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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산 동국사 (동국사 대웅전)

군산 도심부인 금광동에는 이 땅의 유일한 왜식 사찰인 동국사가 있다. 구한말 시절 왜열도 애들이 군산 지역에 많이 넘
와 무질서하게
말뚝을 박았는데, 그때 왜식 불교도 같이 들어와 왜식 절과 포교원이 많이 지어졌다. 동국사는 그 시류
를 타고 생겨
것으로 1909년 왜인 승려 내전불관이 왜인 일조통의 집을 빌려 지은 포교소에서 시작된다.

1913년 승려 우치다가 군산에 서식하는 왜인들의 지원을 받아 현 자리로 절을 옮겨 금강선사란 간판을 내걸고 본당과 고
리를 만드니 그것이 지금의 동국사 대웅전이다.

그 시절 금강선사는 왜국 조동종 소속의 절로 1919년에 범종과 범종각을 만들었고 1921년에 대문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1932년에 개축을 벌였다. 1945년까지 왜인들이 관리했으나 해방 이후 미군정이 몰수하여 관리하다가 대한민국 정부에
넘어갔다.

1955년 전북종무원에서 매입해 대웅전으로 삼았으며, 1970년 승려 남곡이 동국사로 이름을 갈았다. 여기서 동국은 '

대한민국'의 약자로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에 이 절을 증여해 현재 선운사의 말사로 있다.

구한말과 왜정 때 지어진 왜식 사찰은 해방과 더불어 모두 박살이 났으나 이곳만은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 땅 유일의 
왜식
찰이자 어둠의 시절을 상징하는 뼈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근래에는 군산 지역 근대문화유산

성지로 격하게 추앙을 받아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동국사는 왜식 건물인 대웅전(요사 포함)과 천불전, 범종각 등을 지니고 있는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은 동쪽을 바

라보고 있으며 좌측로 요사와 이어져 완전히 하나의 커다란 건물을 이루고 있다.
대웅전 본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팔작지붕 건물로 왜국 에도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우리나라 절
달리 단청이 없어 밋밋하고 소박한 느낌을 선사
하며, 건물 꼭대기의 용마루는 우리나라 건물과 달리 일직선을 이룬다.
물의 거의 절반 이상
을 차지하고 있는 지붕은 그 높이가 상당하여 비례도 안맞아 보이고, 다소 육중해 보인다. 건물아랫

도리가 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2. 육중한 지붕을 지닌 동국사 대웅전
왜열도에 불교가 들어간 것은 백제 성왕 시절로 전해진다. 백제는 왜열도로 진출해 그곳을 속방으로 다스리면서 많은 사람
들이 건너갔는데 그 과정에서 백제 불교도 왜열도 교화 차원에서 전래된다. 백제가 가야 다음으로 왜열도에 영향력을 행사
했고,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384년으로 전하고 있으니 빨라도 5세기 중에 백제가 왜열도로 불교를 내리지 않았을까 싶

다. (허나 역사 기록이 부족하니 일단 백제 성왕 불교 전래 설을 신뢰할 수 밖에)

백제 불교 외에 신라 불교, 고려 불교도 왜열도로 전해졌고, 그렇게 발전한 왜열도 불교가 구한말에 조선에 들어왔으니 세
상은 돌고 도
는 모양이다.
혹자는 왜식 사찰인 동국사 대웅전은 왜 살려두냐 하지만 저것 역시 이 땅을 거쳐간 엄연한 역사의 흔적이다. 그리고 왜식
사찰도 이제 저거밖에 남지 않아 부실 것도 더 이상 없다. 이제는 군산 지역 근대문화유산 명소의 1번지로 자리를 잡았으니

문화유산의 일원으로 여기고 대하도록 하자.

 

 

3. 왜식으로 지어진 천불전과 까페
천불전은 근래 지어진 것으로 이름 그대로 천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을 따라서 왜식으로 지어졌는데, 그 모습이 시골
창고 같은 모습이며, 
그 뒤에도 왜식으로 지어진 까페가 있다. (천불전과 까페는 예전에는 없었음)

 

4. 대웅전 본전과 요사를 잇는 중간 부분
대웅전은 저 문을 통해 들어서면 된다.

 

5. 왜식으로 지어진 범종각

1919년에 지어진 것으로 이 땅에서 유일한 왜식 범종각이다. 은 시기에 왜국 교토에서 고교재치량이 만든 쥐꼬리만한 범

종이 걸려있으며, 그 피부에는 창건 당시 금강선사의 내력과 왜왕 찬양문이 쓰여있다.

 

 

 

6. 태극기를 든 소녀상(군산평화소녀상)과 조그만 방형 연못

소녀상은 군산시민과 왜열도 애들의 성금을 모아 2015년에 장만했다. 다른 곳의 위안부 소녀상은 의자에 앉아있으나 이곳

소녀상은 태극기를 들며 당당하게 서 있다.

 

7. 범종각에 걸린 조그만 범종

1919년 교토에서 조성되어 넘어온 것이다. 범종의 주요 부분인 유곽의 유두가 우리나라와 달리 25개나 되며, 푸르고 검은

종 피부에는 금강사의 창건 내력과 왜왕을 찬양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종과 달리 매우 작아서 부처의 메세지

가 속세에 제대로 울려퍼지기나 할지 걱정이 될 정도이며, 범종보다는 장난감종이나 식사 시간을 알릴 때 치는 종으로 더

적당해 보인다.

 

 

 

8. 참사비

왜정 통치의 잘못을 참회하는 조동종의 참사문을 발췌해서 새긴 비석으로 조동종 운상사 주지인 일호창황의 제안으로 2012

년 동국사에 세워졌다. 저 참사비의 내용은 과연 진정으로 참회해서 쓴 것일까? 아니면 왜열도 애들의 종특인 생쇼로 쓰여진

것일까? 솔직히 참회의 진심은 신뢰하기 어렵다. (왜열도 애들은 원숭이들이라 믿으면 곤란함)

 

9. 석조33관세음보살상과 석조8수본존상

33가지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나타난다는 관세음보살을 조각한 것으로 36기가 있다. 이들은 1919년(또는 1917년_에 조성
된 것으로 다들
크기가 작아 귀엽게 다가온다. 석조8수본존상은 익산 황등석으로 만든 12지신의 수호 부처 8기로 1922년

에 조성되었다.

 

 

10. 동국사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진 대나무밭
산바람이 솔솔 불면서 대나무의 향연이 그윽하게 울려 퍼진다.

 

 

 

11.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대웅전 불단에는 동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인 석가3존상이 유리에 봉안되어 있다. 이 3존상은 나무로 틀을 짜고 진흙으

로 빚어 만든 소조불로 원래는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있었다. 해방 이후 이곳으로 넘어왔는데, 그 사유는 분명치가 않다.
이들은 1650년에 조성된 것으로 금동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가섭존와 아난존자가 협시해 있다. 보통은 관세
음보살
나 보현보살 등의 보살이 그를 협시하는데 반해 여기는 그의 제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환한 표정의 살며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는 통견의에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그들 뒤로 고운 빛깔의 후불탱화가
든든하게 걸려 있다. 또한 그들 뱃속에서 나온 복장
물은 한지 다발과 사용하지 않은 한지, 묵서 발원문, 묘법연화경과 보

협인경 목판본 등의 전적류, 은제 후령통, 직물류, 곡식과 약초류 등 373점으로 불상 조성 당시의 상황을 밝혀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들은 불상과 한 덩어리로 국가 보물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복장유물은 관람이 거의 불가능함)

 

 

 

12. 대웅전 뜨락에 있는 석등 아랫도리 돌기둥(간석)과 검게 탄 조그만 석물 2기

 

13. 대웅전 옆에 자리한 새로운 요사

 

14. 동국사로 인도하는 오르막길과 돌기둥
저 오르막길의 끝에 동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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