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주차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횡성군 동쪽 끝에 자리한 둔내면, 칼처럼 높이 솟은 뫼들 사이에 포근히 뉘어진 둔내면 중심지에 철기시대 주거지로 보이는 늙은 유적이 전하고 있다. 다른 유적들은 발견된 모습 그대로 땅속에 묻어서 그 위에 풀과 나무를 심고 유적을 알리는 안내문이나 비석을 세우기 마련이나 이곳은 그럴 겨를도 없이 집과 주차장, 농경지에 모두 파묻힌 상태이다. 그리고 주차장 한쪽에 그들을 알려주는 안내문만 달랑 있을 따름이다. 이곳 유적은 '呂'자형 주거지로 규모는 전체 길이 13.52m, 너비 8.7m, 면적은 96평방미터 정도이다. 둔내 지역에서 나온 주거지 유적 중 가장 큰 편으로 다량의 토기 파편과 소량의 철기류, 석기류 등이 나왔는데, 화재나 큰 사고로 집..

1. 단양 신라 적성비를 품고 있는 팔작지붕 비각단성면 중심지의 오랜 뒷동산인 성재산 정상부에 단양적성(적성산성)이라 불리는 늙은 산성이 있다. 그 산성 내에는 단양 적성비(단양 신라 적성비)란 이름을 지닌 매우 늙은 비석이 있어 고색의 향기를 마음껏 내뿜는다.이곳 적성비는 완전한 모습이 아닌 일부만 남아있는 것으로 1978년에 발견되었다. 이때 땅속에서 비스듬히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비문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비석에는 288자의 글씨가 있는데,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었다. 예서체에서 해서체로 넘어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깨지고 사라진 비문을 포함해 전체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여겨진다. 이 비석..

1. 아차산4보루 북쪽 치아차산4보루는 용마산과 망우산을 제외한 아차산 식구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우리나라(남한)의 고구려 성곽 유적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초의 현장으로 의미가 아주 남다른 곳인데,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런데로 남아있었으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던 높이가 0.8m를 넘지 못했으며, 부정형의 석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구리시가 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1. 수락산보루 (수락산1보루) 수락산보루는 수락산 서남쪽 끝 봉우리 정상부에 포근히 깃들여져 있다. 보루터 보존을 위해 봉우리 정상부의 수풀을 모두 밀어버리면서 마치 잔디가 깔린 뒷동산 같은 모습인데, 고구려(고구리)가 조 성한 보루로 보고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나라로 꼽히는 고구려는 동쪽으로 연해주, 동남쪽으로 남한 땅, 북쪽으로 몽골, 서쪽으로 산서성과 화북지방, 서남쪽으로 황하 주변까지 차지했던 큰 나라로 서울 지역에서는 백제 또는 신라와 국경을 맞댔다. 백제 또한 천하 제일의 해양대국으로 중원대륙 화북, 산동반도, 강 남, 오월 지역을 비롯해 왜열도, 동남아를 장악했으며, 그들보다 늦게 발전했지만 신라도 만주와 요 동, 그리고 중원대륙에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던 한 성격 했던 나라이다..

1. 수락산보루 (보루 북쪽 부분) 수락산의 서남쪽 끝자락 봉우리에 수락산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이곳은 귀임봉 서남쪽이자 노원골 (수락계곡) 남쪽 봉우리로 출토 유물과 축성 방법 등을 통해 고구려가 닦은 보루로 보고 있다. 고구 려(고구리)가 5세기에 해양대국 백제를 한강 남쪽으로 밀어내고 한강 이북 아차산 산줄기에 보루를 주렁주렁 달았는데, 그때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 홍련봉, 시루봉 등 아차산 산줄기에 보루를 많이 달았으며, 그 북 쪽으로 봉화산, 수락산, 사패산, 천보산, 불곡산 등에도 보루를 달았다. 중랑구의 북쪽 지붕인 봉화산 은 옛날에 아차산의 일원으로 있었는데,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 홍련봉, 시루봉 보루들은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국가 사적..

1. 망우산2보루 망우산 정상부(282m)에 망우산2보루가 폐허의 상태로 깃들여져 있다. 정상(망우전망대)과 정상부 북쪽 부분에 걸쳐있는 그는 망우리묘지가 한참 닦이는 과정에서 크게 망가져 안타깝게도 원래 모습 과 규모를 파악하기가 힘든데, 다만 고구려식 토기 조각들이 여럿 나와 고구려가 닦은 보루로 여겨 진다. 2. 망우산2보루 안내문 주변 (망우산 능선길) 망우산에는 3개의 보루터가 발견되었는데, 이중 망우산 남쪽 능선에 있는 망우산1보루만 국가 사적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지위를 누리고 있고, 북쪽 능선(망우산 정상 북쪽)에 있는 망우산2보루와 3 보루는 비지정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2보루와 3보루의 상태가 영 좋지가 못하다. 3. 망우산3보루 남쪽 부분 4. 망우산3보루 망우산2보루에서 북쪽으..
' 연천에서 만난 고구려의 작은 흔적, 전곡 은대리성 ' 여름 제국(帝國)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이던 7월의 한복판에 경기도 북부에 자리한 연천 (漣川)을 찾았다. 남북분단의 비애가 서린 연천 고을에서 가장 큰 읍내이자 구석기유적 의 성지(聖地)로 추앙받고 있는 전곡읍(全谷邑)까지 어찌어찌 가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찾은 전곡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마침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는 은대리성을 더듬 기로 했다. 은대리성은 전곡읍내 서쪽에 위치한 연천군보건의료원 서쪽에 자리해 있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보건의료원 내부를 거쳐야 된다. ♠ 한탄강 언덕에 깃든 옛 고구려(高句麗)의 조그만 성 연천 은대리성(隱垈里城) - 사적 469호 ▲ 은대리성 내부 한탄강(漢灘江)과 주상절리로 유명한 차탄천(車灘川)이 만나는 삼..
1. 망우산3보루터 망우산 북쪽 능선에 망우산3보루터가 있다. 망우리공원으로 들어서 사색의길 동쪽 구간을 가다보면 망우산3보루를 알리 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그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좀 들어서면 3보루 안내문이 나온다. 망우산에는 3개의 보루가 발견되었는데, 1보루만 국가 사적의 지위('아차산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됨) 를 누리고 있고, 2보루와 3보루는 상태가 매우 안좋아 비지정에 머물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망우리묘지를 닦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원래의 형태와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루터 남쪽 비탈면에 무너진 석축 일부가 있고, 돌을 다듬은 기법으로 보아 고구려가 닦은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고구려 토기 조각과 민무늬토기 조각이 나왔으며, 보루터 주변 무덤들이 모두..
'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나들이 ' ▲ 망우산, 용마산 산줄기 ▲ 아차산4보루 ▲ 망우산1보루 여름 제국이 저물고 가을이 서서히 고개를 들던 9월의 한복판에 나의 즐겨찾기 산의 하나 인 아차산을 찾았다. 아차산은 고구려(高句麗) 유적의 성지이자 해돋이와 일몰 명소로 유명하여 오랫동안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야무진 산이다. (나들이와 산행, 답사, 야간 등산 팬들이 많음) 산세 가 완만하여 두 다리만 멀쩡하면 누구든 마음 편히 안길 수 있으며, 산 좌우가 죄다 평지 다보니 낮은 높이에 비해 조망이 아주 일품이다. 게다가 고구려의 거룩한 넋이 깃든 보루가 20개 가까이 펼쳐져 있고, 아차산성과 아차산3 층석탑, 온달샘석탑, 석실고분 등의 문화유산과 영화사(永華寺)와 범굴사 등의 오래된 절, 긴고랑계곡,..
' 고구려 유적의 성지, 서울 아차산 ' (아차산성, 아차산1보루, 3보루, 5보루) ▲ 아차산 산줄기 ▲ 아차산3보루 ▲ 아차산4보루 아차산은 해발 295.7m의 뫼로 용마산과 망우산을 거느리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의 동남 쪽 벽으로(동북쪽 벽은 수락산, 불암산 산줄기) 서울 광진구,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九 里市)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중랑구 봉화산(烽火山)까지 아차산의 영역이었 다. (봉화산에 있는 봉수대를 '아차산 봉수대'라 부름) 아차산은 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만 해도 무려 4개(阿嵯, 峨嵯, 阿且. 峩嵯)씩이나 되는데, 삼국시대에는 아차(阿且), 아단(阿旦)이라 불렸으며, 고려 때 지금 널리 쓰이는 '아차(峨 嵯)'란 이름이 나타난다. ('峩嵯'도 이때 나타남) 아단(旦)이란 ..
'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 아차산 나들이 (아차산성) ' ▲ 아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 아차산5보루 ▲ 아차산성 아차산은 해발 287m(또는 285m)로 용마산과 망우산을 거느린 큰 산줄기이다. 서울 강북의 동남쪽 벽으로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의 경 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중랑구 봉화산(烽火山)까지 아차산의 영역이었다. 아차산은 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만 해도 무려 4개(阿嵯, 峨嵯, 阿且. 峩嵯)씩이나 되는데, 삼국시대에는 아차(阿且), 아단(阿旦)이라 불렸으며, 고려 때 이르러 지금 널리 쓰이는 ' 아차(峨嵯)'란 이름이 나타난다. ('峩嵯'도 이때 나타남) 아단(旦)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우고 이름을 단(旦)으로 고치자 제 왕의 이름을 피하는 법칙..