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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봉창 의사 집터

효창동 용산KCC스위첸아파트 102동 뒷쪽에는 이봉창 집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이봉창은 이곳

에서 1931년까지 살다가 상해로 건너갔으며, 상해임시정부의 명을 받고 왜열도 동경으로 넘어갔다.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코쿄(황거, 왜왕과 그 떨거지들이 서식하

는 곳)로 돌아가던 왜왕에게 폭탄을 던져 왜왕 패거리를 살처분시키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훈련 및

준비 부족으로 명중시키지 못하고 붙잡히면서 거사는 실패하고 만다.

그해 10월 왜국은 비공개 재판을 벌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며칠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그의 시신은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집 근처인 효창공원에 고이 안장되었다.

 

이봉창의 의거 이후, 이봉창 가족들은 왜정의 극심한 감시를 받았고, 그들이 살던 집도 세월을 거치

면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재개발로 아파트가 크게 들어섰으며, 아파트 동쪽에는 이봉창 의사를 기리

는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이 닦여져 그의 의거를 추억한다.

 

2.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 (이봉창역사울림관)

이봉창 집터 표석이 있는 아파트 동쪽에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이 자리잡고 있다. 용산구청에서 2020

년 10월에 세운 용산구의 새로운 명소로 이봉창의 유품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대한 이

해를 돕고 있는데, 유물들은 아쉽게도 모조품이다. 게다가 그의 집터 자리에 그를 기리는 작은 공간으

로 조성되어 전시 자료도 다소 빈약하다.

이곳은 1층짜리 맞배지붕 한옥으로 연면적은 66.83㎡이며, 평일과 휴일에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과

설날, 추석 당일 휴관, 관람시간은 9~18시, 무료 관람) 그리고 울림관 앞에는 작은 공원과 쉼터가 닦

여져 있어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도 겸하고 있다.

 

3. 이봉창이 쓴 한인애국단 선서문(왼쪽)과 왜정이 작성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오른쪽)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애국단 십삼년 십이월 십삼일 선서인 한인애국단 앞 이봉창

 

선서문과 인물카드는 모두 복제품이다.

 

4. 조촐한 모습의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 내부

 

5. 의거자금 요청 친필편지와 김구 선생이 이봉창에게 보낸 전보 (모두 모조품)

 

6. 이봉창의사 사형선고 기사(부산일보)와 독립의연금 영수증, 상신서 (모두 모조품)

오른쪽에 크게 자리한 상신서는 이봉창 의사가 용산역에서 근무하던 시절과 오사카에 머물던 시절,

부두 노동 시절의 일을 6개의 소제목을 붙여 자술서 형식으로 작성한 진술서이다.

 

7. 금색 피부의 이봉창 의사 흉상과 그 뒤쪽에 크게 자리한 한인애국단 선서문

 

8. 담장 밖에서 바라본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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