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무궁화동산에서 바라본 북악산(백악산) 2. 필운동 홍건익가옥 3. 선희궁터 사우 4. 통의동 백송터 (통의동 백송의 흔적) 5. 통의동 백송터를 지키는 어린 백송들 6. 궁정동 무궁화동산 7. 1999년에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기념으로 심은 소나무 (무궁화동산) 8. 무궁화동산 서쪽 산책로 9. 붉은 무궁화의 위엄 10. 한참 물이 오른 연분홍 무궁화의 고운 자태 11. 김상헌 집터 표석 12.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시비 13. 무궁화동산 후문 14. 청운동 중국굴피나무 15. 운강대 바위글씨 16. 효자유지(孝子遺址) 비석 17. 겸재 정선 집터 표석 18. 경복고 느티나무의 겨울 모습 19. 경복고 은행나무 20. 경복고에서 바라본 북악산(백악산)의 위엄 21. 경복고 대은..

1. 수성동계곡 기린교 수성동계곡 하류에는 기린교라 불리는 짧은 돌다리가 있다. 길쭉한 통돌 2개로 이루어진 단촐한 모 습으로 다리 남쪽에 다리를 보조하는 커다란 돌 여럿을 둔 것이 전부이다. 다리 폭은 1m 남짓, 길이 는 3m로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겸재 정선의 수성동 그림에 다리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 아 적어도 17세기 이전에 닦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수성동계곡을 찾은 귀족과 사대부들의 편의를 위해 닦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벼랑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이 계곡에서 가장 위험하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늙은 돌다리는 광통교이다. 그리고 수표교와 창경궁 옥천교가 2위, 3위에 들어간 다. (중랑천 살곶이다리는 도심이 아니므로 제외) 수표교는 청계천 생매장 때 제자리를 떠나 장충단공원에 새 둥지를..
' 서촌(웃대)의 숨겨진 명소를 찾아서 ~~~ (필운대, 월암동) ' ▲ 필운동 홍건익가옥 ▲ 배화여고 본관 ▲ 필운대 바위글씨 나의 즐겨찾기 명소의 일원인 서촌(西村, 웃대)은 인왕산(仁王山) 그늘인 경복궁 서쪽과 경희궁(慶熙宮)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원래 서촌은 서대문과 경희궁 주변, 웃대는 경복 궁 서쪽 지역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거의 합쳐졌고, 요즘은 경복궁 서쪽 지역 을 주로 일컫는다. 북촌(북촌한옥마을)과 부암동, 성북동(城北洞), 북한산(삼각산), 호암산 등에 분산된 내 마음을 적지 않게 앗아간 곳으로 지겹도록 발걸음을 했으나 그 넓지 않은 동네에 미답처 (未踏處)가 일부 고개를 들고 있다. 하여 그 미답지를 지우고자 여름의 뜨거운 한복판인 7월의 끝 무렵, 오랜만에 서촌(웃대)에..

1. 필운동 홍건익가옥의 뒷모습 2. 배화여고 캠벨기념관(본관) 3. 필운대 바위글씨 (백사 이항복집터) 4. 필운대 주변 5. 붉은 피부로 쓰여진 필운대 바위글씨 6. 이유원이 남긴 바위글씨 (필운대) 7. 박효관 등이 남긴 바위글씨 (필운대) 8. 배화학당의 창시자 '조세핀 필 캠벨'의 흉상(가운데), 리드(Dr. C.F. Reid) 선교사 내한 100주년 기념비(왼쪽), 2007년에 세워진 배화학당 창립 110주년 및 대학 개교 30주년 기념비(오른쪽) 9. 배화여고 캠벨기념관(본관) 10. 배화여고 생활관 11. 배화학원 캐롤라이나관(배화여고 과학관) 12. 배화여자대학 유치원 북쪽 회화나무 (추정 나이 200여 년) 13. 배화여자대학 유치원 남쪽 회화나무 (추정 나이 350여 년) 14. 필운..
~~~ 인왕산과 북악산 그늘에 깃든 서촌(웃대)의 숨겨진 명소들 ~~~ ▲ 백운동천 바위글씨 (백운동계곡) ▲ 청송당유지 바위글씨 ▲ 경기상고와 북악산(백악산) 경복궁 서쪽에 넓게 자리한 서촌(西村, 웃대)은 나의 즐겨찾기 명소의 하나이다. 10년 넘 게 그 일대를 구석구석 많이도 돌아다녔지만 그럼에도 나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사각지대 가 일부 고개를 들며 내 심기를 은근히 건드린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촌 등 서울의 미 답처(未踏處)는 도저히 못참는 성격이라 늦가을의 한복판인 10월의 끝 무렵, 서촌의 미답 처를 잡으러 출동했다. ♠ 경기상고(京畿商高)와 청송당유지 바위글씨 ▲ 경기상고 본관과 그 뒤로 보이는 북악산(백악산) 서촌의 북부(北部)를 이루고 있는 청운동(淸雲洞)에는 100년 역사를 지닌 ..
' 서촌의 한복판을 거닐다 ' (박노수미술관~윤동주 하숙집터) ▲ 옥인동 박노수 가옥 봄이 한참 익어가는 4월의 한복판에 일행들과 경복궁(景福宮) 서쪽에 자리한 서촌을 찾았 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깃든 서촌(西村)은 부암동(付岩洞)과 백사실(백사골), 북촌(北村 ), 북악산(백악산), 인왕산(仁王山), 북한산(삼각산), 호암산(虎巖山), 아차산 등과 더불 어 내 마음을 제대로 앗아간 곳으로 봄이 겨울로부터 천하를 해방시키면서 다시금 서촌앓 이가 시작되었다. 서촌은 경복궁과 인왕산, 서대문(돈의문) 사이를 일컫는다. 서촌의 중심지로 꼽히는 인왕 산과 경복궁 사이 동네는 원래 웃대라 불렸으며, 인왕산과 북악산(백악산)을 병풍으로 삼 아 경관이 아름답고 계곡이 즐비해 조선 초부터 왕족과 귀족들의 별장지로 인..
' 인왕산자락길, 황학정, 서촌 늦가을 나들이 ' ▲ 인왕산자락길의 만추(晩秋) 늦가을이 그 절정에 이르던 11월 한복판의 어느 평화로운 날, 서울 도심에 숨겨진 상큼 한 자락길 인왕산자락길(숲길탐방로)을 찾았다. 인왕산자락길은 서울 도심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 인왕산(仁王山) 동쪽 자락에 닦인 둘레길로 2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코스(2.7km)는 인왕산길을 졸졸 따라가는 길 로 윤동주문학관에서 사직단(사직공원)까지 이어진다. 경사가 완만해 그리 힘들이지 않 고 이동할 수 있으며, 인왕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이 여럿 손짓해 언제든 정상 쪽으 로 방향을 틀 수 있다. 다만 인왕산길이 차량 왕래가 빈번하다보니 비록 작은 소음이지 만 종종 적막을 깨뜨린다. 본글의 주인공인 제2코스는 숲길탐방로(..
1. 경희궁 뒤쪽에서 바라본 경희궁 숭정전~태령전 구역과 서울 도심(광화문 주변) 정면에 뒷통수를 보인 집이 태령전, 그 너머로 용머리를 내민 집이 숭정전과 자정문, 왼쪽에 온전하게 보이는 팔작지붕 집 이 자정전이다. 2. 경희궁 태령전, 서암 뒤쪽 산책로 3. 영렬천 경희궁 뒤쪽 언덕 숲길에 영렬천이란 조그만 바위샘이 있다. 이곳은 지금은 사라진 경희궁 위선당 뒤쪽으로 물이 늘 마르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그 물도 매우 차가워 초정이라 불렸다. 서암에 있는 샘터와 함께 경희궁의 식수를 책임지던 곳으로 선 조의 글씨를 집자한 영렬천 바위글씨가 샘 위에 새겨져 있다. 4.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영렬천 바위글씨 이곳은 경희궁 위선당 뒤쪽이자 숭정전 서쪽으로 경희궁에서 가장 서쪽 구석이다. (숭정전, 태령전,..
1. 경희궁 태령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원래는 딱히 용도가 없는 잉여 건물이었으나 영조 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 이 건물을 중수해 이곳에 어진을 봉안했다. 왜정 시절에 파괴된 것을 2000년에 서궐도안을 참조해 복원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해 제작했다. 건물 안에는 근래 모사된 영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어 건물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하다. 2. 태령전에 봉안된 영조의 어진 3. 굳게 닫힌 태령문 (태령전 정문) 태령전은 왕년의 시절에도 궁역 서쪽 구석이었고, 아주 작게 복원된 지금도 서쪽 구석이다. 태령전의 정문인 태령문은 늘 닫혀있기 때문에 여기서 숭정문으로 다시 돌아나가야 된다. 4. 자정전 뒤쪽 바위 (서암 동쪽 바위)..
1. 경희궁 숭정전 숭정전은 경희궁의 중심 건물(법전, 정전)로 1618년에 세워졌다. 경종과 정조, 헌종이 여기서 즉위를 가졌으며, 1926년에 왜정이 조계사에 팔아먹어 조계사로 넘어갔다가 동국대로 이전되어 불당인 동국대 정각원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이곳 숭정전은 1988년에 복원된 것으로 흥화문처럼 복원은 되었으나 완전하게 이전은 하지 않아 숭정전의 원본은 동국대 정각원으로 계속 머물러 있다. 경희궁의 정전이긴 하나 다른 궁궐과 달리 궁역 한복판이 아닌 가장 서쪽 구석에 치우쳐져 있으며, 건물 주위를 행각으로 빙 둘렀는데, 원래보다 작게 복원되어 경복궁, 창덕궁 정전에 비해 협소하다. 그 뒤에는 편전인 자정전이 자리해 있다. 2. 숭정전 돌계단과 석대 돌계단과 석대를 숭정전이 제자리를 떠나고 ..
1. 경희궁 흥화문 경희궁은 덕수궁(경운궁)과 함께 서궐의 일원으로 조선 후기에 이궁으로 바쁘게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뒤쪽에 복원된 일부만 남아 꽤 초췌한 모습이나 왕년에는 이 주변을 모두 아우르며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을 지녔던 궁궐이다. 그 규모는 현재 덕수궁 이상이었다. 경희궁 자리는 인조의 아비인 원종(덕흥대원군)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광해군은 창덕궁을 중건하고 인왕산 자락 필운동 에 인경궁과 원종 사저 자리에 경덕궁(경희궁)을 세워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했다. 경덕궁은 1617년에 짓기 시작해 1623년에 완성을 보았으며,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 1760년 경희궁으로 이름이 갈렸다. 도성 서쪽에 있어서 간단하게 서궐이라 불렸으며, 인조부터 철종까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