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락산보루 (보루 북쪽 부분) 수락산의 서남쪽 끝자락 봉우리에 수락산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이곳은 귀임봉 서남쪽이자 노원골 (수락계곡) 남쪽 봉우리로 출토 유물과 축성 방법 등을 통해 고구려가 닦은 보루로 보고 있다. 고구 려(고구리)가 5세기에 해양대국 백제를 한강 남쪽으로 밀어내고 한강 이북 아차산 산줄기에 보루를 주렁주렁 달았는데, 그때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 홍련봉, 시루봉 등 아차산 산줄기에 보루를 많이 달았으며, 그 북 쪽으로 봉화산, 수락산, 사패산, 천보산, 불곡산 등에도 보루를 달았다. 중랑구의 북쪽 지붕인 봉화산 은 옛날에 아차산의 일원으로 있었는데,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 홍련봉, 시루봉 보루들은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국가 사적..
1. 망우산3보루터 망우산 북쪽 능선에 망우산3보루터가 있다. 망우리공원으로 들어서 사색의길 동쪽 구간을 가다보면 망우산3보루를 알리 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그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좀 들어서면 3보루 안내문이 나온다. 망우산에는 3개의 보루가 발견되었는데, 1보루만 국가 사적의 지위('아차산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됨) 를 누리고 있고, 2보루와 3보루는 상태가 매우 안좋아 비지정에 머물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망우리묘지를 닦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원래의 형태와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루터 남쪽 비탈면에 무너진 석축 일부가 있고, 돌을 다듬은 기법으로 보아 고구려가 닦은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고구려 토기 조각과 민무늬토기 조각이 나왔으며, 보루터 주변 무덤들이 모두..
1. 아차산 긴고랑 이번 아차, 용마산 나들이는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에 자리한 긴고랑에서 시작했다. 긴고랑은 아차산과 용마산이 빚은 아차 산의 대표급 자연산 계곡으로 하류에는 인공이 좀 가해지긴 했으나 수량이 많고 자연산 부분도 적지 않아 여름에는 피서의 성지로 격하게 추앙을 받는다. 아랫 사진의 장소는 긴고랑계곡 직전으로 여기서 용마산1보루와 2보루를 잡으러 용마산으로 올라갔다. 2. 긴고랑에서 용마산1보루, 용마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 용마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경사가 좀 각박하다. 하여 흥분한 경사를 조금 순화시키고자 일부 구간에 계단길 을 닦았다. 3. 용마산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아차산 산줄기 지금은 용마산과 아차산을 따로 보고 있지만 용마산도 원래 아차산의 일원이다. 4. 용마..
' 고구려 유적의 성지, 서울 아차산 ' (아차산성, 아차산1보루, 3보루, 5보루) ▲ 아차산 산줄기 ▲ 아차산3보루 ▲ 아차산4보루 아차산은 해발 295.7m의 뫼로 용마산과 망우산을 거느리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의 동남 쪽 벽으로(동북쪽 벽은 수락산, 불암산 산줄기) 서울 광진구,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九 里市)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중랑구 봉화산(烽火山)까지 아차산의 영역이었 다. (봉화산에 있는 봉수대를 '아차산 봉수대'라 부름) 아차산은 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만 해도 무려 4개(阿嵯, 峨嵯, 阿且. 峩嵯)씩이나 되는데, 삼국시대에는 아차(阿且), 아단(阿旦)이라 불렸으며, 고려 때 지금 널리 쓰이는 '아차(峨 嵯)'란 이름이 나타난다. ('峩嵯'도 이때 나타남) 아단(旦)이란 ..
'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 아차산 나들이 (아차산성) ' ▲ 아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 아차산5보루 ▲ 아차산성 아차산은 해발 287m(또는 285m)로 용마산과 망우산을 거느린 큰 산줄기이다. 서울 강북의 동남쪽 벽으로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의 경 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중랑구 봉화산(烽火山)까지 아차산의 영역이었다. 아차산은 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만 해도 무려 4개(阿嵯, 峨嵯, 阿且. 峩嵯)씩이나 되는데, 삼국시대에는 아차(阿且), 아단(阿旦)이라 불렸으며, 고려 때 이르러 지금 널리 쓰이는 ' 아차(峨嵯)'란 이름이 나타난다. ('峩嵯'도 이때 나타남) 아단(旦)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우고 이름을 단(旦)으로 고치자 제 왕의 이름을 피하는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