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2023년)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돈암동 흥천사에서 먹은 공양밥이다. 절 공양밥은 모두 비빔밥 스타일로 제공되는데, 콩나물과 무생채, 호박무침 등 여러 나물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으면 되며, 보통 시원한 미역냉국을 같이 준다. (절밥은 비빔밥과 국수 2가지를 주로 취급하며, 후식은 떡과 과일, 사탕, 과자류,차, 커피를 주로 제공함) 흥천사 공양간은 2020년 이후에 새로 지어진 3층 건물 1층에 있다. (2층에 무량수전, 3층에 약사전이 들어있음) 석가탄신일에는 오후 2~3시 정도까지 공양밥을 제공하는데, 공양간에 들어가서 밥을 받으면 된다. 사람이 몰릴 경우 일찍 마감되는 경우가 있으니 가급적 오후 1시 이전에 가는 것이 좋으며, 예전에는 떡도 주었으나 작년에는 밥과 미역냉국만 주었다. 석가..

1. 흥천사 비로자나불삼신괘불도서울에 주요 고찰인 돈암동 흥천사에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비로자나불삼신괘불도가 있다. 괘불은 조선 중기부터 나타나는 큰 탱화로 보통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이나 주요 법회날에만 아주 잠깐씩 외출을 하는 만나기가 매우 까다로운 존재인데, 천하에 400곳이 넘는 고찰을 다닌 나도 그를 본 횟수가 정말 손에 꼽는다.그나마 괘불을 만날 확률이 높은 날은 석가탄신일이나 상황에 따라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 정말 운에 맡겨야 된다. 그런데 그런 늙은 괘불을 자주 공개하는 고마운 절이 있으니 바로 흥천사이다. 이곳은 2020년 이후에 지어진 3층 건물 내부(1층은 종무소와 공양간, 2층은 무량수전, 3층에는 약사전과 찻집이 있음)에 있는 2층 무량수전과 3층 약사전 사이 계단에 그를 장..

1. 흥천사에서 먹은 공양밥 즐거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4월 초파일)을 맞이하여 올해도 변함없이 서울 장안에 여러 절을 둘러보고 왔다. 이번 초파일은 야속하게도 오전부터 종일 비가 내렸는데, 오후에 아주 잠깐 소강 상 태를 보인 것 외에는 우산이 없으면 돌아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 그러다보니 사진 출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마지막에 들린 화계사에선 빗방울이 꽤 거칠어져 연등 점화, 저녁 예불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금방 나오고 말았다. 무심한 비로 인해 절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초파일 야외 행사와 볼거리가 크게 축소되었고, 흥천사 외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 초파일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하여 2003년 이후 가장 재미가 없는 초파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흥천사는 근래 새로 지은..

1. 흥천사 약사여래좌상 흥천사 약사전 불단에 하얀 피부를 지닌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덩치가 큰 가운데 불상 이 약사여래좌상이고, 그 좌우로 아미타여래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이 자리해 약사3존상을 이루고 있 는데, 약사여래좌상 뱃속에서 아주 고맙게도 1829년에 금어 영운의윤, 관허정관, 편수 지성이 조성 했다는 조성발원문이 나왔다. 1847년에 조성된 약사불도 화기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지장보살, 주산대왕 석상 4위를 개분중수' 했다는 기록이 있고, 2016년에 벌인 복장 조사에서 1853년에 작성된 '만월전 개분원문'이 발견되어 약사3존상이 같이 봉안되었다는 내용이 나왔다. 허나 기록에 나온 그 3존상과 약사전에 있는 약사3 존상이 같은 존재인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그래서 이들 3존상 ..
' 도심과 가까운 고즈넉한 산사, 돈암동 흥천사 ' ▲ 흥천사 전경 흥겨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4월 초파일)을 며칠 앞둔 어느 평화로운 봄날, 돈암동 (敦岩洞) 흥천사를 찾았다. 돈암동 산자락에 깃든 흥천사는 내 즐겨찾기 명소의 하나로 이미 20번 이상 발을 들였다. 첫 인연이었던 1990년대 초에는 소장 지정문화재가 2개(극락보전, 명부전)에 불과했으나 조선 중/후기 탱화와 불상, 보살상을 많이 지니고 있다보니 나날이 지정문화재가 늘어나 이제는 국가 보물 1점, 등록문화재 1점을 포함해 무려 20점 이상을 간직하게 되었다. 하여 지정문화재가 새로 생겼다는 풍문을 전해 들을 때마다 그것을 확인하러 왔고, 석가 탄신일에도 여러 번 찾아가 그곳의 후한 초파일 인심(공양밥, 떡 공양)을 누리기도 했다. ..
1. 적조사 정문 흥천사 뒤쪽(서쪽)에는 조그만 산사인 적조사가 자리해 있다. 이곳은 1846년 흥천사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처로 세운 칠성 각에서 비롯되었는데, 1849년 혜암성해가 칠성각을 손질해 적조암을 세우고 염불관선의 수행처로 삼았다. 오랫동안 흥천사의 부속 암자로 있었는데, 1900년대에 소실되어 사라진 것을 1958년 경산희진(학산대종사)이 이곳 주지 로 들어와 절을 중건했다. 경산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3번이나 지낸 승려로 그의 인생 마지막 날까지 이곳에 머물며 교단 정화와 화합에 나 섰다. 1960년대 가람을 정비했고, 1970년대에 흥천사의 부속 암자에서 벗어나 독립된 사찰이 되면서 적조사로 이름을 갈 았다. 또한 관자재보살의 강림 도량임을 내세워 절을 널리 홍보했다. 경산은 197..
1. 흥천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삼존상과 아미타불회도 가건물로 이루어진 관음전에는 대방에서 옮겨온 탱화와 목조관음보살상이 들어있다. 관음전 불단에 장엄하고 있는 목조 관음보살상은 좌우로 용왕과 선재동자를 거느린 관음삼존상이나 좌우 협시상은 어디로 마실을 갔는지 보이지 않고 관세 음보살 누님 혼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용왕과 선재동자는 절 창고에 있는 듯함) 목조관음보살3존상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1년에 조성되었음이 알려졌는데, 원래 전북 임실에 있는 사자산 적조암에서 만들어 봉안한 것을 어찌어찌하여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흥천사의 보물을 하나 늘려주었다. 용왕과 선재동자를 거느린 관음3존상은 수월관음도에 많이 보이나 조각의 경우에는 보은 법주사와 남해 보리암, 고성 운 흥사 목조불감 정도가 전부라 매우..
1. 흥천사 연화대감로도 왜정 말기인 1939년에 그려진 감로도이다. 그 시절 생활모습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 장면까지 그려져 있어 기존 의 감로도와는 많이 다르다. 2. 도량신도 도량을 장엄하고 삼보의 도량을 지키는 신장을 그린 그림이다. 도량신은 화엄경 략찬게에 등장하는 화엄신 중 하나로 도량 의 더러움을 단죄한다고 한다. 도량신은 화면 상단의 삼곡병처럼 각이 진 흰색을 배경으로 하여 정면을 향해 앉아있다. 도량신 뒤쪽 좌우에는 산개와 당번 을 든 동자가 있으며, 정면 좌우에는 2명의 신장이 칼과 원형의 지물을 들고 중앙을 향해 서있다. 도량신은 단령의 붉은 관 복에 가슴과 허리에는 각각 각대를 차고 정면을 향해 앉아있는데, 세필로 얼굴의 입체감과 수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과 눈과 눈썹을..
1. 흥천사 지장시왕도 이 그림은 1867년에 의운자우가 그렸다. 푸른 두광과 연두색 신광을 지닌 지장보살을 가운데 두고 그 좌우로 시왕과 명부 (저승)의 주요 식구들이 빼곡히 담겨져 있다. 19세기 후반 서울 지역 지장시왕도의 새로운 형식을 열었다는 그림으로 지장보살이 두 손으로 보주를 들고 있는 점, 그 밑 에 선악동자 2명이 지장보살의 석장을 대신 들고 있는 점이 기존의 지장시왕도와 다르다. 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봉 국사 지장시왕도(1885년) 등이 바로 이것을 참조했으며, 점차 확대되어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 경상도에서 널리 유행했다. 안정된 구도와 홍색을 기반으로 녹색과 청색이 대비를 이루는 색채의 구사력, 세부 문양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표현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새로..
1. 흥천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명부전의 주인인 지장보살상은 돌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으로 높이는 84.5cm이다. 그는 민머리의 성문비구형으로 상 체를 앞으로 조금 내밀고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에 둥근 보주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편 상태로 무릎 위 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이런 제스쳐는 조선 후기 석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수인이다. 각진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콧등이 평평한 세모 코, 미소를 머금은 입, 길게 늘어진 두 귀를 지니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그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편삼을 입고, 대의 자락이 오른쪽 어깨를 반달 모양으로 덮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있 으며, 왼쪽 어깨의 대의 자락은 수직으로 내려와 복부에서 편삼과 겹쳐져 있다. 이런 겹친 표현은 ..
1. 흥천사입구에 있는 돈암동 느티나무 약 380년 묵은 나무로 높이 10m, 둘레 2.4m의 덩치를 지녔다. 오랜 세월 흥천사 밑 마을을 지켜준 존재로 나무 그늘에는 마을 사람들이 세운 장승과 돌탑이 있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개발의 칼질로 흥천사 주변이 강제 성형을 당하면서 장승과 돌탑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고 나무도 쇠약해져 골로 가기 직전인 것을 동네 주민들과 흥천사 승려가 정성스럽게 보살피면서 다행히 생기를 되찾았다. 2014년 정자나무 가꾸기 사업으로 주변이 지금처럼 산뜻하게 정비되었으며, 서울시 보호수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1968년에 보 호수로 지정됨) 2. 느티나무로 흥천사 경내로 인도하는 길 경내 밑에는 절에서 운영하는 유료 주차장이 있는데, 길 차단봉 자리쯤에 예전에 흥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