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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강동선사유적 (1호 움집터 주변)
부천시 북부에 자리한 고강동 범바위산 북쪽 산자락에는 '고강동 선사유적'이라 불리는 유적이 있
다. 이곳 유적은 옛조선이 천하에 크게 위엄을 보이던 기원전 6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 것으로 여
겨지는 작은 마을 유적으로 옛조선 후기와 삼국시대 초기에 걸쳐있는 유적임에도 아주 어이가 없
게도 선사시대 유적임을 내세우고 있다.
'선사시대'는 문자가 없던 시대를 일컫는 것으로 이 유적이 있던 시절에는 갑골문자와 동이족이 만
든 한자가 엄연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사시대라 표현한 것은 이 땅에 역사를 축소 왜곡하
려는 더러운 식민사관 쓰레기들(주요 대학 사학과와 국사학과,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기타 중공과 왜의 아부하는 쓰레기 역사 단체들)의 농간이다. 즉 이곳 유적과 그 시절 역사를 미개
한 시대로 대놓고 폄하시킨 것이다. 차라리 '고강동 마을유적', '고강동 유적', '고강동 삼국시대 유
적'이라 하면 편할 것을 어찌하여 선사시대를 갖다 붙였는지 이해 불가이다.
이 유적은 1995년 여름 홍수 때 장갯마을 뒷산 산길에서 석기유물이 드러나면서 발견되었다. 하여
1996년부터 2005년까지 7번에 걸쳐 한양대 발굴팀이 조사를 벌였는데, 바닥 평면이 긴 네모꼴 움
집터가 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지어졌음이 밝혀졌다. 주거터는 21기가 나왔는데, 한강 유역에서 발
견된 비슷한 시대의 움집터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
1999년에는 제사유적으로 보이는 적석환구가 여기서 가까운 작동 쪽 산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 그
외에 삼국시대와 신라 후기 것으로 보이는 석곽묘도 여럿 나왔으며, 유적 일대에서 반달돌칼, 돌칼,
돌도끼, 돌화살촉, 구멍뚫린토기, 점토띠토기, 제기형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발굴 유물 상당수는
부천시박물관에 있음)
현재 유적은 고강선사공원 정상부에 1호 움집터와 적석환구유구만 남아있으며, 나머지는 개발의 칼
질로 사라졌다. 유적 주위로 고강선사공원이 달달하게 닦여져 있으며, 서쪽 경사면에는 철쭉이 잔뜩
뿌리를 내려 봄에는 철쭉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진다.


2. 1호 움집터
1호 움집터는 1996년 고강동유적 제1차 발굴조사 때 발견되었다. 주거지는 언덕 정상부에 자리해 있
는데, 남북 길이 622cm, 동서 길이 328cm, 깊이는 동벽 50cm, 서벽 20cm로 'ㄴ' 형태의 반수혈 주
거지이다.
기둥 구멍은 수혈 중앙부에 2개가 있고, 벽을 따라 13개의 소형구멍이 있는데, 이런 기둥 구조로 보아
맞배지붕 비슷한 반수혈 주거지로 여겨진다. 집 벽체는 특별한 시설이 없으며, 남동 모서리와 북동 모
서리 일부분에는 벽면에 목탄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주거지 곳곳에 목탄이 깔려있는데, 가운데
기둥이 있는 부분에 주로 몰려있다. 여기서는 무분토기류와 호형토기, 반월형석도, 다제석촉, 마제석
부, 가락바퀴, 석검편, 환형석부 등이 나왔다.


3. 적석환구유구
이름도 무지하게 어려운 적석환구유구는 적석 주위로 고리 모양의 도랑이 둘러진 것을 말한다. 이 도
랑(환구)은 공간 구획이나 마을 방어를 위해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제기형토기 등이 나와서 마을
제사나 의례 공간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가운데에 적석유구와 주변에 환구유구(도랑 흔적)로 이루어져 있는데, 적석유구는 돌을 쌓
은 것으로 제기형토기 등이 나왔다. 즉 여기서 제사와 의례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남북 6m, 동서
6m의 방형 형태로 중심부가 다소 볼록하다.
환구유구는 적석 주위로 고리 모양으로 도랑이 둘러진 것으로 거의 동그란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환
구의 외경을 기준으로 직경은 30cm 내외이다. 서쪽 일부는 폭 1m 너비로 도랑이 끊겨 있는데, 이는
적석유구로 들어서는 통로로 여겨진다.

4. 한겨울에 잠긴 고강선사유적공원 산길 (고강선사유적공원 북쪽)

5. 고강선사유적공원 찬우물
고강동 찬우물은 제법 오래된 우물로 고강선사유적공원 밑인 장갯마을 사람들의 식수였다. 물맛이 좋
고 물이 아주 차가워서 찬우물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우물 밑으로 장갯마을에 속한 집들이 여
러 채 있었다.
허나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는 과정에서 우물은 거의 죽은 우물로 버려졌으며, 2006년에 현재 모습으
로 손질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졌다. 물론 우물의 기능은 상실된 상태이며,
고강선사유적공원 수식용이자 고강동의 오랜 유산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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