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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빙계계곡 (빙혈, 풍혈)


~~~~~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의성 빙계계곡 ~~~~~
빙계계곡 빙혈
▲  빙계계곡 빙혈
 


반년 가까이 세상을 지배했던 욕심꾸러기 겨울과 천하만물의 격렬한 호응을 받으며 새
로 일어선 봄이 천하를 두고 막판 자웅을 겨루던 3월의 한복판에 피서의 성지(聖地)로
유명한 의성 빙계계곡을 찾았다.

아침 일찍 일행들과 서울을 출발하여 충북의 여러 지역(진천, 보은, 영동)을 둘러보고
오후 늦게 경북으로 넘어와 어느덧 의성(義城) 땅에 이르렀다. 의성에서는 빙계계곡과
그곳에 서린 풍혈, 빙혈을 보고자 함으로 그곳에 도착하니 어느덧 18시이다.


♠  빙혈과 풍혈을 품은 의성 제일의 경승지,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의성 빙계계곡(氷溪溪谷) (빙계리 얼음골)

▲  빙계계곡 상류 ①

의성 빙계계곡은 이미 20여 년 전에 인연을 지은 적이 있다. 그때 빙혈과 풍혈, 빙산사지5층
석탑을 둘러보았는데, 그들은 계곡 중간인 빙산(氷山) 밑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찾은 탓에 그들의 위치를 놓쳐 그만 계곡 상류까지 들어가버렸다. 허나 그렇게 멀리 들어온
것은 아니라서 왔던 길로 600m 정도 되돌아나가면 바로 빙혈/풍혈 입구이다.

기왕 상류까지 들어온 거 잠시 차에서 내려 상류의 깨끗한 공기도 마셔볼 겸 주변 풍경을 살
폈다. 겨울과 봄이 3월 내내 천하를 두고 다투느라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계곡 물은 별로
없었지만 벼랑과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소나무가 우거져 그윽하게 경치를 자아내
고 있다. 그렇다면 빙계계곡은 어떤 곳일까?

빙계계곡은 말그대로 얼음 계곡이다. 밀양(密陽)의 얼음골과 비슷한 곳으로 빙계리 얼음골이
라 불리기도 하며, 대자연이 빚은 얼음 구멍과 바람 구멍이 있어 계곡 북쪽 산을 얼음산, 즉
빙산(氷山)이라 부르고, 그 곁을 흐르는 계곡을 빙계(빙계계곡, 빙계천)라고 한다.
예로부터 의성 제일의 경승지로 빙혈과 풍혈, 인암(仁岩), 의각(義閣), 수대(水碓, 물레방아)
, 빙산사지 5층석탑, 불정(佛頂, 불정봉 정상), 용추(龍湫)(용소) 등 8곳의 명소가 서려 있는
데, 이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빙계8경이라 부르며, 그들 중 갑(甲)은 이곳의 얼굴이자 상징인
빙혈과 풍혈이다. 그들이 있기에 빙계계곡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 빙혈과 풍혈이 시원하게 막을 치고 있는 곳에 빙산사터가 있고, 계곡 입구에는 빙계서원이
있으며, 빙혈 부근에는 도교 사당인 태일전이 있어 승려와 선비, 도교(道敎) 신봉자들도 이곳
에 적지 않게 군침을 흘렸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이곳은 자연이 의성 땅에 내린 특별한 선물
이다.


▲  빙계계곡 상류 ②
소나무와 벼랑, 맑은 계곡이 조화를 이루며 착한 경치를 자아낸다.


빙계 일대는 왜정 때 경북8승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으며, 여름만 되면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
와 북새통을 이룬다. 하여 의성군에서는 계곡 일대를 '빙계군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길을 정비
하고 오토캠핑장과 여러 편의시설을 닦는 등 특별히 애지중지하고 있다.

얼음과 서늘한 바람, 그리고 계곡이 한데 어우러진 피서의 완벽한 성지로 무더위에 대한 방어
력이 아주 삼엄하여 제아무리 여름 제국이라고 해도 그 방어선은 뚫지 못한다. 그러니 이곳에
서만큼은 여름 두 자를 잊어도 좋다. 빙혈과 풍혈에서 시원한 바람을 실컷 맞고 (대신 얼음은
건드리지 말자~!) 계곡에서 물놀이로 몸을 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꿀피서를 즐길 수 있다.


▲  누런 갈대가 덥수룩하게 자라고 있는 빙계계곡
갈대 너머로 보이는 집들 뒷쪽에 빙혈과 풍혈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  빙계계곡이 크게 구부러지는 곳 (용추 동쪽)

▲  용추 위에 걸린 구름다리

▲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용추와 빙계계곡 중류
빙계계곡에서 가장 풍경이 일품인 곳은 구름다리 주변 용추(용소)이다.
용추는 두 벼랑 사이에 자리한 깊은 못으로 나무와 해, 달 등이
그를 맑은 거울로 삼아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는다.

▲  경북팔승 기념비<경북팔승지일(慶北八勝之一) 비석>
왜정 시절 빙계계곡이 경북8승의 하나로 크게 추앙을 받자 이를 기리고자
1934년 9월 24일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 옆면에 왜왕 연호인
소화9년 어쩌구 글씨가 있음)

▲  빙산사지(氷山寺址) 5층석탑 - 보물 327호

용추 구름다리 맞은편에 빙혈, 풍혈로 인도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들어서면 경북8승 기념비
가 나오고 그 뒷쪽에 너른 공터와 맵시가 좋은 석탑 하나가 진하게 눈짓을 보낸다. 그가 바로
빙계계곡의 오랜 유물인 빙산사지5층석탑이다.

이 탑은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서 빚은 모전탑(模塼塔)으로 근처에 있는 탑리(塔里)5층석탑
을 모델로 하여 지었다고 한다. 비록 탑리 탑에는 미치지 못하나 나름 잘생긴 탑으로 신라 후
기나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16개의 돌로 이루어진 바닥돌을 밑에 깔고 그 위에 1층의 기단(基壇)을 올린 다음 5층의 탑돌
을 얹힌 것으로 높이는 8.15m, 바닥돌 폭 4.06m이다. 1층 탑돌은 네 모서리에 각각 다른 돌로
모서리 기둥을 세우고 정면(남쪽)에 네모나게 홈을 판 감실(龕室)을 두었는데, 이곳에는 불상
을 봉안했다. 그리고 2층 이상부터 몸돌은 그 높이가 1층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 적당하게 체
감률을 선보이고 있으며. 탑 머리에는 머리장식인 노반(露盤)이 남아있다.

지금은 이렇게 정정한 모습이지만 한때 탑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하여 1973년에 탑을 해체
하여 복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3층 옥개석(屋蓋石)에서 석함(石函)이 나왔는데, 그 안에서
금동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그로 인해 탑의 존재와 가치가 한층 높아졌으며, 그 사리장치는
멀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  정면에서 바라본 빙산사지 5층석탑

▲  1층 탑돌에 있는 감실

이곳에 둥지를 틀며 5층석탑을 품고 있던 빙산사(氷山寺)는 신라 중기나 후기에 창건된 것으
로 여겨진다. 허나 자세한 사적(事績)은 전하지 없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석탑 1층 감실에 있던 불상이 사라졌다고 하며 그가 앉아있던 좌대만 남아 빙혈 옆에 따
로 놓여져 있다.

절터의 범위는 경북8승 비석부터 빙혈까지로 보이며, 빙혈에는 도교의 태일<태일성(太一星)>
에게 제를 지내던 태일전(太一殿)이 있었다고 전한다. 건물이 꽤나 있었을 절은 잔디와 잡초
밭으로 그림이 180도 바뀌어 세월무상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으며, 5층석탑과 건물터, 주춧
돌만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언제 지어지고 무슨 사연이 깃든 절인지는 낸들 알 도리는 없으나 이곳을 완전 뒤집어 본다면
빙산사의 비밀이 조금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곳은 풍혈과 빙혈이 때에 따라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바람이 늘 깃들여져 든든하
게 막을 형성해주니 그야말로 4계절 모두 살기가 좋은 곳이다. 하여 그들을 든든한 후광으로
삼고자 이곳에 절을 지었던 모양이다.

* 빙산사지5층석탑 소재지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0


▲  잡초만 무성한 빙산사터 (탑 남쪽)

▲  대자연과 세월에 의해 무심히 헝클어진 빙산사터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


♠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과 얼음이, 겨울에는 따스한 바람이 나오는
신비로운 현장, 빙계리 얼음골(빙혈, 풍혈) - 천연기념물 527호

▲  빙혈(氷穴)

빙산사터를 지나면 빙계계곡의 얼굴인 풍혈과 빙혈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한여름에는 시
원한 바람과 얼음을 내뿜고, 한겨울에는 따스한 바람이 나온다는 그 신비의 현장으로 바깥 세
상과는 완전히 반대로 논다. 즉 바깥이 여름이면 속살은 겨울이나 늦가을이고, 바깥이 겨울이
면 속살은 늦봄이나 여름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들 주변을 보면 암괴(巖塊)들이 많다. 암괴
틈에 저장된 차가운 공기가 여름에 외부의 더운 공기와 만나 물방울과 얼음이 만들어지는데,
보통 입춘(立春) 무렵부터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하여 하지 무렵까지 얼음이 언다. 그러다가 입
추(立秋)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해 동지 무렵에는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이처럼 계절을 거역한 대자연의 신묘한 장난이 일어나는 곳은 밀양 얼음골과 진안(鎭安)의 풍
혈냉천(風穴冷泉) 정도가 고작으로 이 땅에서 매우 희귀하다. 솔직히 너무 많으면 좀 의미가
없겠지. 그만큼 개체수가 적어야 이들 명소도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법이다.

▲  빙혈로 인도하는 문

▲  빙혈 내부에 걸린 태을영부 부적 돌판

빙혈은 폭 1.5m, 높이 2m, 길이 4.5m의 자연산 굴로 신라 중기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이곳
에서 수행을 했다고 전한다. 그때 이곳은 빙산원(氷山院)이라 불렸는데, 그의 부인인 요석공
주(瑤石公主, 무열왕의 딸)가 그를 보러 여기까지 왔다고 하며, 굴이 얼마나 깊던지 그 끝이
저승에 닿았다는 전설도 있다.

자연 상태로 있던 빙혈은 20세기 후반에 윗사진처럼 크게 손질되었는데, 인간들이 요란하게
손을 댄 탓에 얼음이 어는 것이 예전만은 못한 실정이다. 그래도 그런데로 얼음이 얼고는 있
으니 입춘 이후와 하지(夏至) 사이에 가면 꿈틀거리는 얼음을 만날 수 있다.

옛날 이곳에는 도교 사당인 태일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다보니 빙혈 내부에 '태을영부(太
乙靈符)'라는 도교 스타일의 부적 돌판을 달아서 없어진 태일전을 기리고 있는데, 태을영부란
'선한 사람은 흥하고, 악한 사람은 망하며, 다른 이들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은 살고, 손해를
끼치면 죽는다'는 내용이다. 허나 이 땅에서는 그 반대로 놀아야 흥하고 잘사니 부적의 내용
도 참 의미가 없어 보인다.


▲  얼음이 꿈틀거리는 빙혈 내부

빙혈의 속살로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우리를 엄습한다. 여름 제국 시절에 왔더라면 그 바람
이 참 반가웠을텐데, 3월에 왔으니 '그냥 찬 바람이구나~!' 로 감흥은 끝난다.
빙혈 안쪽에 얼음의 공간이 있는데 유리막으로 봉해져 있다. 바로 거기서 찬 바람이 나오며,
얼음 또한 꿈틀거린다. 우리가 갔을 당시는 시기가 좀 이른 탓에 얼음은 별로 없었다.

관람객들은 유리막 앞까지만 진입이 가능하며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아니 빙혈의 보호를 위
해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된다. 자꾸 인간들이 손과 발을 대다가는 빙혈도 발끈하여 신비의 현
상을 더 이상 못 보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  빙혈 문 옆에 깃든 글씨들
빙혈을 찬양하고 부처와 상제(上帝),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살 것을
권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빙계서원은 빙계계곡 하류에 있다.

▲  빙산사지5층석탑 감실 불좌대(佛座臺)

빙혈 옆에는 5층석탑 감실에서 가져온 불좌대가 가로로 뉘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 빙산사가
파괴되고 감실에 있던 불상(금동불)이 사라지자 지역 사람들이 불상이 앉아있던 네모난 불좌
대를 이곳에 수습했는데, 세로로 눕히거나 절터에 두지 않고 빙혈 옆에 이렇게 가로로 뉘운
것이 꽤 이채롭다.


▲  풍혈(風穴)

빙혈과 빙산사지 사이에는 풍혈이 웅크리고 있다. 이곳은 한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한겨울
에는 따스한 바람이 부는 자연산 선풍기 겸 히터로 바위에 자연산 상태로 있던 것을 마치 석
실고분처럼 돌로 문을 내었다. 돌문 외에는 자연산 그대로로 푸른 이끼가 덥수룩하게 자라고
있어 이곳의 청정함을 보여준다.
풍혈에는 계절을 역행하는 바람 뿐 아니라 얼음도 존재하고 있어 빙혈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데, 문이 뚫려있으나 빙혈의 보호를 위해 절대 들어가면 안되며, 구멍 내부는 빙혈과 달리 좁
은 편이다.


▲  풍혈의 금지된 속살

▲  풍혈에서 꿈틀거리는 얼음

빙혈과 풍혈의 얼음은 입춘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갔을 때가 3월 한복판이니 벌써부
터 저렇게 얼음이 숙성되었다. 얼음이 저리 크게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올해는 무척이나 더울
것 같다. 여름 제국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드는 존재들이지만 여름의 위세가 커야만 빙혈과 풍
혈도 제대로 몸을 푸니 여름과 빙혈/풍혈의 관계는 서로를 견제하면서 성장하는 사이이다.


▲  조그만 풍혈

풍혈 주변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바위 구멍이 여럿 있다. 앞서의 큰 풍혈이 어미 풍혈이
라면 나머지 조그만 바위 구멍들은 새끼 풍혈이라 할 수 있는데, 바위 사이에서 서늘한 바람
이 쏟아져 나와 여름 제국의 염통을 제대로 얼게 만든다.
비록 여름에 온 것은 아니지만 여름과 겨울 제국을 능히 굴복시키는 빙계계곡 얼음골의 위엄
앞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인간의 하나로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빙혈과 풍혈을 둘러보니 어느덧 시간은 19시가 되었다. 햇님은 그새 커텐을 치고 그만의 공간
으로 쏙 사라졌고 세상은 거의 검은 도화지로 물들어갔다.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나 충북의 여
러 지역을 거쳐 경북 의성의 빙계계곡까지 정말 배부른 나들이였다.

이렇게 바쁘게 보람찬 하루를 보내니 몸도 피곤하고 배도 고프다. 해도 졌으니 더 이상 답사
도 어려워 안동(安東)으로 바로 달려가 그곳의 명물인 안동찜닭에 곡차(穀茶) 1잔 겯드려 배
를 불리고 안동시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도 전날만큼이나 바쁜 답사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의성 빙계계곡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 빙계계곡 소재지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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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3년 6월 22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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