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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청운사(청운사 하소백련축제)


' 김제 청운사 연꽃 나들이 (하소백련축제) '

김제 청운사
 


연꽃이 피어나는 여름이 되면 그 연꽃이 매우 목말라진다. 그때는 천하 곳곳에서 연꽃을
내세운 연꽃축제가 열려 그 목마름에 크게 부채질을 하는데, 전북 김제에 있는 청운사의
연꽃 향연이 그렇게나 좋다는 풍문을 전해 듣고 크게 호기심이 일었다.
아직 이름도 낯설은 김제 청운사, 다행히 교통편도 썩 나쁘지 않아 연꽃이 한참인 7월의
한복판에 그곳으로 흔쾌히 길을 떠났다.

아침 일찍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에 나를 담아 3시간 정도를 달려 익산역에 도착했다. 익
산시내에서 청운사가 있는 대청리까지 익산시내버스 13번과 17번이 운행하고 있는데, 노
선은 2개나 되지만 운행횟수는 고작 1일 8회 뿐이라 버스 시간을 미리 파악하고 가는 것
이 정신건강에 좋다. (배차간격은 1시간 30분~2시간대)

익산역 정류장에서 10여 분을 기다리니 익산 17번(익산터미널↔대청리)이 나타나 반갑게
입을 벌린다. 그를 잡아 타고 30분을 달려 김제평야에 자리한 대청리 대신마을에서 하차
하여 2차선 시골길(청공로)을 따라 남쪽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니 '호제'와 청운사입구가
나란히 마중을 나온다.


▲  평화로운 모습의 청운사입구

▲  거대한 연꽃 밀림을 이루고 있는 호제


♠  백련(白蓮) 속을 거닐다. 호제와 백련 논두렁, 하소백련지

▲  청운사입구에 세워진 청하산 청운사 표석

청운사입구에는 백련축제를 알리는 하얀 현수막과 청운사 표석이 자리해 이곳의 정체를 알려
준다. 백련을 내세운 곳이라 그런지 표석까지 모두 하얀 피부 일색인데, 파리도 미끄러질 정
도로 매끄러운 피부를 지닌 청운사 표석 뒤로 백련을 가득 품은 호제가 넓게 펼쳐져 있다.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①

청운사입구에 자리한 호제는 김제평야를 촉촉히 어루만지는 저수지로 거대한 백련 연지(蓮池)
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연꽃이 저수지 수면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밀도로 들어차
여기가 과연 저수지인지 물음표를 던질 정도이며, 호제 구석 일부에서나 저수지 수분을 확인
할 수 있다.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②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③

연꽃 밀림을 이루는 호제이나 정작 백련 꽃잎은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푸른 연잎만 가득하여
완전 연잎의 녹색 바다를 이룬다. 아름다운 연꽃과 귀여움이 묻어난 연잎들이 강인한 협동심
을 보이며 마치 100만 대군처럼 새카맣게 몰려있으니 은근히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저 속에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할 자연의 큰 함정처럼 말이다.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④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⑤
연잎의 푸른 물결 사이로 백련 하나가 도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⑥
여기서는 연잎들이 약간 틈을 주어 저수지 수면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  백련의 거대한 세상, 호제 ⑦

▲  호제 북쪽 백련 논두렁

▲  호제(오른쪽)와 논두렁 사이, 백련 논두렁길

호제 북쪽 논두렁에도 백련이 닦여져 있다. 여기는 호제보다 백련도 무지 많고 성인 키에 이
를 정도로 높이 자라나 호제 이상으로 연꽃 밀림을 이룬다.
연분홍 피부의 홍련(紅蓮)을 적당히 섞어두었으면 좋으련만 온통 하얀색 백련 일색이라 약간
식상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백련이 홍련보다 못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색깔 차이가 있을
뿐, 둘 다 막상막하로 곱다.


▲  바람에 출렁이는 푸른 연잎 사이로 앞다투어 모습을 보이는 백련들

▲  삼삼하게 우거진 백련 논두렁 ①

▲  삼삼하게 우거진 백련 논두렁 ②

▲  삼삼하게 우거진 백련 논두렁 ③
나에게 변신술이 있다면 한 마리 개구리가 되어 연잎 위에 앉아
개굴개굴 노래를 부르고 싶다.

▲  삼삼하게 우거진 백련 논두렁 ④

▲  삼삼하게 우거진 백련 논두렁 ⑤

▲  삼삼하게 우거진 백련 논두렁 ⑥

▲  하소백련지(하소연)

백련 논두렁을 지나면 청운사 경내 앞에 펼쳐진 하소백련지(白蓮池)가 마중을 한다. '하소연(
淵)','하소지'라 부르기도 하는데, 청운사의 대표 꿀단지로 앞서 논두렁보다 규모는 작으나
그 이상으로 백련을 많이 품고 있다.
내가 갔을 때는 하소백련축제 기간이라 하소연 주위로 행사 현수막들이 많이 진을 치고 있었
다. 허나 이날은 평일이고 생각보다 찾는 이가 별로 없어서 다들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주로 지역 먹거리나 생활용품, 옷 등을 내놓고 있어 그다지 눈길 가는 것은 없었으며, 하
소연 주변에 절에서 운영하는 찻집이 있다.


▲  하소백련지 백련들 ①

▲  하소백련지 백련들 ②

▲  하소백련지 백련들 ③
백련의 화려한 향연이 여름 제국의 후광을 단단히 받으며 한참 펼쳐지고 있다.

▲  하소백련지 백련들 ④

▲  뽀송뽀송하게 피어나 나그네의 마음을 홀리는 순백의 백련들

▲  활짝 만개한 어느 백련

▲  탐스럽게 열린 백련
여기서 심청(沈淸)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도 덩달아 콩닥콩닥~~


♠  청운사(靑雲寺) 경내 둘러보기

▲  청운사 무량광전(無量光殿)

하소연 백련의 유혹을 겨우 지나치면 비로소 청운사 경내가 펼쳐진다. 백련의 향연이 경내가
아닌 경내 앞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백련의 위엄에 절이 다소 뒷전으로 밀려난 기분이다. 경내
에서는 하소백련축제의 일부인 불화(佛畵) 전시 등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백련보다는
관심도가 다소 떨어진다. 그럼 여기서 청운사의 내력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  연등이 허공을 가득 메운 무량광전 내부

호남평야의 일원인 드넓은 김제평야 한복판에 청하산(靑蝦山)이란 작은 뫼가 누워있다. 그의
키는 겨우 56m에 불과하나 주변이 온통 낮은 평야지대라 제법 높게 다가오는데, 그 산자락에
청운사가 조촐하게 둥지를 틀어 백련의 향기를 속세에 은은하게 전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20세기 중반 이후에 지어진 절로 보이나 절에서는 19세기에 어느 승려가 창건했
다고 내세우고 있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그 승려는 계룡산(鷄龍山)에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
기 서광(瑞光)이 아른거리는 곳이 있어 호기심으로 그곳을 찾으니 김제평야 한복판인 청하산
이었다.
그는 작고 보잘 것도 없는 이런 산에서 빛이 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여겨 바로 그곳에 1칸
짜리 초가를 지었고, 매일 중생의 극락천도를 빌고 불공을 올렸다. 이후 생불의 신선만이 올
수 있는 곳으로 찬양을 받자 승려 '보천'이 이곳을 찾았는데, 여기서 자신의 수도가 부족함을
깨닫고 그곳에 눌러앉아 수도에 임했고 드디어 도를 깨쳤다고 전한다. (보천이 1칸짜리 초가
로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음)

절의 본격적인 내력은 1925년부터 펼쳐진다. 1925년 3월 초가 법당을 짓고 태고종(太古宗)의
그늘로 들어갔는데, 그때가 실질적인 창건시기가 아닐까 싶다.
1927년 월인(月印)이 초가 법당을 3칸으로 늘리고 현재 대웅전 자리에 요사(寮舍)를 지었으며
, 1931년 인당(仁堂)이 초가 법당을 부시고 그 자리에 법당(관음전)을 새로 지어 절을 중창했
다.
1938년 월인의 아들인 벽운(碧雲)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했으며, 월인
이 청운사를 관리하고 있다가 1948년에 벽운이 중창했다. 1959년 염불원 오른쪽에 새로 요사
를 지었고, 1970년에 기존 요사를 부시고 옛 만경현(萬頃縣) 동헌 건물을 구입, 이곳으로 가
져와 손질하여 대웅전으로 삼았으며, 1973년에 종각과 범종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0년에 염
불원을 세웠으며, 1992년 미륵불을 세워 지금에 이른다.

이곳은 샘물이 좋아서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전하며, 하소연 등의 못을 닦아 백련을 심어 가
꾸면서 전북의 주요 연꽃 명소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여름만 되면 연꽃 명소로 자주 거론
되는 곳으로 7월 말에는 하소연꽃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이때는 전북 무형유산 27호 탱화장(
匠) 보유자인 주지 도원이 많은 불화를 그려 천하에 선보인다. 그 외에 단청 문양 그리기 등
의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 장터 등이 열린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무량광전과 관음전, 요사 등 5~6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전북 유형문화유산 174호인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가 있으나 서
적이라 관람할 생각은 아예 접는 것이 좋다.

* 청운사 소재지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대청리 산 89 (청공로 185-80 ☎ 063-543-1248)


▲  무량광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무량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아미타여래좌상(아미타불)의 거처이다. 경
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오는 기와집 불전(佛殿)으로 얼핏 보면 이곳의 법당(法堂)이나 중
심 건물로 생각하기 쉬우나 경내 뒤쪽 구석에 있는 대웅전이 법당 역할을 하고 있어 무량광전
은 그 다음 급으로 보면 된다.

고운 금동 피부를 지닌 아미타여래좌상은 건물 한복판이 아닌 서쪽에 자리해 있는데, 이는 그
가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이라서 그렇다. 그 뒤쪽에는 아미타후불탱이 든든하게 걸려있으
며, 그 앞에는 예불 공간이 길게 펼쳐져 있다.

▲  무량광전 지킴이, 신중탱
호법신들의 무리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  노천 상태로 있는 금동 피부의
석가여래좌상 (무량광전 옆)


무량광전 옆 뜨락에는 금동 피부를 지닌 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돌로 네모나게 바닥돌을 다지
고 그 한복판에 고색이 좀 있어 보이는 기단석(基壇石)을 깐 다음, 하얀 피부의 동그란 기단
석과 6각형 기단석, 금동색 대좌(臺座)를 차례대로 얹히고 그 위에 석가여래좌상을 두었다.
특이하게도 완전 노천식으로 있는데, 비나 눈, 바람이라도 좀 피할 수 있게 건물이라도 씌워
주던가 인근 건물로 옮겼으면 좋겠다. 석불(石佛)이나 석조보살상도 아니고 금동불을 이렇게
보호각도 없이 바깥에 두는 경우는 여기서 처음 본다.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을 듯 싶은데,
기단석을 보니 임시로 저리 둔 것은 아닌 것 같으며, 나중에 보호각을 씌워줄 생각인 모양이
다.


▲  하소연이라 불리는 세모 집
절 앞에 있는 하소연(하소백련지) 이름을 딴 독특한 모습의 삼각형 집으로
중생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예불이나 하소연을 하는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누구든 이용 가능하며 내부에 창문은 없음, 취침 불가)

▲  하소연의 조촐한 내부
바깥과 달리 시원한 기운이 조금 서려있다.

▲  키 작은 범종각(梵鍾閣)
범종각과 범종 모두 1973년에 마련되었다.

           ◀  범종각 옆 석탑
바닥돌과 기단석, 넓은 1층 탑신, 좁은 2층 탑
신,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진 참 애매하게 생겨
먹은 탑이다. 굳이 층수를 따진다면 2층, 기단
부를 포함하면 3층석탑으로 보면 될 것이다.


▲  관음전(觀音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1931년에 지어졌다. 대웅전을 제외하고
경내에서 가장 늙은 집으로 그 앞에는 하소백련축제를 맞이하여 제작된
불화들이 현수막에 인쇄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  대웅전 앞 5층석탑
바닥돌과 기단석, 5층 탑신, 머리장식을 지닌 잘생긴 탑으로 20세기
중반에 조성되었다.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이곳의 법당이다. 1970년에 옛 만경현 동헌(
東軒)을 사들여 이곳으로 가져와 손질한 것으로 만경현 동헌 시절까지 합치면 400년 정도 묵
었다고 한다. 허나 심하게 성형되어 만경현 동헌 시절의 흔적은 별로 남아있지도 않으며, 오
로지 청운사의 대웅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
너무 기름져 보이는 얼굴과 덩치를 지닌 금동 피부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 협시하고 있다.

▲  대웅전 지킴이, 신중탱

▲  대웅전에 전시된 작은 불화들

청운사 주지로 탱화장 보유자인 도원이 하소백련축제를 기념하여 그린 것이다. 기존 불화 스
타일이 아닌 다양한 변화를 지닌 불화로 지금은 '이런 스타일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금방
지나치지만 여러 개의 100년이 지나면 21세기 불화의 이형(異形) 양식으로 절찬리에 소개될지
도 모른다.


▲  청운사와 호제를 뒤로 하며

청운사는 하소백련축제 기간임에도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 썰렁했다. 대신 적막한 분위기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백련의 향연을 실컷 즐겼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청운사 경내를 둘러보고 호제 동쪽 길을 통해 나오는데, 백련의 향연이 자꾸 내 침침
한 두 망막에 아른거려 나가는 길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하여 호제와 호제 북쪽 논두
렁 연꽃을 사진에 잠깐 더 담고 청운사와의 첫 인연을 정리했다.


▲  작별인사를 건네는 호제 백련들

▲  호제 동쪽 길 (청운사까지 이어져 있음)

시간은 어느덧 13시, 여름 제국과 한 편이 된 햇님은 하늘 높이 걸려 천하를 더욱 뜨겁게 달
군다. 지나친 무더위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벌써 철수하기에는 95% 허전하여 여기서 가까운
군산(群山)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마침 절 입구에 군산시내버스 36번과 37번이 1시간 간격으
로 바퀴자국을 남기고 있다.

본글은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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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4년 7월 23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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