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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산북측순환로에서 만난 조그만 인공폭포 (와룡묘~소파로 구간)

 

2. 개나리와 벚꽃의 향연이 한참인 남산북측순환로 (와룡묘~소파로 구간)

 

3. 소파로에서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기념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으로 인도하는 계단길

서울 도심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계단으로 왜정 때 이곳에 들어앉았던 조선신궁의 계단길이
다. 남산의 진한 옥의 티였던 조선신궁은 8.15 이후에 보기 좋게 밀어버렸으나 계단길은 용케도 살아
남아 남산공원으로 인도하는 계단길로 조용히 살아간다.

 

4. 남산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중근의사기념관 동쪽이자 남산도서관 북쪽에 남산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이 넓게 자리해 있다. 이곳은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간 곳으로 남대문(숭례문)과 남산(목멱산) 정상
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왜정은 1920년부터 1925년까지 이곳 일대에 조선신궁이란 해괴한 집을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
곳을 비롯한 도동3거리~남산 서쪽 자락 성곽이 파괴되고 말았다. 1930~1940년대에는 조선신궁 동
쪽에 방공호가 지어졌으며, 1945년 8월 이후 조선신궁은 철거되고 방공호도 땅속에 묻혔다.

 

이후 이곳은 남산공원의 일원으로 살아가다가 1968년에 그 유명한 남산식물원이 지어졌고, 1969년
에 분수대가 닦여졌으며, 그 주변으로 남산도서관과 안중근의사기념관, 백범광장이 들어섰다. 허나
이곳을 지났던 한양도성 성곽터는 햇살을 보기는커녕 계속 음지에 갇히면서 세상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졌다.

 

2009년에 이르러 남산의 지형을 되살리고 한양도성의 사라진 부분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
면서 남산식물원과 분수대, 백범광장을 밀어버리고 2014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성곽 유구가 땅속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백범광장 서쪽 구간의 성곽을 복원했으며, 양지로 나온 성곽터에 크게 보호각을 씌워 2020년
초에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란 이름으로 속세에 개방되었다.

 

발굴 때 나온 성곽터를 그대로 둔 상태로 그 허공에 보호각을 넓게 씌웠으며, 그 앞에 탐방로를 내
었다. 성곽터 안쪽(북쪽)에는 발굴조사로 나온 조선신궁 배전터가 있고, 동쪽에는 방공호가 있다.
그리고 방공호 동쪽으로 2020년에 복원된 성곽이 동쪽으로 흘러간다.

 

5. 보호각 밑에 자리한 한양도성 성곽터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한양도성 성곽터에 높게 보호각을 씌운 노천 전시관이다. 비록 노천 공간이
나 관람시간에 제한이 있어 9~19시(11~2월은 18시까지)까지만 문을 열며, 1월 1일과 설날 및 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하지만 유적전시관 바깥에서도 보일 것은 거의 다 보인다. (관람료는 없으며, 평일
4회, 휴일에 7회 전시해설 안내가 있음)

 

6. 한양도성 유적전시관과 그 너머로 높이 보이는 남산서울타워

 

7.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의 유물로 살아가고 있는 한양도성 성곽터

왜정은 이곳을 지나던 한양도성 성곽을 밀어버리고 성곽 밑도리를 땅에 묻어 그 위에 조선신궁을 지
었다. 또한 성곽 바로 안쪽에 신궁의 중심 건물인 배전을 두었으니 이는 이 땅을 욕보이려는 왜정의
간악한 흉계이다.

성곽 밑도리는 이후 햇살을 누리지 못한 채, 90년 이상 지하에 묻혀있다가 2009년 이후 발견되어 다
시금 햇살을 보게 되었다.

 

8. 한양도성 축성에 쓰인 구조물의 흔적들

성돌 앞에는 구멍들이 있는데, 이들은 성벽을 쌓을 때 임시로 나무 기둥을 박았던 구멍 흔적이다. 지
름은 15~40cm 정도, 깊이는 최대 55cm로 이들 구멍은 2~3개씩 짝을 이루며 성벽과 나란히 발견되
었다.

일부 구멍에서는 나무 기둥의 밑동도 남아있었으며 여기서는 137개의 기둥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일부는 관람용으로 노출시키고, 나머지는 모래를 채워 땅속에 고이 묻었다.

 

9. 성곽터와 나무 기둥을 심었던 구멍의 흔적들

나무 기둥 구멍의 일부만 속세에 노출시키고 나머지는 땅에 묻었는데, 땅에 묻은 자리에는 하얀 동그
라미를 그어 자리를 표시했다.

 

10. 한양도성의 시기별 성돌 변화 안내문

성벽 맨 밑에는 가로로 긴 대형 기초석이 놓여 있는데, 이들은 한양도성을 처음 닦던 1396년에 쌓은
성돌이다. 이때는 토성으로 지어졌다.

그 위에 올린 성돌은 좌우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왼쪽 성돌은 비교적 작고 납작한데, 이들은 한양도
성을 석성으로 크게 업그레이드 했던 세종 시절에 것이고, 오른쪽 성돌은 약 40~45cm 크기로 한양
도성을 크게 중수했던 숙종 시절의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면 성돌의 크기가 60cm로 커진
다. 이렇듯 이곳은 태조와 세종, 숙종, 19세기 등 다양한 시대의 축성 기술이 깃든 현장이다.

 

11.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동쪽 부분과 그 너머로 보이는 남산서울타워와 방공호(왼쪽에 보이는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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