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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면동 백제 주거지 1호터 (망루근린공원)

주거터는 보존을 위해 땅속에 고이 묻고 그 위에 수풀과 나무를 심었다,

 

2. 솔내음에 묻혀있는 백제 주거지 2호터

 

3. 삼국시대 석실묘 6호터

 

4. 우면동유적 안내도

우면동유적은 망루근린공원을 중심으로 태봉(월산대군 이정 태실) 주변과 서초네이처힐단지에 분포

되어 있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08년 이후 우면지구와 우면산터널 도로를 닦는 과정에서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2010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수백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발굴이 끝나자 유적이 집중적으로 나온 서초네이처힐2단지 서쪽(우면산터널 톨게이트 동쪽)을 공원

으로 꾸며 망루근린공원을 닦았는데, 유적은 보존을 위해 흙과 수풀, 나무로 모두 덮고 그 위에 조그

만 표지를 세웠다. 하지만 이곳 외에 유적은 아파트와 도로로 죄다 밀어버려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곳 유적은 우면산의 남쪽 끝자락으로 구석시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난 문화층부터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 자리, 백제와 신라의 마을 유적과 무덤 흔적, 신라 후기부터 고려까지 이용되었던 논과 물

길의 흔적, 조선시대 구들과 무덤, 기와 가마터, 근대 수레길 등이 확인되었다. 구석기 문화층은 태봉

남쪽과 동쪽에서 나왔는데, 긁개와 밀개, 여러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이 발견됨으로써 서울의 구

석기 유적은 면목동유적과 함께 2곳이 되었으나 아쉽게도 둘 다 개발의 칼질로 사라졌다.

 

백제시대 마을 유적은 망루근린공원 일대에서 11동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4호 집자리가 이

들 마을 유적의 중심부이다. 여기서는 항아리와 시루, 병, 굽다리 접시, 뚜껑, 장군, 납작 밑단지 등의

토기가 나왔고, 도끼, 끌, 손칼, 화살촉, 창의 물미 등의 철제품과 가락바퀴, 소형 절구 등의 석물도 나

와 당시 생활상을 알려준다. 특히 재가 나온 집터가 많아 화재로 소실되었음을 알려주는데 아마도 전

쟁으로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백제와 신라의 무덤도 여럿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집자리 유적과 같은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무

덤은 마을이 사라진 이후 들어선 것으로 백제의 무덤은 2기가 나왔으며 모두 굴방무덤이다.

 

백제 1호분은 네모진 돌방과 다른 돌방으로 연결되는 널길이 덧대어진 모양으로 돌방(석실)은 길이

330cm, 너비 336cm이다. 이들 묘는 귀족이나 지방 세력의 묘로 여겨지는데, 돌방 바깥 위쪽에는 눈

썹 모양의 도랑이 둘러져 있으며, 살포와 도끼낫, 창의 물미를 비롯한 여러 철제 유물과 관못, 꺽쇠 등

도 나와 목관을 사용했음을 알려준다.

신라의 무덤은 신라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것들로 앞트기식 돌방무덤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서는 굽

다리사발과 둥근밑항아리, 손칼 등이 발견되었다.

 

5. 망루근린공원 내 우면동유적 분포도

 

6. 망루근린공원 정상부

공원 정상에는 정자 쉼터가 있다. 그 안에는 여기서 발견된 삼국시대 마을 유적과 무덤 유적에 대한

안내문, 유적과 출토 유물 사진이 걸려있어 이곳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와준다.

 

7. 우면동유적 안내문

 

8. 우면동유적에서 나온 신라 앞트기식 돌방무덤(석실고분)

여기서 나온 돌방무덤의 흔적은 발굴조사 이후 다시 땅속에 묻었다.

 

9. 우면동 마을 유적 안내문 (우면동유적)

 

10. 우면동유적의 건물터와 여기서 나온 유물들

 

11. 망루근린공원 산책로

망루근린공원은 우면동유적을 품은 일종의 사적공원이다. 하여 유적 보존을 위해 산책로 주변으로

난간을 둘러 유적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12. 망루근린공원 정상부 쉼터 정자

 

13. 망루근린공원 정상부 주변

 

14. 망루근린공원 남쪽 자락

우면산터널과 맞닿은 공원 서쪽은 가파른 지형이라 석축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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