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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의 그림 같은 호수, 수원 서호 '




 

지겨운 겨울이 저물고 봄이 완연히 내려앉던 4월의 첫 무렵, 수원에 자리한 그림 같은 호
수, 서호를 찾았다. 서호는 경부선 전철이나 열차를 타고 수원을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본
것이 전부라 나에게는 아직 미답처(未踏處)나 다름이 없었다.

오후 3시, 화서역에서 후배를 만나 수원역 방향(남쪽)으로 조금 들어서니 봄나들이객들로
분주한 서호공원이 모습을 비춘다. <서호공원은 서호 북쪽과 동쪽에 닦여져 있음>


 

♠  수원 도심 속의 호수, 서호<西湖, 축만제(祝萬堤)>
- 경기도 지방기념물 200호

▲  서호 북쪽길 (서호공원)

인구 120만을 지닌 경기도 제일의 큰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인 수원(水原), 그 도심 북서쪽에는
물을 가득 머금은 서호가 은빛물결을 글썽이며 정처없는 나그네의 마음을 뒤흔든다. 경부선 전
철이나 열차를 타고 수원역~화서역 구간을 지날 때 서쪽으로 너른 호수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
로 서호이다.

서호는 1799년 정조 임금이 내탕금(內帑金) 30,000냥을 쏟아부어 여기산 동쪽에 조성했다. 원
래 이름은 축만제로 오래도록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조(正祖)는 1764년 창경궁 선인문(宣人門)에서 뒤주에 갇혀 강제로 이승을 떠난 아버지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묘역, 현륭원<顯隆園, 현재 융건릉>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에 병점
에 있던 수원부(水原府)를 지금의 수원시내로 옮기고 그 유명한 수원 화성(華城)을 구축했다.

화성을 만들면서 자신의 친위 호위부대인 장용위(壯勇衛)를 주둔시켰는데, 장졸들의 급료와 경
비를 충당하고자 화성 주변에 둔전(屯田)을 두어 경작하게 하고 4개의 호수를 만들어 농업용수
로 사용했다. 축만제는 바로 그 호수의 하나로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호란 단순한 별칭을 갖게
되었으며, 서호 주변에 넓게 둔전을 설치한 연유로 서호 서/남쪽 동네 이름이 서둔동(西屯洞)
이 되었다.
그 시절에 닦여진 4개의 호수 중 북쪽에 있는 만석거(萬石渠)가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1795년
5,700냥을 들여 축조했는데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지(北池)로도 불리며 현재 수원시 송죽동 만
석공원에 남아있다. 동쪽의 동지(東池)는 화홍문(華虹門) 동쪽 지동(池洞)에 있었으나 오래전
에 말라버려 체취도 남아있지 않으며 현륭원 앞에는 1797년 남지(南池)인 만년제(萬年堤)를 지
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끝으로 서쪽에 서호(축만제)를 지으면서 수원 화성 주변 4개
의 호수는 완성이 되었다. (그들 중 서호가 제일 넒음)

서호는 제방 길이가 1,246척,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수문 2개로 이루어 있다. 제방
남쪽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으며 1803년에 축
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해 서호를 보수,관리토록 했다. 이 관청에는 도감관(都監官)과 감관(
監官), 농감(農監) 등을 두어 관수(灌水)와 전장관리를 맡게 하였고, 도조(賭租, 둔전을 대여
하여 받는 돈이나 벼)를 통해 생기는 수입은 화성 축성고(築城庫)에 납입했다고 하니 제방 남
쪽의 경작지는 국둔전(國屯田)으로 쓰인 듯 싶다.
서호가 생김으로서 232섬지기의 경작지가 혜택을 맛보았으며, 어류자원 확보를 위해 잉어 등의
물고기도 풀었는데, 이곳 잉어는 약용(藥用)으로 점차 유명해져 궁중에 진상되기도 하였다. 또
한 명승지로도 이름을 날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를 천하 일품으로 쳤으며 호수 한복판에 섬
을 띄워놓아 경치를 북돋았다.

1906년 왜(倭)가 이곳에 농사시험장을 설치하면서 조선의 농업 중심지가 되었고, 1945년 이후
에는 농촌진흥청이 들어서 이 물을 이용해 많은 농작물을 연구/개발하니 세계적인 농업학자로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禹長春, 1898~1959)도 이 물의 신세를 졌다.
이처럼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생대 경작지(시험답) 외에도 인근 경작지 30만 평에 물을 공급
했으나 수질 오염과 시가지 개발로 경작지가 줄면서 지금은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생대만 사
용하고 있으며, 호수도 예전에 비해 덩치가 줄어들었다.
서호를 후광(後光)으로 삼던 농촌진흥청은 원래 서호 북쪽(현 농민회관)에 있었으나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전주완주혁신도시로 내려갔으며, 호수 남쪽에는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생대
에서 관리하는 경작지가 있어 우리나라 농업 연구/발전의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서호는 농촌진흥청 소유로 인해 오랫동안 속세에 금지된 호수로 있었다. 그러다가 시민들의 개
방 여론에 힘입어 2000년대에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이 열렸다. 2012년에는 서호를 둘러싼 둑방
길에 2.1km 정도의 둘레길을 조성하고 호수 북쪽과 동쪽에 서호공원을, 호수 서북쪽인 여기산
(麗妓山)에 여기산공원을 닦아 시민들에게 선사했다. <여기산에는 우장춘 묘역과 선사유적지,
철새서식지가 있음>

수원 도심에 그림처럼 펼쳐진 서호는 수원, 화성 지역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지금의 수원을 있
게한 수원의 아버지, 정조 임금이 화성과 더불어 수원에게 남긴 소중한 꿀단지이다. 봄에는 개
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앞다투어 나들이객을 유혹하고 가을에는 오색 단풍이 옛 농촌진흥청과
여기산, 서호 주변을 몸살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물들이며 겨울에는 눈꽃이 하얗게 설경을 이
룬다. (수원시가 선정한 눈꽃 명소 중의 하나임)
서호는 현재 '수원 축만제'란 이름으로 경기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서호 찾아가기 (2017년 6월 기준)
* 지하철 1호선 경부선 화서역 5,6번 출구를 나와서 남쪽(수원역 방면)으로 도보 10분 (항미정
  은 화서역에서 도보 25분)
* 수원역(AK플라자)에서 30, 30-1, 42번 시내버스를 타고 숙지중고교(서호공원)에서 하차, 남
  쪽에 바로 보이는 육교를 건너면 서호(서호공원)이다.
* 서호공원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1
* 서호(축만제)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  서호 북쪽에서 바라본 서호와 섬

서호 한복판에는 호수의 경치를 구수하게 해주는 섬이 외롭게 떠 있다. 섬 이름은 따로 없으며
그곳으로 인도하는 배도, 다리도 없어 접근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그림의 떡 같은 섬이다. 그는
서호 초창기 때부터 있었으며 근래에 새롭게 손질되었다.


▲  서호 북쪽에서 바라본 서호 동쪽과 화서동(華西洞)

서호공원을 비롯한 서호 주변에는 봄 기운을 누리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판을 쳤지만 이제는 봄의 따스한 햇살이 천하를 부드럽게 보듬는다.

우리는 서호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았다. 서호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넓기
는 마찬가지, 2.1km의 서호 둘레길을 도는데 항미정 관람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 거의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호수에서는 잔잔하게 물보라가 피어오르고 은빛물결이 주름을 이루며 글썽인다. 호수에서 불어
오는 바람도 이제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  물결이 주름진 서호 서쪽 ▼


▲  봄나들이객과 산책객들로 북적거리는 서호공원 (서호 북쪽)


▲  서호천이 서호로 변신하는 현장 (새싹교 주변)

서호를 가득 채운 물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지하수를 쥐어짜
서 채운 것일까? 그는 수원 북쪽 덕성산에서 발원한 서호천(西湖川)을 막아서 만든 것이다.
서호천은 광교산에서 나온 영화천(만석거를 경유함) 물줄기까지 받아들여 서호에서 단체로 모
임을 가진 다음 항미정 옆 수문을 타고 수원 서부와 화성, 평택 땅을 거쳐 서해바다 아산만으
로 흘러간다.


▲  서호로 길을 재촉하는 서호천 (새싹교에서 바라본 모습)
하천 동쪽에 노란 피부의 개나리가 만개해 봄의 기운을 돕고 있다.

▲  녹색과 붉은색이 입혀진 서호 서쪽길
(왼쪽 볏집은 서호 철새간이탐조대)

서호는 상류에서 따스한 물(13도)이 흘러들어와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이 철새
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4계절 내내 흰뺨검둥오리, 가무우지, 가창오리, 왜가리 등이 무수히 찾
아온다. 이들은 서호 서쪽 여기산에 둥지를 틀고 서호에서 물고기를 잡아 삶을 꾸린다.

수원 도심 속 철새들의 성지로 그들을 관찰하라는 뜻에서 서쪽길에 볏집으로 벽을 만들고 성인
눈 높이 정도에 조그만 구멍을 내어 그들을 훔쳐볼 수 있게 했는데, 대놓고 살펴보면 철새들도
다소 민망해하거나 경계를 품을 것이니 그런 속임수를 쓴 것이다.


▲  서쪽길에서 바라본 서호 - 물결이 참 잔잔하기도 하다.

▲  서쪽길 개나리 너머로 본 서호와 섬 (가운데 보이는 것이 섬)


 

♠  서호의 풍치를 드높이는 양념과 같은 존재, 항미정(杭尾亭)
- 수원시 향토유적 1호

▲  서호 서남쪽 수문에서 바라본 항미정

서호 서남쪽 언덕에는 항미정이란 조촐한 모습의 정자가 호수를 굽어보고 있다. 'ㄱ'(또는 'ㄴ
') 모양의 납도리집으로 홀처마로 이루어진 43.5㎡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앞쪽(동쪽)은 뻥 뚫려
있고, 뒤쪽(서쪽)은 벽으로 막혀 있다.

이 정자는 서호 초창기부터 있던 것이 아닌 1831년에 생긴 것으로 당시 화성유수(華城留守) 박
기수(朴綺壽)가 서호에서 풍류를 즐기고자 세웠다. 그는 석양에 비치는 여기산의 그림자를 보
고 팔자 좋게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의 시를 읊었는데, 그 과정에서 '서호는 항주(杭州)
의 미목(眉目)같다'고 해서 항주와 미목의 1글자를 취해 항미정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서호의 풍치를 아름답게 해주는 양념으로 서호와 함께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근래 개
방되었으며 개방 이전에 농촌진흥청에서 정자 서쪽 언덕을 뒤집고 도서관을 만들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항미정은 툇마루를 갖추고 있는데, 화서역을 기준으로 서호 둘레길을 1바퀴 돌 경우 이곳이 거
의 중간 지점이 된다. 그러니 여기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단 정자 내부로 들어
가면 안됨) 게다가 그늘진 곳이라 땀도 알아서 줄행랑을 칠 정도로 시원하며 정자 주변에는 푸
른 잔디가 곱게 입혀져 있다.


▲  정면에서 바라본 항미정 - 정자로 인도하는 계단을 오르면
바로 항미정이 몸을 내민다.

▲  남쪽에서 바라본 항미정

▲  북쪽에서 바라본 항미정

◀  항미정 현판과 툇마루
정자 내부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그러니
툇마루에 잠시 걸터 앉는 수준으로만
머물기 바란다.


▲  항미정에서 바라본 서호와 버드나무

▲  서호 서남쪽 수문 위에 걸린 다리

▲  서남쪽 수문 다리에서 바라본 남쪽 둑방

서호에 모인 물은 서남쪽 수문(항미정 옆)과 동남쪽 수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간다. 서남쪽 수
문은 매일 일정량의 물을 배출하여 서호천의 바다 행을 돕고 있으며, 동남쪽 수문은 농촌진흥
청(국립식량과학원)과 서울대 농생대 경작지에 물을 제공하는 용도로 쓰여 서남쪽 수문보다는
다소 한가하다.


 

♠  서호 마무리

▲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서호 남쪽 둑방

서호를 지키고 선 남쪽 둑방은 서울 풍납토성(風納土城) 만큼이나 높고 두껍다. 서호천과 만석
거에서 내려온 막대한 물을 담아야 되기 때문인데, 둑방 남쪽은 여기보다 지대가 낮은 경작지
라 둑방이 자칫 와해된다면 그 경작지는 물론이고 서둔동과 수원역 주변까지 피해를 받는다.
남쪽 둑방길은 서호 동/서/북쪽길보다 조금 넓은 편으로 다른 길과 달리 비포장 흙길을 유지하
고 있어 정겹기만 하다. 또한 오래된 나무들이 둑방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고색의 풍치까지 더
해준다.


▲  둑방에 자라난 오래된 소나무의 위엄

▲  둑방에 세워진 축만제 비석 - 고색의 때가 묻어난 비석 피부에 새겨진
'축만제' 3자가 꽤 패기가 있어 보인다.

▲  남쪽 둑방에서 바라본 서호와 여기산 (오른쪽에 보이는 산)
서호는 여기산과 호수 주변의 동/식물들, 하늘을 떠다니는 온갖 존재들이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는 그들의 커다란 거울이다.

▲  남쪽 둑방길에는 소나무가 여럿 심어져 조촐하게 운치와
그늘을 드리운다.

▲  늘씬하게 잘 빠진 남쪽 둑방길 ▼



▲  둑방 남쪽에 펼쳐진 농촌진흥청(국립식량과학원), 서울대 농생대 경작지
<시험답(試驗畓)> - 서호의 물을 먹고 자라는 시험 경작지로 연구/개발된
다양한 육종(育種)들이 이곳을 거쳐 천하에 보급된다.

▲  남쪽 둑방에서 바라본 서호와 섬

▲  서호 동남쪽에서 바라본 서호와 여기산, 그리고 호수와 마주한
푸른 하늘과 구름의 무리들

▲  갈대가 살랑거리는 서호 동남쪽

▲  서호 동남쪽과 남쪽 둑방

▲  서호 동쪽 산책로

▲  서호 동쪽에서 바라본 서호와 섬

▲  서호 동북쪽 (왼쪽에 보이는 산이 여기산)

▲  서호 동북쪽 산책로

▲  경부선 육교에서 바라본 서호(서호공원)

▲  경부선 육교에서 바라본 경부선과 서호공원

서호를 1바퀴 둘러보니 1시간 30분이 훌쩍 흘렀다. 아직 일몰까지는 여유가 있어 1곳을 더 둘
러보기로 하고 정처를 물색하다가 수원 동북부 우만동에 있는 봉녕사(奉寧寺)가 문득 뇌리 속
에 스쳐 지나가 그곳을 찾기로 했다.
이후 내용은 분량상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으며 본글은 여기서 흔쾌히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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