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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제 둔덕기성 (둔덕기성 남쪽 성곽)
별학산(336.2m) 북쪽 자락 300m 고지에 둔덕기성이라 불리는 오래된 산성 유적이 깃들여져 있
다. 이곳은 신라 중기인 7~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산성 유적으로 동문터는 이 땅에서
흔치 않게 현문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려 중기인 12세기에 수축되었으며, 1170년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에서
폐위된 의종이 여기서 3년 정도 유배살이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 인해 폐왕성(제왕에서
폐위된 사람이 있던 성)이란 우울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의종(1127~1173, 재위 1146~1170)은 고려 제18대 제왕으로 인종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국정도
잘 살폈고 무신들도 잘 챙겨주었으나 슬슬 개판으로 변하면서 툭하면 문신, 환관들과 술판을 벌
였다.
또한 무신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점점 심해졌다. 이에 불만은 품던 정중부, 이의방 등은 계속 인내
하다가 의종이 보현원으로 행차하여 다시 놀자판을 벌이자 결국 폭발, 문신들을 대거 때려죽이고
의종을 제왕에서 폐위시켰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신정변이다.
이후 의종은 거제도로 유배되었는데, 둔덕기성에서 3년 동안 머문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의종이
이곳에 갇혀 지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사연으로 오랫동안 폐왕성이라 불렸으며, 여기서는 인
화문토기와 ‘상사리(裳四里)’ 명문기와, 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와서 신라 문무왕 시절에 설
치된 상군, 그리고 경덕왕 시절 거제군의 치소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산성의 둘레는 526m, 면적 44,060평방미터로 남문, 동문, 서문 등 3개의 문터와 여러 건물터 저장
고, 집수시설 등이 나와 지역에서 제법 귀하게 다뤄진 성이었음을 알려준다.
조선 초기까지 그런데로 쓰였으나 이후부터는 기록이 끊겼으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크게
초췌해진 것을 2001년 이후 꾸준히 발굴조사와 보수,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오랫동안 쓰였던 폐왕성이란 이름을 버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원래 이름인 둔덕기
성을 되찾아 이곳에 붙였다.
남파랑길27코스(통영 신촌마을~청마기념관, 10.1km)가 성 남쪽을 지나가며, 오량리에서 이 숲길
을 통해 둔덕기성으로 접근했다.
2. 세월의 오랜 태클로 움푹 낮아진 둔덕기성 남쪽 성곽
3. 둔덕기성 남문터 (바깥쪽)
이곳에는 남문이 있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의종이 폐위되어 거제도로 떨려난 1170년대 전후로 조성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시절 신라 시절에 다져진 성벽 바깥쪽으로 성벽 일부를 확장하면서
새로 문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남문터의 안쪽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초석이 있어 작은 문루가 있던 것으로 보이며, 동문터와 서
문터 사이에 작은 간문으로 여겨진다. 또한 남문터 안쪽에서 확인된 신라시대 성벽은 바른층쌓기로
다졌으며, 하부에는 성벽 보강시설인 기단보축이 확인되었다.
4. 속세를 향해 입을 벌린 둔덕기성 남문터 (안쪽)
5.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둔덕기성 서쪽 성곽
6. 동그란 모습의 둔덕기성 집수지
집수지는 물을 모아둔 연못으로 큰 우물이라 보면 된다. 사람은 수분 보충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건
강한 사람이라도 버티기가 무지하게 힘들다. 하여 도시와 성곽에는 내부에 꼭 우물이나 집수 시설을
만들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는데, 둔덕기성도 이렇게 큰 연못을 만들어 물을 모아두었다.
이곳 집수지는 7세기에 산성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3번에
걸쳐 크게 사용된 흔적이 나왔다.
집수지의 조성 과정은 먼저 넓은 원형 수혈을 닦고 호안석축 구축과 함께 누수와 붕괴를 막기 위한
보강 점토를 채워넣었다. 이때 석축은 단면 계단식으로 북쪽은 4단 동,서,남쪽은 3단으로 쌓았는데,
이런 구조는 호안석축의 붕괴를 막고자 함이며, 식수로 크게 이용되는 것을 고려할 때 집수지의 청
결과 수량 고갈 정도에 따른 이용 방법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호안석축은 화강암과 점판암계(바닥석과 1단 호안석축 상단 마감석) 석재를 이용해 바른층쌓기 수
법으로 조성되었으며, 각단의 상부는 판석으로 마무리했다. 또한 내부 바닥 가운데에 64x86cm 크
기의 대형 판석 1매를 설치해 집수지 축조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이 판석을 중심으로 집수지 석축은
모든 방향에서 완전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신라 사람들의 수준 높은 축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집수지는 옛날부터 있던 것이 아닌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흔적만 남은 것을 발굴조사를
통해 복원 재현한 것이다. 하여 집수지 왕년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고 보면 된다. 집수지 주변으로 난
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낮은 철책을 둘러 집수지를 속인들로부터 보호하고 있으며, 내가 갔을 때
는 집수지에 수분이 꽤 모여있었다. 마치 동그란 모습의 풀장처럼 말이다.
7. 접근금지 팻말이 붙여진 집수지
8. 시원스럽게 뻗은 둔덕기성 동쪽 성곽
고된 세월에 지쳐 쓰러진 성곽의 많은 부분을 복원 재현했으나 여장과 성문 등은 아직 복원하지 못했
다. 게다가 둔덕기성 왕년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이 땅에 흔한 성곽 복원 스타일로 다
듬었다.
9. 둔덕기성 동쪽 성곽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
백암산, 대봉산, 산방산 등 거제도 둔덕면과 거제면 일대 산주름들이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거제도가
제주도와 대마도(현재 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음) 다음으로 큰 섬이라 산들이 꽤 많다.
10. 둔덕기성 동쪽 성곽에서 바라본 황봉과 백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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