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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내원사(내원사계곡)


~~~~ 한여름 산사 나들이, 양산 내원사(내원사계곡) ~~~~
내원사 숲길
▲  내원사 숲길
 


여름 제국이 폭염을 투하하며 천하를 혹독하게 다잡던 7월의 끝 무렵, 친한 후배와 이
틀 일정으로 부산과 양산 지역을 찾았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그를 만나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는 고속열차(KTX)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를 내달려 부산역에 이르렀다.
부산에 왔으니 여름 제국의 서슬 시퍼런 기세도 피할 겸, 부산의 필수 해안 명소인 태
종대(太宗臺, ☞ 관련글 보기)와 송도(松島) 해변을 구경시켜주었는데, 송도는 가마솥
처럼 달궈진 모래밭과 바다로 인해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암남공원으로 이어지는 그늘진 송도해안 둘레길(해안 벼랑길)을 거닐며 무더위 갑질에
저항해 보았으나 35도를 웃도는 지독한 폭염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오전부터
무더위를 가르며 돌아다녔더만 몸도 완전 지쳐버렸다. 하여 17시에 나들이를 종료하고
동래(東萊)로 이동해 적당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 휴식모드에 들어갔다.
저녁으로 동래파전과 산성막걸리를 배불리 섭취하고 온천장 게임방에서 푼돈을 날리기
좋은 게임으로 2시간 정도 때우다가 숙소로 돌아와 문명의 이기에 의지하여 잠을 청했
다.
 
거의 10시간 정도 꿈나라를 헤매다가 오전 10시에 겨우 일어났는데, 후배는 외박 경험
이 거의 없는 탓에 겨우 2~3시간 정도 밖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둘째 날 메뉴로 해운대를 제시했으나 내 마음은 이미 부산을 떠나 양산(梁山) 땅
에 가 있었다. 온천장에 숙소를 잡은 것도 바로 양산을 겨낭하고자 함이었지. 하여 부
산은 이 정도로 흔쾌히 마무리를 짓고 양산 내원사를 제안했다. 폭염에는 뙤약볕의 해
변보다는 그늘진 산사와 계곡이 진리이다.
결국 양산으로 결정되어 부근 식당에서 밀면과 불고기로 늦은 아침을 섭취하고, 홈플러
스 동래점에서 먹을 것을 한가득 구매한 다음, 온천장역(1호선)에서 양산시내버스 12번
(신평,통도사↔명륜역)을 타고 부산을 벗어났다.


♠  천성산 내원사(內院寺) 입문

▲  내원사계곡 상류 (내원사 주차장 주변)

양산 12번 버스는 1시간 정도를 달려 용연리 내원사입구에 우리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서 내
원사까지는 거의 10리 거리로 대중교통편이 없어 천상 택시를 타야 된다.
용연리는 내원사와 천성산(千聖山)을 후광으로 삼은 마을로 지나가는 택시가 없어서 무더위나
잠시 피할 겸, 편의점에서 얼음 둥둥 띄우며 냉커피 1잔을 걸쳤다. 콜택시를 부르려고 밖으로
나서니 마침 택시가 나타나 그를 잡아타고 내원사로 향했다.

내원사로 들어가는 중간에 커다란 일주문(一柱門)이 있는데 내원사는 그곳에 매표소를 설치하
여 차를 세우고 입장료(현재는 받지 않음;)와 주차비를 칼처럼 징수하고 있었다. 그 말썽 많
은 구례 천은사(泉隱寺, ☞ 관련글 보기)처럼 길을 막고 돈을 뜯는 것이다.
우리 차례가 되자 매표소 직원은 택시 운전사까지 포함해 3명치 6,000원을 요구했다. 운전사
는 어디까지나 우리를 내원사로 가져다주는 역할에 불과한데 운전사까지 돈을 내놓으라고 하
니 하도 기가 막혀서 한마디 따졌다. 그랬더니 2명분을 달라고 해서 얹짢은 기분으로 돈을 건
네고 내원사가 쳐놓은 유료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일주문을 지나면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동쪽으로 직진하면 상리천과 노전암(爐殿庵)이고, 오
른쪽 다리를 건너면 바로 산령각이 나타나면서 내원사계곡(용연천)과 내원사로 이어진다. 산
령각은 내원사 건물로 경내와 한참이나 먼 이곳에 산령각과 일주문을 설치해 자신들의 영역임
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다.
그저 그랬던 내원사계곡은 일주문 이후부터 풍경이 10배 이상으로 좋아졌다. 뱀처럼 구불구불
한 1차선 크기의 계곡 길(내원로)을 4~5분 정도 들어가 내원사 주차장에 이르렀는데, 이곳이
내원로의 끝으로 택시는 우리를 내려주고 부릉소리를 한 곡절 남기며 속세로 나갔다.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내원사이며, 남쪽 산길을 오르면 천성산으로 이어진다.


▲  내원사 선해일륜 정문

내원사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2개가 있다. 윗 사진의 선해일륜 기와집 정문과 북쪽에 넓게 트
인 문이 그것으로 선해일륜 정문은 예전에 내원사 정문으로 바쁘게 살아갔으나 이제는 아무에
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금지된 문이 되었다. 하여 북쪽 문으로 경내로 들어서야 된다. 그럼
여기서 잠시 내원사의 내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경남의 금강산(金剛山)으로 칭송받고 있는 천성산(922m) 북쪽 자락에 비구니 수행 선원인 내
원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을 내세우고 있는 이곳은 내원
사계곡을 옆에 끼고 있는데, 천성산의 첩첩한 산주름에 아주 푹 묻혀있어 '절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고즈넉한 절이다. 게다가 비구니 절이라 경내는 조금의 띠끌도 없이 정갈하다.

내원사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시절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황
당하면서도 재미난 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987년에 송나라 승려 찬녕(贊寧)이 편찬한 송고승
전(宋高僧傳)에도 실려있으니 내용은 대략 이렇다.

원효대사는 불광산(佛光山)에 암자를 지어 머물고 있었다. (그 암자 이름이 '척판암'이라고
함)
어느 날, 그는 두 눈에 힘을 팍 주고 천리안(千里眼)을 발휘해 당나라 땅을 구경하고 있었는
데 (설마 그 시절에 항공지도나 인공위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장안(長安) 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 또는 태화사(太和寺)>에 시선이 멈추는 순간 심상치 않은 조
짐을 발견했다. 비구니 1,000명이 머물고 있는 그 절의 뒷산이 곧 무너질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효는 급히 현판에 '海東元曉 拓板救衆(해동원효 척판구중)'이라 쓰고 서쪽으로 날려
보냈다. <현판 대신 소반(盤)을 던졌다고도 함, 즉 척반구중(拓盤救衆)>
그 현판은 순식간에 당나라로 날라가 운제사의 허공을 요란하게 맴돌았는데 운제사 승려들은
마침 사시공양(巳時供養, 오전 10시경의 식사) 중이었다. 그 신기한 광경에 하나 둘 밖으로
나왔고 마지막 사람이 나오자 산사태가 일어나 절을 덮쳤다. 그리고 현판(또는 소반)은 땅에
뚝 떨어졌다.

운제사 비구니들은 그 현판을 소중히 안고 자신들을 구해준 원효대사를 찾으러 신라를 찾았다.
원효가 그들을 환대하니 우루루 그의 앞에 무릎을 끓으며 제자가 되기를 청했고, 원효는 그들
을 수습해 적당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가다가 중방리에 이르자 원적산(圓寂山) 산신령이 마중
을 나와 자신의 산에 머물 것을 제안했다.
하여 그의 안내를 받아 계곡으로 들어가다가 현 일주문 부근 산령각입구에서 산신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연유로 그곳에 산령각을 지었다고 함) 그리고 계곡을 더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
에 대둔사(大屯寺)를 지었으며, 상내원암(上內院庵), 중내원암, 하내원암 등 89개의 암자를
산 도처에 지어 운제사 승려와 제자들을 수용했다. (하내원암이 현 내원사라고 함)
또한 천성산 상봉(화엄벌)에서 그들을 모아 화엄경(華嚴經)을 강설하니 그곳을 화엄벌이라 부
르며, 그들 1,000명 중, 988명이 이 산에서 도를 터득했고, 나머지 12명 중 8명은 팔공산(八
公山)에서, 4명은 사불산(四佛山)에서 도를 깨달아 1,000명이 모두 성인이 되니 이를 기리고
자 원적산을 천성산으로 이름을 갈았다고 전한다.

당시 89개 암자에 머물던 그들을 집합시키고자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북을 매달아 둔
곳을 집북재(집붕봉)라고 하였다.

▲  2층 구조를 지닌 죽림원(竹林院)

▲  팔작지붕 2층 건물인 정려헌(靜慮軒)

내원사의 창건설화는 천성산 서쪽 자락에 있는 홍룡사(虹龍寺), 그리고 원효대사가 머물렀다
는 불광산 척판암과 비슷하다. 홍룡폭포로 유명한 홍룡사(☞ 관련글 보기)는 신라 문무왕(文
武王) 시절에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원효가 세운 89개 절 중 하나라 내세우고 있고, 척판암은
한 술 더 떠서 원효가 현판을 써서 당나라로 던진 곳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믿
거나 말거나 전설이 아닌 실화로 여기고 있다고 하는데, 원효는 엄연한 승려이지 도술을 부리
는 술사(術士)나 괴물이 아니다.
다만 원효의 명성이 천하에 고루고루 미쳤으므로 그의 배움을 받고자 찾아온 외국 승려도 적
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원효의 명성을 크게 띄울 겸, 당나라에서도 많은 승려가 가르침을 받
으러 왔음을 강조하고자 그럴싸하게 설화로 빚은 것이고, 그 이야기가 주변에 전해져 송나라
서적에도 수록된 것이다. 또한 홍룡사와 내원사도 창건주와 창건 시기를 크게 부풀리고자 그
설화를 가져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원효의 89개 암자 중 하나로 우기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원효는 장인이 되는 무열왕(武烈王)을 도왔고,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을 어루
만지고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백성들 속으로 파고 들었으며, 661년에는 고구려에게 털린 당나
라군을 도우러 가는 김유신 부대에 종군(從軍)하는 등, 나름 바쁘게 산 승려이다. 그와 함께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던 의상(義湘)과 달리 창건한 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  내원사의 법당인 대웅전(大雄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  대웅전 석가삼존상과 닫집


창건 이후 17세기까지 무려 1,000년 가까이 어떠한 내력도 전하지 않으며, 신라 중기 창건설
을 흔쾌히 받쳐줄 유물도 일체 없어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에 심히 회의감을 들게 한다. 하
여 절이 우후죽순 들어섰던 고려 때 살짝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본격적인 사적(事蹟)이 등장하는 것은 조선 인조 때이다. 1646년 의천대사(義天大師)가 중건
했고, 1845년 용운(龍雲)이 중수했으며, 1876년 해령(海嶺)이 또 중수했다. 1898년 유성(有性
)이 설우(雪牛), 퇴운(退雲), 완해(玩海) 등과 수선사(修禪社)를 세우고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갈았으며, 동국제일선원임을 내세워 선찰(禪刹)로 이름을 날렸다.
왜정(倭政) 때는 혜월(慧月)이 주석하면서 많은 선승을 배출했으며, 6.25 때 천성산 산속으로
도망친 공비패거리들이 방화를 저질러 절이 완전 소실되고 말았다.
1955년 수덕사(修德寺)에서 온 수옥(守玉)이 주지승이 되어 5년 동안 불사를 벌여 많은 건물
을 올렸으며, 1959년 선방인 선해일륜을 낙성하여 경남 지역 제일의 비구니 선찰로 자리를 잡
았다.

경내에는 대웅전(선나원)과 선해일륜, 심우당, 정려헌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대둔사와
상내원암, 중내원암 등 89개의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막연히 조선 중~후기에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하내원암은 내원사로 이름을 갈았다고 전한다. 현재 부속암자로는 금강암, 금봉
암, 노전암, 비로암, 성불암, 안적암, 익성암, 조계암 등이 있으나 이들은 89개 암자와는 거
리가 멀어 보인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11세기에 조성된 청동북(국가 보물)과 19세기에 조성된 아미타삼존탱(
남 유형문화유산
), 석조보살좌상(경남 문화유산자료)이 있으며, 절 전체는 '양산 천성산 내원
사 일원'이란 이름으로 '경남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 오래된 솥이 전하고 있다.
허나 청동북과 아미타삼존탱, 석조보살좌상은 관람이 어려우며, 선해일륜 등 경내의 절반 이
상을 통제구역으로 묶어놔서 두 발을 자유롭게 둘 공간이 적다. 예전에는 선해일륜도 관람이
가능했고 그 툇마루에도 앉을 수 있었으나 싹 막아놓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볼거리
가 거의 없어 실망이 적지 않다.


▲  속세에 금지된 건물이 된 선해일륜(禪海一輪)
1959년에 지어진 'ㄱ'자 집으로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선원(禪院)으로 건물 밑도리에 부엌까지 갖추고 있다.

▲  선해일륜 옆 석조(石槽)
이곳과 정려헌 앞에 물을 마실 수 있는
석조가 있다.

▲  선해일륜 부엌과 조왕탱
부뚜막에 설치된 검은 피부의 가마솥 3개가
내원사의 밥과 국을 처리하고 있다.


▲  이제는 전시물이 되어버린 늙은 솥
조선 후기에 쓰인 솥으로 저 솥을 통해 많은 밥과 국이 태어났다. 세월을
너무 예민하게 탔는지 너무 녹이 슬어서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마음에도 없는 한가로운 여생을 보낸다.

▲  솥 옆에 걸린 동그란 청동북
내원사에는 고려시대 청동북이 있는데 저것은 그 모조품이다.
 

* 천성사 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 (내원로 207, ☎ 055-374-6466)
* 내원사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  수조에 수줍게 피어난 보랏빛 수련 1송이


♠  내원사계곡 둘러보기

▲  내원사계곡 숲길 ①

내원사의 알짜배기들은 죄다 사람을 가리고 있어 정작 볼거리가 별로 없다. 하여 관람과 출사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가 되었는데, '이런 내원사에 도대체 뭐하러 왔나?' 싶어 자괴감
과 실망감만 잔뜩 품은 채, 절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나와서 계곡을 따라 펼쳐진 짙은 숲길을 거닐며 잠시 두 다리를 쉴만한 곳을 찾아
보았다. 내원사 경내와 가까운 계곡은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으나 어느 정도 나가면 그 통제도
완전히 풀려 계곡에 자리를 잡은 피서객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좋은 자리는 사람들이 싹 차지하고 있어 계속 밑으로 내려가다가 겨우 괜찮은 곳을 찾아 그곳
에 자리를 잡고 속세에서 사온 먹거리를 꺼냈다. 먹거리는 김밥, 초밥류, 음료수로 그들을 주
섬주섬 먹으며 다시 망중한을 즐긴다. 마음 같아서는 계곡과 진한 스킨쉽을 즐기며, 여름 제
국에 제대로 저항하고 싶지만 그럴 준비도 하지 않았고 여름 가뭄으로 계곡 수량도 별로 없어
서 그냥 발만 담구는 선에서 끝냈다.


▲  내원사계곡 숲길 ②

▲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계곡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상당수를 이루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물놀이 모습만 봐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  벼랑 밑을 흐르는 내원사계곡

내원사계곡은 천성산에서 가장 잘생긴 계곡으로 거의 6km에 이른다. 숲과 벼랑, 암반, 소(못)
, 바위, 계류가 잘 어우러져 예로부터 부산/울산 근교 피서의 성지(聖地)이자 명승지로 격하
게 추앙을 받고 있으며, 좁은 협곡과 주름진 높은 벼랑이 많아 절경을 자아낸다. 이런 절경은
산령각에서 내원사 사이에 주로 분포한다.


▲  피서삼매에 빠진 내원사계곡 ①

▲  피서삼매에 빠진 내원사계곡 ②

▲  피서삼매에 빠진 내원사계곡 ③

▲  내원사계곡 벼랑길
계곡이 좁다 보니 이런 벼랑이 적지 않다. 피서객들이 가져온 차량은 길 곳곳에
틈이 보이는 곳마다 들어서 있는데, 평일이라 망정이지 휴일에 왔더라면
완전 주차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뚜벅이가 속 편하다.

▲  내원사계곡 중류 숲길
내원사계곡은 일주문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  청기와를 눌러쓴 내원사 산령각(山靈閣)

공짜와 유료의 공간을 가르는 일주문 남쪽에 돌담을 두룬 1칸짜리 산령각(산신각)이 있다. 맞
배지붕을 지닌 이곳은 산신(山神)의 보금자리로 내원사와 2.8km 이상 떨어져 있어 겉으로 보
면 그곳과 별개의 존재로 여기기 쉽다. 허나 그는 엄연한 내원사의 건물이다.
보통 산신의 거처는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두기 마련이나 내원사는 경내에 두지
않고 이곳에 두었다. 그렇다면 왜 산령각을 이렇게 먼 곳에 떨어뜨려놓아 왕따나 귀양을 시킨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일까? 그것은 내원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원적산 산신이 여기서 사라졌다
는 이야기 때문이다.
원효가 당나라 운제사에서 온 비구니 1,000명을 이끌고 천성산을 따라 남쪽으로 가던 중, 용
연에서 원적산 산신이 마중을 나왔다. 그는 자신의 산이 좋은 곳이라며 절을 세울 것을 권했
고 그의 안내를 받아 내원사계곡을 따라가다가 이곳에서 산신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곳이 용연천과 상리천이 갈라지는 곳이고 천성산 길목의 하나인
지라 예로부터 산악신앙의 현장으로 쓰인 것을 내원사가 저런 설화를 씌워서 산령각을 세운
듯싶다.


▲  산령각 산신탱
산령각에는 산신탱이 홀로 봉안되어 있다. 탱화에는 원적산(천성산) 산신과
표정이 굳어 보이는 호랑이, 동자 2명, 산, 폭포, 소나무 등이
그려져 있다.

▲  산령각 앞 소나무 - 양산시 보호수

산령각 앞 계곡변에는 무려 720년을 묵었다는 소나무가 장쾌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높이는
25m, 나무둘레 3.1m, 추정 나이 720년 정도로 산령각이 절이 아닌 산악신앙의 현장으로 쓰였
던 시절에 심어지거나 내원사에서 이정표 용도로 심은 듯 싶다. 그의 그늘 맛이 참 깊어서 산
령각과 주변 계곡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산령각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일주문이다. 원래는 내원사입구까지 걸어서 가려고 했으나 후
배가 이곳까지 들어온 택시를 잡아서 그것을 타고 가자고 그런다. 계곡 숲길이라 크게 덥지는
않아서 천천히 걸어가면 좋을텐데 힘들다고 그런다. 하여 그 택시를 타고 용연(내원사입구)으
로 나왔다.

이제 시간도 17시, 이틀 일정으로 왔고 좀 있으면 일몰이라 더 비빌만한 곳은 없었다. 시간이
좀 된다면 간만에 통도사(通度寺)나 작천정을 보는 것도 괜찮겠으나 그건 무리다. 하여 미련
없이 양산시내버스 13번(양산역↔울산역, 현재는 통도사,신평↔울산역 구간만 운행함)을 타고
울주 언양(彦陽)으로 이동했다.
울산(蔚山)의 일원인 언양은 울주군(蔚州郡)의 서쪽 중심지로 간만에 인연이다. 아직 언양불
고기는 먹어보지 못해 그것을 먹고 상경하려고 언양 읍내를 찾은 것인데, 언양터미널 건너편
에 언양불고기집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그중 적당한 곳에 들어가 언양불고기 정식을 먹었다.
앞서 내원사계곡에서 먹은 것들이 다 소화가 안된 상태지만 광양불고기나 서울불고기처럼 맛
이 달달하여 뱃속에 꾸역꾸역 넣으니 어느덧 고기판과 밥그릇은 맨바닥을 드러내 보인다. 반
찬도 먹을만 했으나 많이 남겼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바로 지척에 보이는 울산역까지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갔다. 후배의 배려
로 처음으로 그 비싼 고속열차 특실을 타게 되었는데 고속열차 일반실보다는 훨씬 편하나 지
금은 사라진 예전 새마을호 좌석만은 못한 것 같다. 그 특실도 거의 만원 상태이다.

열차를 타고 2시간 10분 정도를 달려 서울역에 이르렀다. 결국 나의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여행이나 답사의 기점과 종점은 늘 제자리, 그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어쩔 때는 무척 싫다.
이렇게 하여 부산, 양산 여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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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경남 양산시 하북면 내원로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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