡(청류동)
 


차디찬 겨울 제국이 조금씩 빈 틈을 보이던 2월의 끝 무렵, 이틀 일정으로 남원에서 여
수까지 호남 동남부 지역을 거닐었다.
아침 일찍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에 나를 담아 4시간을 달려 남원역에 두 발을 내렸는데,
오래간만에 찾은 남원(南原)에서는 용담사(龍潭寺)와 선원사(禪源寺) 등을 둘러보고 늦
은 점심으로 칼국수를 배불리 섭취한 다음, 남원시내버스 220번을 타고 곡성(谷城)으로
넘어갔다. (남원 부분은 ☞ 이곳을 클릭)

원래 곡성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수준에서 끝내려고 하였으나 정말 간만에 발을 들이니
마음이 변덕을 부린다. 게다가 시간도 넉넉하여 그냥 지나가기에는 95% 아쉬웠다. 하여
곡성에 가면 꼭 가고 싶었던 도림사를 추가 메뉴로 편성, 옥과로 가는 곡성군내버스에
나를 실어 도림사입구로 보냈다. 이곳은 곡성터미널에서 3km 거리로 군내버스가 1시간
에 2~3회꼴로 다녀 접근성도 좋으며, 버스비도 아주 저렴하다. (곡성군내버스는 2026년
1월 1일부로 버스비를 일절 받지 않음, 즉 무료로 운행함)


▲  도림사와 도림사계곡으로 인도하는 도림로


♠  곡성 지역의 오랜 경승지이자 일품 계곡, 도림사계곡(道林寺溪谷)
- 전남 지방기념물

▲  도림사계곡 하류

도림사입구에서 도림사까지는 도림로를 따라 30분 정도 들어가야 된다. 절까지는 차량이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리게끔 길이 잘 닦여져 있는데, 명품 계곡인 도림사계곡이 길 옆구리에 흐르고
있어 걷는 길이 썩 지루하지가 않다. 게다가 울창한 숲과 중간중간에 깃든 온갖 바위글씨들까
지, 시간 도둑인 그들을 보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도림사 산문에 이르게 된다.

도림사의 화려한 입술인 도림사계곡은 동악산(動樂山, 735m)이 빚은 계곡으로 월봉천 상류가
된다. 동악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곡성천을 거쳐 섬진강(蟾津江)으로 흘러가는데, 오랫동안 곡
성 제일의 경승지로 추앙을 받았으며, 피서의 성지로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동악산이 베푼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하나의 물줄기로 도림사에서 도림사국민관광단지 구간
계곡을 도림사계곡이라 하나 보통은 동악계곡, 성출계곡을 포함해서 부른다. 지금은 많이 잊
혀졌지만 옛 이름은 청류동(淸流洞)으로 청류계곡, 청류동계곡이라 불렸으며, 시인묵객과 양
반사대부들이 앞다투어 찾아온 명승지로 특히 너른 반석들이 일품이라 '삼남제일암반계류 청
류동(三南第一巖盤溪流 淸流洞)'으로 격하게 칭송을 받기도 했다. 또한 동네 이름인 월봉리를
따서 월봉계곡(月峯溪谷, 월봉천)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아홉 구비마다 너른 반석(磐石)과 잘생긴 바위들이 아낌없이 포진해 있으며, 반석은 큰 것이
폭 20~30m, 길이는 무려 100m에 이르기도 한다. 비단처럼 고운 물줄기는 바위와 반석에 윤기
를 반짝반짝 더해주며, 대자연이 빚은 소(沼, 못)가 곳곳에 펼쳐져 있어 피서를 즐기거나 잠
시 망중한을 즐기기에 좋다. 계곡 상류에는 신선이 쉬어갔다고 전하는 높이 4m, 넓이 30평에
신선바위가 있으나 거기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 도림사계곡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


▲  청류동(도림사계곡) 제1곡인 쇄연문(鎖烟門)

청류동은 그 명성에 걸맞게 청류9곡이라 불리는 9곡이 형성되어 있다. 제1곡인 쇄연문과 제2
곡인 무태동천, 제3곡 대천벽, 제4곡 단심대, 제5곡 요요대, 제6곡 대은병, 제7곡 모원대(暮
遠臺), 제8곡 해동무이(海東武夷), 제9곡 소도원(小桃源)으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하정
조병순(荷亭 曺秉順, 1876∼1921)과 춘기 정순태(春沂 丁舜泰)가 적당한 9곳을 골라 유교 사
상과 애국에 걸맞는 이름을 붙어 청류9곡으로 삼았다.
이들 9곡에는 그들과 이곳을 찾은 애국지사들이 새긴 바위글씨들이 듬뿍 전하고 있으며, 일주
문 남쪽에서 도림사 직전 계곡까지 1~6곡이 흩어져 있고, 도림사 윗쪽으로 7,8,9곡이 흩어져
있는데, 안내문이 잘 설치되어 있어 계곡만 따라가면 모두 만날 수 있다. (나는 6곡까지만 살
펴봤음)

청류9곡의 시작을 여는 제1곡 쇄연문은 행서체(行書體)로 쓰인 84x113cm 크기의 글씨로 무쇄
연미(霧鎖烟迷) 즉 운무가 가득한 문을 뜻한다. 이는 극히 어두웠던 왜정(倭政) 시절을 비유
한 것이다.


▲  청류동(도림사계곡) 제2곡인 무태동천(無太洞天) 안내문

쇄연문을 지나면 무태동천이 곧 마중을 한다. 안내문은 사진에 담았으나 정작 중요한 무태동
천 바위글씨를 지나치는 우를 범했는데, (내려올 때 담으려고 했으나 깜박 지나쳤음;;) 무태
동천이란 신선이 사는 별천지로 뛰어난 경승지에 동천(洞天)이란 칭호를 많이 붙인다.


▲  도림사 일주문(一柱門)

도림사의 정문인 일주문은 크고 단단하게 생긴 맞배지붕 문으로 평방(平枋) 밑에 이곳의 정체
를 알리는 '동악산 도림사' 현판이 듬직하게 걸려있다. 문 안쪽에는 일주문의 새끼 같은 조그
만 집이 있는데, 그 집은 한때 도림사와 동악산을 찾은 나그네들의 호주머니를 탐하던 도림사
매표소였다. 허나 도림사가 무료의 공간으로 해방되면서 매표소는 버려져 빈 집이 되었다.


▲  일주문 주변 도림사계곡
일주문을 지나면서 계곡의 경관은 더욱 물이 오른다.

▲  청류동 제3곡인 대천벽(戴天壁) 바위글씨

'대천'은 대천이지(戴天履地)에서 나온 말로 사람은 하늘의 은혜와 제왕의 은혜를 높은 하늘
과 두터운 땅만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옛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늘과 제왕 찬양이
다. 대천벽은 하늘의 은혜를 머리에 이고 있는 벽으로 풀이하면 될 것이다.


▲  대천벽 주변에 시원스레 펼쳐진 계곡 반석
계곡의 낭랑하고 우렁찬 물줄기 소리가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 받은
두 귀를 제대로 어루만진다.

▲  설악산과 금강산 계곡도 시샘할 정도로 잘생긴 도림사계곡
(대천벽 주변)

▲  너른 돌길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오는 도림사계곡

▲  청류동 제4곡인 단심대(丹心臺)

단심(丹心)은 단심벽혈(丹心碧血)에서 나온 말로 나라와 군주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을 의미한
다. 그리고 벽혈은 피가 푸른 옥으로 변한다는 뜻으로 이 역시 단심과 비슷하다. 하여 단심벽
혈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칭송하는 의미가 된다.

무척이나 혼돈했던 20세기 초반, 도림사계곡은 애국지사들의 비밀결사와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바쁘게 쓰였다. 최익현(崔益鉉)과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 의병을 일으키자 곡성 사람들
이 그들을 도운 인연이 있으며, 조병순과 정봉태, 정순태. 정해태. 조병흠. 조상천. 박병선.
이준. 윤규채 등 9명이 이 계곡에서 독립을 향한 비밀결사 서약을 맺기도 했다.
그들은 독립에 대한 결의를 이곳에서 자주 풀며 비밀 모임을 가졌으며, 풍류놀이를 가장해 의
병장들을 불러 작전을 모의하고 군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고 상해임시
정부와도 연락을 취해 군자금을 지원했다. 허나 왜정에 의해 발각되어 그들은 모두 체포되었
고, 그들을 주도했던 조병순이 왜정의 고약한 고문에 1921년 사망함으로써 도림사계곡에서 비
밀리에 추진된 독립운동은 그 막을 내리고 만다. 그 소식을 들은 장지연(張志淵)은 서울에서
달려와 크게 통곡하며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어쨌든 조병순 등은 이곳을 단심대라 정했으며,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가 이곳을
찾아 망국의 한을 잔뜩 실어 시를 지었다.


▲  바위에 살짝 깃든 단심대 바위글씨

▲  서산강론(西山講論) 바위글씨

단심대 주변 반석에 깃든 서산강론은 조병순 등 9명이 비밀결사를 맺으면서 남긴 서약문이다.
서산강론이라 하여 처음에는 유생들이 남긴 낙서로 여겼으나 그들의 가슴뭉클한 사연이 깃든
바위글씨임이 나중에 밝혀져 이미지가 180도 달라졌다.


▲  청류동 제5곡인 요요대(樂樂臺) 바위글씨

요요대는 물을 좋아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산을 좋아하는 어진 사람이 노는 누대란 뜻이다. 그
말은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것으로 동이족 출신인 공자<孔子, 공구(孔丘)>가 '지
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動)하고, 어진 자는
정(靜)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장수한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  청류동 제6곡인 대은병(大隱屛) 바위글씨

날씨가 추웠는지 푸른 이끼를 한가득 껴입은 바위에 대은병 바위글씨가 깃들여져 있다. 대은
병이란 진정한 은사(隱士)가 은둔하는 곳을 뜻하는데 진(晉)나라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
(反招隱詩)에서 나온 것으로 몸은 조시(朝市, 속세)에 있어도 뜻은 멀리 산에 두는 사람을 의
미한다.


▲  도림사 부도군(浮屠群)

대은병을 지나면 도림사 부도탑(승탑) 무리들이 마중을 한다. 일주문 이후 비로소 도림사 식
구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그들을 지나면 도림사 절집이 모습을 비춘다.
장대한 세월을 온 몸으로 받은 이들 부도는 조선 후기에 닦여진 석종형(石鐘形) 승탑으로 마
치 앵두나 조그만 열매 같은 작고 귀여운 모습들이라 정감이 간다. 그들 중 2기는 특별히 지
붕돌을 지니고 있으며, 나머지는 약간의 머리장식만 두르고 있다.


▲  도림사 앞을 흐르는 도림사계곡
동악산이 베푼 계곡물이 잔잔히 모인 곳으로 마치 깊은 산속에 숨겨진
선녀들의 비밀 공간 같은 고요한 모습이다.

▲  도림사 앞 숲길
도림사계곡에 취해 비몽사몽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도림사 앞에 이르렀다.


♠  도림사계곡을 옆구리에 품은 고즈넉한 산사, 동악산 도림사(道林寺)
- 전남 문화유산자료

▲  도림사 경내 (보광전에서 바라본 앞뜨락과 대양루)

동악산 남쪽 자락에 포근히 몸을 기댄 도림사는 조계종(曹溪宗) 소속으로 660년에 원효대사(
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사불산 화엄사(華嚴寺)를 옮겨지었다고 하는데, 풍악의 음률(音律)이 온 산에 진동했다
하여 산 이름을 동악산이라 했으며, 승려와 도인(道人)들이 숲 같이 몰려들어 절 이름을 도림
사라 했다고 한다. 허나 원효의 창건설은 동악산 산신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신빙성이
없는 실정이다.
876년에 도선대사(道詵大師)가 중창했다고 하며, 이후 사명대사(四溟大師)와 서산대사 등 많
은 승려들이 찾아오니 마치 그들이 숲처럼 모여든다고 해서 도림사라 했다는 설도 덧붙여 전
해온다.
고려 때 지환(知還)이 3창을 했다고 하며,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가 절
에 많은 지원을 내려 한때 신덕사(神德寺)로 간판을 간 적도 있다고 전한다. (582년경에 신덕
왕후가 절을 창건해 신덕사라 했다가 660년에 원효가 도림사로 이름을 갈았다는 이야기도 있
으나 이 역시 신빙성이 없음)

19세기에 처익(處翼)이 산내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했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나오
는데, 그 시절 유명했던 목수장(木手匠) 승려인 영해(影海)가 도림사에 머물렀다. (길상암은
현재 터만 남음) 이후 20세기에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동북쪽을 향하고 있는 경내는 계곡 쪽으로 3단의 석축을 다지고 그 위에 대양루와 여러 건물
을 올렸는데, 경내 핵심부가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대양루 등의 건물을 촘촘히 둘렀다. 그
런 경내에는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해 나한전, 명부전, 약사전, 응진당, 요사채, 대양루 등 10
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국가 보물인 괘불탱과 아미타여래설법도, 지방문
화재인 보광전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이 있다. 그중 괘불탱은 1683년에 조성된 큰 탱화로 부처님
오신날(석가탄신일) 등 일부 날에만 잠깐씩 외출을 하기 때문에 친견이 매우 힘들며, 절 자체
는 전남 문화유산자료의 지위를 누리고 있어 이곳의 오랜 내력을 알려준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도림사는 절보다는 정작 계곡이 유명하여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지역 경승지로 명성을 누렸으며, 20세기 초에는 많은 애국지사들이 찾아와 시국을
한탄하며 독립운동을 추진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 도림사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 산 27-1 (도림로 175, ☎ 061-362-2727)

◀  도림사 대양루(大楊樓)
경내를 꽁꽁 가리고 앉은 대양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누각으로
교육 및 법회 공간으로 쓰인다.

◀  경내로 인도하는 대양루 옆 돌계단
균형 있게 짜인 저 돌계단의 끝에 도림사
중심부가 있다.


▲  도림사 보광전(普光殿)

높은 석축 위에 들어앉은 보광전은 이곳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거처로 저 안에 보물로 지정된 아미타여
래설법도와 지방문화재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이 있으니 꼭 살펴보도록 하자. 그들을 놓치
면 도림사의 80% 이상을 놓친 것과 다름이 없다.


▲  겨울 제국에게 몽땅 털려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연리지(連理枝)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사랑과 화합을 상징한다.

▲  보광전 아미타여래설법도(국가 보물)와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
(전남 유형문화유산)

도림사의 보물 창고인 보광전 내부 불단에는 아미타여래상이 고졸한 미소를 선보이며 관세음
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그의 뱃속에서 나온 복장발원문(腹臟發願文)을 통해 강희(康熙) 3년 기사년(
己巳年)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강희3년은 기사년이 아닌 갑진년(甲辰年, 1664년)이다.
그래서 연호 또는 해(年)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강희3년인 1664년 또는 1689년 기사
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짐)
아미타9품인의 하나인 중품하생(中品下生)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으며, 그의 좌우 협시보
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도 고맙게도 복장발원문을 속세에 보여 1680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아미타불은 높이 122cm, 관세음보살은 높이 119cm, 대세지보살은 117cm으로 같은 협시보살임
에도 약간 차이가 난다. 다들 얼굴이 비슷하여 3형제가 나란히 분장하여 앉아있는 것 같다.

아미타삼존불 뒤쪽에 자리한 색채가 고운 후불탱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한 아미타여래설법도
(阿彌陀如來說法圖)로 1730년에 철매(哲梅)의 증명 아래 수화원(首畵員) 채인(彩仁), 진행(眞
行), 즉심(卽心), 각천(覺天), 책활(策活) 등이 그렸다. 이 탱화를 주도했던 채인과 즉심은
1723년에 여수 흥국사(興國寺), 1725년 순천 송광사(松廣寺) 탱화 제작 때 의겸(義謙)을 도왔
으며, 진행과 각천은 1730년 고성 운흥사(雲興寺) 괘불 조성 때 의겸을 도운 인연이 있다. 그
리고 의겸과 채인, 지원, 각천, 책활 등은 1730년 공주 갑사(甲寺)의 석가여래삼세불도를 같
이 제작하는 등 좋은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도림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의 제작 의도와 달리 홀로 후불벽(後佛壁)
에 걸고자 조성한 것으로 갑사의 그것보다 좌우 폭이 넓으나 인물 표현이나 구성, 색채, 문양
등 도상이나 양식의 면에서 대체로 갑사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하여 이 작품은 18세기 최고
의 화승(畵僧)인 의겸의 화풍이 그의 유파 화원들에게 어떻게 전해지고 발전했는지는 보여주
는 작품이다.
특히 적/녹색의 강한 색 대비 속에 백색, 황토, 양녹, 갈색 등 부드러운 중간 색조가 안정적
으로 뒷받쳐주고 있는 설채법, 그리고 주저 없는 유려한 필선, 중후한 이목구비를 가진 상호
등에서 1724년 송광사 응진전 영산회상도, 1725년 송광사 영산회상도 등 의겸의 화풍을 잘 계
승 발전시키고 있다.

이 그림은 아미타여래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팔대보살, 그리고 권속들이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짜임새 있는 화면구성을 갖추었고, 정취하고 유려한 필선과 중간 톤의 안
정된 색감과 문양을 통하여 우수한 화격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기 유행한 화풍과 화사간의
교류를 통한 화맥(畵脈)의 전승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2017년 3월 국가
보물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  보광전 범종(梵鍾)

보광전 구석에 있는 이 범종은 1706년에 곡성 통명산 운흥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나중에 도림
사로 들어와 이곳에 오랜 보물을 1개 늘려주었다. 그의 단단한 피부에 운흥사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새벽과 저녁, 예불시간에 왕성하게 몸을 푼다.

◀  보광전 우측에 자리한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과 시왕 등 명부(저승) 식구들의
 공간이다.

▲  듬직한 덩치에 명부전 지장보살상과
지장탱

▲  보광전 좌측에 자리한 칠성각(七星閣)과
응진당(應眞堂, 오른쪽 건물)


▲  응진당 석가여래상과 아난존자(阿難尊者), 가섭존자(迦葉尊者)

응진당은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16나한(羅漢)의 거처이다. 고개를 약간 숙인 금동 피부
의 석가여래상 좌우로 아난과 가섭존자가 시립(侍立)하여 정중하게 합장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상이 제각각의 포즈와 의상을 취하며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 뒤로
16나한탱이 자리하여 그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  응진당의 16나한상 식구들

▲  칠성각 식구들
석가여래상과 칠성탱을 중심으로 왼쪽에 독성탱, 오른쪽에 산신탱이 자리한다.

▲  도림사계곡 상류와 동악산으로 인도하는 길

도림사를 30분 정도 둘러보고 경내를 나왔다. 도림사 일주문을 들어선 이후부터 빗방울이 조
금씩 떨어졌으나 나들이에 크게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며,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았다. 마
음 같아서는 계곡 상류까지 더듬어 청류9곡의 나머지 식구들(7/8/9곡)을 싹 찾아보고 싶었으
나 늘 그렇듯이 시간 문제를 내세워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으로 쿨하게 넘겼다. 그래야 나중
에 또 찾아올 명분이 생길 것이 아닌가. 게다가 도림사계곡이 생각보다 너무 명품급이라 여름
제국 시절에 피서도 즐길 겸 다시 찾고 싶다.


▲  도림사계곡을 뒤로 하며
이렇게 하여 늦겨울 도림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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