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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암사 일주문

설악산 성인대 북쪽 자락이자 신선봉(1,212m) 동남쪽 자락 320m 고지에 화암사가 고즈넉하게 둥

지를 틀고 있다.

화암사는 바로 뒷산인 신선봉이나 설악산도 아닌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금강산 화암사'를 칭하고 있

는 것이 이채로운데, 여기서 금강산 중심부까지는 60km가 넘는다. 그에 반해 설악산 정상까지는 12

km 내외이다. 그럼에도 금강산을 가져온 것은 신선봉이 금강산 12,000봉의 최남단 봉우리라는 이유

때문이다. (신선봉을 옛날부터 금강산의 엄연한 일원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화암사만의 희망사항

인지는 모르겠음, 굳이 영역을 따진다면 설악산 화암사가 적당해 보임)

 

이 절은 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화엄사라 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곳 부근에

서 지장보살의 현신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세워 화엄사의 부속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허나

아쉽게도 그의 창건을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

창건 이후 오랫동안 사적이 없다가 1623년 소실되었다고 하며, 1625년에 중건했다고 한다. 이후 여

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1633년(또는 1634년) 간성군수였던 택당 이식이 작성한 간성지 화암사조

'천후산 미시파령(미시령) 밑에 화암이란 바위가 바른 편에 있어서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는 기록

이 있어 이르면 조선 중기에 화암사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인다. 화암사란 이름은 경내 남쪽에 있

는 수바위에서 비롯되었다.

한동안 화암사, 화엄사 두 이름을 쓴 것으로 보이며, 건봉사의 말사로 들어간 1912년부터 화암사란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세우게 된다.

 

1915년 소실되어 다시 지었으나 6.25전쟁으로 다시 파괴된 것을 겨우 법당만 다시 지어 절을 유지

했다. 그러다가 이곳에 중흥의 운이 들어왔으니 바로 1991년 8월 부근 신평들에서 절찬리에 열렸던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 때문이다. 그 대회를 개최하고자 주변을 크게 정비했는데, 그때 화암사도

혜택을 받아서 현재 모습으로 크게 지어지게 된다. 이때 기존 법당은 철거되었으며, 잼버리대회 기

간 동안 불교 국가에서 온 1,000명이 이곳 법당에서 수계를 받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설법전, 삼성각, 풍악제일루(범종각), 영은암, 미타암,

요사채 등 10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절 전체가 강원도 지방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늙은 유

물로는 조선 후기 부도탑과 조선 후기 탱화, 석조가 있으며, 절 남쪽에 이곳의 오랜 명물인 수바위가

경내를 굽어보고 있고, 북쪽 높은 곳에는 근래 닦여진 석조미륵불입상이 크게 자리해 동대해(동해바

다)를 굽어본다.

 

화암사는 고성 지역의 유명 명소이자 성인대로 올라가는 길목이라 많은 산꾼, 답사꾼, 나들이꾼들이

찾는다. 허나 대중교통 접근이 영 좋지 못해 차량이나 관광버스, 택시로 접근해야 된다.

 

2. 화암사 부도군

'금강산 화암사' 현판을 내민 일주문을 지나면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닌 부도탑(승탑)과 비석의 공간이

마중을 나온다. 이렇게 부도탑이 무리 지어 있는 공간을 흔히 부도전이라 하는데, 이곳에는 1,800년대

에 화암사를 중창한 춘담당대선사비를 비롯해 19~20세기 부도탑 15기와 비석 여러 기가 있다. 이들이

화암사에서 그나마 가장 늙은 존재들이다.

 

3. 화암사로 꾸준히 인도하는 숲길(화암사길)

화암사까지 차량들이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리게끔 신작로가 닦여져 있다. 허나 관광객과 산꾼들은 일

주문 이전에 있는 주차장(화암사 주차장1, 주차비를 징수함)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되며, 화암사

신도와 승려, 불교 관련 차량만 경내와 일주문 사이에 있는 주차장(화암사 주차장2)과 경내 밑 주차

장까지 차를 끌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거의 완만하고 숲이 무성하여 가볍게 거

닐만하다.

 

4. 화암사 풍악제일루(범종각)

풍악제일루는 범종, 운판, 목어, 법고 등 사물의 공간으로 범종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범종각의 이름

치고는 길고 특이한 편인데, 여기서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며, 제일루는 이름 그대로 으뜸 가는

누각을 뜻한다.

가파른 경사에 높이 자리잡고 있는데, 독특하게 팔각형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여기서는 수바위와 속

초 시내, 동해바다가 훤히 바라보여 일품 조망을 자랑한다.

 

5. 수바위

화암사 남쪽 높은 곳에 우뚝 솟은 수바위는 화암사의 오랜 명물이다. 쌀바위를 뜻하는 화암사란 이름

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진표율사와 이곳을 거쳐간 승려들이 수도장으로 삼았다고 전한

다.

바위 정상에는 왕관 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윗면에는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 그 웅덩이

에는 물이 항상 고여있는데 가뭄이 심할 때, 그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며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꼭 왔

다고 한다. 그래서 수바위의 '수'를 '水'로 보는 의견도 있으나 바위의 미모가 준수해 '秀'로 크게 보고

들 있다.

 

이 바위에는 전설이 하나 서려 있으니 내용은 대략 이렇다. 화암사가 속세와 거리가 멀다 보니 시주를

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 머물던 두 승려의 꿈에 백발노인네가 나타나 수바위

에 조그만구멍이 있으니 그곳에서 끼니 때마다 지팡이로 3번 흔들라고 했다.

그 꿈이 이상하여 수바위로 올라가 지시대로 했더니 과연 2인분의 쌀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후 그

들은 수바위의 보우로 식량 걱정 없이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었다.

이후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객승이 찾아왔는데, 수바위 이야기를 듣고는 '3번 흔들어서 2인분의 쌀이

나온다면 6번 흔들면 4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다' 여겼다. 하여 다음날 아침 수바위로 올라가 지팡이를

넣고 6번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쌀이 나오기는커녕 이상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다.

객승의 욕심에 산신이 열받았던 것이다. 이후부터 수바위에서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류의 전설은 이곳 외에도 여러 절에 전하고 있는데, 그 전설의 한결 같은 결말은 승려의 욕심으로

인한 비해피엔딩이다. 즉 욕심부리지 말고 열심히 수도를 하고 중생 구제에 힘쓰라는 뜻에서 그런 전

설을 지어낸듯 싶다.

 

6. 화암사 경내 밑 주차장과 저 멀리 바라보이는 속초 시내와 동해바다

 

7. 화암사 8각9층석탑

대웅전 뜨락에 자리한 탑으로 고려 석탑의 백미로 추앙을 받는 오대산 월정사 8각9층석탑을 모방했다.

 

8. 화암사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이곳의 법당이다. 동해바다가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앞에는 괘불을 거는 괘불대가 있으며, 건물 옆구리에 괘불이 고이 담긴 괘불함이 있다. 괘불은 석

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등 특정한 날에만 잠깐식 외출을 하는 존재로 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9. 대웅전에 봉안된 금동 피부의 석가3존상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자리해 석가3존상을 이룬다. 그들 뒤로 검

은색 바탕의 후불탱이 있으며, 위로는 금강보전이라 쓰인 화려한 닫집이 장엄하게 걸려있다.

 

10. 대웅전에서 바라본 8각9층석탑과 그 너머로 가깝게 보이는 수바위

 

11. 화암사 명부전 내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십왕) 등 명부(저승) 식구들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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