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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도전래사적비(오른쪽)와 고려승상 영밀공유청신 공덕비(왼쪽)

광덕사 일주문 옆에는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때깔이 고운 비석 2기가 자리해 광덕사를 찾은 중생
들을 맞이한다.


이 땅에 호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1290년으로 전해진다. 유청신이 몽골(원나라)에 갔다가 충렬왕을
호종하여 귀국하면서 어린 호두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는데, 열매는 천안 고향집에 심고,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었다고 전한다. 그 연유로 광덕사는 호도나무의 첫 고향이 된다. 하여 이를 기리고자 일
주문 옆에 호도전래사적비를 세웠으며, 2010년 이후에 유청신 공덕비를 추가로 세워 호도를 가져온
그의 공적을 기린다. (예전에는 호도전래사적비만 있었음)

 

유청신은 역모에 가담하여 멀리 귀양을 갔다고 전하며, 비석 피부에는 고려 승상이라 쓰여있는데, 승
상이란 제일 높은 관직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이다. (제왕 바로 밑 자리) 허나 고려는 문하시
중이란 칭호를 썼으며, 승상은 몽골(원나라)이나 당, 송, 명 등 중원대륙에 있던 나라들이 주로 썼다.
그러니 고려 승상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또한 그가 승상이나 문하시중 자리까지 올랐는지도 불분명
하다. 그러니 비신(빗돌)에 '고려승상' 4자는 빼고 '영밀공 유청신 공덕비'만 쓰는 것이 적당하다.

 

2. 태화산 광덕사 일주문

 

3. 광덕사 일주문의 뒷모습

일주문 정면에는 '태화산 광덕사' 현판을 내걸어 이곳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고, 뒷쪽에는 '호서제일
선원' 현판을 내걸어 광덕사의 오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4. 오래된 느티나무 (천안시 보호수)

일주문에서 광덕사 경내로 가는 길목에 늙은 느티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나그네를 맞는다. 그
는 추정 나이 약 480살, 높이 22m, 둘레 5.8m에 큰 나무로 1982년 천안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5. 광덕사 경내로 꾸준히 인도하는 숲길

 

6. 광덕사 경내 직전 극락교

 

7. 광덕사 호도나무

경내를 가리고 앉은 보화루 앞에는 늙은 호도나무가 높이 자라나 주변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는 광덕사의 오랜 상징이자 이 땅에서 가장 늙은 호도나무로 추정 나이는 약 400살 이상, 높이는 18
.2m에 이른다. 60cm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들의 가슴높이는 각각 2.62m, 2.5
m이다.

 

호도는 옛조선과 고구려, 백제가 크게 지분을 가졌던 중원대륙이 원산지로 이 땅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4~5월에 꽃을 피우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데, 앞서 언급했던 유청신이 몽
골(원)에서 어린 호도나무와 호도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천안 지역 제일의 고찰로 명성이 높았
던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신의 집에 심었다고 전한다.

광덕사에 심었다는 나무가 바로 이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나무의 나이는 400살 내외라고 하니 유청
신이 심었다는 나무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연으로 광덕사는 호도나무의 고향이 되었고, 광덕
사가 자리한 천안 광덕면 지역은 호도나무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지역이 되어 이 땅의 호도나무 시
배지로 여기고 있다.

그의 그늘에는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어 다시 한번 유청신의 공을 기
린다.

 

8. 바로 밑에서 바라본 광덕사 호도나무의 위엄

천하에서 가장 늙은 호도나무로 요즘도 왕성하게 호도를 빚어낸다.

 

9. 광덕사 적선당

광덕사 경내를 크게 가리고 있는 보화루는 2층 누각 형태의 건물로 1층은 바깥과 경내를 잇는 공간
으로, 2층
은 교육, 법회 공간으로 쓰인다. 그의 밑도리를 지나면 비로소 광덕사 경내 중심부에 이르
게 되는데, 정면으
로 대웅전과 3층석탑이 있고, 그 좌우로 선방으로 쓰이는 적선당과 육화당이 서로
를 마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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