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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뒷통수에 숨겨진 아름다운 고갯길 ~~~
우이령 늦가을 나들이 '

▲  우이령에서 바라본 오봉

▲  석굴암입구 유격광장

▲  우이령길 우이동 구간

 


 

가을 누님이 눈이 시리도록 곱게 천하를 물들이던 10월의 끝 무렵에 친한 여인네들과 북
한산(삼각산)의 숨겨진 뒷통수, 우이령(우이령길)을 찾았다.

우이령은 개방 이후 애타게 인연을 짓고 싶었지만 딱히 인연이 없어 애태우다가 10월 중순
에 아는 여인네의 제안으로 콩볶듯 계획을 잡게 되었다. 이곳은 미리 탐방예약을 해야되는
데, 평일은 그나마 널널하나 주말에는 자리 구하기가 어렵다. 탐방 인원을 매일 1,000명으
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송추 출발로 4명 자리를 확보하여 그냥 흔쾌히 가기만
하면 된다. 하여 친분이 있는 2명을 더 소환하여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비경의 우
이령 탐험을 떠났다.

우이령은 야속하게도 입장시간(오후 2시까지)과 퇴장시간(오후 4시까지)이 정해져 있어 우
이령길 완주에 석굴암 답사까지 널널하게 겯드리려면 가급적 오전에 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침 9시부터 입장)
잠시 일상을 접고 떠나는 나들이인데 그것마저 콩볶듯이 가면 좀 그렇겠지. 하여 오전 9시
에 연신내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김밥과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북한산(삼각산) 등산객 인
파 속으로 들어가 송추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한참 단풍철이다 보니 북한산으로 가는 34, 704번 시내버스
가 타지도 못할 정도로 가축 수송 상태로 오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는 등
산객도 족히 100명은 넘어 육중한 바퀴가 뭉개질 정도로 가득찬 버스에 서로 타고자 경쟁
이 치열하다. 허나 구제받는 사람은 불과 서너 명, 나머지는 강제로 다음 버스를 기다리지
만 오는 버스 모두 무심하게도 가축 수송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음은 이미 우이령을 헤매
고 있지만 몸은 아직도 서울 연신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연신내에서 40분을 소비하다가 이러면 정말 못갈듯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전진하고
자 삼천사입구로 가는 701번 시내버스(진관차고지↔종로2가)를 탔다. 그것을 타고 입곡3거
리에서 34, 704번으로 갈아탈 생각이었지. 그렇게 701번에 의지해 입곡3거리(삼천리골입구)
에서 내렸는데, 여기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산으로 가는 행락객들의 차량들로 도로
가 거의 혼돈의 상태라 걷는 거나 차를 타고 가는 거나 속도가 비슷할 정도이다.

입곡3거리에서 일말의 희망을 품으며 버스를 기다렸으나, 역시나 자리가 빠지지 않아 여전
히 승차 불가, 그래서 백화사입구와 흥국사입구(노고산)까지 걸어가 기회를 엿보았나 역시
승차 불가, 하여 등산객이 많이 빠지는 북한산성입구까지 걸어갔다. 아직까지도 서울을 벗
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서울 땅을 나가기가 어려웠던 말인가?

북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버스를 기다리니 버벅거리는 차량들 행
렬을 쿨하게 뚫고 서울시내버스 704번(부곡리↔서울역)이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이곳이 북
한산 서부의 대표 기점지라 산꾼들이 많이 빠지기 때문에 그제서야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이제 살았구나 싶어 기쁜 마음에 승차했으나 자리는 없다. 여전히 가득찬 상태. 다행히 도
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행렬도 여기서 끝을 맺는다. 죄다 여기서 북한산성으로 우회전하
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겹게 송추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타고 고양시(高陽市)로 넘어가 효자비와 안골, 사
기동에서 많은 산꾼을 쏟아내니 그제서야 자리가 생긴다.

솔고개를 넘어 양주시(楊州市) 땅으로 진입, 우이령/오봉산석굴암입구 정류장에 발을 내린
다. 연신내에서 이곳까지는 겨우 12km 정도인데 그 짧은 거리를 오는데 무려 2시간이나 걸
린 것이다. 그렇게 모진 과정을 겪고 이곳에 이르니 마치 목적지에 다 온 듯, 안도의 한숨
이 나온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정말 기쁨이 가득했지. 허나 내려보니 현실은 시궁창.. 뜻
하지 않은 나들이 강제 전쟁으로 혼과 기운은 2/3 이상 빠졌고 시간도 벌써 11시가 넘었다.
우이령 탐방은 이제서야 시작이거늘, 겨우 그 입구에 온 것에 불과하다.

벌써부터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심심한 뱃속을 달래고자 정류장 부근 편의점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원래는 산책 중간에 먹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먹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아름다운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속세에서 가져온 김밥과 온갖 과자, 그리고 편의점에서 구입한 컵라면 등으로 열심히 몸을
달래니 다시금 사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밥도 두둑히 먹었으니 슬슬 움직여볼까~! 근
데 어느 세월에 저 까마득하게 보이는 우이령을 넘어가나 은근히 막막해진다. 거기에 식곤
증까지 거침없이 희롱을 하니 사기가 다시 떨어지려고 한다. 그래도 우이령을 목적으로 왔
으니 가야지. 힘차게 발걸음을 떼며 우이령의 품으로 들어선다.


 

♠  우이령의 품으로 (교현리~석굴암 입구 구간)

▲  교현(송추) 탐방지원센터

우이령(오봉산 석굴암) 입구에서 10분 정도 들어가면 속세와 우이령의 경계를 짓는 교현탐방지
원센터가 나온다. 길 주변에는 군부대 시설이 즐비해 부푼 마음을 품고 찾아온 탐방객에게 적
지 않은 긴장감을 준다.

교현탐방지원센터는 우이령의 북쪽 검문소로 여기서 소정의 출입 절차를 밟아야 되는데, 예약
자의 신분증과 예약확인증을 보여주면 된다. 동행자의 신분증은 상황에 따라 검사를 안하는 경
우도 있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늘 있으니 반드시 지참해야 뒷탈이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예
약을 했어도 예약자의 신분증과 예약확인증이 없으면 최순실이나 대통령급이 아닌 이상은 아무
리 날고 기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우이령이 비록 개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북악산(北
岳山, 백악산) 한양도성 능선처럼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렇게 출입 절차를 마치고 꿈에도 그린 고갯길, 우이령으로 들어선다. 그럼 여기서 잠시 우이
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 북한산과 도봉산의 숨겨진 뒷통수이자 비단처럼 아름다운 고갯길, 우이령(牛耳嶺)
우이령은 순 우리말로 소귀고개라고 한다. 높이 600~800m를 다투는 북한산(삼각산) 영역과 도
봉산(道峯山) 영역 사이에 약간 움푹 들어간 고개로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橋峴里)와 서울 우
이동(牛耳洞)을 잇고 있다. 고갯길 정상을 기준으로 서남쪽은 북한산, 동북쪽은 도봉산 영역이
며 그들의 뒷통수에 자리한다.

예로부터 송추(교현리) 지역과 서울 동북부(강북구)를 빠르게 이어주는 고갯길로 그리 주목을
받는 길은 아니었다.
6.25가 터지자 파주와 양주 사람들이 대거 이 고개로 넘어왔으며, 서울을 수복한 이후에는 병
력 이동과 물자 수송을 위해 미군 공병대가 넓게 길을 닦아 탱크와 4발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
게 되었다. 1951년 1.4후퇴 때도 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을 통해 넘어왔고, 1953년 휴전까지 많
은 군인과 군수물자가 이 고개의 신세를 지면서 반짝 전성기를 누린다.

휴전 이후 지역 사람들이 이용하다가 1968년 북한의 김신조 공비 패거리가 서울 도심을 습격한
이른바 1.21사태가 터지자 1969년 국가 안보와 서울 방어를 이유로 지금의 교현탐방지원센터에
서 우이탐방지원센터에 이르는 4.46km 구간의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이때 우이령 뿐만 아니라
인왕산(仁王山)과 북악산(백악산), 북한산 삼천사계곡, 북한산성 내부까지 통제 구역으로 묶이
는 비운을 겪는다.
그렇게 금지된 고개가 되버린 우이령은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기고 군인과 경찰의 훈련지로 이용
되면서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석굴암입구 구간은 물론 석굴암 밑까지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우이령 개방에 대해서는 1990년대부터 조금씩 이야기가 나왔다. 1994년 4월 17일에는 시민환경
대회를 위해 딱 하루 개방되기도 했으며, 이후 개방 여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드디어 2009년 7
월, 제한적이나마 빗장이 열린 것이다. 개방에 앞서 군부대 시설로 망가진 부분은 자연친화적
으로 정비했고 오봉산을 관망하는 전망대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시설과 안내문을 설치했다.

그 망할 북한 공비 때문에 40년이나 강제로 닫힌 우이령, 허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유명한
말이 있듯이 그 덕분에 지구에 민폐나 끼치며 사는 인간들의 발길이 거의 끊기면서 이곳 생태
계는 매우 우수한 수준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인간의 개발 칼질에 오갈데 없어진 수리부엉이
와 소쩍새, 산개나리 등 희귀 동/식물이 앞다투어 찾아와 안긴 자연의 보물 창고이자 서울 근
교의 듬직한 허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면 북한산의 다른 구역보다 공기가 꽤 상
큼하고 청정하다.
물론 우이령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1994년 이후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서울 동북 지역과 경기도
서북 지역을 잇는 도로망 개설을 위해 우이령에 도로를 내려고 했다. 이때 길 너비를 현재 5~6
m에서 8m로 넓히려고 했지. 하지만 환경/시민단체, 국방부가 쌍수를 들고 반대했고, 반대 여론
이 상당하여 보기 좋게 무산되었다. 이곳에 도로가 놓이면 양주 서남부지역과 고양/파주에서
서울 강북구 지역을 빠르게 이어주게 되며, 강북구 지역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빠르게
잇는 역할까지 하게 되면서 나름 소중한 길이 되어줄 것이나 대신 우이령의 희생을 감수해야
된다. 1969년 이곳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면 진작에 개발의 칼질이 자행되었겠지. 그 인연으로
이곳은 차량의 도로가 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왓다. 이것이 하늘이 우이령에게 준 운명이다.

우이령을 개방하면서 이곳의 자연환경을 지키고자 매일 탐방인원을 1,000명으로 제한했다. 덕
분에 천하에서 가장 탐방밀도(1㎢당 5만명)가 높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가장 인적이 드문 한적
한 곳으로 남게 되었지. 또한 지정된 길(우이령길과 석굴암으로 가는 길)만 이용토록 했으며,
계곡과 숲으로의 통행을 금했다. 그리고 입장시간과 퇴장시간에 엄하게 제한을 두어 혹여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했다. 허나 사람이란 존재가 지구에는 도움이 안되는지라 마음대로 샛길을
개척하고 식물을 채취하는 행위가 발생해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우이령길은 수도권 도보 나들이의 성지(聖地)로 일컬어지는 북한산둘레길의 일원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총 21구간 71.5km로 그중에서 가장 으뜸은 바로 우이령길이 아닐까 싶다. (우이령길
찬양~~!!)
우이령길 구간은 교현리 우이령 입구에서 우이동 광장에 이르는 6.8km이다. 이중 4.46km가 아
무나 들어갈 수 없는 예약 탐방구간이며, 교현리 우이령 입구에서 교현탐방지원센터, 우이동광
장에서 우이탐방지원센터 구간은 예약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거닐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우이
령길을 둘러보도록 하자.

※ 우이령길 찾아가기 (2016년 11월 기준)
① 송추 교현리
*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3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 3호선 구파발역(1,2번 출구)에서 서울
  704번, 의정부 34번 시내버스를 타고 우이령(오봉산 석굴암입구) 하차
* 1,4호선 서울역(4,9-1번 출구), 2호선 을지로입구역(3번 출구), 1호선 종각역(3-1번 출구),
  5호선 서대문역(4번 출구), 3호선 홍제역(2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 3호선 녹번역(1번 출
  구)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704번 시내버스 이용
② 서울 우이동
* 지하철 4호선 수유역(3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101, 120, 130, 153번 시내버스 이용
  (120번과 130번은 우이동 종점, 나머지는 우이동 도선사입구 하차) / 수유역 6번 출구에서
  도봉구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우이동 종점 하차
* 지하철 4,7호선 노원역 5번 출구에서 1144번, 7번 출구에서 노원구 마을버스 15번을 타고 우
  이동 도선사입구 하차
* 우이동 도선사입구(우이동 광장)에서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 도보 35분

★ 우이령 탐방 정보 (2016년 11월 기준)
* 우이령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의 '국립공원 예약' 메뉴에 있는 '북한산 우이령 탐방'
  게시판에서 예약을 하면 된다. 예약은 10시부터 하루 전 17시까지 하면 된다.
  ☞ 예약 홈페이지로 이동하기
* 탐방객은 매일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송추 500명, 우이동 500명이다. 인터넷 예약은
  매일 800명으로 1인당 10명까지 가능하다. 전화 예약자는 200명으로 노령층(65세 이상)과 장
  애인, 외국인 관광객에 한한다. (전화예약은 9~17시까지)
* 입장시간은 9시부터 14시까지며, 16시까지 무조건 하산을 마쳐야 된다. (16시까지 교현/우이
  탐방지원센터까지 나와야 됨) 늦게 하산하면 자칫 벌금을 뜯길 수 있다.
* 석굴암 신도와 탐방객은 우이령길을 예약할 필요가 없으며,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신분증 확
  인을 거쳐 들어가면 된다. (석굴암까지만 이동 가능)
* 교현탐방지원센터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산47-10 (예약/문의 ☎ 031-855-6559)
* 우이탐방지원센터 -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산74 (예약/문의 ☎ 02-998-8365)


▲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 (1)

교현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우이령 탐방이 시작된다. 속인(俗人)들이 이 길을 걷고자
40년이나 기다렸던 그 금지된 길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가을도 우이령이 마음에 들었는
지 길을 멈추고 주변을 온통 화사하게 불지른다. 이렇게 늦가을과 우이령의 만남으로 우이령은
아름다운 비단길로 거듭났다.
 
우이령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길이 완만하다. 서서히 올라갔다가 다시 서서히 내려가는 아주 느
긋한 코스로 각박한 속세살이와는 정반대이다. 게다가 흙길이 잘 닦여져 있고, 주변 풍경이 매
우 고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짧게 느껴져 흔쾌히 왕복을 뛰고 싶은 마음이다.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석굴암입구 유격광장까지는 약 2.3km로 30분 정도 걸린다. 동쪽에는 도
봉산과 오봉이 빚은 우이령계곡이 때묻지 않은 청정함을 간직하며 속세로 흐르는데, 아쉽게도
계곡은 금지된 구역이다. 게다가 길과도 거리를 제법 두고 있어 휴전선 너머 동해바다를 바라
보듯 해야 된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곳을 속세로부터 지키려면 그럴 수 밖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 (2)
휴일을 맞이하며 북한산과 도봉산의 왠만한 등산로는 늦가을 나들이 인파로 세계
탐방밀도 1위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미어터지는데 반해 이곳은 여기가
북한산의 일부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한적하기 그지 없다.

▲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 (3)

▲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 (4)
숲이 무성해 강렬한 햇빛도 고개를 숙인다.

▲  우이령길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흘러가는 우이령 계곡
속인의 발길이 오랫동안 금지된 저곳에 선녀(仙女) 누님의 비밀 욕탕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달 깊은 밤에 몰래 찾아와 확인해 보고 싶다~~

▲  늦가을이 온 산천에 알록달록 불을 질렀다.
늦가을의 즐거운 불장난은 11월 이후 겨울 제국에 의해 모두 진압될 것이다.
단풍으로 타오르는 산 너머로 바위 봉우리인 오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  우이령 계곡과 오봉 산줄기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에서는 어디서든 오봉이 바라보인다.

▲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 (5)


 

♠  우이령의 심장으로

▲  석굴암입구 유격광장

우이령길 심장의 서쪽인 석굴암입구 유격광장은 우이령길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이곳은 군
부대의 유격 연병장으로 광장 동쪽에 서 있는 유격 표석이 이곳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여기서
길은 크게 2갈래로 갈리는데, 석등을 옆구리에 낀 다리를 건너 오봉으로 향하는 북쪽 길을 오
르면 석굴암이고, 광장 남쪽으로 난 길을 직진하면 우이령길 정상이다.

유격장은 주로 석굴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분포하고 있는데, 군대를 나온 이 땅의 사내들로 하
여금 당시의 향수를 진하게 불러일으킨다. 우이령이 아무리 개방이 되어 탐방 장소로 인기 몰
이를 하고 있어도 이들은 여전히 군사용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철조망 안에 있거나 접근이
통제된 유격시설은 괜히 접근치 않도록 한다. 이처럼 우이령은 민간인의 등산/나들이와 군인의
유격장이 공존하는 곳으로 남북분단의 우울한 현실이 담긴 조금은 씁쓸한 현장이기도 하다.

흙이 잘 입혀진 유격광장은 터가 매우 넓어 그늘진 곳에는 산꾼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피고 밥
과 행동식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우이동까지는 딱히 휴식 장소는 없으니 교현리에서 오를
경우에는 적어도 여기서 먹고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광장 동쪽에는 우이령 상류를 막아서 만
든 조그만 호수가 있는데, 곱게 몸을 치장한 나무들이 호수를 거울로 삼아 자신의 매뭇새를 다
듬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은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1달 뒤면 겨울 제국에게 영혼까지 털려
호수에 비친 앙상한 모습에 시름에 잠길 것이다.


▲  석굴암으로 인도하는 길 (석굴암입구)

우이령에 왔다면 오봉 서쪽에 안긴 석굴암(石窟庵)은 꼭 둘러보기 바란다. 첩첩한 산주름에 제
대로 묻힌 석굴암은 우이령 개방과 함께 흥한 기운이 찾아들어 요즘 제법 잘나가고 있는데, 절
로 오르는 길은 좀 각박하지만 경내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꽤나 일품이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공양을 제공하고 있으니 시간이 맞으면 공양 1그릇 들고 가는 것도 좋다. (정월대보름에는 오
곡밥에 나물을, 동짓날에는 팥죽을 제공함) 또한 매년 10월에는 번뇌가 쫓아오다 졸도할 정도
의 이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단풍음악회까지 연다. (2016년에는 10월 29일 토요일에 열림)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못지나친다고 내가 이곳을 그냥 통과할리는 없을 터, 잠시 우이령을
잊고 석굴암을 찾았다. 석굴암에 관한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유격 표석의 위엄 - 이제는 이곳의 상징물이 되어 우이령길 사진의
단골 모델로 자주 등장한다.

▲  유격광장에서 바라본 오봉의 위엄 (왼쪽 바위 봉우리는 관음봉)

우이령길 교현리 구간에서는 어디서든 오봉(五峯, 660m)이 바라보인다. 오봉산(五峯山)이라 불
리기도 하는데, 이들은 도봉산의 뒷쪽으로 5개의 봉우리가 위엄을 뽐내며 속세를 굽어본다. 이
런 멋드러진 봉우리에는 옛 사람들이 붙인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있기 마련이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랑이가 담배 피다 암에 걸리던 시절, 양주 고을에 총각 5명이 살고 있었는데, 양주목(楊州牧
) 원님(사또)의 외동딸이 참 이쁘다고 하여 서로 장가를 들고자 시합을 벌였다. 아마도 원님이
시합을 붙인 듯 싶다. 시합이란 바로 우이령 서쪽에 있는 상장능선에 올라 그곳의 바위를 오봉
에 던져올리는 것, 그들 가운데 누가 이겼는지는 전설을 지은 옛사람의 생각이 짧아 나오지는
않지만 그들로 인해 오봉이 저렇게 묘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허나 사람 주제에 어찌
저런 봉우리를 만들 수 있을까?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대작품을 사람 따위가 황당한
전설로 가로채려고 하니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하다.

우이령에서 뻔히 보이는 오봉이지만 정작 여기서는 오르지 못한다. 그곳에 가려면 무조건 도봉
산을 거쳐야 되며, 우이령과 석굴암에서 가는 길은 모두 통제되었다.


▲  석굴암입구~우이령길 정상 구간 (1)

석굴암입구 유격광장을 지나면 우이령길은 기존보다 조금 작아지고 길을 둘러싼 숲은 더욱 삼
삼해진다. 여기서부터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가 우이령길의 단연 갑(甲)이자 심장과 같은 구간
으로 인간의 언어와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건방질 정도로 미치도록 아름답다. 벌써부터 누렇
게 뜬 낙엽이 길 주변을 잔잔히 덮어 겨울 제국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을 가늠케 하며, 사람도
별로 없어 뚜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한적하다. 그야말로 산바람과 새의 지저귀
는 소리가 전부인 자연의 공간이다. 산내음이 진하게 우려진 이런 길을 거닐면 아무리 문학의
문외한이라도 시(詩) 한 수, 읊어주거나 지어야 되는데, 그럴 실력이 되지 못함이 애석하다.


▲  석굴암입구~우이령길 정상 구간 (2)

▲  석굴암입구~우이령길 정상 구간에서 만난 조그만 계곡

▲  오봉과 우이령 산줄기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의 잘생긴 뒷통수

▲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오봉의 기묘한 위엄

▲  석굴암입구~우이령길 정상 구간 (3)

▲  우이령길 정상과 대전차 장애물 (우이동 방향)

▲  우이령길 정상과 대전차 장애물 (송추 방향)

석굴암입구에서 살랑살랑 20분 정도 오르면 우이령길 정상이다. 여기서부터 경기도 양주시에서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으로 바뀌는데, 행정구역이 싹 바뀐다고 해서 고갯길과 주변 풍경이 죄다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편의상 그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우이령길 정상에는 돌로 쌓은 방어시설이 있는데, 이는 탱크의 저지를 막는 대전차(對戰車) 장
애물(고가 낙석)이다. 이 장애물은 6.25 이후 북한의 침공에 대비코자 만든 것으로 전차(탱크)
가 밀려올 때 석축 위에 올려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떨어뜨려 탱크의 진입을 막는 시설이다. 서
울과 경기도 북부(고양, 양주, 구리, 남양주 방면)로 넘어가는 고개,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권
고갯길에 주로 설치되었는데, 다행히 저들이 제대로 쓰인 적은 없으며, 근래에는 서울 주변을
중심으로 도시 개발과 도로 개선으로 조금씩 없어지는 추세다. (파주나 양주, 포천, 연천, 화
천 등 전방 쪽은 많이 남아있음) 

남북분단이 빚은 어이없는 작품으로 겉모습은 참 정떨어지지만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국방
시설로 등록문화재로 삼아 보존할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진다. 혹여 나중에 통일이 되고 주변
나라를 아우르는 놀라운 시대가 와도 꼭 국방 유적으로 남겨야 될 것이다.


 

♠  우이령 마무리 (서울 우이동 구간)

▲  우이령정상~우이탐방지원센터 구간 (1)

우이령길 정상을 지나면 길은 내리막으로 변하고 그나마 조금 가까워진 하늘은 다시 멀어져 간
다.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길도 앞서 교현리 구간처럼 느긋한 경사로 길도 잘 닦여져 있어 등산
보다는 마실이나 산책의 기분이 진하게 든다.

우이령의 우이동 구간은 딱히 명소나 특별한 존재는 없으며, 그저 삼삼하고 비단처럼 고운 숲
길의 연속이다. 하늘과 멀어질 수록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속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길을 15분 정도 내려가면 우이령길의 남쪽 검문소인 우이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이로써
우이령길의 금지된 구간은 모두 완주한 셈이며, 여기서부터 우이동 광장까지는 항시 개방되는
구간이다.


▲  돌탑의 보금자리
속인(俗人)들이 쌓아올린 산악신앙의 소박한 현장 ▼



▲  우이령정상~우이탐방지원센터 구간 (2)

▲  우이령정상~우이탐방지원센터 구간 (3)

▲  우이령정상~우이탐방지원센터 구간 (4)

▲  우이탐방지원센터 주변

우이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비로소 자유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우이동
유원지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다면 오른쪽 길로 가면 되며, 우이령을 넘어온 북한산둘레길은 바
로 오른쪽 길로 해서 내려간다. 그리고 먹거리나 우이동유원지를 원한다면 그냥 직진한다.

둘레길의 일원인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우이동 계곡인데, 다리 주변에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
들이 우리나라 7천만 인구 마냥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마이산 탑사(馬耳山 塔寺)의 간지나는 돌
탑을 꿈꾸며 조촐히 장관을 이룬다. 우이동은 우리 동네 옆이라 자주 가는 곳이지만 우이동광
장에서 우이령 구간은 처음 와본다.


▲  우이동계곡 돌탑들
돌탑이 뿌리를 내린 돌에 푸른 이끼가 가득하니 이곳이 그만큼 청정하다는 뜻이다.

▲  바위 위에 왠 소나무 분재
돌로 두툼히 석축을 쌓고 키 작은 소나무를 심었다.

▲  우이동유원지 외곽길 (1)

▲  우이동유원지 외곽길 (2)

우이령 남쪽에 옥의 티처럼 자리한 우이동유원지는 우이동광장에서 우이탐방지원센터 직전에
이르는 약 1.4km의 길쭉한 산간 마을이다. 이곳은 다른 이름 돋는 산이나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산채비빔밥과 닭백숙, 오리고기, 도토리묵, 동동주, 두부 음식, 고기류, 동동주 등을 다루는
온갖 식당들이 즐비하며, 민박과 산장 등의 숙박시설, 수련원과 연수원 등이 정신없이 들어서
있어 서울 지역 대학교와 직장, 동호회의 당일, 1박 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이곳은 엄연히 북한산국립공원 구역이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형성된 마을이다.
북한산국립공원이 2000년 이후 북한산성(北漢山城) 내부에 오래된 자연 마을인 북한동(北漢洞)
마을을 철거하고 등산로 기점 가운데 어수선한 곳을 많이 정비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우이동유
원지는 아직 손을 대지 못했다. 유원지 남쪽에는 훼밀리랜드와 그린파크호텔도 있지만 현재는
망해서 문이 닫힌 상태이다.

우이동유원지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다면 외곽길(유원지 기준 서쪽 길,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른쪽 길 이용)을 이용하기 바란다. 수목이 삼삼히 우거진 완연한 숲길로 길 동쪽에는 유원지
식당과 숙박업소의 철담과 나무 담장이 길게 둘러져 있다. 또한 길 중간에 유원지로 들어가는
조그만 길이 여럿 있으니 먹거리를 원한다면 그 길로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우이동유원지 외곽길을 정신 없이 내려가 오후 4시 반에 우이동 광장에 도착했다. 우이
탐방지원센터는 3시 반에 통과했다. 산을 탔으니 조촐하게 뒷풀이는 해야 되겠지. 우이동유원
지에 양의 털처럼 널린 식당에서 먹으려고 했으나 이곳이 초행길이고 정보가 어두워 다 지나쳤
다. 그래서 서울 동북부 부도심인 수유역으로 나와 닭갈비에 맥주로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고
그날의 일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지었다.

이렇게 하여 늦가을 우이령길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우이령이 비록 제약이 많은 공
간이라 아쉬움은 다소 있지만 서울 근교에서 제법 환경이 잘 보존된 구역인만큼 지금처럼 제한
적 탐방제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근래 양주시에서 예약이 필요없는 자유탐방을 요구하고 있
지만 그건 우이령의 숨통을 끊는 행위라고 본다. 하루 예약 인원을 지금보다 조금 늘리는 선에
서 끝내면 좋을 듯 싶으며, 휴식년제를 도입해 적으면 몇 달, 길면 몇년 정도의 휴식기를 주어
속인들로부터 자유를 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이 우이령길이 서울 근교의 숨겨진 아름다
운 숲길로 길이 길이 보존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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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6년 11월 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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