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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광동 흥무대왕 김유신사당

보광동 오산중고등학교 동쪽 가파른 곳에 김유신 장군 사당이 둥지를 틀고 있다. 속세에서 이곳을

찾으려면 서빙고로에서 각박한 계단길을 올라가거나 리버빌아파트에서 계단을 이용해야 되는데,

사당은 아쉽게도 제사일(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과 김유신장군 사당 제향(보통 11월 중/하순에 하

고 있으며, 용산구청에서 지원하는 지역 행사로 자리를 잡음) 등 일부 날에만 들어갈 수 있다. (그

외에는 사당 정문인 용화문까지만 접근할 수 있음)

 

김유신 장군(595~673)은 신라 중기를 대표하는 장군으로 가락국(금관가야) 왕족 출신이다. 그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신라 땅을 북쪽으로 만주, 요동까지 확장시켰으며, 당나라군도 토벌해 신

라를 반석 위에 올렸다. 그 공으로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다.

 

이곳 사당의 이름은 명화전인데, 언제 세워졌는지는 한강 용왕도 모르는 실정이다. 다만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한강 수심이 얕은 곳을 건넜는데, 그때 보광동 지역을 지나

갔다고 한다. 그리고 고구려를 공격하고 서라벌로 돌아올 때 이곳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며, 주민들이 이에 크게 감동을 받아 사당을 세워 그를 주신으로 삼아 마을 평안을 기원하는 제

를 올리고 있다.

 

원래 위치는 여기서 남쪽으로 50보 떨어진 한강 강변에 있었다. 허나 1941년 왜정이 중앙선 철도

(현재 경의중앙선)를 복선화한다며 이 사당을 부시려고 하자 동네 사람들이 현재 위치로 옮겼다.

이후 퇴락된 것을 용산구의 지원으로 1992~1993년에 정비하여 사당, 삼문, 관리사, 담장을 개축

했다.

 

2. 김유신 사당의 정문인 용화문

이곳 정문인 용화문은 삼문 형태로 속세에 늘 닫힌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산자락에 자리해 담장을 높

이 두르고 있어 까치발도 소용없다. 하여 이렇게 사당 정문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 리버빌아파트에서 김유신 장군 사당으로 인도하는 계단 건물, 그리고 그 너머로 살짝 보이는 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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